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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영국 의사-248화 (248/249)

248화 형님 수술 [2]

“오, 피영신!”

“평신!”

“평신아!”

시발, 하지 마…….

그냥 이름 똑바로 불러…….

“잘했지? 하하. 어차피 뭐……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하나님을 지칭한다는 사실은 모를걸세. 그저 한 분야에 있어 아주 걸출한 실력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조선어 정도로만 알고 있다네.”

내 새로운 별명을 들은 리스턴과 블런델 그리고 친구, 제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계속 그 별명을 중얼거리고 있다.

대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이게 난감하다는 건가?

당황한 채 가만히 있으려니, 그런 내 모습을 오해한 것이 분명한 원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좋지? 잘했지?”

신…….

그래, 맞다.

놀랍게도 21세기에서는 신이란 단어를 저렇게도 쓴다!

왜?

대한민국에서인지 아니면 21세기 전반적인 특징인지는 몰라도 ‘신’이란 단어가 갖는 무게가 팍 줄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신성 모독이다.

아니, 그보다 말이 좀 그래.

평신이라니…….

듣는 평신 기분이가 좀 그렇잖아?

“네, 너무…… 잘하셨습니다.”

진짜 신이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아직 런던 내에서의 내 입지는 신보다는 평신에 가깝다.

갱단을 부리는 주제에 이런 말 하면 기만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날 따르는 갱단만큼이나 날 제끼고 명성을 얻고 싶어 하는 갱단도 많다.

아니, 갱단 아니라 그냥 동네 술집 돌아다니는 양아치들도 많다고 들었다.

솔직히 내가 뒤에 붙은 후광을 빼고 보면 도저히 강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잖아.

“그래. 하하하. 아무튼, 이번 대결에서 이긴 걸로 자네는 이제 명실상부한 런던 최고 인기인이야. 아니, 그 심장에서 피 뽑을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건가? 그게 대유행할 조짐이 있네.”

“아니…… 안 됩니다. 그건.”

애초에 심장에서 뽑은 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잘못 찌르면 심장에서 피를 뽑는 경우도 나오긴 할 거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찌르면 그건 살인이야, 그냥!

“특허를 내려고? 사람 살리는 문제에 특허를 내면 모처럼 얻은 명성을 잃게 될 텐데? 그리고 가능하지도 않을걸? 찌른 사람도, 찔린 사람도 입을 열지 않을 텐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정말 틀린 말은 아니다.

찌른 놈이야…….

살인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떠드는 19세기 의사들을 봤으니 장담할 수는 없는데, 찔린 사람은 입을 열지 못하게 될 거다.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게…….”

“하하하! 피곤한 모양이구만. 하긴, 오늘 여러 가지로 일들이 많았지. 좀 쉬게. 여기 돈 있으니 가서 술이라도 마시라고.”

“아.”

그래, 술이나 먹고 취해야겠다.

설마…….

우리 일행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 19세기 런던도 많이 개화되어 가고 있지 않나?

게다가 심장이라는 장기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는 이미 17세기부터 알고 있었더랬다.

이 새끼들…….

그냥 보면 진짜 하나도 몰라서 이러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의외로 아는 게 꽤 있다니까?

아무튼, 그런 장기를 칼로 푹 찌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거다.

거의 없을 거야.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겁니까?”

“어디긴. 이제 후진 펍은 그만 가세.”

“아…… 여긴……?”

“의원 나리들이 가끔 오는 곳이라더구만. 돈만 있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그럼 돌아가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런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화려한 거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사실 앨프리드 선배네 집도 좀 그렇긴 했다.

좋은 동네니까?

하지만 그냥 돈만 많다고 상류층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 생각과는 달리 영국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이 자식들은 진짜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다고.

“하하. 조선에 대해 들었지. 거기서도 반상의 구분이 엄격하다지?”

“대체 어디서 그렇게 조선에 대해 듣는 겁니까?”

“몰랐나? 자네 때문에 요새 청에 왔다 갔다 하는 상인들이 조선 사람만 보면 짧게나마 얘기라도 들어 보려고 아주 난리라던데? 돈도 쥐여 준다더라고.”

“아…….”

X 되는 건가?

이렇게…….

나 다 들키는 거야?

“아무튼, 우리 이제 꽤 높은 사람이라네. 옛날 같지가 않아요! 하하.”

리스턴은 그렇게 무서운 얘기를 전해 준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확실히…….

펍이라고 해야 할지 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공간은 제법 화려했다.

우선 가스등이 사방에서 빛나고 있어서 보통의 펍보다 훨씬 밝았다.

떠오른 김에 말해 주는데, 대체 왜 판타지 소설이고 어디고 간에 술집에서 그 많은 시비가 이루어지는지 아는가?

어두워서 그렇다.

상대가 대체 어떤 상대인지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

아니…… 리스턴한테 시비 거는 미친놈들도 있을 정도라니까?

“어…….”

“어어……?”

“저거…….”

“절단 마스터……?”

하지만 이곳은 정말이지 밝았다.

덕분에 안에 들어서고 있는 우리의 얼굴을 안에 있던 모두가 싹 다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중 제일 잘 알려져 있는 게 리스턴이지 않던가?

아니, 아마 제일 덜 알려진 사람이었다고 해도 일단 이목은 리스턴에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좀 커야지.

게다가…… 런던 경찰에게 허가받은 뒤론 늘 허리춤에 리스턴 칼을 차고 다니고 있는 통에 여러 가지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잠만…… 저 옆에?”

“설마…… 평신인가?”

“청나라 갱?”

“예끼. 이 사람. 소식이 그렇게 어두워서 어떡하나. 조선의 갱일세. 소문에 따르면 원래 상놈? 그래, 상놈이었는데 양…… 뭐라더라. 아무튼, 섬기던 귀족을 죽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고 하더군. 진짜 이름과 나이는 아무도 모른대.”

“허어…… 그럼 파리에서 그것도 정말인가?”

“그렇지. 웬 귀부인의 가슴도 베어 먹었다는 소문이 있네.”

“허어…….”

그다음으로 가자면 아무래도 조지프였다.

원래는 그래야만 했다.

우리의 조지프 덩치도 사실 보통이 아니거든?

이 중에서 갱단 유망주 뽑으라고 하면 역시 조지프일 텐데…….

“자네 귀부인 가슴도 베었나?”

“그…… 그때 같이 베었잖아요.”

“같이? 내가?”

“소피 제르맹.”

“아. 아아아아. 틀린 말은 아니군.”

“틀렸죠! 내가 언제 먹었어!”

“사소한 오류는 원래 소문이 돌다 보면 붙는 법이라네.”

“사…… 사소하다니.”

왜 나에 대해서 자꾸 떠드는 걸까.

게다가 리스턴에 대해서는 그냥 여러 별명만 부르고 말더니 나에 대해서는 나조차 모르겠는 말들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복장과 생김새 등의 행색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뒷담화에 익숙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귀족들인데…….

“유명세를 치르는 거라 여기게.”

“아휴…….”

“아무튼, 여기 술은 좋아. 위스키들이 제대로 된 것들이 있더라고.”

“형님은 와 봤어요?”

“원장하고.”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원장…….

신기한 사람이다.

귀족이나 있는 집 출신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원장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원장? 뭐…… 대단한 사람이지.”

“대충 뭉개지 말고.”

내 말에 리스턴이 방금 나온 호박색 술을 한 모금 머금더니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알 때가 되긴 했지.”

“뭔데요?”

“사실 원장님은 프랑스 출신이야.”

“네? 원장님이 빠게뜨라고……요? 영어 하는 거 보면 억양이…….”

“아, 원장님은 런던 토박이지. 근데 그 집안은 원래 프랑스에서 넘어왔어.”

“허어…….”

동양인보다야 나을 거다.

하지만 런던에서 프랑스……?

왜 넘어온 거지?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21세기에서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 이민인데 19세기에서 이민?

그것도 유럽의 지배자라고 해도 좋을 프랑스에서 섬나라 영국으로?

바게트 놈들이 좀 별로긴 해도 날씨나 먹을 거 고려하면 솔직히 프랑스가 낫다.

“네가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진 모르겠는데…… 범죄 같은 거 해서 넘어온 건 아냐.”

“아니,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그래? 원래 이민하면 다 그런 거 아냐?”

“아니…… 그런가? 근데 아니라면서요.”

하긴 리스턴이 프랑스로 이민 가게 된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경찰서장조차 막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겠지.

어지간한 사람 한둘 죽이는 걸론 아마 괜찮을 거다.

솔직히 수술을 빙자한 살인만 수십 건은 해 왔잖아?

이제 와서 사람 죽였답시고 벌주면 그게 뭐야.

법이 오락가락하면 안 되지.

“위그노라고 알아?”

“아뇨. 생전 처음 들어 봅니다.”

“그럴 거 같았네. 너무 의학 공부만 하지 말고 상식도 좀 갖추는 게 좋아. 앞으로는 높은 사람들도 더 만나고 할 텐데.”

“그…….”

‘그게 형님이 할 소리입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

“죽고 싶나?”

들어간 줄 알았는데 좀 튀어 나간 모양이었다.

그래도 뭐…… 괜찮다.

대머리라는 말도 넘어갔는데 무식하다는 말이 뭔 문제가 되겠어.

“미안합니다.”

“그래, 아무튼, 프랑스 놈들이 혁명 좋아하는 건 알지?”

“알죠. 무식한 놈들…… 마음에 안 든다고 단두대부터 끌고 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튼, 위그노는 개신교야. 대부분이 법률가나 의사였고. 똑똑한 사람들이란 건데…… 무식한 놈들이 볼 때는 어떻겠나?”

“마음에 안 들죠.”

“그래서 죽였어. 원장님 집안은 그때 박해를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이고.”

“아…… 그래서 원장님 이름이 조지 프랑수아예요?”

“맞아.”

이야아…….

대단하다, 프랑스!

지식인 다 죽이고…….

그런 짓을 하니까 요새 우리한테 밀리는 거 아니겠나?

나도 좀 이상하다 싶긴 했어.

영국이 프랑스보다 더 잘살 만한 요인이 거의 없는데 불구하고 지금은 대영제국이 최강이잖아.

이런 배경이 있었구만.

하여간, 지식인 죽이거나 박해해서 좋은 꼴 보는 걸 동서양을 막론하고 단 한 번도 못 봤다.

“그나저나, 콜린 말이야.”

“네.”

“그 형 수술은 자신 있나?”

“자신 있죠. 문제없이 끝낼 겁니다.”

“그래. 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뜬금없이 수술 얘기를 해 왔다.

뭐 마냥 그렇게만 여길 건 아니긴 했다.

원래 의사들끼리 일 끝나고 술 먹으러 가면 하는 얘기가 이러니까.

“근데 왜요? 뭔가 불만이 있으신 거 같은데.”

“아까 수술한 사람 말이야. 암만 봐도 그것보다 모양을 더 잘 만들어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아…….”

“귀나 갈비 연골 사용하는 거 정말 안 되겠나?”

“으음…….”

연골이라…….

못할 것도 없긴 했다.

하지만 콜린 형님으로 바로 하나?

그것은 조금…….

“연습을 좀 해 보면 어떻겠어.”

“연습이요? 근데 시신으로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이식 반응을 봐야 한다.

감염 여부도 봐야 하고.

실제로 우리가 하는 소독이 충분한지 어떤지조차 알지 못하니까.

“그럼 사람으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으로 연습을 어떻게 합니까…….”

내 말에 리스턴의 표정이 좀 묘해졌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한 건 그럼 뭐냐고 묻는 듯했다.

그 생각을 하고 보니 나도 좀 그렇긴 했다.

“뭐 적당한 사람이 있을까요?”

해서 이렇게 물었더니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많지. 돈도 주고 수술도 해 준다고 하면 아마 줄 설걸? 오늘 승부만 해도 그렇지 않았나.”

“하긴…….”

그래, 여긴 19세기 영국이다.

진짜로 내가 살던 지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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