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얼떨결에 [3]
수술방이었으면 지금쯤 멜론 차트 1위부터 100위까지 돌아가고 있었을 테지만…….
이곳은 강의실이었다.
남 수술하는데 떠들어 대는 놈들로 가득한…….
19세기 그 자체.
“뭐 하는 거야?”
“배 수술한다는데?”
“어? 살 수 있나?”
“모르지.”
미친놈들…….
영화관 왔냐?
아니, 아니지.
영화관에서도 떠들면 안 되지.
지금 막 소름이 돋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19세기 사람 다 됐어.
철벅.
하여간 나는 손을 씻고, 장갑을 끼고 또 씻었다.
그사이에 마차도 못 타고 헐레벌떡 뛰어온 앨프리드 선배가 마취에 나섰다.
말이 마취지 가스통 돌리는 게 다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다만 한 가지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면, 환자가 숨 쉬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 정도인데…….
“걱정 마!”
누런 이를 뽐내며 껄껄 웃는 앨프리드를 보니 약간 안심이 되었다.
저런 꼴이긴 해도 나름 호흡은 잘 챙긴단 말이지.
‘확실히 손이 후지긴 하니까…… 차라리 진짜 마취로 빠지는 게 더 나을 수 있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말을 아주 잘 듣잖아?
데리고 다니기에 마취과가 최고 같았다.
치덕치덕.
하여간, 나는 콜린이 끓여서 식혀 온 물을 환자의 상처에 들이부었다.
마취가 살짝 덜 되었는지 꿈틀대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가스 돌리면 방법 없다니까?
“흐음.”
“으으음.”
템스강 물이라는 게 단순히 끓인다고 해서 깨끗해질 수 있는 건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깨끗해 보이는 물을 붓고 있으려니 아까보다는 확실히 상처가 잘 보였다.
“일단 칼.”
“아, 절단인가?”
“네?”
장은 괜찮아 보였지만, 이걸 확실히 하려면 상처에 절개를 더해서 안에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터였다.
해서 칼을 달랐더니, 리스턴이 리스턴 칼을 건네주었다.
아니, 내가 받지 않았으니 건네주려 했다가…… 맞는 표현이겠지.
“절단 안 하나?”
“어디…… 어디를요?”
“여기.”
“아니…….”
리스턴은 상처 난 부위를 슥 가리켰다.
여길 자르면…….
사람이 반 토막 날 텐데?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드는 가운데 오히려 그래서 더 말이 안 나왔다.
다행히 리스턴도 생각이 아예 없는 인간은 아니다 보니, 내 침묵을 지켜보다가 이내 칼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거…… 죽겠지?”
“그럼요. 죽죠.”
“그럼 칼이라는 게 자네의 그 빈약한 칼을 말하는 것이로군그래.”
“그…… 왜 아랫도리를 보면서 말씀하시는지?”
“차이가 비슷하지 않나.”
“하.”
너 진짜 좀만 작았으면 죽었다.
나는 심한 모욕감에 몸을 떨다가, 이내 제대로 된 메스를 받아 들었다.
다행히 콜린이 재빨리 장갑을 끼고 합류한 덕에 보조의가 생겨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이놈이 인성과는 별개로 손이 꽤나 좋단 말이지.
눈썰미도 좋고.
“일단…….”
“호쾌하게 하지 그러나.”
“아니…… 사람 몸을 째는데 호쾌하다니요. 그게 마취 전의 사고방식이라니까요.”
“그런가.”
사실 리스턴도 비슷한 재능의 소유자였을 텐데…….
리스턴 칼을 하도 휘둘러 와서 그럴까?
다시는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듯했다.
지이익.
나는 갖은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배를 좀 더 열었다.
물론 크게 열지는 못했다.
그랬다가 감염이라도 돼 봐.
썩은 빵을 먹일 수 있을까?
배가 이 지경인데?
그렇다고 주사……?
아무리 내가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약을 알고 있다 해도, 그 곰팡이 부스러기를 모아다 혈관에 꽂을 용기는 없었다.
“어어, 배 쨌어?”
“허어…… 닥터 평이 실험 정신이 진짜 대단하다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괜히 동양인이 이만큼이나 명성을 얻게 된 게 아니라니까?”
“명예 백인이라는 말이 괜시리 나오겠나.”
마스크도 안 끼고 떠들어 대는 꼴 좀 보라지.
말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제대로 닦지도 않을 게 뻔한 입 안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균이 너무 신경 쓰였다.
“에게…….”
리스턴은 그런 내 소심한 절개를 보며 혀를 찼다.
왜 절개를 넣는 건지도 모를 텐데 이런 반응이라니…….
“이래서 안이 보이겠나?”
오.
과소평가했다.
확실히…… 런던 제일의 명의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건가.
“잘 봐야죠. 거기! 불 좀!”
“어…… 나?”
“그래, 너.”
“어…….”
“뒤지기 싫으면 와서 불 비추게.”
“아, 네.”
모두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리스턴은 관찰 및 보조, 조지프는 방금 짼 곳 벌리고, 콜린은 보조에 좀 더 치중하고…… 앨프리드는 마취.
그래서 눈에 띄는 놈 아무나 불렀더니 입이 사발만큼 나왔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노란 원숭이가 어쩌고저쩌고했던 놈 같은데…….
괜찮았다.
리스턴 앞에선 모두가 합죽이가 되니까.
“흐음.”
“으음.”
더 커진 절개창을 통해 본 안쪽 복강은…….
빈말로도 좋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이럴 거 같긴 했다.
삐죽한 걸로 갑자기 찌르면 당연하게도 장이 잘 다치기 마련이거든?
근데 이게 잘 티가 나지 않는 건…… 안에서 돌리지 않은 덕도 있지만 역시나 우리 복강의 수호자 장간막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럴 수도 있구만그래. 어렵게 됐는데.”
장간막.
쉽게 말해 장과 복강 사이를 채우는, 주로 지방으로 이루어진 막인데…….
안에 장기를 보호하기도 하고, 또 작은 상처 정도는 이 막이 가려서 배 속에 뭔가 쏟아지지 않도록 막아 주기도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강 가려 주고 있었고, 그래서 아까는 장에 난 상처를 확인하지 못했더랬다.
허나 보다 절개를 옆으로 늘리고 보니…… 장이 살짝 베여 있었다.
안에?
안에는 당연히 똥이 차 있었고.
‘어쩐다.’
상처의 길이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완전 초짜가 찌른 게 분명했다.
애초에 프로가 찔렀으면 장이 아니라, 그 뒤에 혈관을 노렸겠지.
두 번 찌른 것도 하나는 그냥 가죽이나 베고 말았잖아?
‘장루(腸瘻)를 뽑기엔…….’
그럼에도 환자는 죽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대한민국이었으면…….
솔직히 지금쯤이면 잡담 나누면서 편안하게 수술하고 있을 터였다.
환자가 죽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할 테니까?
허나…….
‘안 돼. 관리가 아예 안 될 거야. 어떻게든 여기서 봉합해서 집어넣는다…… 맹장 비슷하게 생각해야 돼. 이건…….’
지금은 위험했다.
최선을 다해야 했다.
“실.”
“어.”
“컷 좀 해 주세요.”
“봉합하려고?”
“네. 해 볼 수 있는 건 해 봐야죠.”
“으음…… 그러지. 근데…….”
“근데요?”
“환자 아까보다 피부가 찬데. 괜찮나?”
“아.”
앨프리드 이 새꺄.
환자 보랬더니, 숨 쉬는 것만 보고 있었냐?
장갑 낀 손으로 만져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차가워졌잖아.
‘돌아가셨나?’
하고 보니, 앨프리드가 일단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숨 쉬어. 약하긴 한데.”
괜찮다는 말은 무시하고.
숨 쉰다는 건 사실인 듯싶었다.
일단 가슴이 약하게나마 오르내리고 있어.
‘원래 같으면 수혈이라도 해야겠지만…….’
수혈이라.
원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우리 블런델이 섞어 수혈로 사람 몇 골로 보내고 난 후로는 교황청이 아니라, 원장님이 일단 금해 버렸다.
그럼에도 리스턴이 동조만 해 준다면 해 볼 수 있겠지만…….
이 양반도 지금 당장은 수혈에 굉장히 부정적이란 말이지.
‘그럼 그냥 후딱 끝내야겠어.’
수액을 넣든 뭘 하든 내가 해야 되는데, 손 멈추고 뭘 하느니 그냥 이대로 가는 게 나을 터였다.
해서 나는 일단 속행하기로 했다.
“우선 봉합하죠.”
“그래. 뭐…… 너무 자책하지 말게.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어.”
위로랍시고 하는 저주를 한 귀로 흘리며, 한 땀 한 땀 꿰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콜린이었다.
한 손으로 슬쩍슬쩍 보조를 하는데…….
내가 어디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대강은 아는 거 같어.
그 말은 곧 수술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고, 이놈 하나만 제대로 키워도 앞으로의 일들이 꽤나 수월해질 거란 얘기였다.
‘으음.’
물론 그건 희망찬 미래에 국한된 일이었다.
여전히 이곳은 19세기 평균에 불과한 곳이었다.
일단 실이…….
‘봉합 자체는 훨씬 쉬워.’
나일론 실이 얼마나 미끌거리는지 아는가?
나는 분명히 당겨서 매듭을 맸는데 풀려.
1년 차 때 그거 때문에 진짜 뒤지게 혼났었는데…….
이 명주실인지 나발인지는 워낙에 면이 거칠다 보니 대강해도 마찰력 때문에 절대로 풀릴 생각이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거친 면에 균이 끼어들어 갈 여지가 높고, 또 거기서 자라날 여지가 있다는 건데…….
‘이 사람을 믿자.’
칼 찔리고, 피를 그렇게 흘렸는데도 죽지 않은 사람이지 않나.
21세기의 나약한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말이었다.
인자강!
그 자체!
‘주여.’
왜 신을 그렇게 열심히 믿었는지 알겠어.
인자강을 믿어야 한다니…….
기도가 절로 나와 그냥.
지이익.
이러한 잡생각과는 별개로 나는 쉬지 않고 봉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소장은 두께도 얇거니와 애초에 칼에 한번 썰린 곳이다 보니 자칫하면 뭉개질 여지가 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 봉합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바늘이 예전에 내가 쓰던 것에 비해 훨씬 후지지만, 그래서 뭐?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단 말이 있지 않나.
그런 것치고는 엄청 탓하고 있긴 한데…….
하여간, 난 천재였다.
‘집중하는 게 느껴지는구만.’
분명 갈라져 있던 소장이 들러붙고, 갈라져 있던 배가 복막, 근육, 지방 그리고 가죽 순으로 들러붙는 광경은…….
모르긴 해도,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놈들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질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입술을 사발만큼 내밀고 있던 놈조차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무식한 놈이니 그냥 신기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다른 놈들, 그러니까 나로 인해 현대 의학의 세례를 손톱만큼이라도 받은 이들은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 뻔했다.
그중에서도 리스턴은 요즘 들어 가끔 내게 내비치는, 예의 그 의문스러운 듯한 눈빛을 하다가 이내 방금 내가 만든 매듭 위로 걸린 실을 툭 하고 잘랐다.
그걸로 끝이었다.
“좋아. 일단은…… 상처는…….”
“자, 그럼 범인을 물어볼까요.”
“아이, 시발 깜짝이야.”
옆을 돌아보니 경찰이 들어와 있었다.
잘하는 짓이다, 진짜.
수술하는데 아무나 막 들어오고…….
“시발? 그게 무슨 뜻?”
“조선말입니다. 강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엄청 놀랐다, 뭐 이런 뜻입니다.”
물론 공권력에 약한 나는 최대한 웃는 낯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환자를 깨우거나 하는 짓거리를 하진 않았다.
“그리고 일단 지금은 무리예요. 마취 가스도 들어갔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러다 범인 놓칠 거 같은데…….”
“단서가 전혀 없습니까?”
환자를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되었다.
해서 역으로 물었더니, 경찰이 ‘몰루?’ 하는 표정이 되어 답했다.
“목격자도 없고…… 무기도 없고. 오리무중입니다.”
하긴…….
이게 19세기다운 말이긴 했다.
과학 수사니 뭐니 했겠어?
다행한 것은, 수술한 내가 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점이었다.
“제가 상처를 보니까요.”
“응?”
법의학이 학점이 크진 않았지만…….
열심히 했단 말이지.
게다가 외상 봤던 짬밥이 몇 년인가.
어지간한 경찰보다는 내가 훨씬 나을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