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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영국 의사-161화 (161/249)

161화 실험…… [3]

하하하하…….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거 같다.

아니, 실제로도 웃고 있긴 했다.

“그래, 그래. 물 마시고 싶으면 물을 먹게. 근데 먹으면 또 토한다고. 그걸 유념해. 자네는 본능에 의해 진짜 치료를 외면하고 있는 거야.”

리스턴이 만약 완력으로 나섰다면 어이없어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가서 울었을 터였다.

허나 다행히 리스턴은 나를 꽤 존중해 주고 있지 않나.

그 덕에 우리 불쌍한 자식들은 꾸역꾸역 물을 먹을 수 있었다.

‘목이 마른데 참아야 한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아니, 목이 마르다는 건 탈수가 진행되고 있다는 거 아냐…….

어?

탈수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데.

물이 부족하면 사람이 죽는다니까?

아니, 사람의 70%가 물로 이루어졌다는 걸 모르나?

아, 모르나.

모를 수도.

“야야, 그래도 너는 좀 너무 마신다. 아까도 설사했지? 이거 마시면 또 설사한다니까?”

내 생각과는 별개로 리스턴은 계속 이상한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만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긴 한데…….

장담할 수 있었다.

내가 말로 떠들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목이 너무 타서.”

“그래, 뭐. 이참에 환자의 괴로움을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굶겨야 하네.”

“네, 네.”

“그래야 살아. 자네들이야 건강하고 또 우리가 여차하면 응?”

리스턴은 자신의 애병 아니, 메스 아니, 시발 저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여간, 거대한 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차하면 칼로 베겠다, 이 말이었다.

죽이겠단 말은 아니고 피를 내주겠다, 이 말인데…….

‘아휴.’

사실 그게 죽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긴 했다.

“네, 감사합니다!”

학생은 그 말에 감사를 표하고는 내가 아까부터 지속적으로 끓이고 또 증류까지 해 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저놈은 알까?

진정으로 감사를 표해야 하는 건 나라는 걸.

뭐 어찌 보면 내가 이 모든 일의 원인 제공을 한 셈이지만, 난 진짜 이걸로 실험할 생각이 없었다고…….

“근데 아직 저 방에 있는 애들은 멀쩡한 건가?”

“혹시 모르니까 자기 전에 다시 한번 가 보려고요.”

“그래, 그러지. 이놈들 보니까 저놈들도 멀쩡할 거 같진 않아. 그리고…….”

리스턴이 그래도 끊임없이 개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돌연 자기 배와 다른 놈들 그러니까 아까 끓인 물을 마신 놈들까지 싹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의 이론이 맞는 거 같아. 확실히…… 그거. 그 이상하게 생긴 게 미아즈마인 거 같네. 뭐, 그렇다고 공기 이론이 완전히 틀렸다, 이런 것일 수는 없겠다만…….”

“네네.”

잘 나가다가 꼭 삐끗한다.

왜 공기 이론이 완전히 틀린 게 아니냐고…….

‘공기 중에도…… 그래. 균이나 바이러스가 있을 수는 있지.’

감염된 사람이 기침 또는 재채기를 했거나 혹은 바로 앞에서 변을 본다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건 논리로 밀려서 그랬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되게 무식해 보이는데 들어 보면 알 터였다.

“그래, 오히려 나는 공기 중에도 있다는 걸 더 믿게 됐네.”

블런델.

아휴.

“그렇지? 아무래도. 냄새나는 물에서는 미아즈마가 많다는 것이 입증되었지 않나.”

“그래. 끓이고 증류까지 하니까 놀랍게도 냄새가 훨씬 덜해졌어. 그리고 미아즈마도 적어졌지. 이건 세기의 발견일세.”

냄새와 미아즈마를 엮을 줄이야.

‘내가 의학의 발전을 지나치게 빨리 일구어 내는 거 아닌가 했던 걱정은 덜어도 되겠어.’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정말로…….

나는 반쯤 체념한 얼굴로 그러나 일이 이 정도라도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이어지는 대화를 들었다.

“이거 관련해서 논문을 써야겠어. 아, 평. 걱정 말게. 내가 자네 이름도 빼먹지 않고 넣어 주지. 이럴 게 아니라 아예 파리 학회에 같이 갈까.”

“아, 그럴까. 근데 그 미개한 놈들이…… 우리의 이론을 이해나 하겠나?”

“그 자리에서 또 입증하면 되지.”

“아하.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군그래.”

파리라.

전생엔 가 보지도 못했던 도시였다.

이게 이상한 편견인데, 윗분들이 미국 학회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고 유럽 학회는 놀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짬밥이 어느 정도 이상 차지 못하면 갈 수 없는 곳이다, 이 말이었다.

나야 교수 짬밥을 논하기도 전에 죽었으니…….

‘그나저나 입증이라.’

자세히 묻고 싶진 않았다.

아마 굉장히 높은 확률로…….

지금 하고 있는 이 짓을 하려는 것일 터였다.

파리의 강이 뭐더라.

아, 그래 센느강.

근데 센느강이 템스강만큼 더럽나?

뭔가 역사 시간이나 이럴 때 공해에 관련해서 배운 도시는 런던뿐이다 보니…….

‘혹시 모르니까 떠 갈까. 아니,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거?’

19세기 놈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다 보니까 자꾸 19세기 사람이 되어 가는 거 같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 법인데…….

세상에 이 똥물을 죄 없는…….

죄가 없나?

순간적으로 주변에서 들었던 프랑스 놈들에 대한 욕들이 떠올랐다.

그게 전부 사실이라면 아니, 절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프랑스 놈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먹여도 되지 않을까? 우리 학생들도 먹었는데 말이야.’

나는 이런 좋지 못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학생들도 먹었다.

놈들 중에는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있었다.

아니, 사실 나를 아주 잘 따르는 심복들 말고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봐도 됐다.

다 싫다 이건데…….

그렇다고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아, 가 보게?”

“네.”

“같이 가세. 자자, 가자고.”

“네!”

해서 몸을 일으키자, 그때까지 파리 놈들에게는 아무래도 더 독한 것을 먹여야 할 텐데 하면서 이런저런 신기한 아이디어 그러니까 쥐 배설물 등의 이야기들을 늘어놓던 리스턴과 블런델도 따라나섰다.

교수 셋이 나서자 나머지들도 따라나섰다.

아무래도 학생들의 표정은 우리처럼 밝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독소로 인해 증상이 발현되었던 1번 타자들의 증세는 점점 호전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봐도 그 몰골이 좋아 보이진 않아서 그랬다.

템스강 물 먹었던 애들 중 둘은 바지에 똥까지 지려 놨으니 당장 그 물 끓여 먹은 놈들의 표정이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끼이익.

그렇다고 여기서 우린 괜찮다고 할 수도 없지 않나.

게다가 급한 건 가짜 아픔을 느끼는 놈들이 아니라 진짜 아플 놈들이었다.

“으…….”

아프면 말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잘못했다.

너무 아프면 말도 못 하지 않나.

실제로 응급실에서 시끄러운 사람들은 대개 별로 안 아픈 사람이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요로결석 같은 개아픈 질환 환자들이 칼 들고 뛰어올 텐데, 정말 사람이 바이탈 흔들릴 만큼 아프면 입도 벙긋 못 하는 법이다.

외상외과 당직도 서야 했던 내가 잘 알지.

“열이 나네요.”

“허어. 이상하군.”

“네?”

“먼저 발병한 애들이 더 약한 거 아닌가? 근데 이 친구들이 더 아파 보이는군그래.”

아.

그래.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래…….

독소라는 걸 모르니까.

‘하…….’

어떤 식으로 설명할 것인가.

나는 잠시 난관에 부딪혔다가, 딱 이 사람들 수준에서 설명하기로 했다.

다소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면도 있지 않나.

“아까 그 친구들은 오히려 먼저 토하고 설사해서 나은 거 아닐까요?”

“아하. 역시 히포크라테스…….”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4체액설이 아니라요.”

“응? 왜. 구토와 설사는 말일세. 우리 체내의 액체가 너무 많아서 발생하는 것일세.”

“그…… 미아즈마 때문은 아니고요? 애초에 너무 많아서만 그런 거라면 미아즈마 먹고 나서 이렇게 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응? 어……?”

좋아.

리스턴이 스턴에 걸렸다.

덩치도 큰 사람이 뭐라 말도 못 하고 멈춰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약간 웃기기까지 했다.

물론 익숙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그냥 보면 여전히 무서웠다.

아무튼, 난 멈추지 않았다.

“토와 설사로 미아즈마가 빠져나와서…… 저기는 그나마 나아졌다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어…… 그게 또 사리에 맞는 거 같기도……?”

리스턴은 이제 완전히 스턴에 걸려 작동을 멈추었다.

괜찮았다.

여기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누군가 난동이라도 피운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이 자리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난동은 구토와 설사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리스턴 아니라 다른 누가 있다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열…… 감염의 징후지. 좋지 않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아주 고열은 아니다.

물론 손바닥으로 짚는, 정말이지 원시적인 형태의 진단이지만 펄펄 끓는 건 아니다.

온도계 뒀다가 어디 쓰냐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인데…….

이게 놀랍게도 있긴 있었다.

근데 진짜 불편했다.

그리고 오래 걸렸다.

이게…… 체온계라는 것도 상당한 과학이 필요한 것이더라고.

‘열나는 사람은 단둘. 모두 시신 쪽이야. 흐음…… 포도상구균이다, 이건데…….’

대장균 먹은 애들은 자기 대장균도 워낙에 강한 시절이라 그런지 열은 안 났다.

아까 애들보다는 아무래도 더 폭발적인 설사와 구토를 해 대기 시작했지만, 열이 안 난다는 건 뭐가 되었건 혈액 속으로 균이 들어가진 못했다는 뜻 아니겠나.

물론 당뇨나 이런 게 있으면 감염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열이 안 나기도 하는데 이 나이에 벌써 당뇨가 있다면, 19세기라는 걸 감안할 때 어떻게 죽어도 자연사로 봐야 했다.

잔인한 말이 아니라, 진짜 그래.

인슐린이 개발된 건 아주 한참 뒤에나 벌어진 일이라고.

“자, 일단 물 먹어! 의식 있을 때 먹어라!”

“물 먹으면…… 또 토할 거…….”

“그래도 흡수가 된다! 그럼 너네 몸 안으로 들어간…… 그래, 미아즈마가 희석이 돼!”

“우우. 이…… 그 해괴망…… 억.”

의식을 잃으면 수액으로 꽂아야 했다.

근데 그건 위험하단 말이지.

뭐, 저혈압 쇼크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하겠지만 그전에는 먹어야 했다.

미개한 놈들이 거부했지만 괜찮았다.

스턴에서 벗어난 리스턴이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그랬다.

거의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의 충격을 받은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죽을래?”

물론 잠깐만 그랬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애한테 죽을래가 뭡니까.

그러다 진짜 죽고 나면…….

아주 높은 확률로 그냥 그런갑다 할 거 같긴 했다.

우리 형님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

“마, 마시겠습니다.”

“그래. 말로 할 때 마셔.”

“네네.”

이미 말로 안 하고 한 대 후려갈겼단 사실은 잊은 모양이었다.

맞은 놈이야 잊을 수가 없다 보니 상당히 억울해하는 얼굴로 형님을 돌아보았지만, 그렇다고 그 억울함을 토로하진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아파 보였다.

아마 배 아픈 것도 잠시 잊지 않았을까?

“니네는 안 마셔?”

“마, 마시겠습니다.”

“아까 말 들었지? 미아즈마가 이걸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우리 평이의 말대로 물을 먹는 게 오히려 치료다!”

오…….

그래, 이런 모먼트 때문에 내가 이 형을 좋아한다.

그 짧은 스턴 기간 사이에 딱 이해했잖어?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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