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너도 똑같잖아
(82/90)
82화. 너도 똑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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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너도 똑같잖아
2023.05.14.
훈련소 숙소.
루시아는 언제나처럼 퇴근길에 니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모녀를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잘 있었니? 불편한 건 없었고?”
“네! 루시아 님. 내내 도와주는 분이 계셔서 어색했지만, 정말 좋으신 분이었어요.”
이제 칙칙하고 누른 때가 묻은 앞치마 대신, 황궁에서 나온 하녀들로 인해 여느 귀족 영애처럼 꾸민 이소벨이었다.
“그렇구나. 심심하진 않았니?”
“심심할 틈이 없었어요. 여긴 평생 보지 못한 장난감도 많고, 옷들도……. 니아는 참 복이 많은 아이예요.”
아이는 이제 니아를 애니라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루시아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당분간 숨겨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는 알아들었다.
아기를 몰래 입양하는 가정처럼 친딸로 속이는 어른의 비겁한 사정 정도가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보통 체면을 생각하는 귀족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건 좋은 곳에 입양된 줄 알았다가 자신처럼 하인이 되어버리는 것보단 나았다.
“그런가……. 근데 이소벨, 어디 아프니?”
“아! 아뇨. 그냥 너무 좋아서…….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루시아가 묘하게 초췌한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리니, 깜짝 놀란 이소벨이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 보면 니아도 이곳에 처음 온 날 빼고는 꽤 오랫동안 쉽게 잠들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역시 아이들은 낯선 곳이 힘든 모양이었다.
“……앞으로 더 고생일 텐데, 큰일이네.”
루시아가 걱정하자,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니아가 이소벨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언니야, 갠챠나?”
“……응,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쩐지 씁쓸한 대답에 니아는 이소벨에게 안겨 얼굴을 비볐다.
그러자 그 작은 온기에 아이는 그제야 조금 웃어 보였다.
.
.
.
루시아와 니아의 침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
오늘따라 그 바람 소리 때문에 잠이 깊게 들지 못했는지, 아이는 작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루시아는 그런 아이를 조금 지켜보다, 작게 속삭였다.
“니아? 잠이 오지 않니?”
엄마의 말에 아이는 머뭇거리다,
“……우웅. 이소벨 언니눈, 분명 무서울 고야.”
“그럼 어떻게 하고 싶니? 같이 자기엔 좁을 것 같은데.”
아이는 저녁에 나눴던 말이 역시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마음을 이해하겠지.
“구니깐, 부탁이 이쎠여.”
“응?”
“……니아가 같이 자고 시퍼여. 같이 자면 따뜻햬.”
“……아, 그렇지.”
최근 조금 알 수 없었던 아이는 역시 여전했다.
이렇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남을 걱정하는 5살의 아이가 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루시아는 어쩐지 내키진 않지만, 결국 그런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랜턴을 들었다.
그리고 이소벨의 방 앞까지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혹여 이소벨이 자고 있을까 조용히 문을 열었으나, 역시 공녀는 조금 불편한 얼굴로 세찬 바람이 이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아이가 달려가 안겼다.
“어? 어? 애니? 아, 아니. 니아?”
“우웅. 가치 쟈.”
“……아.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고마워. 마음 써줘서. 늦은 밤에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루시아 님.”
잔뜩 미안해하는 아이와 눈을 맞춘 루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늘 곁에서 자던 아이의 온기를 나눠 가지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저 고생한 티가 역력한 아이를 두고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겠지.
루시아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방안에 남은 아이들은 작은 침대에 자연스레 함께 누웠다.
“오랜만이네. 누구랑 같이 자는 거.”
“이소벨 언니야, 아직도 무셔?”
“응, 아니. 잘 모르겠어. 그냥……. 어서 자자.”
니아를 품에 안은 아이는 알 수 없는 얼굴로 아까 보던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런 언니를 빤히 보다, 잘 시간이 한참 지난 아이의 무거운 눈꺼풀이 금세 떨어지고 말았다.
*
연회 준비.
“단장님, 연회장에서 쓸 가면을 받아왔습니다.”
“그래. 저기 걸어 놔.”
베를은 루시아 뒤에 있는 옷걸이에 가면을 조심히 걸어두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단원들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와, 엄청 화려하네. 대장에게 저걸 줄 정도면 대체 고위 귀족들은 뭘 쓰는 거야? 집 한 채라도 얼굴에 쓰고 다니려나?”
엘다리온의 독수리를 상징하는 화려한 가면에 대한 길리의 농담이었다.
평화 회담이 열리기 전날, 모두 모인 사절단과 함께 각국을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인사를 나누는 만찬 연회.
그 행사는 회담의 특성상, 차별 없는 평화를 상징하는 의례였다.
“아하하, 그러게요. 허울만 좋지. 위로 높으신 분들은 저거보다 더 화려한 가면을 쓰시겠죠.”
“맞아, 그러니까 말이야. 저 이상 나오려면 지난번 소풍에 쓴 인형탈을 쓰고 나와야 한다고?”
“크크큭!!!”
버논과 길리는 루시아의 썩은 표정에도 속없이 낄낄거렸다.
하지만 그녀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얼마 전 공국의 만찬에서도 그 화려한 드레스에 화장, 식사하는 시간보다 꾸미는 시간이 더 많이 드는 비효율적인 일은 정말로 싫었기 때문이다.
‘또 그 짓을 해야 하다니.’
그런 단장의 분위기를 보던 베를이 단원들을 만류했다.
“그만하시죠. 총사령관님 허리가 안 좋으셔서 단장님께서 대신해야 하는 일에 너무들 하시는군요.”
“예? 소드 마스터님께서 허리가 안 좋다니요? 그런 건 얼마든지…….”
베를은 버논의 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헬버트 총사령관님께서 신관이라면 끔찍이도 싫어하시니 어쩔 수 없지요.”
그랬다.
제국 제일의 기사 헬버트가 빠진다면, 그를 대신할 기사는 루시아.
어지간하면 헬버트가 빠질 일이 없어 이런 일이 많지는 않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자신의 딸로 인해 허리가 다쳤으니, 그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는 법.
그렇게 떠드는 단원들을 뒤로하고 보고서를 완성한 루시아는 이제 군복 재킷을 두르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럼 보고서를 올리고 오지.”
그녀의 짤막한 말에 충성스러운 부단장이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장님께서 직접 가셔야 합니까? 제가 대신 가면 안 되는 일입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루시아는 재상에게 전할 서류의 첫 장을 들어 보였다.
황궁의 마크가 금실로 수놓아져 있는 서류.
그것은 아르키스 공국 적통에 대한 정보로, 국가적 수준의 기밀 사항이 담겨 아무나 손대지 못하는 안보 서류였다.
“아, 그렇군요. 그럼 다녀오십시오. 단장님.”
그렇게 베를의 아쉬운 인사를 끝으로 문을 여니,
“루시아 단장님. 어디 가십니까?”
“……?”
기사단실에서 한 발짝 떼기도 전에 마주친 누군가.
그것은 우연이 아닌, 마치 한참 기다렸다는 듯 서 있던 리온이었다.
그런 그를 루시아는 빤히 쳐다보았다.
그 의심의 눈초리에 등 뒤에서 땀이 흐를 것같이 잔뜩 초조해진 리온.
이럴 때면 그는 본능처럼 자신의 미모를 사용했다.
마치 초원에 자유롭게 풀어진 흰 사슴처럼 천연덕스러운 조용한 미소.
“아, 여기서 보는 하늘이 예뻐서 말입니다.”
“……?”
요즘 음악을 가르치더니 감성적이 됐나?
어디서든 똑같은 하늘을 굳이 이곳에서 살피다니, 그의 이상한 취미에 루시아는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군요. 그럼. 여유를 잘 즐기시길.”
“저! 어, 어디 가십니까?”
루시아가 발걸음을 옮기니, 그가 급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에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의 앞에 서류를 들어 보였다.
“아……. 안보 보고서군요. 그럼 재상님께 가시는 겁니까?”
“네. 그럼 이만.”
그제야 그의 걸음이 느려지고 바쁜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리온.
그렇게 그 자리에 남은 그는 굳은 얼굴로 주머니에서 몰래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마도구였던지, 그가 마력을 담아 구슬을 두드리자 색이 변했고, 색이 변하자 이내 그곳에 뭔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광!!
리온을 뒤로하고 빠르게 걸어가던 루시아의 귀에 폭발음이 들렸다.
‘뭐지?’
어차피 가는 길이라 확인할 겸 소리의 진원지로 가니, 그곳엔 아이렌 황태자와 함께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있었다.
“여어, 루시아 단장.”
마치 이곳으로 올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롭게 손을 흔드는 아이렌 황태자.
“전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루시아가 주변을 살피니, 황궁의 큰 분수대 귀퉁이가 부서져 발밑에 물난리가 나고 있었다.
“아아, 회담이 열리기 전에 분수대를 교체하려고 말이야.”
“어째서 물을 안 빼고 터트렸습니까?”
바닥을 보던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물난리로 인해 바닥이 진흙탕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이왕 바닥 청소도 하고 그러라고 그랬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좀 지나가겠습니다.”
그녀는 신발이 엉망이 되는 건 싫었지만, 재상의 집무실로 가려면 사절단이 머무는 곳을 통해서 가는 것이 빠르기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황태자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뭐!? 이렇게 진창인데 지나가겠다고?”
“예. 군화이니까 괜찮습니다.”
그에 잔뜩 흔들리는 동공.
그리고 뭔가 시간에 쫓기는지 시계탑을 향한 눈짓.
그는 그녀가 한 걸음이라도 걸을 때면, 갑자기 긴 팔을 허공에 휘적거리며 가는 길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에 잔뜩 귀찮은 얼굴로 루시아가 노려보자, 이에 황태자는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운동. 저번에 건강을 지키려면 운동을 하라고 그대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지? 그랬지? 어? 이렇게 하면 되나? 어?”
“…….”
더 격한 몸짓.
이에 뭔가 수상함을 느낀 루시아는 돌아가는 척하며, 교묘하게 그를 피해 몸을 날려 가로질렀다.
그러자, 그의 간절한 외침.
“아, 루시아아아! 이 길은 안 돼!”
‘……대체 이 앞에 뭐가 있길래 저러지?’
루시아는 재빨리 사절단이 있는 임시 거처로 향했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걸음이 멈춰졌다.
그 이유는,
“헉, 헉. 루, 루시아 단장!”
뭔가에 쫓긴 듯 허겁지겁 달려온 카이우스 황제 때문이었다.
‘극도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황제가 저렇게 숨넘어가는 소리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루시아는 어쨌든 우연히 만나게 된 황제 앞에 예를 취했다.
“흑의 기사단 단장, 루시아. 폐하를 뵙…….”
“아니, 아닐세! 인사는 됐네. 내가 헉헉, 지금 숨이. 숨이! 억!!”
“폐하……!?”
루시아는 결국 제 앞에 쓰러지는 그를 받아 들었다.
그 난리를 멀리서 지켜보는 두 남자, 리온과 아이렌.
곧 승하할 것 같은 황제가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실눈을 뜨자, 눈을 마주친 그들은 작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
.
.
황궁 카이우스 황제의 침전.
두 남자가 화려한 침대에 애처롭게 눈을 감은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눈뜨시지요. 폐하.”
그러자, 아까처럼 눈썹을 꿈틀대며 실눈을 뜨는 황제.
“갔나?”
“예, 아버님.”
그러자 황제는 언제 아팠냐는 듯, 벌떡 이불을 차고 일어나 투덜거렸다.
“하! 하필 남편이 카일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남편이라는 말에 묘하게 불편한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는 두 남자.
그중 한 남자는, 답답한 한숨을 잠깐 쉬고 제 속을 털어놓았다.
“폐하,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어서 만나게 해주심이…….”
그러자, 그의 말에 눈을 희번덕거리는 부자.
“리온 단장! 자넨 속도 없나!? 아이 아버지가 오라고 하면 어떡할 거야!”
“미쳤어? 얼씨구나 하고 내놓게?!”
아이렌 황태자도, 황제도.
소리를 지를 정도로 리온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렇다 해도 리온의 입장에선 사실을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던 아이에게 온전한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리온에게 좋아하는 마음이란, 그것이 온전히 집착과 질투로만 쌓여왔다면 오히려 그들 말처럼 진짜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루시아는 그 이전에 고마운 사람이었다.
“아버님. 그런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5년 전 전시에 청혼까지 할 정도면 둘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고, 아이도 딱 5살이지. 게다가 머리카락도 검은색. 그럼 확률이 제법 높은 것 아닌가? 내 말이 틀렸나?”
황제의 말에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큰일이야. 이렇게 애까지 있는데 그 아버지가 이제 어엿한 국왕이니…….”
“하아…….”
“하아…….”
오늘 극적으로 의지를 합한 그들의 상심은 깊어만 갔다.
*
공녀가 온 지 3일 차.
오늘도 두 아이는 같은 침대에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 아이가 일어나, 저보다 작은 아이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어, 숙소의 거실로 향했다.
많은 장작으로 데워진 거실은 따뜻했지만, 아이가 약간의 창문을 열자 찬기가 금세 스몄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날아든 검은 새 한 마리.
아이는 눈이 달리지 않은 기이한 새의 다리에 묶인 작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떨리는 손으로 집고, 재빨리 읽고는 곧 장작으로 던졌다.
하지만,
-툭.
미처 닫지 못했던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와 불씨가 붙은 편지가 거실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또 날리고 날려, 거실에 나타난 조그마한 아이의 발밑에서 멈췄다.
“……웅? 이고 모야? 가짜……. 공……. 녀? 읍!”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는데, 이소벨은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가 아이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하지 못해? 어서 이리 내!”
“……?”
이소벨은 주위를 살피며 그 편지를 난로에 다시 던지고, 얼른 니아의 작은 손을 거칠게 부여잡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니아, 오늘 일. 엄마에게 절대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뭔가에 쫓기듯, 불안한 아이의 얼굴.
니아가 아무리 순해 빠져도 이 정도면 의문이 생길 만했다.
“……언니야, 공녀 가쨔야?”
“……!”
이소벨은 니아의 말에 작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자, 아이는 되물었다.
“언니야, 가쨔……야? 거딧말해쎠……?”
아무런 고생도 느껴지지 않는 티 없이 맑은 금안.
이소벨은 그 빛에 남겨진 어둠이 그림자가 되어 진득한 분노를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래! 좋은 기회가 와서 거짓말 좀 했어. 그게 뭐? 네가 알아? 이렇게 좋은 집에, 예쁜 옷에, 귀족 친구에. 매일 편하게 사는 애가 뭘 알아!?”
소녀의 거친 속사포에 니아의 작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뭔진 알 수 없지만, 그 얌전하던 언니가 화를 내고 있었다.
“……니아 미얀. ……군데 거딧먈하묜 엄마가…….”
아이는 화난 언니의 눈빛을 피해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머리맡에 들리는 바람 빠진 소리.
“야, 너도 거짓말하는데 왜 난 못해?”
“……!”
깜짝 놀라 고개 들어 마주친 이소벨의 얼굴.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시릴 정도로 차가운 눈빛은,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 보육원 출신을 감추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닌데. 그 정도면 운이 좋은 거지. 이렇게 네 거짓말도 내가 잘 감춰주잖아? 너도 배려 좀 해.”
생경한 무서운 얼굴에 협박까지.
그러나 지금 아이의 머릿속엔 공녀를 찾기 위해 미아와 함께 열심히 찾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일은 자신을 데려다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니아 갠챠나. 말해도 대. 엄마가 곤랸한 건 시르니까…….”
물론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것, 보육원에 다시 가야 하는 것.
그것들은 정말로 끔찍하게 싫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엄마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아이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억지로 참으며 이소벨의 시린 동공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입 다물어. 누가 네 엄마한테 말한대? 그 사실을 숨기려 하는 주변에 말한다는 거야. 멍청아. 과연 그렇게 되면 누가 더 네 엄마를 곤란하게 할까?”
그 말을 들은 니아는 누군가 제 입을 틀어막은 것처럼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 떠오르는 건,
‘……미아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