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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영국 의사-130화 (130/249)

130화 개선 [1]

나는 대장장이에게 도구를 맡긴 후에도 혹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을지 몰라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토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아까 너무 급해서 가긴 갔는데,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후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해서 집,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선배 집이지만 하여간,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잠이 들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흠. 이렇게 한다고 해도…… 사실 완전히 제거는 어렵긴 하겠구만…….’

데브라이더라는 기구가 있다.

당연하게도 전기를 쓰는 기구인데, 발로 밟으면 윙 돌아가면서 조직을 마구 잡아먹는 그런 기구였다.

솔직히 내가 직접 쓴 적이 많지는 않았다.

이런 건 외과에서 쓰기보다는 이비인후과나 뭐 이런 데서 쓸 법한 기구거든.

하여간, 그려 보니까 아무리 내가 이리저리 돌려 대며 깎아 낸다 해도 전립선 부피의 절반도 채 제거하기란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그 말은 곧, 재발이 꽤나 빠를 거라는 얘기가 되는데…….

문제가 이것뿐인 것도 아니었다.

‘일단 피도 많이 나긴 할 거야, 아마?’

하면서 지혈이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냥 생으로 잡아 뜯는 건데…….

이게 피가 안 나면 대체 어디서 피가 나겠어.

시술할 때 발생 가능한 통증이야 20, 30분가량은 그래도 마취를 통해 잡을 수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피는 좀 문제가 될 거 같았다.

‘지혈이 잘되는 부위인가?’

잘 모르는 것도 문제였다.

코는 수술해 놓고 그냥 틀어막으니까 멈추었지만 그건 숨이라는 걸 입으로도 쉴 수 있어서 가능한 거 아닌가.

갑자기 ‘환자분 앞으로 며칠 동안만 소변을 항문으로 싸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상처가 그대로 노출이 될 테니 소변볼 때 감염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사실 소변이라는 건 균이 없는 멸균 액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닌데, 검사해 봤는데 뭐 자라던데’라고 하고 싶다면 우선 중간뇨를 제대로 받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터였다.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걸렸을 거다.

하여간 무균 상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상처 난 부위에 소변이라는 게 묻게 된다면 그 자체가 배지가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당장 균이 없었거나 정말 멸균에 가까운 수준으로 적은 균만 있었다 해도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결국, 내가 도달한 결론은 하나였다.

“역시 소변줄인가…….”

소변줄.

쉽게 말해 소변이 나올 수 있도록 요도를 통해 방광까지 넣어 두는 줄을 말했다.

만져 본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상식적으로 그런 물건을 단단한 걸로 만들면 되겠나?

되겠어?

그게 고문이지 딴 게 고문인가.

‘근데 고무로 만들 수 있나……?’

쇠 말고 뭔가 다른 걸로 해야겠다 싶긴 한데, 막상 하려니까 쓸 만한 게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게 내 장갑일 텐데…….

이게 막 깔끔한 형태의 고무가 아니란 게 문제였다.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흔히 보던 고무랑 달리 좀 오돌토돌했다.

이러한 사안이 콘돔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사용자들이 오히려 좋을 때가 있다는 알쏭달쏭한 답을 보내왔다.

나야 잘 모르니 일단 신경을 껐는데…….

‘우선 이것보다는 더 단단해야 해. 부드럽긴 하면서 안에 관이 유지될 수 있을 만큼은 단단해야 한다…… 이 말인데.’

와…….

소변줄이라는 것에 이토록 신묘한 이치가 담겨 있었단 말인가?

있을 때는 진짜 그냥 막 넣고 그랬는데…….

역시 사람은 뭐가 없어 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법이었다.

‘화학자 선생을 좀 쥐어짜 봐야겠구만.’

환장할 노릇인 것은 나 혼자 고민하는 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점이었다.

난 화학이니 뭐니 하는 것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다 보니 당연했다.

아예 모르는 거면 또 모르겠는데…….

결과물을 알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진짜 답답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화학자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면 이틀이라도…… 쇠로 된 관을 넣어야 할 터였다.

“야, 일어나!”

혹시 모르니 그것도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아침이었다.

혼절하듯 잠이 든 모양인데 그럴 만도 했다.

진짜 개피곤했다고 어제.

도살자라는 별명이 있는 의사 놈이 함부로 남의 불알 자른다고 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닌 데다가 종래에는 대장장이한테도 가고 뭐…….

“어, 아우.”

“뭐야, 이거. 와…… 너 이거 어제 다 그리고 잔 거야?”

“어? 응. 고민이 되잖아.”

“넌…… 진짜 좋은 의사다. 하긴 그러니까 벌써 교수가 됐지.”

깨우러 온 조지프는 책상 위에 남겨 둔 종이 쪼가리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럴 만도 했다.

어제 그렸다 찢었다 한 그림이 거의 스무 개는 되거든.

그 때문인지 꿈에 시발 아주 오랜만에 소변줄 꽂는 꿈을 꿨다.

남들은 군대 꿈을 꾼다는데 나는 군대보다도 그게 훨씬 더 끔찍했던 기억인 모양이었다.

“선배는?”

“선배는 벌써 내려갔지.”

“진짜 대단해…….”

“아버지가 무섭잖아. 뭐 이거 물려받을 수도 있고 하니까. 안 물려받아도 꽤 큰돈 굴려야 하잖아?”

“그, 그렇지.”

19세기 부자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낭만이라는 게 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이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이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어지간하면 일찍 일어나고 사냥이나 승마 등의 운동도 하고 뭐 그러는 편이었다.

앨프리드는 운동 대신 의학에 매진하고 있지만…….

‘내 금수저 친구는 아무것도 안 하던데…….’

아무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집이나 땅 가지고 있어도 개미처럼 노력하는 애들보다 더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다는 진실을 아직은 깨닫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뭐 나무랄 거 없이 좋은 일이다 보니 나는 일단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러자 벌써 신문까지 다 보고 차를 마시고 있는 앨프리드가 눈에 들어왔다.

“어, 먹어라.”

“아, 네. 그…… 오늘은 학교 가기 전에 공장 좀 갈 수 있을까요?”

“공장? 거긴 왜?”

의문을 표하는 선배에게 나는 어제 마지막으로 그렸던 그림을 보여 주었다.

“읏.”

아침 아니라 언제 보기에도 다소 끔찍할 수 있는 그림이다 보니 선배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괜찮았다.

어차피 보조 들어와야 되거든.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이 전문이 우리 앨프리드가 될 수도 있었다.

‘선배는 시야가 좀 좁은 대신…… 집중력이 좋으니까…… 이런 수술이 어울릴 수도 있어.’

집도의가 시야가 좁다는 건, 특히 외과 의사처럼 넓은 범위를 다루는 의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물론 외과에도 분과가 쫙 나뉘긴 하고 그중에서는 범위가 좁은 분과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논외로 치는 게 맞았다.

아무튼, 그런 단점이 있지만 또 하나 들들 들이팔 때는 무서웠다.

어떻게 알았냐고?

해부 실습시켜 보면 알았다.

아니 전체적으로는 엉망인데…… 지금 파고 있는 부위에서는 막 다 나온다니까?

“그래서, 우린 이게 추가적으로 필요할 수 있어요.”

“어…… 이걸 그냥 생각으로?”

“뭐…… 그렇다고 봐야죠.”

“허.”

하여간,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워낙 설명을 잘한 것도 있는데, 앨프리드도 최근 내 가르침을 따라오면서 슬슬 의학도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 가고 있다 보니 벌써 딱 알아들었다.

“그래, 가자. 근데 공장에 없을 수도 있어.”

“네?”

“그 사람 이제 완전 부자라…… 일을 안 한다던데.”

“일을 안 해요? 아니…….”

“뭐 우리도 후임으로 다른 화학자들을 구해서 괜찮은데…… 하여간 직함은 있는데 일을 잘 안 한대. 사교 모임에 열중하고 있다고 하던데.”

“아, 사교.”

하긴…….

이 시기 영국에서는 진짜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 만이 아니라 사교 모임에도 줄기차게 나가야 한다고 들었다.

나야 뭐 아직 그럴 레벨이 아니다 보니 건너 들을 따름이지만 하여간…….

마냥 일 안 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란 얘기였다.

막말로 파이어족일 수도 있고?

“그래도 가면 있긴 있는 거죠? 고무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지.”

“그럼 갑시다.”

“어, 그래. 벌써 다 먹었어?”

“아, 네.”

“너 안 그래도 말랐는데 왜 이렇게 안 먹어.”

“그…….”

이건 진짜 다 영국 놈들 탓이다.

솔직히 여기 오기 전까지는 나도 영국 음식이 그냥 일종의 밈인 줄 알았거든?

근데…….

아냐…….

이 자식들은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짜 고기 굽는 거 말고는 못 먹겠어.

“오늘은 입맛이.”

나중에 K-치킨이라도 발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것 또한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민 건강 개선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서 공장으로 향했다.

“어, 자네!”

“안 나오신다던데?”

“아, 하하. 그래도 가끔 얼굴은 비쳐야지.”

의외로 화학자 아저씨가 와 있었다.

그냥 와 있기만 한 것 같긴 했는데…….

그대로 집에 가는 대신 다른 젊고 열심인 화학자들과 함께 회의실까지 따라왔다.

말이 회의실이지 공장 옆에 자리한 곳이고 고무 냄새에 코가 썩을 거 같은 곳이기도 했지만, 하여간, 나는 오직 인류를 고통에서 구원하겠단 일념 하나로 열변을 토했다.

“이게 들어가서 빠지면 안 된단 말입니다. 빠지면 또 넣어야 하니까요.”

“으.”

“그건 안 되죠.”

다들 열심히 들었다.

특히 아저씨는 열심이었다.

뭔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끝에…… 이런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음…… 어렵겠는데요?”

“완전히 다른 재질의 고무가 한 겹 더 들어간다는 건데…… 이건…….”

아쉽게도 방광에 넣은 후, 다시 빠지지 않도록 하는 풍선은 탈락이었다.

사실 나도 이거 그리면서 안 될 것 같긴 했다.

넣어서 소변이 나올 소변줄조차 나올지 말지도 명확지가 않은데, 이게 되겠나.

“그럼…… 이 안에 들어갈 만큼…… 너무 물렁물렁하진 않지만 또 그렇다고 너무 단단해서 심한 불편감을 유발하지 않을 만큼의 경도를 지닌 고무는 만들 수 있을까요? 아, 소변이 나오는 길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의 경도는 필요합니다.”

“흐음…….”

“이건 될 것도 같은데…….”

다들 심각한 얼굴로 말을 하는가 싶더니 종래에는 공장에 쌓여 있던 고무를 막 들고 왔다.

이제 보니 이 사람들…….

콘돔에도 진심이어서 진짜 이런저런 제품을 많이 만들고 있던 모양이었다.

“우리도 말일세. 더 얇으면서 매끈한…… 하지만 찢기지 않을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단 말이지. 그 과정에서 나온 실패작이네. 근데 내가 봤을 땐 실패작이라기보다는 아직 어디에 쓰일지 모르는 놈들이 많을 거 같아서…… 잘 보면 꼬리표에 다 써 있어. 어떻게 만들었는지.”

“오…….”

그중에서 제일 진심이었던 건 역시 화학자 아저씨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고무를 보며 감탄하고 있으려니 아저씨가 조금 저어한 얼굴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근데…….”

“네.”

“이거 그냥 불알 자르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시발…….

소문이 여기까지 번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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