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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커플 아이템? (59/90)


59화. 커플 아이템?
2023.02.23.


리온의 바쁜 눈은 오늘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 그득해 보였다.

머리핀, 리본, 귀걸이, 목걸이 할 것 없이 선물이 될 만한 것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마침.


“와아, 귀여워!”

“그러네! 오늘 받은 몫으로 한번 사봐~”

“안돼. 엄청 혼날걸?”

작은 여자아이들이 웃으며 보고 있는 작은 가판대.


“루시아 님, 저기 한번 가보시죠!”

“?”

루시아는 이곳 사람들의 얼굴과 똑같이 신난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위장에 꽤 심취했구나 싶었다.

그녀를 이끌고 간 가판대에는, 각양각색의 비싸 보이지 않는 브로치가 한가득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 눈에 띈 브로치 하나.

그는 루시아에게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그것은, 푸른 단추 두 개가 눈처럼 붙여진 검은 고양이 브로치.

비뚜름한 단추가 제법 사나워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 여유로운 분위기가 그녀와 많이 닮아 보였다.

그러니 엄마를 가장 좋아하는 니아의 선물로 정말 딱이었다.


“루시아 님을 많이 닮았네요.”

그의 말이 뜬금없게 느껴진 루시아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애완동물?”

“아, 아뇨. 그게……!”

“그럼 이건 리온 단장님을 닮았군요.”

그녀가 가리킨 것은 연한 회색빛의 고양이에 노란 단추가 붙여진 브로치.


“……아.”

자신을 애완동물로 비유한 그에게 지지 않는, 제법 유치한 구석을 가진 그녀였다.

그러나 그녀가 가리킨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리온.

자신을 닮은 브로치가 루시아와 니아에게 주어진다?

그렇다면 이건 정인들이 주고받는 커플 아이템! 이라기엔 상당히 무리수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녀와의 의미 있는 물건이 생기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는 결심하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가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빠르게 손을 뻗을 그때,

-와르르.

그의 손을 스친 쏟아진 브로치들.

바닥에 떨어진 각양각색의 브로치들은, 흙과 함께 버려진 길거리 음식 찌꺼기에 더럽혀져 버린 모습이었다.


“이봐! 여기 두 번이나 밀렸지? 이번엔 자릿세를 꼭 받아 가야겠어.”

“으, 으아악! 왜, 왜 이러세요! 팔아야 돈을 드리죠!”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브로치 상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들의 숫자는 두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커다란 덩치와 근육질 몸은 연약한 상인들이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이유가 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알 바 없는 두 사람.

그렇게 등장한 범인을 제압하기 위해 그녀가 등 뒤로 다가서서는 순간, 갑자기 날아가는 사내들.

-쾅!


“으윽!”

“크악!”

이미 뒤엎어진 가판대 뒤의 벽에 껌처럼 붙여져,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 모습에 루시아가 퍼뜩 리온을 돌아보자, 바뀐 검은 머리 때문일까?

그의 순한 사슴 같은 눈빛이 서리가 낀 것처럼 가라앉아, 공기마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운 모습이었다.


“마, 마법사다!”

“저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

“맞아요! 무려 반년이나 자릿세를 뜯어갔다고요!”

“힘내요! 마법사님!”

그러나, 영웅의 환호에는 맞지 않는 그의 냉혈한 모습.

자제를 잃은 그가 그들의 등 뒤로 벽에 금이 갈 정도로 압력을 넣자,


“읏! 으아아악! 사, 살려,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그냥……! 윽!”

“아아악! 살려주십시오!!”

그들의 입가에 토혈이 머물기 시작했다.

그걸 본 루시아는 리온을 막아섰다.

그것은 그들을 걱정해서가 아닌, 세력을 캐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렇게 화려해진 현장 체포에 의미가 그다지 있지 않았지만.


“그만두시죠.”

“……!”

그렇게 그들의 괴로워하는 모습만을 바라보던 리온의 시야에 그녀가 들어왔다.

그러자, 잠에서 깬 것처럼 순식간에 마법을 거둬들인 리온.

루시아는 그것을 보며, 그의 이면에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소유욕이 대단하군.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건가.’

그게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방향이었지만.

소란스러운 야시장에서 정신을 잃은 사내들을 조용한 곳으로 운반해 깨우니, 그들은 용병의 신분증을 털어 들어온 산적들이었다.

그러니 그 녀석들만 처리하면 끝날 문제였고, 그것은 의뢰인이나 상인들에겐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흑의 기사단에게는 아니었다.

무너진 벽이며 주변 가판대까지, 시공비가 명성보다 더 들 것이 뻔했기에 상인들의 이름으로 공을 돌린 것이다.

그렇게 다시 옷을 갈아입은 어색한 둘은 제1 성문을 향해 걸었다.

리온은 면목이 없었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감정 절제를 못 해서 일을 망쳐버리다니.

그는 도저히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루시아 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작지만, 답례입니다.”

“……네?”

그의 떨군 시야에 루시아의 손이 펼쳐졌다.

그곳엔, 그녀가 자신을 닮았다며 고른 연회색 고양이 브로치가 들려 있었다.

그가 상인들에게 잡배들을 맡기는 사이, 감사 인사에 대해 고민하던 루시아가 구입한 것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의 가슴엔 검은 고양이 브로치가 반짝였다.


“그럼.”

그렇게 멀어져 간 루시아.

하지만 왠지, 리온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서서히 은발로 돌아온 머리카락.

마력을 유지 시킬 힘조차 달아난 그는, 그저 별빛이 환한 거리에서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이제야 터진 숨을 들이켰다.


 

*

드물게 짧은 커트 머리를 한 진 녹빛 머리의 여인.

루시아와 마찬가지로 무감각한 얼굴의 그녀는 최연소 소드 마스터, 일리샤 베르테였다.

물론 그 타이틀은 이제 바뀌긴 했지만, 그녀가 제국에 오자 특별 시연 요청을 한 기사들이었다.

일부러 그것을 요청한 것은, 그녀가 가진 페렌델의 전통이자, 독특한 쌍검을 활용한 검무가 기사들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오, 최연소 소드 마스터. 일리샤 님 오셨군요.”

시연 요청 대표, 황의 기사단장 아샨.

평소 소규모 단원들을 이끄는 그는 굉장히 고지식하며, 보수적인 태도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상하게도 꽤 사교적인 그였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겸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자, 그 모습에 기사들의 작은 탄성이 이어졌다.

역시 그녀가 인지도가 있는 건, 그 겸허한 태도 때문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훈훈한 분위기 속에 갑자기 번쩍 든 손.


“단장님! 정정하셔야겠는데요? 흑의 단장 루시아 님이 얼마 전, 최연소 타이틀을 다시 따셨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아샨은 그 익숙한 건방진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자랑거리이자, 황의 기사단의 문제아.

그의 딸, 레비 슈크란이었다.


“……하하, 어디 개가 짖나 봅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이리로 오시죠. 일리샤 님.”

그는 끊길 것 같은 이성을 겨우 붙잡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부단장을 향해 딸의 입을 막으라 눈짓했다.

그렇게 포박당한 레비 슈크란.

그녀의 입까지 천으로 묶이자, 드디어 안심한 아샨이 만족한 듯 미소지었다.


‘이번만 참는다……! 다음 최연소. 그 타이틀은 우리 딸이 차지해야 해. 그래야 우리 가문의 입지와 체면이 제대로 서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보수적인 그가 이 자리에서 딸을 내치지 않은 건, 이 시연이 딸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아닌, 욕심에서였다.

이제 시작된 시연.

-와아아아!

그녀가 등 뒤로 꺼낸 휘어진 쌍검에 희미한 붉은 검기를 드러내자, 기사들의 큰 환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으읍, 퉤퉤. 아아, 우리 흑의 단장님은 저거보다 훨씬 두껍고 새빨간데! 다들 바보 아냐? 대체 왜 더 좋은 표본을 그냥 두고만 있는 거야? 단장님! 시연 신청은 루시아 단장님께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바른말이지만, 틀린 말이다.

루시아가 그런 시연을 받아들일 리도 없거니와, 자존심에라도 그걸 부탁할 귀족 출신의 단장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이게 무슨 무례냐! 제발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괜찮습니다. 저 역시 그녀의 검무를 보고 싶은 사람 중 하나니까요.”

그녀는 차분히 망나니의 말에 응했다.

그 넓은 마음에 아샨이 깊이 감동할 차, 그 틈을 노린 레비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눈을 반짝였다.


“하하, 그렇죠? 대단한 소문 들었죠? 맞죠?”

레비의 광기 어린 두 눈은, 마치 다 관두고 덕질이나 같이하자는 느낌이었다.

그에 눈이 돌아간 아샨.

그는 가늘게 떨리는 입꼬리를 겨우 들며 말했다.


“……일리샤 님 죄송합니다. 시연을 조금 미뤄도 되겠습니까.”

“아……. 네. 어차피 시간이 많으니, 그렇게 하시죠.”

그렇게 딸의 얼굴을 잡은 황의 단장.


“……아부지?”

“이 녀석을 처넣어. 당장 구금해!!!!”

그는 마치 밥상머리 뒤집기처럼 흥분하며, 딸의 볼을 잡고 마구 늘리기 시작했다.


“으에에에! 샤시룰 마란그 뿌니라겨! 그니끄 나 저배 시켜 다라고! 마할 아브지!!” (사실을 말한 거뿐이라고! 그러니까 나 흑의 기사단 넣어 달라고! 망할 아버지!)

그 역대급 난리를 보고 있는 왕녀와 아이렌 황태자.

시연 소식에 구경 온 둘은, 각자 다른 시선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았다.


“제국에 기사들 수준이 이 정도라니. 실망이네요.”

그래도 한때 가까웠던 사이라 그런지, 아이렌 황태자를 대하는 그녀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이에 기분이 상할 수 있는 황태자는 오히려 상큼하게 웃었다.


“유독 자유로운 사람이 몇몇 있지. 그들을 존중하는 게 좋을 거야. 또 감옥 구경하고 싶지 않다면. 푸큭……. 푸하하하!”

“…….”

황태자의 터진 웃음에 그녀는 어쩐지 지하의 꿉꿉한 냄새가 아직도 몸에 배겨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괜히 일리샤를 두고 리온과 다니다, 흑의 기사단 무리에 이끌려 간 그녀는 3층이 넘는 제국의 지하 감옥 구경을 샅샅이 하고 온 것이었다.

그녀가 예쁜 얼굴을 구기자, 아이렌은 겨우 웃음을 멈추고 목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근데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 폐하께서도 보셨어?”

“호호, 아뇨. 불쌍한 연기를 좀 해야 해서……. 그런데 오늘은 좀 부유해 보여야 할 일이 있거든요. 아시죠? 그러니까 도움 좀 주시죠? 그 변치 않는 마음. 언제나 응원한다니까요.”

어쩌면 이것이 그녀가 그 앞에서 속내를 숨기지 않는 이유였다.

제멋대로인 성향의 둘은 혼담이 오갔을 때부터 서로를 알아봤고, 언젠가 서로가 원하는 짝을 찾아가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그런데,


“난 못 해주겠는데, 응원.”

“……!!”

‘뭐, 뭐야. 이 와중에 잘생겨서는…….’

그의 마주친 진중한 얼굴에 그녀의 뺨이 달아올랐다.


“이, 이제 와 미련이 생겼다 해도……!”

“무슨 미련?”

그녀의 말에 그의 재수 없게 휘어진 눈썹과 비웃는 입가였다.


“뭐야! 그럼 무슨 뜻이에요?!”

자존심 상한 왕녀에게 바싹 다가온, 아이렌 황태자.

작은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는 괜히 움츠린 왕녀에게 그 빛나는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널 못 믿겠거든. 이번 기회에 얻어갈 그 혼담. 그걸 억지로 받아내는 방법이 루시아를 괴롭히는 방법이라면, 조심해. 난 경고했어.”

“……!”

처음이었다.

무슨 일 있어도 여유롭게 웃어넘기던 그의 진짜 모습이 이것이었을까?

정말로 무슨 짓이든 다 할 것 같은 냉정한 모습.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던 왕녀는 속이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강한 걸 빼면 남는 게 없는 여자를 대체 왜 이렇게들 좋아하는 거야?’

처음엔 소드 마스터를 보유하기 위한 전략인가 싶다가도, 정말 진심인 두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않은 그녀.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오늘 있을 중대한 일을 그르치지 않게 커다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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