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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성녀 구출 작전 (1) (3/90)


3화. 성녀 구출 작전 (1)
2022.08.11.


이른 새벽, 수도 근처 작은 항구.

날이 밝아오려는지 미로 같은 골목 군데군데 서슬 퍼런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다.

이곳은 문제의 그날, 성녀를 데리러 왔던 장소인 작은 항구였다.

잠입용 검은 망토를 두른 루시아는 좁은 골목에 서서 주변을 훑었다.


‘……분명. 이 중 하나일 텐데.’

그땐 임무 수행만을 위해 아무런 의심 없이 이곳에 왔던 그녀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이렇게 창고만 가득한 곳은 경험상 밀수업자들이 밀수품을 보관하고 거래하는 어두운 시장일 확률이 높았다.

그녀는 이 사욕으로 가득 찬 창고들을 보며,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뒤질 생각에 머리가 아찔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성녀 후보가 되고 나서 지키는 것보다, 지금 창고를 뒤지는 게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척을 숨기며 창고부지 곳곳을 살폈다.

그러다,


‘역하군. 이 정도면 동물의 오래된 사체라 해도 믿길 지경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됐다 여겨도 좋을 만큼 노후된 창고가 보여 다가가니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여긴 아니겠지. 이런 데에 사람이 있을 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머리와는 달리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 루시아였다.

게다가 창고의 자물쇠는 무엇을 지키는지 아주 새것처럼 단단한 모습.


‘이 썩은 창고에 비싼 자물쇠라…….’

루시아는 자물쇠를 만져보았다.

그녀의 흰 장갑에는 역시 먼지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매일 만지는 것이 아니면 이렇게 관리될 리가 없다.

두꺼운 쇠로 된 자물쇠는 그 누구도 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으로 굳게 잠겨져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완성된 명장.

루시아 손에서 생성한 오러 블레이드는 자물쇠를 마치 푸딩처럼 소리 없이 잘라내었다.

그리고 문을 밀어냈다.

인기척은 없지만, 문을 열기 전보다 온갖 오물 냄새를 비롯한 악취들이 풍겨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전쟁터보다 심하군.’

그 말은 즉,

굳이 성녀가 아니라도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라는 곳이었다.

그녀가 돌아가려 다시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소름 돋는 소리가 울려 퍼져 루시아는 재빨리 문을 다시 닫았다.

경보음인가?

최대한 기척을 숨기자 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다행히 누군가 살피러 오는 기척이 없자, 루시아는 조용히 가져온 등불에 불을 밝혔다.


“……!”

색색의 진귀한 깃털 색과 이국적이며 화려한 외향.

허세에 취한 귀족들이라면 환장할 만한 고귀한 모습의 새들이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야생의 새들이 새장 속에 갇혀 이 허름한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이다.


‘분비물과 변이 원인인가. 작은 항구라고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어.’

아마 이곳에 있는 새들의 밀 거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할 높은 가격임이 틀림없었다.

루시아는 창고를 천천히 살폈다.

진귀한 새들은 인간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닌지 눈을 맞추는데도 제법 조용해서 다행이었다.


‘새밖에 없나? 어디…….’

루시아는 등불을 바닥에 두고,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러고는 집중한 뒤, 공간 체화를 펼쳤다.

공간 체화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기술 중 하나로, 일정 공간을 제 몸과 동기화시켜 샅샅이 살피는 기술이었다.

눈을 감고 집중할수록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이 창고를 세세하게 읊어갔다.

그리고 감지된 불 규칙적인 작은 심장의 고동.

이것은 기척을 없애 안정된 새들의 고동이 아니다.

루시아는 기술을 거두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불안하고 잔뜩 초조한 느낌.

그에 맞춰 가늘게 들리는 숨소리는 대범한 그녀마저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다.


“…….”

잔뜩 쌓인 깃털 위에 낡은 천을 붙들고 작게 웅크린 아이.

그것이 사람이라 생각이 든 건, 다 떨어진 낡은 천 사이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덕분이었다.

성녀의 첫 번째 증거, 루시아와 같은 색의 검은 머리카락.

성녀의 두 번째 증거, 아기 테를 갓 벗은 5살쯤의 어린 나이.

그리고 세 번째 증거인 신성력까지 나온다면, 이 작은 아이는 성녀가 확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루시아의 눈에 헝겊 사이로 삐져나온 아이의 손이 보였다.

작고 작은 하얀 손.

그것은 반평생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던 그 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너로구나.’

하필 이런 더러움 가득한 곳에 신이 보낸 성녀가 존재하는 아이러니함이라니.


“……아.”

드디어 발견한 성녀에게 뭐라 말하려던 그때, 아이가 그 소리에 놀라 흠칫거렸다.

그리고 루시아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내가. 아이와 말해 본 적이 있던가? 아니, 이 나이쯤 되는 애가 말은 했던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끼는 동료의 딸 결혼식도, 어렵게 얻은 손녀의 탄생에도 가본 적 없던 루시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지낸 어린 하녀마저도 이미 아이라 불릴 수 없을 만큼의 나이였다.

즉, 그녀의 인생에 아이와 엮일만한 인연은 조금도 없던 것이다.

막상 성녀를 구하겠다고 달려오긴 했지만,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전혀 지식이 없는 그녀였다.

사고가 정지된 루시아는 멈춰 서서 가만히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때가 묻어 더러운 낡은 천.

오물로 더럽혀진 깃털이 엉겨 붙은 머리카락.

그곳에서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온몸을 떨어대는 아이.

그런 애처로운 아이의 모습은,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보다 신을 원망할 자격을 갖춘 모습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했다.

루시아는 제 손에 잡힌 등불을 보았다.

이곳의 유일한 빛.

등불이 제 앞에 놓는 소리가 나자, 아이는 깜짝 놀라 더욱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루시아는 제 나이 열일곱에 출정한 전쟁터에서 주워 온 아이가 갑자기 생각났다.

상황은 비슷했지만 그 아이마저도 성녀보다 나이가 있었다.


‘히스……. 지금은 18살 정도려나.’

천부적인 재능으로 제 단원이 된 엉뚱한 녀석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일단 말없이 그저 아이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루시아가 그냥 보고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숨은 아이가 상황을 보기 위해 덮고 있던 천을 조금 내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드디어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맑은 눈 한쪽이 마주쳤다.


 


“……엄마?”

루시아는 순간 몸이 굳었다.

기억 속의 맑은 황금빛 눈동자와 그때 그 아이가 자신의 손을 놓기 전에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신제국력 4년.

게르아치 지방, 작은 시골 마을의 보육원.

모든 불이 다 꺼진 늦은 밤.

낡은 창문 사이로 달빛이 들어와, 방 안 가득한 2층 침대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중 가장자리 어딘가 들려오는 작은 신음.

그 소리가 난 곳 침대의 1층에는, 희귀한 검은 머리의 작은 여자아이가 악몽을 꾸는지 동그란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끼익

검은 머리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의 2층에서 나는 소리였다.

허술한 침대가 조금 흔들리더니, 10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노련하게 내려와 작은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애니, 일어나. 애니.”

보육원에서 자랐다기엔 제법 깔끔해 보이는 여자아이는 악몽을 꾸는 아이의 귀에 속삭이며 조심스럽게 깨웠다.


“……흐, 흐앙!”

“쉿.”

“……어, 언니야.”

“응. 그래. 미아 언니야. 또 악몽을 꾼 거야?”

식은땀을 흘리던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꿈에서 깼지만, 역시 미아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는 익숙한 듯 그런 아이를 토닥였다.


“…….”

아직 어린아이라 발음도 제대로 못 하지만, 애니는 악몽이라는 단어를 알았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 알 수 없었기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꿈은 바로 자신의 엄마가 화려한 마차를 타고 찾아오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악몽 같지만 가장 행복한 꿈.


“자.”

미아는 손을 내밀었다.

여자아이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민 이유는, 늘 꿈을 꾸고 나면 제 작은 손을 간절하게 맞잡고 있는 아이의 습관 때문이었다.

많은 보육원을 떠돌던 미아는 이런 습관을 지닌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지켜본바, 부모가 이곳에 아이를 버릴 때 마지막으로 잃는 것이 엄마의 손의 온기라면 생기는 습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게도 애니는 날 때부터 버려져 이곳에서 평생을 산 아이다.


“……혼나여.”

애니는 제 옆에 누운 미아를 걱정하듯 말했다.

보육원에서는 이런 좁고 허름한 곳이라도 각자 다른 침대를 써야 하는 규칙이 있다.

조금 잔인한 규칙이지만 그것은 언젠가 보육원을 떠날 아이들이 서로 정을 붙이는 것을 방지하려 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다시 잠들면 그때 내 자리로 돌아갈게.”

“……우웅.”

아이는 지친 듯 힘없이 끄덕였다.


“애니, 오늘 일이 그렇게 힘들었어?”

다시 잠드는 게 어려운 듯, 애니가 제 손을 잡고 꼼지락대는 것이 느껴지던 미아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비열한 쓰레기 원장. 내가 남작 부인에게 입양 간다고 빈자리를 너같이 어린아이를 쓰면서 채우다니.”

미아의 거친 말은, 아마도 내일 입양 가게 된 자신 때문에 애니가 제 몫을 대신하게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성공하면 널 데리러 올게. 얼마 안 걸리게 열심히 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텨봐. 꼭 다시 만나는 거야.”

미안함과 분노 섞인 미아의 맹세에 애니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려줬지? 건방진 마을 아이들이 널 괴롭힐 때는 그 삽을 놀리는 아이들에게 던지는 거야. 알았어? 걔넨 정말 별거 아니라고.”

‘더러운 애니! 냄새나는 애니!’

미아의 말에, 마을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는 소리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울려 퍼져 눈을 질끈 감는 애니.

이 작은 마을의 보육원은 게르아치 남작의 후원이 적어지자, 아이에게 마을의 허드렛일을 시켰다.

그것은 어른들조차 더러워 기피 하는 일이었던 마을의 공동변소를 치우는 일이었는데, 가혹하지만 부모를 잃은 가련한 아이들에게 맡기기 가장 좋은 일이었다.

그런 어른들을 부모로 가진 마을의 아이들은 부모와 똑같이 닮아, 항상 그곳에 가서 보육원의 아이들을 괴롭히기까지 했다.


“어휴. 네 착해 빠진 성격에 제대로 할 리가 없지. 어서 자.”

미아는 보란 듯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그렇게 제 손을 맞잡은 애니가 눈을 감자, 신랄하게 욕을 해대던 미아는 한참 걱정 어린 눈빛으로 다시 눈을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애니는 두 눈을 감고도 미아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미아가 걱정하는 그런 일보단, 당장 제 허전한 손을 잡아주는 이가 이제는 없다는 것이 쓸쓸한 애니였다.

하지만 애니는 믿고 있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미아가 언젠가 말했던, 꿈은 반대라는 말을.

꿈속에서 몇 번이고 제 손을 놓친 엄마지만, 언젠가 제 앞에 나타나는 그날엔 단단히 제 손을 잡고 함께 해줄 거라고.

그래서 항상 아쉬움에 슬퍼도, 이것은 악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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