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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영국 의사-195화 (195/249)

195화 위생 강박 [4]

잠깐 사이에 강의실은 빈말로도 멀쩡하다고는 못 할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한쪽에서는 유황불이 불타고, 다른 한쪽에서는 염산과 황산이 게걸스럽게 바닥을 녹이고 있었다.

‘여기가 지옥인가.’

어째 지옥에 대한 묘사같이 되긴 했는데…….

하여간, 우린 19세기 상남자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조차 잠시 외면할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유황불은 곧 꺼질 거 같잖아?

물론 질문 세례는 있었다.

“앨프리드. 대체 유황은 뭘 생각해서 들고 온 건가?”

“고대 이집트에서 그렇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이집트라니. 그런 미개한…….”

질문의 끝이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우리 영국인들이 이집트한테 미개 운운하는 게…… 그게 말이 되나.

로마인들에게조차 고대 이집트의 유적은 오래된 것이었으니, 그들의 찬란했던 문화는 존중받아야 하는 게 맞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유황불은 좀 그렇다.

이건 유해 가스잖아.

나는 남은 유황을 밖에 있는 분수에 대강 던짐으로써 지옥의 풍경 절반을 개선했다.

이렇게 하면 분수가 더러워지지 않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저 분수는 여기서 더 더러워지는 것도 쉽지 않다.

치이익.

뭔가 불안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마주하고 있지 않나.

나는 각기 수은, 석탄산(페놀), 요오드 용액이 담긴 접시를 바라보았다.

이 실험 결과에 따라…….

아니, 어쩌면 내가 입을 어떻게 터느냐에 따라 우리 병원은 이제부터 환자의 몸에 수은을 처바르게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막는다…….’

다시 보니까 페놀은 뭐…….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거의 무슨 표백제로 쓰일 만큼 독한 놈이긴 한데, 하여간,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소독할 때 쓰이긴 하잖아?

사람 소독하는 데 안 써서 그렇지…….

‘수은은…… 저건…….’

근데 수은?

저건 안 된다.

나중에 교과서에 무조건 실릴걸?

-동양에서 온 주술사 김태평과 그 일당들이 저지른 만행

미나마타병이 아니라 런던병이 될 수도 있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좀 기다렸더니, 우리 중에 제일 참을성이 부족한 리스턴이 먼저 나섰다.

“이제 현미경 줘 봐.”

그때까지 우리의 화가는 주변의 지옥과도 같은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미아즈마를 그리고 있었다.

꽤 잘 그렸다.

그뿐만 아니라 말이 현미경이지 양안식도 아니고 한쪽 눈으로만 봐야 하는 데다가 고정도 안 되어서 계속 보기는 힘들 텐데도 애를 쓰고 있었다.

아마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네, 네.”

굽신거리는 화가가 건네 온 현미경을 이용해, 리스턴은 소독이 되었을 거라 기대하면서 접시를 들여다보았다.

“으음.”

처음엔 수은이었는데 뭔가 표정이 좀 애매했다.

“왜 그러나?”

블런델이 별일 다 보겠다는 식으로 현미경을 뺏어 왔다.

그러곤 마찬가지로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나도 슬쩍 뺏어서 봤다.

‘아하.’

안 보인다, 이거.

수은 때문에 안 보여.

‘아마…… 다 뒤졌을 거야.’

수은을 붓는데도 살아남는 병원균이 있는데 만약 그놈이 인체 감염을 일으킨다?

그럼 그때가 둠스데이다.

하지만 나는 짐짓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거…… 평가가 어려운데요? 수은 때문에 미아즈마가 안 보입니다.”

“허어…….”

“이거야 원.”

“기대되는 재원이었는데, 수은이…… 허 참.”

다들 아쉬워하고 있었다.

기어코 사람 몸에 수은을 처바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에도 발라 놓고서 저런다.

‘그때…… 킬리언…… 그 새끼 아직도 살아 있나, 그거?’

건장한, 그것도 거칠기로 소문난 뱃사람이 애처럼 울면서 앞뒤로 쏟는 꼴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하여간, 내친김에 나는 좀 더 내 생각을 털어 냈다.

예전에는 쉽지 않았던 일인데 구라 마스터 칭호를 스스로 터득해서 그런가? 뭔가 결론을 생각하면 논리가 따라붙는 느낌이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수은은 비싸지 않습니까? 소독을 하려면 아낌없이 써야 할 텐데, 수은을 썼다간 병원이 파산하든 환자가 파산하든 둘 중 하나일걸요?”

“아, 그렇군.”

“가격 생각을 못 했네.”

“아…….”

“죄송합니다. 저희 집이 좀 살다 보니, 가격 생각을 못 했습니다.”

수은을 들고 온 조지프가 정수리를 보임과 동시에 수은은 탈락했다.

남은 것은 이제 단둘.

석탄산과 요오드다.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는 나로선, 최선이 요오드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최악의 경우…… 실험까지 불사한다.’

어쩔 수 없다.

환자에게 발라 봐야지.

아마 당장 죽지는 않을 거다, 둘 다.

하지만 통증이나 뭐 이런 것들에서 차이가 있겠지.

“볼까. 오.”

“오오.”

“확실히…….”

“석탄산이 아주 좋은 것이었구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접시를 들여다보니 확실히 미아즈마가 줄었다.

화가는 리스턴이 어깨를 세게 두드리자마자 서둘러 그 광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석탄산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템스강 물의 특성이 그러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석탄산이 들어간 부위가 구분이 되어서 더 그리긴 좋았다.

경계선을 따라 미아즈마의 양이 완전 달랐다.

“으음.”

“요오드도…… 제법인데?”

“장난 아니군.”

“이래서야, 박빙인데.”

그다음엔 요오드 차례였다.

당연하지만 요오드가 잠긴 접시의 미아즈마도 전멸이었다.

워낙 강하거든, 이 용액이!

오죽하면 21세기에도 포비돈을 쓰겠냐.

‘어?’

왜 내가 기억하는 이름이 요오드가 아니지?

뭔가…… 개선을 한 건가?

그래서 포비돈이 된 건가?

어떤 점을 개선했을까?

퍼뜩 든 생각에 불현듯 불안해졌다.

하지만 개선을 했다는 건, 그만큼 많이 쓰였다는 얘기 아니겠나.

치명적인 건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포비돈은 진짜 기적의 소독약이라고.

상처에 직접 발라도 그렇게까지 아프지도 않고, 심지어 조직 손상도 아주 심하지 않았다.

맨살에 바를 때야 뭐…… 가장 안전한 소독약이다.

“자, 그럼 이 둘을 일단 써 보지.”

내가 굳이 입을 털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대결을 빙자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나도 이게 미개한 방법이라는 건 안다.

아는데…….

‘에드워드 제너도 21세기 시점에서 보면 거의 뭐 매드 사이언티스트지.’

18세기에 태어나 인류 최초의 백신을 만든 위대한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

그 사람이 만든 우두법이 어떤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었나.

우두에 걸린 여성의 몸에서 채취한 액을 8살 난 아이에게 주사하고, 2달 후에 천연두에 걸린 환자에서 채취한 액을 주사했는데 멀쩡했다는 식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몇 달간 여러 천연두 환자에서 채취한 액을 더 주사했다.

아직 이론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그런 짓을 했다.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에드워드 제너의 종두법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모른다.

유전학적으로 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20세기의 일이니.

‘하지만 그런 건 지금 불가능해. 윤리 따져 가면서 실험을 하기엔…… 다른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 그 와중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차피 소독하지 않고 수술하는 것보다 페놀이나 요오드나 둘 중 뭐라도 일단 발라서 미아즈마 아니, 병원균을 죽이는 게 훨씬 생존에 있어 유리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가세!”

“네? 어디를요?”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망설임이 있으면 리스턴이 아니지.

그는 저벅저벅 걸어서 제멜의 진료실에 들어갔다.

안쪽은 전처럼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배 아프다는데 피를 빼거나, 설사를 유발하거나, 구토를 유발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깨끗하게 이루어지는 시술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휴.”

방금 한숨을 쉰 건 리스턴이었다.

원래 괴로운 것도 뭐가 보여야 괴로운 법 아니던가.

환영한다, 리스턴.

19세기라는 지옥에 온 것을.

“엉망진창이로군…….”

그러나 리스턴은 일단 남의 진료실에서 깽판을 치진 않았다.

“근데 또 저렇게 해서 낫는 환자들이 있으니…… 알 수가 없군그래.”

예의가 발라서라기보다는 저 설사와 구토 그리고 사혈이라는 유서 깊은 치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남아 있어서 그랬다.

여전히 외과 의사에게 있어 저런 내과적인 치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저런 걸 내과적인 치료라고 하면 내과 의사들이 분노를 금치 못하긴 하겠지만, 뭐…… 어쩌겠어.

“아무튼, 여기 있군.”

우리는 좀 더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병원에 오긴 했는데 돈이 없어서 방치되고 있는 환자들이 보였다.

“가기 전에 배 열고…… 몇이나 죽었지?”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환자들 앞에서 리스턴이 물었다.

참으로 무신경한 태도였지만, 이 시대에서는 당연한 태도이기도 했다.

죽음이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는 시대니까.

특히 병원에 올 정도다?

그럼 이미 환자나 보호자나 절반은 포기했다.

이를 반영하듯, 환자들의 얼굴엔 별반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다 하면 한…… 40%?”

“별로 안 죽었네? 그때도?”

40%가 어마어마한 치사율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리스턴에게 동의했다.

‘제대로 소독을 못 하고 열었는데 그 정도면 뭐…….’

염화석회로 대충 문대고 열었는데, 그나마 내가 관여한 수술 한정이었다.

리스턴이 그냥 연 수술은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대충 했을 거다.

사실 내가 한 건 20%, 리스턴이 한 건 60%가 넘는 사망률을 자랑했거든.

괜히 얘기했다가 지금 이 밝고 진취적인 분위기에 찬물 끼얹게 될까 봐 닥치고 있을 뿐이었다.

“뭐, 개선이 되는지 봐야겠군그래. 어디…….”

리스턴은 빨리 소독하고 배 쨀 생각에 들떴는지 입술을 한번 훔치고는 환자들을 둘러보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시장에 뭐라도 사러 온 모습 같았다.

환자들도 같은 느낌인지 아까와는 달리 몸을 좀 움츠렸다.

“이봐, 바로 누워 보지.”

“네?”

“바로 누워.”

“네. 네.”

리스턴은 저런 식으로 환자들의 배를 꾹꾹 눌러 보았다.

어떤 환자는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었고.

“으, 으아!”

어떤 환자는 아파했다.

그와 동시에 리스턴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흐흐.”

“어…… 왜, 왜.”

충수돌기염일 가능성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은 곧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그러면 살 수도 있단 얘기가 되었다.

괜히 제멜에게 갔으면 쓸데없이 피나 흘리다가 공동묘지로 가거나 해부 실습대 위에 올랐을 텐데, 환자는 그러한 사실을 알 길이 없지 않나.

그의 눈에 비치는 건 웬 덩치가 커다란 깡패 같은 사내가 자신을 음흉한 눈초리로 내려다보며 히죽거리는 모습뿐이었다.

“사, 살려 줘!”

“아, 살고 싶으면 돈을…… 아, 우리한테 하는 말이 아니군. 볼일 보게.”

구원의 손길 따위는 없었다.

제멜이 소란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돈 없는 환자들이 있는 곳임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원래 위치로 향했다.

그마저도 다른 이들은 아예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살리려고 하는 거니까 너무 두려워 말게.”

“우, 웃기는 소리! 너, 너 리스턴이지! 옆에, 옆에 놈은 티에피영이고! 네놈들이 곧 해부쇼 하는 거 다 알아! 으아아아! 앗.”

“형?”

“시끄러워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환자는 곧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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