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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영국 의사-54화 (54/249)

54화 축농증 수술이…… 어떻게 하더라? [1]

축농증.

부비동염이 보다 의학적인 용어다.

부비동에 염증이 생겼다는 말인데…….

그냥 코 옆에 있는 공간에 염증이 생겼다고 보면 되었다.

환자처럼 두통까지 일으키는 경우라면 아마 꽤 깊숙이 있는 부비동에 염증이 생겼단 얘기일 텐데…….

‘아…… 존나 하기 싫은데……?’

항생제 없나?

항생제…….

푸른곰팡이…….

빵을 좀 어디에 방치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페니실린에 대한 내 유일한 지식이 푸른곰팡이인 것이 한계였다.

세상에 푸른곰팡이가 페니실린 하나만 있겠냐고…….

나쁜 놈들이 더 많겠지.

그걸 환자한테 먹여?

‘살인이지…… 살인이야.’

그렇다면 뭐부터 해야 할까.

“아.”

기똥찬 생각 하나가 났다.

수술을 꼭 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부비동염일 때 우선적으로 해 봐야 하는 것, 코 세척이 있었다.

“환자분.”

“네?”

“일단 코에 염증이 좀 있어요. 그거 때문에 머리가 아플 확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이게 원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찬찬히 생각을 해 보니까…….

그보다는 밖을 내다보니까…….

하늘이 시커멨다.

비가 오려고 이럴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런던 하늘이 이랬다.

21세기 대한민국 미세먼지도 장난이 아니긴 했는데…… 여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여긴 그냥 지옥이었다.

‘부비동염은 그냥 다들 기본으로 깔고 있지 않을까……? 물론 고개 숙이면 머리가 더 아파진다는 게…… 이 근방 염증이 원인일 가능성이 커 보이긴 하지만…….’

만약 이것 때문에 코를 깠어.

깠는데 다행히 살았어.

근데 부비동염이 아니었어.

와우.

그 죄책감을 내가 어떻게 견디겠나…….

“그럼 코를…… 없애나요?”

“아니, 아뇨.”

이런 시대에선 괜찮으려나?

뭔가 원인이 되면 일단 없애고 보잖아?

의사만 그런 게 아니라 환자들부터가 그런 시대니까…….

‘아니, 아니야.’

나는 애써 고개를 털어 머릿속에 깃든 마구니를 없앴다.

그러곤 제대로 된 말을 입에 담았다.

“코를 닦아 보죠.”

“네? 세수를 하라고요?”

“아니, 코안을요.”

“코……안을?”

“평, 너 미쳤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분명 의학적인 소견에 따라 아주 정확하면서도 안전한 처치를 말한 건데, 주변에 있는 놈들이 상식적이지 못하다 보니 비난이 잇따랐다.

하긴 코안을 닦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잘 느낌이 안 오겠지.

이 새끼들은 코 바깥쪽도 잘 안 닦잖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시대 사람들 중에는 씻으면 안 된단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청결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면 템스강을 저 모양 저 꼴로 두지도 않지 않았을까.

“아니, 잘 봐 봐. 주전자 하나만 가져와 봐. 아, 기왕 가져오는 거 끓여서.”

“물을 끓여서……? 아, 그걸 코안에 부어서 치료하는 건가?”

“아니…… 그건…… 그럼 안 돼……. 환자 죽어…….”

조지프는 고문 기술자나 생각해 낼 법한 발상을 떠올리곤 손뼉을 치더니, 내가 아니라니까 왜인지 모르게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정상적인 병원이라면 환자 처치를 위해 무언가 끓일 수 있는 물품들이 병동이나 적어도 그 가까이에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런던 칼리지는 내가 오기 전까지 손도 안 닦았던 병원이었다 보니 죄다 멀리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사이 앨프리드가 물어왔다.

“근데 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도 있는 거야?”

“아…….”

해부학을 모르니 물을 수도 있는 질문이긴 했다.

당연하지 않나?

대개의 질환은 해부학을 알아야 생리적인 이해도 가능한 법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해부학은 21세기에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더랬다.

여전히 이게 다양성의 한 종류인지 아니면 기형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위가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떨까.

모든 것이 개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일단 봐 봐요. 이따 해부하면서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고요.”

“아…… 그래. 해부는 또 네가 천재잖아.”

“그렇긴 한데.”

얼굴을 해부할 생각을 하니까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포르말린 처리를 하면 시신이 약간 인형처럼 변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해부 실습을 할 때는 어지간하면 얼굴은 가려 두었다.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인지할 수 있는 부위가 손상될 때 제일 큰 공포, 공포까지는 아니더라도 꺼려짐을 느끼기에 그랬다.

허나 코 주변의 해부학을 알려면 거길 하긴 해야 했다.

거긴 나도 좀…… 많이 잊어버렸거든.

‘혹시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연습도 해야 할 것 같고……?’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시신들은 얼굴은 온전한 채로 남아 있었다.

어차피 얼굴은 일부 종기 말고는 수술의 대상이 되지 않는 시대다 보니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아서 그랬다.

아무리 탐구심이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본능적인 거리낌을 이겨 내면서까지 얼굴을 들이파지는 못했다.

“어후, 뜨거워.”

그사이, 조지프가 주전자로 물을 끓여 들고 왔다.

주둥이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환자분. 저기 주둥이 가까이…….”

“앗 뜨거!”

“아니, 그렇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증기가 올라올 정도. 그래요. 거기에 콧구멍 대 봐요.”

“어…… 네.”

그새를 못 참고 코가 빨개질 정도의 손상을 입은 환자의 코를 보며, 나는 제대로 된 위치에 자리시켰다.

증기가 안으로 하염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거 약간 신비 치료 같은데……?”

“아니야, 인마.”

“아냐? 뭔가 들이마시는 느낌이…….”

“그런 거 아냐.”

하얀 김이 콧속으로 들어가는 게 좀 영험해 보인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또 동양인이다 보니 좀 더 그런 느낌이 들긴 했을 터였다.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칸 원주민들 또한 영험한 무언가를 하지 않던가?

그들하고 나는 또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편견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 방금 보여 준 모습은 편견 가득한 시선을 상상해 보니 확실히 그럴싸했다.

“자, 환자분. 코가 좀 어때요?”

“네? 아…… 네. 그…… 이상하게 숨쉬기가 훨씬 편한데요?”

“신비 치료잖아!”

효과도 있다고 하니,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발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난 억울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럼 뭔데!”

사람이 왜 코로 숨을 쉬어야 할까?

그건 코의 구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코 안쪽을 보면 비갑개라고 불리는 구불거리는 구조가 무려 세 개나 있었다.

그게 코안의 면적을 늘리는 역할을 하는데, 그뿐만 아니라 코에는 혈관이 엄청 많았다.

이것들 덕에 바깥에 있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코를 통과하면서 따뜻하고 습기 찬 공기가 되는 것이고, 폐에서의 가스 교환이 용이해지는 것이었다.

여기서 얻어지는 산소를 가장 활발히 쓰는 곳이 뇌이기에 입으로 숨을 쉬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기도 했다.

심지어 구호흡(입으로 하는 호흡)은 ADHD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속 시원하게 할 수 없다니.’

나는 잠시 한탄한 후, 입을 열었다.

“너 샤워할 때 코 풀어 본 적 없어?”

“응?”

“으응?”

이론적으로 풀 수 없는 세상이다 보니 경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특히 따뜻한 물로. 선배네 집이 잘살다 보니까 맨날 그렇게 하잖아. 목욕도 자주 하고.”

“어…… 그러고 보니까 나 그때만 코를 푸는 거 같은데……?”

“나도.”

“그때 코 풀면 건더기 엄청 나오지?”

“어…… 부끄럽지만.”

“엄청 나오긴 하지.”

런던에서도 내놓으라 할 정도의 상인 집안 자제와 독실한 퀘이커 교도 집안인 주제에, 술 빚어 판 돈을 막대하게 벌어 낸 부유층 자식 둘이 코 푼 얘기를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워할 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런던의 공기는 진짜 극악이거든.

“그때 느꼈지. 따뜻한 증기가…… 코를 넓혀서 그 안에 쌓여 있던 것을 쉽게 내보내게끔 해 주는 건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이야.”

“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때가 숨쉬기 좋았던 것 같아.”

“간단한 사실인데 생각을 안 하면 눈치채는 게 어렵지.”

“와…… 넌 진짜 천재구나.”

“진짜로…… 넌 정말 천재야.”

본의 아니게 또다시 김태평 천재설이 돌기 시작했는데, 뭐 오히려 잘되지 않았나.

이런 오해와 편견이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나중에 내가 좀 과하게 정보를 풀어도 납득이 될 터였다.

그게 아니라도…… 이 둘은 내게 절대 충성하게 될 테고.

거기에 더해 리스턴에 최근 태도를 바꾼 블런델도 있으니, 내 입지는 나름 단단해진 셈이었다.

“하여간…… 자, 이게 환자분. 코를 살짝 풀어 볼래요?”

“어, 네.”

나는 그렇게 썰을 풀다가 환자를 돌아보았다.

이미 감명받은 얼굴이었다.

관짝에 들어갔던 걸 내가 살려 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 내가 보여 준 모습은 그야말로 영명하지 않았나.

후후.

그래, 19세기 천재로 간다.

“팽!”

환자는 맨손으로 코를 풀었다.

휴지 따위는 없는 세상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

나도 코를 좀 보고 싶었거든.

“와…… 누렇네.”

“너무 누런데? 나도 가끔 이렇게 나오긴 하는데…… 이 정도는…….”

코가 아니라 농이란다, 얘들아.

콧물은…… 저렇지 않아요.

저건 그냥 농이야.

끈적하다 못해 아예 노란 덩어리가 있잖아.

“머리 아픈 건, 어때요?”

“어…… 아까보단 나아요. 머리가 무겁게 아팠거든요? 이게 24시간…… 특히 자려고 누우면 더 심해지는데, 지금은…… 오. 이거…… 이게.”

거기에 더해 증상도 좋아졌다.

이쯤 되면 뭐, 완벽하게 진단을 내려도 좋을 거 같았다.

비록 그 흔한 X-ray 사진도 없이 내리는 진단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이게 최선이니까.

“확실히 코에 있는 이 농 때문인데…… 지금은 일시적으로 좋아진 것뿐일 거예요. 일단 이 물이 식을 때까지 코 푸는 걸 반복하다가…… 다 식으면 세척하는 법을 알려 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이거 어찌 갚아야 할지…….”

“일단은 치료나 하시죠.”

은혜는 진짜 어떻게 갚냐.

아무리 봐도 가난한 사람인데.

하지만 이 치료가 입증될 수만 있다면, 확실히 보상이 되긴 할 터였다.

‘이 시기에는 귀족이고 나발이고 다 있을걸…….’

머리가 아파도 참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공기는 만인에게 공평하니까.

거기에 수술이 아니라 그냥 간단한 치료만 해도 된다는 걸 밝혀낸다면…….

‘나 혹시 부자되는 거 아닐까!’

와!

꿈에 차 있다 보니, 물이 식었다.

그사이 환자가 풀어 낸 코, 그러니까 농의 양은 꽤 되었다.

작은 종이컵 하나는 넉넉히 채울 수 있을 정도?

아마 증기도 섞여 있기야 하겠지만, 하여간.

“자, 이제 이 물로 코안을 닦을 거예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이제는 코 세척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

보기에 좀 추할 수는 있겠지만…….

결과는 기적이라 할 만할 거다, 이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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