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달라지는 입지 [1]
당뇨.
조선에서는 소갈병이라 불렀던 이 병은, 선천적으로 인슐린이 부족한 형태인 1형 당뇨를 제외하면 대개 많이 먹어서 걸리는 병이다.
그중에서도 술과 당 그리고 기름진 음식 등과 연관성이 깊다.
물론 그렇게 먹어도 몸을 많이 움직이면 덜 걸리긴 한다.
그 말은 많이 먹을 수 있고 동시에 몸을 안 움직여도 되는 사람들이 잘 걸리는 병이란 얘기다.
현대인들이야 오히려 부자들이 운동도 더 할 수 있겠지만 19세기는 아니다.
“정말 이걸로 고칠 수 있다, 이 말인가?”
“제 생각이 맞는다면요, 근데 일단 찔러야 되거든요? 좀 비켜 주시면 안 됩니까?”
“아아. 그래.”
“뭐 설마 원장님이 당뇨이신 건 아니죠?”
“나? 난 아닐세. 다행히. 하지만 내가 알고 지내는 이들 중엔 꽤 있지.”
부자들이 걸리는 병이다.
조선에서도 소갈병의 다른 이름이 부자병이었잖아.
여기라도 해서 딱히 다른 건 아니었다.
그 말은 곧 지체 높은 사람들의 병이다, 이 말이다.
부상에 의한 절단이나 설사병은 아예 다른 세계의 병이라 여기는 이들도 이 당뇨는 걸린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럴까.
원장님이 아주 그냥 떠날 줄을 모른다.
“아…… 누구요?”
그래서 싫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다.
높으신 분들이 날 필요로 한다면 어? 영광으로 알아야지.
해부 쇼 한 번 한 것만으로 이 병원 내에서 입지가 팍 올라가지 않았나?
교수도 됐다고.
헌데 쇼가 아니라…… 실제로 병을 고쳐 준다?
그럼 대체 어떻게 되겠나.
대미언이나 제이미 경이 나한테 잘하는 거 생각해 보면 인생 쫙 폈다, 진짜.
“뭐…… 의회에도 여럿 있고. 런던 근교의 귀족들도 있고…… 그러니 빨리 해 보게.”
“알겠습니다. 형님?”
“음.”
리스턴?
리스턴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돈과 권력.
이거 싫어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뭐 나야 그걸 이용해서 사람들을 더 살리기 위해서 원하는 척하는 거긴 하다.
“자, 주사 들어간다.”
아무튼, 인슐린은 먹을 수 없는 약이지 않나.
해서 제대로 된 주사기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주사기를 만들었다.
뭐 21세기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 거다.
일단 금속이야.
플라스틱이 없으니 뭐 어쩌겠나.
그나마 쇠는 아니고 구리로 만들었다.
녹슬지 말라고…….
아, 바늘은 어쩔 수 없이 쇠로 만들었다.
“컹!”
“시발, 깜짝이야.”
현대적인 바늘은 아니었다.
일단 두껍다.
그나마 끝을 날카롭게, 그러니까 사선으로 갈아내긴 했는데 지금 기술로는 그때 내가 봤던 주삿바늘처럼 만들 수가 없더라고.
“아프겠죠.”
“하긴. 이게…… 이걸 제이미 경 배에 찔러 넣으라 이거지?”
“네.”
“자네가 할 거지?”
“네?”
“앨프리드 시킬까.”
“뭐 셋 중 하나 시키죠. 콜린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복수도 할 겸.”
“아, 오줌 마셨지. 걔도 귀족이긴 하고.”
“그니까요.”
그렇다 보니 당뇨 때문에 다 죽어 가던 개가 방금처럼 쩌렁쩌렁 짖을 만큼 아프다.
과장 좀만 더 보태면 송곳이니까 뭐…….
그로 인한 감염 문제도 염려를 해야 할 정도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차피 소독하고 하려면 병원 와서 맞아야 한다.
‘매일…… 뭐…… 실험하는 겸 하고 나중에는 교육해서 해야겠지?’
지금은 ‘소독하세요’라고 하면 뭘 하겠어.
뭘 할까?
갑자기 궁금하다.
일반인들의 ‘소독’이란 무엇일까.
불로 지질 수도 있다.
농담 같지?
진짜야.
“컹!”
그렇게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리스턴 형님은 내가 당뇨 만들어 둔 개들을 불러다가 푹푹 찔렀다.
아, 뭘 넣은 거냐고?
소 췌장 우린 물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인슐린이 가득 담겼다고 굳게 믿고 있는 물 1온스다.
온스…….
mL로 하면 30mL 좀 안 되는 양인데 알아듣는 놈들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했냐?
나도 모른다.
일단 해 봐야지 뭐.
“일단 봐야겠지?”
“네. 내일 소변이 어떤지 봐야죠.”
“근데…… 개미 꼬이는 걸로 알 수 있으려나? 이게 음…… 개미는 당이 조금만 있어도 꼬일 거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설마…….”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매튜 돕슨이라는 분이 소변에서 당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하긴 했다.
근데 그게…….
진짜 어렵다.
21세기에서 하는 것처럼 대강 종이 막대기 갖다 댄다고 되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들어간다.
게다가 지금 알아내야 하는 건 단순히 당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양이 줄었냐 아니냐잖아.
원래 정량적인 검사가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그래도 또 콜린을?”
“아니, 아니. 콜린은 좀 그렇죠. 사람 오줌도 아니고 개 오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일세.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다른 놈한테 먹여야죠.”
“누구…….”
“경찰한테 물어보죠. 죄짓는 놈들 많지 않습니까?”
“아. 피해자들 보는 앞에서 먹일까.”
“그…… 이런 거 소문나도 되는 거예요?”
“안 될 거 뭐 있나. 나쁜 놈들 벌주는 건데. 근데 한 놈이 계속 마셔야 되는 거겠지? 맛을 비교해야 할 거 아닌가.”
“그렇죠. 그래서 사실 의사가 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그래도 우리 제자들은 좀. 앨프리드는 벌써 소변줄도 꽂고 너무 고생했네. 아무리 상대가 자네라도…….”
“아니, 나도 그렇게 할 생각 없다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경찰을 통해 강도 살인을 저지른 놈을 눈앞에 데려올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묶여 있었다.
경찰은 좀 불안해하는 얼굴이었다.
악명 높은 놈이라 그랬다.
하지만 기우였다.
“설마 리스턴…… 그럼 이쪽이 그?”
“뭐. 나 알아요?”
“제, 제발 살려 주십쇼!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음.”
왜 저럴까.
알 거 같았다.
“아, 아니. 죽여도 좋으니까 드레스만은 제발! 그런 치욕은…… 안 됩니다!”
“아, 그런 건 아니네. 안심해도 좋아.”
리스턴은 껄껄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뭐…….
좀 세게 두드렸기 때문에 녀석의 얼굴은 금세 고통으로 얼룩졌다.
다만 19세기에서 빈민을 대상으로 한 강도 살인은 협의만 잘하면 사형당할 정도로 큰 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세게 칠 수는 없었다.
그냥 말만 잘 듣게 될 정도로만 후려치고 있었다.
이런 건 진짜 리스턴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신뢰 가득한 얼굴로 그 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자, 일단 이거 마시게.”
인슐린 주사하기 전에 개가 싼 오줌을 담은 물이었다.
저거…….
저거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개가 뭐 컵 주고 여기다 받아 오라고 하면 보는 게 아니지 않나.
힘도 없어서 바닥에 줄줄 흘리기 마련이다 보니 집어 들어서 고추 잡고 컵에 대신 겨냥해 줘야만 했다.
“시발…….”
“시발놈들…….”
복도에서 괜히 저런 욕이 흘러나오는 게 아니다.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고생해 주었다.
조지프가 잡고 앨프리드가 맞았어.
근데 이걸 또 마시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이, 이게 뭡니까?”
“이건 개…….”
“네?”
“아아, 형님!”
개 오줌이라고 하면 아무리 죄수라 해도 막 먹겠냐?
엿 먹어 보라는 심정으로 거짓말할 수도 있고 그냥 다 뱉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 이럴 때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협박이 아니라.
“응?”
“제가 설명하죠.”
“아…… 그래.”
내 눈빛을 읽은 걸까?
리스턴은 후후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 참에 나는 본격적으로 구라를 털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방금 전까지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막 나와.
“그…… 우리가 만들고 있는…… 음료수…… 약이네, 약입니다.”
“약이요?”
“그래요. 약,”
“어떤……?”
글쎄.
어떤 약일까?
왜인지 모르게 나는 내가 먹었던 아편팅크가 떠올랐다.
“감기, 천식, 당뇨, 결핵, 암 뭐 다 고칠 수 있고 다 예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 오……! 제 어머님께 드리고 싶군요.”
사람 죽여서 여기 온 놈이 엄마 얘기하지 마라…….
마음 약해지니까.
음.
안 약해지네?
하긴 얼굴만 봐도 너무 나쁜 놈이다.
리스턴이 무섭게 생겼다면 이놈은 나쁘게 생겼어.
“그래, 그래. 그렇게 하시고…… 일단 우리가 목표로 하는 건 너무 달지 않은 약입니다.”
“왜요? 달면 달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약 같지 않으니까.”
“어…… 그렇습니까?”
“뭐, 드레스 입고 마시려고요?”
“아니, 아닙니다! 아닙니다!”
순한 양처럼 굴게 된 죄수를 보면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해하던 경찰이 좀 안심하는 게 보였다.
뭐 여기가 어떤 곳인데 죄수 한 놈이 패악질을 부리겠나.
당장 옆방에서는 응?
지금도 해부 중이라고.
시신에 매일매일 칼 대는 미친놈들이 수십 명이 있는 곳이다, 이 말이다.
“자, 그럼 한번 먹어 봐요.”
“네.”
과연 개 오줌 맛은 어떨까?
정확히 말하면 당뇨에 걸린 개 오줌 맛은 어떨까?
나만 궁금한 건 아닌지 리스턴도, 앞뒤 사정을 알고 있는 경찰도, 방금 전까지 오줌 쏘고 맞고 해서 욕하고 있던 제자들도 하나같이 모여서 죄수를 바라보았다.
꿀꺽.
그렇게 오줌이 죄수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어?”
생각보다 표정이 되게 밝았다.
생각해 보면 런던 구치소에 있다가 여기 왔으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은 나쁘지 않을 거다.
게다가 오늘부터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되거든.
실상을 알게 되면…….
그러니까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시신들이 널려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기분이 살짝 달라지긴 할 텐데 아무튼, 지금은 그래 보였다.
“단데요? 맛있습니다. 이게 약이라니.”
“마, 맛있나?”
“네.”
“그래. 그렇군.”
리스턴은 신기하다는 얼굴로 죄수를 바라보았다.
나?
나는 원효대사의 해골 물을 떠올렸다.
인간이란…….
생각보다도 더 편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존재구나 싶달까.
‘이 정도면 뭐 실험은 걱정 없겠군.’
죄수는 딱 이것만 하면 된다고 하자 표정이 더더욱 밝아졌다.
상식적으로…….
구치소에서 나와 지낼 수 있는 대가로 뭘 계속 먹어야 된다고 하면 그 무언가가 굉장히 후진 거라고 의심을 해 봐야 할 텐데.
딱히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진 않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상식이 안 통하는 세상이잖아?
해서 그냥 그렇게 묶어 두고, 물론 리스턴이 만약 도망을 시도하면 뒈진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경찰도 자리에 남았다.
침대는 경찰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죄수는 바닥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별 불만은 없어 보였다.
“이건 어때.”
“어제보다…… 좀 맛이 없는데요?”
“그래?”
“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갔다.
“이건.”
“이건…… 이건 뭡니까? 너무 역한데요?”
그렇게 한 4일째 되던 날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이건?”
“우웁.”
우리는 토하는 죄수를 보면서 껄껄 웃었다.
사실 먹여 보기 전에도 대충 이럴 것 같았다.
개가 건강해 보이거든.
문제는 이제 인간도 과연 이만한 농도로 나을 것인가인데…….
“경찰 아저씨.”
“네?”
“혹시 단 오줌 보는 죄수들 좀 수배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이것도 실험을 좀 해 봐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