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보다 진보된 수술 [3]
위생 강박.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딱 그것일 거 같다.
미친놈들이 언제부터 이랬다고 이 난리를 쳐?
“으아…… 손 따거.”
“어허! 미아즈마를 죽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진짜…….
리스턴만 아니었으면 한 대 팼다.
‘사실…… 할 말이 없긴 해.’
누구를 탓하랴.
내가 염화석회에 애들 손을 처담그지 않았나.
그 와중에 나는 좀 희석한 물 또는 비누로만 닦긴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당하네.
‘돌아가면 바로…… 비누로 닦아도 미아즈마 많이 줄고, 장갑 위에만 소독해도 된다는 걸…… 아니, 아닌데…… 사실 그게 아닌데…….’
마냥 당한다고 해도 되는 건가.
비누로만 되면 21세기에서도 비누로만 했지.
환자 진료 볼 때야 비누로 닦으면 충분하겠지만, 수술은…….
수술은 아니잖아.
포비돈으로 닦았다.
그것도 손으로 문대는 게 아니라, 솔로.
‘그럴 필요까지 있나…… 아니, 아냐.’
뇌가 19세기에 절여져서 그런가.
그렇게까지 닦을 필요가 있나 싶다.
아니, 싶었다.
아주 잠깐!
“자…… 장갑 껴야지.”
“어딜 맨손으로!”
“어? 평아! 너무 더럽다고!”
그래…….
잘된 일이지.
얘네가 이러는 게 심정적으로는 화가 나지만, 그래도 잘된 일이잖아?
위생에 신경 쓰는 19세기 의사라니?
후후.
미쳤다, 진짜.
“자아…… 환자분. 여기 미아즈마가 있을 겁니다.”
“아니, 아니! 잠깐!”
아무리 그래도 환부에 염화석회 뿌리는 건 선 넘었지.
피부가 상한다고.
피부라는 게 사실 보호막이잖아.
그게 깨지면 나중에 감염이 오히려 잘 일어나…….
“왜.”
“미아즈마 없애야지!”
“그래! 이거 없애야 해!”
“아니, 아니. 잠깐만…… 그래도 환자한테는 안 돼. 가뜩이나 아픈데.”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피부가 보호막이라는 걸…….
그걸 생각하기 위해 대충 아무 말이나 했더니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하하! 아픈 게 대수인가! 평. 이제 우리는 위대한 진보를 눈앞에 두고 있네. 내가 콜레라 사태를 겪으면서 이론이 딱 머릿속에 들어왔단 말이야. 런던에 가서 발표만 하면…… 하하하!”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었다.
뭔가 머릿속에 팍 하고 들어온 거 같은데…….
문제가 있다면 사실 현대 의학이라는 것이 완성되기까지 이만한 천재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숱하게 많은 천재들이 숱하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완성한 것이 현대 의학이다.
혼자서는 안 돼!
“그…… 교수님. 아, 그래! 그래! 앨프리드 선배!”
“어? 나는 왜. 나는 닥치고 있었어.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절실해지면 방법이 보인다던가.
다른 사람은 그럴 텐데 내게는 호구리드…… 아니, 앨프리드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금껏 당한 것이 있다 보니 손을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전에 소변줄 꼽았던 건 아직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짓을 하려는 게 아니다 보니 당당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손 보여 줘 봐.”
“손……?”
“여기 상처 보이죠?”
“보이네. 꽤 컸군그래? 절단 안 하고 어떻게 버텼지?”
전에 해부하다가 다친 손.
그 손을 보면서 리스턴이 의문을 품었다.
사실 베인 상처만 놓고 보면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내가 노상 긁어내고 하느라 이렇게 흉터가 졌다.
그 대가로 살아남았으니 됐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노려보네.’
당시 통증이 되살아나는지 앨프리드 선배가 상당히 표독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괜찮았다.
어쩌겠어.
“제가 어떻게 했습니다. 아무튼! 자,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가 썩었죠?”
“그래, 그렇지. 그건 상식 아닌가. 운이 좋으면 살고, 아니면 죽거나 잘라야지.”
“왜 썩습니까?”
“응? 왜? 그건 상식…… 아니, 잠깐만. 썩는다…… 썩어. 그게…… 미아즈마가 일으키는 일인가, 설마.”
리스턴의 눈은 이제 앨프리드의 손이 아니라 환자의 등짝에 박혀 있었다.
딱 째기 좋게 곪은 고름이 눈에 들어왔다.
“네, 그렇죠. 그럴 겁니다.”
“흐음…… 그래, 그럴 수 있겠어. 근데?”
“상처가 났다는 게 뭘 말합니까.”
“피부가 찢어져서 피가 나는 거지.”
그래.
그렇지!
역시 똑똑한 인간은 가르칠 맛이 난다.
나는 긴가민가한 얼굴의 블런델과 여전히 뭔 소린가 하고 있는 세 제자들을 둘러보고는, 리스턴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네, 그렇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피부가 찢어지면 그 틈으로 미아즈마가 들어가요. 그래서 상처가 생긴 사람들이 썩는 거죠.”
“오호…… 오…… 그럼 겉에 있으면 괜찮다는 건가? 아, 그렇지. 그래. 으음.”
“그 말은 환자의 피부가 상하게 되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겁니다.”
“그렇군. 아니, 그럼! 우리 손은! 우리는 어쩌나! 이제 콜레라 걸리는 건가! 아니, 썩는 건가! 그건 안 될 말일세. 내 손에 런던의 명운이 달려 있단 말이야.”
리스턴은 말 그대로 발작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사람에게서 미약한 상처는 대개 괜찮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다.
조선을 팔아도 안 될 거 같어.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우린 장갑을 끼지 않습니다.”
“아. 그렇구만.”
이론적으로 깊이 따져 보면 구멍이 숭숭 난 말이지만 이 사람들의 지식이 구멍 그 자체인 상황이다 보니 말하는 대로 다 먹혔다.
“결론은, 우리는 닦고요. 환자는 이거 말고 좀 더 순한 걸로 닦자, 이 말씀입니다.”
“그래, 그래. 그럼 뭐로 닦지?”
거짓말로 먹힐까?
“제가 술 증류해서 닦아 보니까, 미아즈마가 줄더군요.”
“술? 그럼 설마 옛날에 쓰던 방법이 근거가 있었다는 말인가.”
“아…… 아마도요.”
“그렇군.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알겠네. 그럼 술을 붓지.”
“네네.”
먹힌다.
다 먹힌다!
이런 것이 아마도 선의의 거짓말 아닐까.
나는 이들의 위생 관념, 균에 대한 관념이 점점 올바르게 교정되는 것을 느끼며 환자의 등에 독한 술을 부었다.
와인 이딴 것만 있었으면 별 소용도 없었겠지만, 다행히 파리에서 위스키류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르륵.
아무튼, 나는 독주로 환자의 상처를 닦아 낸 후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메스를 집어 들었다.
무심코 칼을 대려다가 리스턴이 말리는 소리에 손을 멈췄다.
“어어. 마취도 안 하고 하는데…… 자네는 가만 보면 참 악랄한 면이 있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헷갈린 거다.
보통 이렇게 누워 있으면 이미 마취는 했다고…….
허나 내 이미지가 약간 왜곡된 이 집단에서 내 해명은 별 의미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다들 나를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 말했으니까 괜찮다, 이건가…….”
“악으로 깡으로 참으라는 거지. 내가 당했잖아. 뒤질 뻔했다니까, 진짜로?”
앨프리드가 저러는 건 좀 그렇다.
뒤질 뻔한 건 맞는데, 나 때문이 아니라 상처 때문이잖아?
죽을 거 간신히 살려 놨더니 저런다.
아무튼, 내가 잠시 당황한 사이 리스턴이 제법 따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담. 좀 아플 겁니다. 아주 잠깐이니까, 참을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렇게 해 볼게요.”
약간 꼬시는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리스턴은 내 눈빛에 담긴 의중을 읽었는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네도 인기 있고 싶으면 나처럼 해 보게.”
“그…….”
“어려울 거야. 자네는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니까.”
“아니.”
억울했다.
하지만 토로할 수는 없었다.
상대가 그 리스턴이니까.
신기하게 얼굴을 보고 있다 보면 억울함이라든지, 분노라든지 하는 감정이 싹 사라진다.
“자, 환자분. 그럼 좀 아파요.”
“많이 아픕니다. 이 친구가 좀…… 하하.”
나는 리스턴의 말을 애써 무시한 채 메스로 환자의 환부를 슥 그었다.
“으…….”
그러자 환자의 신음과 함께 악취의 원인이 되었던 농이 주르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거즈.”
“거즈? 아, 이거.”
그대로 둬도 전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하지만 쥐어짜야 했다.
그래야 다 뺄 수 있어.
다행히 콜레라를 대처하는 동안 몇 가지 물품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중에 거즈 비슷한 것도 있었다.
그냥 깨끗한 천 쪼가리긴 한데…….
“으, 으아아아아!”
“평, 평! 이게 뭔 짓인가!”
나는 그 천 쪼가리를 양손에 쥐고는 고름을 양쪽에서 쭉 쥐어짰다.
그러자 안에 남아 있던 고름과 함께 환자의 비명 또한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다들 당황했다.
특히 리스턴이 그랬다.
이 양반이 호쾌해 보이지만 사실 세상에서 제일 환자의 통증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닌가.
왜 그런 칼을 썼겠어.
왜 30초 만에 잘랐겠어.
그 시간 동안만 아프라고 한 거다.
“이래야 살아요.”
“이래야 산다고? 이 무슨 끔찍한. 이런 줄 알았으면 마취를 시켰지!”
“네?”
“자네는 이럴 거면서 마취를…… 아이고.”
그래도 사람 팔다리를 무 자르듯 하던 사람인데.
나를 보면서 이런 얼굴로 탄식하는 걸 보고 있자니 좀 그랬다.
나는 진짜로 사람 살리려고 이러는 건데…….
“괘, 괜찮습니다.”
아무튼, 소피 제르맹은 레지스탕스의 민족답게 의연했다.
“몇 번 더 짜야 되는데 괜찮을까요?”
미안하지만 아직 농이 남았다.
항생제도 없는 이 시대에서 저만한 농은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다 제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아.”
내 말에 소피 제르맹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고, 리스턴은 내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혹시 고문할 일이 있으면 자넬 부르라고 하겠네.’
뭐라 대꾸하고 싶지만, 지금 상황이 딱 고문 같기는 해서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아무튼, 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상처를 쥐어짜서 고름을 싹 제거했다.
그리고 나서는 고민의 시간이었다.
‘봉합을 할까?’
항생제가 있다면 솔직히 그래도 된다.
하지만 항생제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상처를 봉합하는 건 또 다른 고름을 양산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환자는 유방 절제술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 않나?
혹 쇠약해진 몸 때문에 균이 번지기라도 하면 당장 사망이다.
“일단은 이대로 두죠.”
“어? 상처를 연다고?”
다행히 이번에는 대응할 논리가 충분했다.
이번에도 우리 호구리드 덕분이다.
“선배가 말해요.”
“앨프리드?”
리스턴의 해명을 원하는 눈초리를 받은 앨프리드는 본능에 따라 잠시 눈을 깔았다가, 위협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미아즈마가 상처를 이렇게 쥐어짠다고 다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고 있는지 끔찍한 얼굴이었다.
“그럼?”
“이게 신기하게…… 며칠 동안은 계속 농이 나오더라고요. 아마 봉합을 하면 또 째고 또 쥐어짜야 할 겁니다.”
“아이고. 그건 안 되지.”
“네. 그래서…… 그때…… 한 일주일? 솔직히 말하면 태평이 죽이고 싶었습니다.”
“이해하네. 아무리 치료라지만…… 근데 또 썩는다니 어쩔 수 없군. 마담, 괜찮…… 혼절하셨는데.”
리스턴은 나를 어쩐지 원망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파서 그랬을까요?”
“아니, 방금 전까지는 괜찮았네. 또 쥐어짠다니까…… 그래서 혼절한 거 같네.”
“아.”
뭔가 잘하는 건데 잘못하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