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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영국 의사-210화 (210/249)

210화 독이다, 독 [1]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이래서…… 국소마취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국소마취제가 나온 게 20세기 중반이라는 거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 했냐고?

코카인으로 했다.

-음, 머리가 아프다고? 코카인을 써 보지 그러나.

-음, 우울하다고? 코카인을 써 보지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의 대부 프로이트 박사님의 유산이다.

그 양반이 젊은 시절 코카인 마스터였거든.

어찌나 코카인을 많이 썼는지, 그게 마취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실 코카인을 코로 흡입해도 아프지 않은 게 국소마취 효과 때문이기도 하고…….

미드 같은 거 보면 DEA에서 형사들이 코카인인지 아닌지 볼 때 입에 가져가잖아?

약 빨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잇몸에 대 보고 감각이 사라지는지 보는 거다.

국소마취 효과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미친 수준으로 강해.

‘그렇다고 코카인을 쓸 수는 없지…….’

우선 코카인이 지금 분리가 되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정제라고 하나?

상당히 까다로운 기술 아니겠나.

뭐…… 기술이 중구난방으로 있는 시절이니만큼 없을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데.

“흐…….”

딴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수액은 쉴 새 없이 두 환자의 몸뚱아리를 향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와서 굳이 빡세게 감시할 필요는 없었다.

왜?

우리 애들 마스터거든.

진짜…….

어떻게 보면 나보다 잘할 수도 있다.

“으읍.”

그 와중에도 쓰러져서 발견된 놈은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땀도 엄청 흘리고 있었다.

몸도 좀 떨고.

이게 정말 단순히…….

오한일까?

몸이 식기만 하는 걸까?

아니다, 그럴 수가 없어.

‘칼륨 손실…… 이런 미친. 그래서 죽는 거구나. 그래서 심장까지 멎는 거야.’

구토와 설사를 한다는 건, 보면 알겠지만 우리 몸에서 뭔가 많이 빠져나간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빠져나가는 것이 뭐…….

어?

덩어리도 있고 하지만, 미세하게 잘게 뜯어보면 결국 영양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콜레라처럼 그냥 질환이 아니라 비소와 같은 독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물론 센강에서 터졌던 그건 물 때문에 그런가 내 생각보다 훨씬 독하긴 했어.

아무튼, 그럼 전해질과 같은 것도 잃게 되는데, 제일 치명적인 게 칼륨이다.

병원에서는 뭐 그냥 생리식염수 주면서 보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아니잖아?

이거 그냥 소금물이잖아.

NaCl.

K가 없어!

“얘들아.”

“어어. 죽을 거 같지. 기도할까?”

“주여 삼창해?”

내 말에 가장 착한 앨프리드와 신앙심 깊은 조지프가 나섰다.

이 시대 의사들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를 들고서였다.

사실 어지간한 치료보다는…….

저게 더 도움도 되고 위안이 될 수도 있었다.

뭔가 하려고 하면 자꾸 죽으니까.

하지만 난 아니다.

“가서 배추 좀 사 와.”

“배추……?”

“조선의 샤먼 뭐 이런 건가.”

“아…… 저 JESA에 대해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한테 뭔가 하는 거죠?”

흐흐.

미친놈들.

배추는 영양소의 보고다.

이런저런 몸에 좋은 게 참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중에서 칼륨도 많이 들었다.

바나나가 사실 더 좋긴 할 거 같은데 바나나를 못 본 거 같아.

“그냥…… 사 오라면 좀 사 올래?”

“그, 그래.”

“알았어. 또 시발 하려고.”

“제가 사 오겠습니다.”

“넌 누워 있어, 인마.”

다행한 것은 내가 부들거리기 시작하면 다들 말을 듣게 되었단 점이었다.

결국, 뛰어나간 건 조지프 하나였지만…….

오히려 좋았다.

수액을 계속 만들고 넣어야 하는데, 나 혼자 있으면 내가 다 해야 되잖아.

그에 반해 지금처럼 수액 마스터 앨프리드가 같이 계시면, 아무래도 훨씬 나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려! 정신!”

조지프가 배추를 사 오자마자 나는 그걸 잘게 부숴다가 우려냈다.

그리고 그 우린 물을 잘 식혔다.

칼륨은 수용성이거든.

잘 녹아.

문제는 이걸 냅다 혈관에 때려 박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랬다가는…….

“왜 깨워? 그냥 여기다가 넣지.”

“안 돼.”

“왜?”

죽는다.

이놈들이야 순수하니까 궁금해하지만…….

궁금하다고 아무거나 혈관에 넣으면 환자가 죽는다고.

다행히 내겐 핑곗거리가 있었다.

대관절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블런델 교수님이 하던 거 있지.”

“뭐? 그 교수님이야 이런 거 저런 거 많이 하잖아.”

“수혈.”

“아…… 그 악마의…….”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 두는데, 수혈은 죽을 사람 살리는 의사들이 가진 몇 안 되는 아주 강력한 무기다.

다만 혈액형을 따지지 않고 마구 넣거나 혹은 여러 사람의 피를 섞어서 넣을 때는 조지프의 말마따나 악마의 무엇이 된다.

“그래. 그거 말고도 많이 넣었잖아.”

“많이…… 넣었지.”

“그나마 개한테 넣은 게 다행이긴 한데.”

“그렇지. 근데 거의 다 죽었지?”

블런델은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 살리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데…….

죽어 가는 사람이라면 일단 상상 가능한 모든 짓을 했다.

가령 자기 피랑 조수들 피를 섞어서 준다든지 하는.

어찌 보면 지극히 숭고한 일이다.

그렇지 않나?

세상에 자기 피를?

‘급하지 않을 땐 이런저런 실험을 하지…….’

동물단체 같은 게 있겠나.

인권도 없는 시대인데.

더군다나 뭔 놈의 들개가 그리 많은지 한 바퀴 돌고 오면 잡혀 오는 개가 하나 가득이었다.

당연하지만, 블런델의 완력이나 요령으로는 불가하고 리스턴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무튼, 그렇게 잡아 온 개의 혈관에 맥주도 넣고 뭐도 넣고 했는데 정말 많이 죽었다.

아주 놀랍게도 그렇게 집어넣어 본 것 중에 야채 우린 물도 있었다.

“죽었어. 그때. 개도 죽었는데 사람이 버티겠어?”

“아하…… 그럼?”

“일단 먹여 봐야지.”

“그렇군. 근데 이거…….”

사실 산 놈도 있긴 했다.

생각보다 생물은 강한 거 같다.

19세기 인간이라면 개보다 약할 것 같지 않긴 하다.

자세히 보니까, 이 새끼 전에 템스강 물 먹고도 멀쩡했던 놈이야.

‘그냥 줄까……?’

아니,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21세기 사람이지 않나.

뻔히 안 좋은 미래가 보이는 짓을 하면 안 된다.

뭐…….

이런 말 하기엔 이미 여러 차례 실험을…….

“평? 그거 넣어?”

“아니, 아니!”

휘유.

나도 모르게 혈관에 넣을 뻔.

나는 사탄의 유혹을 간신히 물리치고 환자 뺨을 때렸다.

이렇게 말하니까 대단히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아니다.

수액의 장점이 무엇인가.

의식이 없어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물과 그에 녹아 있는 성분을 줄 수 있다는 거다.

거기에 더해 정확히 지금 혈관으로 들어간 물의 양을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 친구를 깨워야 이 물을 먹일 수 있다.

“야! 일어나! 너 안 일어나면 이거 그냥 붓는다?”

“와…… 악마…….”

“개도 죽던데…….”

여러 가지 오해 속에서 환자는 간신히 눈을 떴다.

아마 지금까지 들어간 물 덕분일 거다.

탈수가 해결이 되면 아무래도 머리로 피가 좀 돌기 마련이지.

“으, 으읍. 맛이…….”

“영국 놈이 맛 타령은. 지랄 말고 먹어! 어지간한 수프보다 나을걸?”

“평이 우리 음식을 모욕한다.”

“근데 그래도 되긴 해…….”

왜인지 모르게 풀이 죽은 앨프리드와 조지프를 뒤로하고 나는 배추 우린 물을 마구잡이로 먹였다.

‘그래, 이게 옳지.’

수액으로 넣는 건…….

단순히 삼투압의 차이나 감염의 위험만 수반하지 않는다.

특히 칼륨처럼 너무 중요한 전해질인 경우에 그랬다.

이 칼륨 때문에 죽을 수가 있다.

양을 모르지 않나.

하지만 입으로 먹으면 소화의 과정을 거쳐야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들은 그냥 쏟아 내거나 재배출을 하게 된다.

실로 놀라운 인체의 신비라 할 수 있다.

이래서 의사들이 입으로 먹을 수 있으면 수액보다는 그냥 먹는 게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하는 거다.

“먹어!”

“우웁. 이제 더 이상은…….”

“이렇게 많이 싸지른 놈이 뭘 더 이상은이야!”

“으읍…… 으. 으아.”

“거 봐. 먹어.”

“우우.”

말하면서도 똥을 싸고 있다.

비소…….

이거 진짜 위험한 거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콜린.”

“네.”

“아무도 강의실 못 들어가게 해.”

“아…… 네.”

“그리고 조지프?”

“응.”

“밖에 창문 다 열어 놔.”

“어…… 어. 그래야겠다. 이게 비소가 위험한 거지?”

“그래, 아무리 봐도 그래.”

“알았어.”

그새를 못 참고 기웃거리는 놈들이 있었다.

뭐…….

단순히 그새라고 하기엔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

거의 날밤을 깠다.

그사이 콜린은 거의 회복이 다 되었다.

쟤도 가만 보면…….

‘이도 뽑고, 물도 먹고, 강해 아주.’

강한 혈통을 타고났기 때문에 귀족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강골이다.

거기에 손도 좋아.

실험 정신 미쳤는데 손도 좋다니.

외과 의사로 타고났다, 저놈도.

“무슨 일인가?”

뒤늦게 출근한 리스턴이 병실로 찾아왔다.

“콜린이 애들 막고 있던데? 죽을 뻔했다고 하면서.”

“네, 얘 좀 보세요.”

“오, 전에 물 먹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친구로구만. 근데 이 꼴이라니. 흐음. 잘됐군.”

“네. 네?”

잘됐어?

뭐라고 하는 거야, 이 사람이.

물론 밤새 치료한 덕분에 환자 상태가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그건 처음에 비해서지, 객관적으로 볼 때는 개판이었다.

일단 얘 바지가 다 똥투성이다.

괜히 씻기다가 수액 라인 꽂은 데 오염시킬까 봐 그냥 두고 있어서 냄새가 냄새가…….

절대 조지프나 앨프리드 또는 콜린에게 짬 때리려고 둔 건 아니다.

“애초에 그거 왜 가져왔다고 생각하나.”

“그거…… 그거 비소 들어 있는지 보려고…….”

“하하, 이 친구! 그렇게 선명한 녹색이면 비소지! 그리고 그걸 알아내려면 화학자에게 보냈겠지.”

“그럼……?”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저걸 왜 우리가 강의실에 늘어놨지?

사실 저 중에 드레스나 조화 같은 건 꽤 고가의 물건이다.

리스턴의 지인이야 리스턴을 아니까 감히 가져갈 생각은 못 해도 구경 오고 또 만져 보기는…….

“어? 설마?”

“내가 전에 물 먹이는 실험을 하고 반성을 좀 했네. 우리도 문명인인데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하겠나. 제일 좋은 건…… 역시 자기도 모르게 실험체가 되는 것이겠지.”

“와…….”

리스턴…….

이 형…….

진짜 형이구나.

머리가 진짜 좋아.

이렇게 하면 법적인 문제도 없고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가 없잖아!

물론 대개의 경우 비소가 독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가공된 것도 독일 거란 생각은 못 할 테지만…….

얘네는 최소 의대생이잖아.

모르는 건 죄다.

“그리고 기대했던…… 아니, 내가 기대라고 했나. 하하! 예측했던 대로 환자가 하나 나왔군. 증상은 호텔방에 누워 있는 사람과 비슷하고 말이야.”

“네네. 그렇죠.”

“아마…… 그렇다고 해도 당장 벽지 사용을 금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최소한 일반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겠지. 우리의 경찰 친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고.”

“그럼 계속해서 공짜 시신을 얻을 수 있겠군요.”

“그게 핵심일세.”

“하하.”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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