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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영국 의사-247화 (247/249)

247화 형님 수술 [1]

요제프를 당장 오늘부터 좀 불운하게 해 줄까 싶었다.

솔직히 리스턴까지 나설 것도 없다.

내 말 한마디면 돼지 밥…….

아니, 아니지!

하.

어쩌지?

19세기 사람이 아니라 19세기 갱단이 되어 가고 있잖아.

“요제프 씨.”

“닥터 요제프일세.”

“요제프 씨.”

반성은 했지만, 그래도 닥터라는 말을 붙여 주긴 싫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씨라고 불렀고, 요제프도 포기했는지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저는 둘 살렸고, 그쪽은 둘 죽였네요?”

“운이 없었을 뿐이네! 코 수술하는 건…… 아예 다른 문제야!”

맞는 말이긴 하다.

저 말만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면 그래.

하지만…….

“우우우우!”

“닥터 피영은 주술로 사람을 살린다!”

“저 독일 놈을 매달아라!”

“피영! 독일 놈의 심장도 찔러 주십쇼!”

나는 주술이 됐건 수술이 됐건 사람을 살린다.

저놈?

저놈이 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죽었잖아?

너무 빨리 데려가서 뭐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나는 주변을 에워싼 군중에 힘입어 보다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그 운이 코 수술할 때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요제프 씨.”

괜히 팩트로 접근하진 않았다.

팩트로 패는 게 치사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

유리 피판이니 국소 피판이니 하는 말 하면 저 새끼가 알아듣겠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떻고.

“으읏.”

무엇보다 이 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실 콜린의 형님이다.

아니, 원래는 의원님이 제일 중요하긴 한데…….

그는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의회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21세기였어 봐라.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주최 측이 아닌데도 일단 사람이 죽으면 책임 소재부터 따지잖아?

허나 의원을 비롯한 의회 측 사람들은 하나같이 싱글벙글이었다.

“와아아아아!”

“피영!”

“닥터 피영!”

“아까 봤나? 심장 푹 찌르니까 나쁜 피가 그냥…….”

“사혈일까? 아니면 주술일까?”

“그게 중요한가? 죽은 사람을 살렸는데.”

둘러싼 사람들도 싱글벙글이었다.

“그 어떤 축제보다 좋았네.”

“사실…… 좀 심심했거든? 요즘 수술이 그게 수술이던가? 이전이 좋았지. 비명과 함께 번뜩이는 칼…… 피…… 근데 오늘 중간부터는 그 갈증을 싹 해소해 주었어.”

“그러니까 말이야. 정말 오랜만에 충만한 느낌이야.”

“하하하하!”

그 정도가 아니라 칭찬 일색이었다.

시민들의 행복도가 올라갔다, 이 말이었다.

세상에 사람이 죽었는데 어찌 이럴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19세기 런던에서는 과장 좀 보태서 사람 죽잖아?

당사자랑 가족 말고는 슬퍼할 사람이 없다.

심지어 가족들도 금방 돌아온다.

슬픔에 깊이 빠져 있기엔 도처에 깔린 게 죽음이거든.

아무튼, 나는 의원에게 엄지로 맞장구를 쳐 주고는 콜린의 형에게 다가갔다.

“자, 형님.”

“아…… 그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제프 씨에게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팀에게 받으시겠습니까?”

“으으음…….”

형님…….

존나 인종차별주의자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거 아는데, 지금은 해외파가 인종차별이 더 심하다.

본토인들은 사실 아예 아는 게 없다 보니 주워듣는 게 다거든.

근데 직접 나가서 보는 놈들은…….

아무래도 런던의 이 화려한 시가지와 비교하다 보니 열등 종자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 모양이다.

뭐…….

지난 천년 넘게 주도권을 쥐고 있던 동양의 패권이 서양으로 넘어오는 시점이니만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꼴을 보고 나서도 고민이 되냐?

‘아니…… 진짜로 철로 칭칭 감아 놨네.’

외상 환자야 이미 죽어서 널브러져…… 아, 납품업자가 들고 간 모양이다.

외상으로 죽은 경우엔 가격이 아무래도 팍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건강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게다가 방금 죽었고.

그럼 우리처럼 경찰이랑 MOU 체결해서 시신 공급을 안정적으로 받는 병원이 아닌 일반적인 병원에서는 욕심낼 거다.

아무튼, 철로 칭칭 감겨 있는 환자를 보고 있자니 참…… 그랬다.

그에 비해 내가 수술한 환자는 벌써 마취에서 다 깨서 멀뚱히 앉아 있었다.

조지프가 책임지고 강박적으로 소독해 둔 붕대를 감고 있어서 그런가 이 자리에서 제일 깨끗해 보였다.

“미안합니다.”

나만 둘을 번갈아 바라본 것은 아니었더랬다.

콜린의 형님도 철로 칭칭 감은 환자와 내 환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더해 핏자국만 남기고 사라진 요제프의 외상 환자 둘과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지언정 여전히 멀쩡히 살아 있는 내 환자 둘도.

여기서 요제프를 고르는 건…….

지능 문제 아니겠나?

콜린의 형님도 멍청한 사람은 아닌지 즉시 요제프를 향해 ‘당신은 우리와 할 수 없습니다’를 시전했다.

“무슨 말인가!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인가?”

“알죠, 압니다. 하지만…….”

“오늘은 운이 없었네! 게다가 코 수술은 결과를 봐야지 않겠나! 저…… 저런 사특한 방법은 한계가 명확해! 이제 곧 두고 보게나. 이마 쪽에서 돌려 둔 살은 썩을 거야!”

“그건 모를 일이지만 오늘은…….”

“운이 없었다고 하지 않나!”

“아무튼,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죠.”

“아니, 자네가 어떻게 나한테?”

“다른 문제도 아니고 얼굴 문제니까요. 이래서야 군인 말고 달리 할 게 있겠습니까?”

콜린의 형님은 요제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내 쪽으로 왔다.

그러곤 전보단 좀 더 공손해진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실례가 많았네.”

“많았네? 자네가 마주하고 있는 게 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나? 하잘것없는 귀족 따위 정리하는 건 일도 아니야.”

물론 리스턴의 기준에서 공손한 건 아니었다.

좀 엄격하긴 하다.

그 어떤 사람도 리스턴 앞에서는 무례가 자동으로 조절이 되니까.

저 공작님들도 심지어 리스턴한테는 무례하게 안 하잖아?

일반인들은 숫제 굽신거리는 수준이다.

“아…… 검성……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닥터 피영.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된 거 같군그래.”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콜린 형님도 말투와 태도를 더 공손하게 바꾸었다.

나야 뭐…….

이러거나 말거나 사실 별 상관은 없었다.

내가 무슨 무골호인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 콜린…….’

처음엔 그래, 솔직히 밉상이긴 했다.

그래 봐야 어린애 수준의 밉상이어서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고.

헌데 그 후로 콜린이 보여 준 헌신을 떠올려 보자.

이야 뭐 나랑 상관없이 뽑은 거니까 그냥 둔다고 해도 똥물이나 소변 먹은 건…….

게다가 오늘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와서 무보수 봉사 중이잖아?

그거야 앨프리드나 조지프도 마찬가지지만…….

‘속죄 수술 갑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기 있는 애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 진료해 줄 생각이었다.

불쌍하잖아.

미안하기도 하고.

또 그냥 바탕이 썩 괜찮은 놈들이다.

이제 와 다른 학생들을 구해서 애매모호하게라도 가르친 개념들을 다시 가르칠 생각 하면 차라리 죽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콜린이 아주 우수한 녀석이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말을 하면서 콜린을 돌아보니 감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형님의 얼굴은…….

코를 복면 같은 걸로 가리고 있어서 제대로 파악이 가능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애가 처음에 괜히 비뚤어진 게 아니었나.’

하긴.

의학사에 한 줄 이름 남기겠답시고 자처하는 짓들을 봐라.

이게 다 집에서 인정을 안 해 줘서 그렇다.

“네네. 콜린이 손이 아주 좋아요. 조만간 수석 보조의로 승격시킬 생각입니다. 아무튼, 수술은…… 코 수술 결과를 좀 보면서 결정하도록 하죠. 어차피 상처를 보다 정확히 보고 어떻게 수술할지도 봐야 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코 수술이면 다 똑같은 것이…….”

“그럴 수가 없죠. 사람 몸이 공장에서 만드는 거랑 같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흐음, 확실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 꼴로 다른 사람들 앞에 있는 게 좀.”

“네. 그럼 집으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네, 동생 놈 통해서 주시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님 수술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나서부터는 내내 속죄 수술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또 나는 애초에 21세기 의사라 친절한 편이다 보니 상당히 부드럽게 대화를 마칠 수 있었다.

하여간, 그렇게 형님을 보내고 나니 블런델과 리스턴이 나를 아주 의외라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아니, 나는 자네가 이렇게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네.”

리스턴이다.

블런델 아니고.

미친 거 아닌가?

나야 항상…….

“맞는 피가 있다고! 이렇게 소리만 지르던 사람이…… 허어, 정말 사람 오래 봐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로구만.”

이번엔 블런델이다.

그 말까지 듣고 보니…….

확실히 내가 최근에 좀 강압적으로 한 면이 있긴 했다.

그렇다고 반성할 생각이 들진 않았다.

어쩔 수가 없잖아…….

뻔히 사람 죽이는 거 알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

그렇다고 매번 이 새끼들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편하긴 해…….’

앞으로도 태도를 바꿀 거 같진 않다.

한번 해 보니까 돌아갈 수가 없어.

펠로우 시절에는 대체 저 교수님은 왜 저렇게까지 또라이 짓을 할까 했는데, 해 보니까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또라이가 되면 다른 사람은 불편할지언정 나는 편하다.

내가 편하면 장땡이지 않을까?

그렇잖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오락가락해 버리자.’

어떨 때는 친절하고.

어떨 때는 지랄 같고!

“후우. 일단 환자는 병실에 인계했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이었다.

광장에서의 일이 다 끝나서는 아니었다.

거긴 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축제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그런가 갈 생각들을 안 한다.

우리 갱단은 그런 이들 대상으로 이런저런 거 장사도 좀 하고 소매치기도 하고 패서 갈취도 하고 있는 모양이고…….

아무튼, 소문을 듣고 나타난 원장님이 방금 말을 꺼냈던 블런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자네 명성이 이것으로 점점 더 퍼지고 있다네.”

“그건 좋은 일이겠죠?”

“당연하지. 당뇨 치료로 귀족들 챙기고, 이런 치료로 대중적인 인기도 끌게 되면…… 정말 아무도 자네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될걸?”

“좋네요.”

뭐…… 좋은 일이다.

수술이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이라는 게 좀 그렇긴 한데,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잖어.

“그래서 내가 좀 더 도움을 줘 봤네.”

“네?”

원장님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 덕에 병원 잘돼서 더 이러는 거 같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퍼킹 레이시스트였으면 이렇게까지 해 주겠어?

“조선말에 신이 갓이라는 뜻이던데? 맞나?”

“아…… 맞죠.”

“그걸 이용해서 별명을 하나 만들어서 퍼뜨리고 있어.”

“어떤 별명이요?”

“이름에 신을 붙였지.”

이름에 신을 붙여?

왜 불길하지?

“피영신.”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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