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멈춰 [2]
“아니, 우리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막말로 사람 다리 자르고 팔 자르는 게 뭐 좋은 구경거리라고.”
“그 돈을 받은 게 당신네 병원이야!”
“뭐라고?”
리스턴 박사님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변에서 뻘쭘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찾아와 항의를 해 대기 시작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야 돈값 하는 구경거리를 봤으니 만족했지만…….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게 아니지 않나?
몇 안 되는 휴일 쪼개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나도 이게 제대로 된 공연이었다면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을 터였다.
이제 런던의 하층민들,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대강은 알게 되었거든.
‘근데…… 그 구경이라는 게 수술이잖아…….’
콜로세움 대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보단 낫기는 했다.
이것도 끔찍한 구경거리겠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사람이 죽어 나가진…….
‘아니지, 죽어 나가지. 엄청 죽어 나가지…….’
그나마 리스턴 측은 좀 나아진 편이었다.
-교수님. 아니, 형님! 이제 더 이상 본인의 경험을 과시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그 냄새 나는 칼 좀 씻고 다니세요. 네?
내 간곡한 부탁이 효험을 발휘한 덕이었다.
사실 리스턴이라고 해서 어찌 남의 피가 덕지덕지 묻어 냄새까지 나는 칼을 들고 다니고 싶었겠나.
다 그게 자기 위신을 세워 준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어서였는데, 내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지 않나?
이미 리스턴이라고 하면 그 명성이 런던뿐 아니라 영국 전체 심지어 바다 건너 프랑스에까지 진동하고 있었다.
허나 그 외에 다른 이들의 절단 수술은 여전히 소독은커녕 어떻게 하면 환자 죽일까를 고심한 결과물처럼 더럽디더러운 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뭐라고 했어, 인마.”
“아니, 아닙니다.”
잠깐 얘기가 딴 데로 샜는데 내가 너무 답답해서 그런다.
이 자식들 이거 교수형도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치들이니 뭐…….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게 결론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 어마어마한 비난의 벽을 몸 성히 통과하기란 불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리스턴에게는, 심지어 피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든 리스턴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살펴 가십쇼…….”
“그래. 다음 수술할 때 오시라고. 싸게 해 줄 테니까.”
“네네. 영광입니다.”
오히려 환대까지 받아 가면서 떠날 수 있었다.
“해리…… 도살자 해리라.”
“네?”
그렇게 빠져나오자마자 리스턴은 칼을 수건으로 쓱 닦은 후 칼집 아니, 수술 도구함에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몹시 불안한 말을 했다.
아니…….
의사 아니었어?
왜 별칭이 도살자인 것이지……?
“하도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서 붙은 별명이야. 그나마 우리 쪽 교수님은…… 안전제일 주의자였거든. 그래서 전립선 비대증 그 골 때리는 병을 치료하면서도 일단 위험하지 않게 했다고.”
“아하, 네.”
방금 전까지 자료 읽다 온, 이게 자료인지 아니면 참회록인지 좀 헷갈리던 것을 읽다 온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 친구는 효과를 보다 끌어 올리려고 별짓을 다 했다네. 자네도 해부를 해 봤으니 알 텐데, 전립선이 그 뭐야 직장 앞에 있지 않나?”
“그렇죠…….”
허나 말을 듣다 보니, 그렇게 많은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덜컥 불안해졌다.
이번엔 또 어떤 빌런을 마주치게 되는 걸까?
예전엔 진짜 그냥 공포감에 휩싸이기만 했을 텐데…….
이제 나도 19세기 사람이 다 되어 가는 건지 뭔지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었다.
“이놈이…… 그것에 착안해서 전립선을 밖에서 제거하려고 했네.”
“네?”
하지만 이건 좀…….
이건 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을 거라 확신한 채 되물었다.
에이, 설마…….
그러진 않았겠지 하면서.
“앞에서도 째고, 옆에서도 째고…… 배를 여는 건 금기임에도 그랬다니까? 그러다 직장이 터지기도 하고…… 똥이 배 위에 둥둥 떠다니는데…… 병원에서 괜히 쫓겨난 게 아니란 말일세.”
“아……?”
“그런 미친놈을 어찌 병원 교수로 쓰겠나. 당연히 내쫓았지. 근데 이놈이 뻔뻔스럽게도 런던 근교에 치료소를 세우고 의사 활동을 이어 가고 있네. 당연히 엄청나게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지.”
오…….
이쯤 하면 19세기에서도 이단아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하긴 딱 듣기만 해도 이 새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비참하게 죽게 만들었을지 이해가 갔다.
소독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배를 연다는 거부터가 어마어마한 일 아니겠나.
게다가 관장이라는 개념이 있겠나?
변이 더럽다는 개념이 있겠냐고.
어?
집에서 싼 거 길바닥에 매일 아침 쏟아붓는 놈들이 하나 가득이잖아.
‘똥타미네이션이라…… 하아.’
21세기에서도 응급으로 수술 들어갈 때는 미처 관장이나 금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배를 열었는데 장이 터졌거나 혹은 괴사하고 있는 중이라면 변이 복강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되면 물로 세척을 진짜 미친 듯이 하고 소독도 하니까 그것만으로 잘못되는 경우는 잘 없기는 했다.
하지만 예후가 확실히 더 안 좋아지는 건 맞았다.
여기선 어떨까?
살아나면 그게 기적이지 딴 게 기적일까 싶은 수준일 터였다.
“근데…… 교수님은 일단 자기가 다루는 수술을 하는 놈이 이놈뿐이기도 하고, 명목상으로 제자이기도 하니까 계속 교류를 했던 모양이네. 뭐…… 외로웠을 거야.”
“외로워요?”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외과라면 모름지기 절단술이 메이저 아니겠나.”
“아, 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맞는 말이긴 했다.
절단술 말고 외과 의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 않나.
산부인과가 아직 외과 계열로 분류되지 않는 시절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막말로 절단술을 잘하지 못하는 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하게 되는 게 결석 제거나 치질 등과 같은 수술이었다.
“나라도 좀 인사를 드릴 것을. 미친놈하고 이렇게 교분을 쌓을 줄이야. 아무튼, 가세. 불알을 자른다고? 거참.”
“네네. 빨리 가야죠. 아휴.”
우리는 그렇게 도살자 해리에 대한 기본 정보를 숙지한 후, 마차에 올라탔다.
리스턴이 개인적으로 쓰는 마차인데 아까 극장도 봐서 알겠지만 요새 이 양반이 버는 돈이 꽤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보니 마차가 심심하면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와, 이거 쿠션이……?”
“하하. 좋지? 청나라산일세.”
“아하.”
중국산이 자랑인 시절이구나.
하긴 그랬던 적도 있기는 했지.
‘아편 전쟁이…… 얼마나 남았지?’
한 10년 남았나?
잠깐 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내 조선의 앞날도 그리 밝지 못하단 생각에 살짝 침울해졌다.
말 그대로 살짝이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지금 당장 뭘 어쩌겠나.
뭐…….
여기서 명성을 더 얻어서 작위라도 받게 된다면 또 모를 일이긴 할 텐데, 그건 너무너무 먼 얘기였다.
다만 몇 가지 희망적인 것이 있다면 벌써 교수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빅토리아 여왕…… 아직 공주님이지만 날 좋게 봐 주고 있지 않나.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나?”
“아…… 아니, 뭐. 벌써 잘려 나갔으면 어쩌나 싶어서요.”
“뭐…… 할 만한 걱정이지. 미친놈들일수록 부지런한 법이거든.”
댁도 새벽부터 칼 휘두르는 분입니다만? 이라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왔다가 간신히 내려갔다.
그 대신 나는 눈치 잔뜩 챙긴 발언을 내뱉었다.
“그렇죠. 세상 의사들이 다 형님 같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하하! 아니지. 자네 같아야지. 내가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겠지?”
“아니, 뭐…… 저는 아직 갈 길 멀었죠.”
“하하하! 겸손하기까지! 이래서 내가 자네를 원장님께 적극 추천한 걸세.”
리스턴은 그렇게 말하다 말고 앞쪽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마차는 런던의 복잡한 도로를 벗어나 조금이나마 한적해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애초에 병원 자체가 살짝 런던 외곽에 위치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차피 고위층들이야 병원 갈 일이 없지 않나.
아프지 않는단 얘기가 아니라, 의사가 왕진을 간다는 얘기였다.
딱히 뭐 의료 장비랄 게 없는 시대인 데다가 병원이라는 곳이 거대한 공동묘지처럼 여겨지는 시기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걸핏하면 사람 죽어 나가지, 해부 때문에 시신 썩는 냄새 나지…… 병원은 21세기와는 달리 혐오 시설이었다.
“저기 도살자의 치료소가 보이는구만그래.”
그리고 저기 진짜 혐오 시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적하다고 해 봐야 런던은 무한정 그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저기도 어엿한 도시의 일부분으로 보였다.
오가는 사람들도 한복판에 비해 줄었을 뿐 꽤 많았다.
행색이 많이 추레해 보이기는 한데…….
이거야 뭐 런던 한복판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니 뭐라 비교하기가 애매했다.
“저긴가요?”
그 중간 어딘가에 해리의 치료소라고 쓰인 건물이 하나 있었다.
솔직히 병원이라기보다는 선술집 같아 보이는 곳이었는데…….
뭐 외관이야 어쩌겠나.
당장 런던 조금만 벗어나면 여전히 치료해 주겠답시고 덤벼드는 떠돌이 주술사들도 있는 세상이었다.
저런 곳이라 해도 런던 한복판에서 활동했던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앞에 사람이 꽤 있구만그래. 저 사기꾼 새끼.”
“어…… 지금 죽이면 안 되는데.”
“죽이긴 누가 죽인다고.”
“칼은 왜 뺐어요, 그럼.”
“에구머니.”
리스턴은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칼을 뽑아 들었다가 흠칫 놀랐다.
그러곤 칼을 안에 잘 갈무리했다.
저걸 왜 품 안에 넣나 싶긴 했는데…….
뭐 어쩌겠나.
칼 쥔 놈 마음이지.
“다 왔습니다, 교수님.”
마부는 치료소 바로 앞에 마차를 멈추어 세웠다.
이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퀄리티의 마차 아니, 아마 마차 자체가 서는 일이 잘 없어서 그런가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확 주목되었다.
그중에는 저거 확 털어 버릴까 하는 눈빛도 분명 있었다.
허나 마부는 딱히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권총 하나 달랑 차고 있는 걸 믿어서는 아니었다.
“어우.”
“볼일 보세.”
“와아…… 갱단 두목인가 보다…….”
리스턴이 딱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이쪽으로 향했던 시선 절반 이상이 거두어졌다.
‘역시…….’
이 형님이랑 다니면 억울한 일 당할 염려는 없을 게 분명했다.
생긴 거 자체가 폭력이지 않나.
“옆에도 만만치 않겠구만.”
“허어…… 청나라 갱…….”
게다가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일부러 주변을 좀 노려보아 봤는데, 과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들 사삭 눈을 피했다.
쾅쾅.
그렇게 리스턴은 줄 서 있는 환자들을 헤치고서 치료소 문을 두드렸다.
“야, 나와!”
어디 뭐 빌린 돈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했다.
이래서야 어디 문이 열리겠나 싶었는데…….
와장창.
옆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튄다!”
“왜…… 왜 튀어요?”
“사람 많이 죽였을 거 아냐. 환자 보호자 온 줄 알았겠지.”
“아.”
이런 시발.
하긴 의대 필수 과목 중에 승마술이 있지 않나.
환자 죽으며 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