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심사 합격 (5/70)


심사 합격
2023.04.07.


회귀 첫날을 보내고 아침 일찍 용산역에 도착한 나는, 과거 전자상가들이 들어서 있던 자리에 세워진 높다란 건물을 올려다봤다.

국제 플레이어 협회 대한민국 지부 본청.

통칭 협회라고 불리는 이곳은, 던전을 오가는 플레이어들의 관리 및 심사를 책임지는 곳이었다.
그래, 심사.

성좌와 계약해 플레이어가 됐다고 해서, 누구나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로지 협회에서 주관하는 심사를 통과해, 등급을 부여받은 인원들만이 던전을 오갈 수 있었다.

모두가 전투와 관련된 권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 데다가, 이제 막 플레이어가 된 초짜들은 무기는커녕 제 권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무턱대고 안으로 들여보내 봤자, 던전 초입에 시체만 가득 쌓일 뿐이었다.

띵동-

74번.

건물 안으로 들어와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나는, 전광판에 뜬 번호를 보고선 심사 관련 창구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무슨 업무로 오셨나요?”

“심사 신청이요.”

나는 차례가 오기 전에 미리 작성해 둔 신청서를 건네며, 슬쩍 휴대폰으로 시간을 살폈다.

8시 20분.

보통 당일 오전 9시까지 신청을 받고 마감하는 편이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여유로운 것 같았다.

“네, 이용학 씨?”

“예, 맞습니다.”

“두 달 전부터 짐꾼으로 활동하신 경력이 있으시고, 성좌는…… 비공개이신 건가요?”

난 천천히 신청서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직원을 보고선,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권능도 전부 비공개로 하셨네요. 이러면 나중에 심사를 통과하시더라도, 협회와 제휴를 맺고 있는 길드에서 플레이어님을 스카우트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비공개로 해 주세요.”

직원은 덤덤히 고개를 주억이는 나를 보고선 미묘한 표정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예전에야 심사가 단순히 던전을 오갈 수 있는 자격을 테스트하는 것에 그쳤을지 모르지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지금은 학생들의 입시만큼이나 중요한 관문이었다.

심사에서 얼마나 우수한 성적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이후에 들어갈 수 있는 길드의 수준이 달라졌으니까.

같은 날 비슷한 격의 성좌를 가지고 심사에 통과하더라도, 더 상위의 길드에서 러브콜을 받은 쪽이 훨씬 성장이 빠른 법이었다.

시작부터 지원받는 장비와 함께할 팀원들의 수준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이제 막 플레이어가 된 초짜들이 심사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만, 아직 제 권능조차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새내기들끼리 차이가 나 봐야 얼마나 나겠는가.

그래서 각 길드에서 나온 스카우터들이 편히 유망주들을 눈여겨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신청서에 쓰인 성좌와 권능란이었다.

당장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일지라도, 결국 더 격 높은 성좌와 계약한 쪽이 더욱 강해지게 돼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보통 자신 있는 사람들은 성좌와 권능란을 당당하게 채워 넣는 편이었다.

나처럼 비공개로 제출하는 쪽은, 변변찮은 위인급 성좌들과 계약한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길드에서 잘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신청 완료되셨고요, 10시까지 저 뒤편에 보이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셔서 기다리고 계시면 됩니다. 꼭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랄게요.”

“네, 고생하세요.”

이만 접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곧장 대기실 앞으로 향했다.

길드가 있으면 같은 소속끼리 팀을 이루어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 혼자 활동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또 그러다 보면 티를 내고 싶지 않아도, 언젠가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삐져나오는 상황이 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스카우트 받을 일이 없다면,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는가.

끼익-

“참가자분이신가요?”

“예, 이용학입니다.”

“이용학 씨…… 아, 네. 방금 신청하셨네요. 아무 빈자리에 앉으셔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 나는, 입구 앞에 서 있던 직원의 안내에 따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와, 저기 봐. 도대체 스카우터가 몇 명이 온 거야? 보통 많아야 세 길드 정도 온다고 들었는데.”

10시까지 적당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뒤적이던 나는, 점차 소란스러워지는 주변에 고개를 들었다.

슬슬 심사 시작을 앞두고, 대기실 위쪽의 유리창 너머로 스카우터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저, 저 사람 한오성 아니야? 레비아탄 길드장이 직접 왔다고?”

“혜성에 불사조까지…… 오늘 대체 누가 심사를 보러 왔기에 3대 길드가 전부 모인 거야?”

혜성, 불사조, 레비아탄.

보통 어지간한 성좌를 둔 플레이어가 나오지 않는 이상 스카우터를 보내지도 않는 대한민국 3대 길드의 등장에, 대기실이 술렁였다.

그것도 보통 당일에 시간이 남는 팀장이나 부팀장이 참석하는 것과 달리, 죄다 간부진 이상의 중역들이 자리에 나와 있었다.

심지어 전 세계 17위, 대한민국에서는 3위를 달리고 있는 최고위 랭커인 레비아탄의 길드장이 직접 스카우터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뭐 주신급 성좌라도 한 명 나온 거 아니야?”

“주신급? 에이, 설마…….”

나는 모두가 이 소란의 주인공을 찾으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홀로 앞자리에서 엎드려 졸고 있는 남자를 살폈다.

서은후.

지금 이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3대 길드는 물론 그 한오성까지 직접 움직이게 만든 역대급 유망주.

자그마치 주신급보다 한 단계 위급으로 치는 창조신급 성좌인 ‘태양신 라’와 계약해 플레이어가 된 남자.

“으음…… 아! 깜빡 졸았나? 갑자기 사람이 되게 많아졌네. 벌써 시작한 건 아니겠지?”

또 이날 불사조 길드에 가입해, 머잖아 벌어질 참변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목숨을 다하는 비운의 사내였다.

짝짝-

“다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곧 심사를 시작할 예정이오니, 참가자분들께선 감독관님들의 안내에 따라 시험장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막 잠에서 깨 맹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은후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시간이 됐는지 대기실 안쪽의 철문을 열어젖히는 직원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가자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전 금일 심사를 맡은 박광식이라고 합니다.”

곧 일렬로 철문을 지나 시험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후덕한 인상의 심사관 앞에 섰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혹시나 모르시는 분이 계실 수 있으니, 심사에 앞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시험장 가운데에 있는 케이지를 가리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해 참가자가 홀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되는지, 미리 던전에서 잡아 온 개체들을 풀어 시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자, 그럼 가장 앞에 계신 분부터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아, 네!”

나는 가장 먼저 케이지에 오르는 서은후를 보며,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창에 가까이 붙는 스카우터들을 바라봤다.

시설이 방음이 잘돼 있어 얘기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서로 얼굴을 붉히며 견제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만큼 서은후가 먹음직스러운 유망주라는 거겠지.

크그긍-

곧 케이지 반대편에 있던 창살이 위로 오르며, 그 안쪽에 있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케르륵…….

불에 탄 듯 새카만 피부에 뻘건 눈동자.

뾰족하게 솟은 귀에 갈고리처럼 끝이 휘어진 꼬리.

어린아이만 한 체구에 제법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임프.

흔히 소악마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요정들은 대부분의 던전에서 입구 근처를 지키고 있으니만큼, 초짜 플레이어들의 자격을 시험하는 데 아주 제격인 놈이었다.

“저걸 잡으면 되는 거죠?”

“예. 하지만 저래 보여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작긴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

화륵-

-캬, 캬아아아악!

“끝난 거 같은데, 이제 그만 내려가도 될까요?”

“……어? 예, 예예! 통과하셨습니다. 그, 그럼 잠시만 다른 참가자분들의 심사가 다 끝날 때까지 아무 데서나 기다려 주시면…….”

덜컹-

박광식은 가볍게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 한순간에 임프를 불살라 버린 서은후를 보며,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와, 뭐야 방금? 무슨 일어난 거야?”

“주신급 성좌인가? 부럽다. 저래서 3대 길드가 다 모인 거구나.”

그 압도적인 모습에 주변에서 연신 감탄이 터져 나왔다.

놀란 눈으로 오늘의 주인공을 살피는 것은 비단 참가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그새 휴대폰을 꺼내든 스카우터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어딘가로 바삐 연락을 걸고 있었다.

“탈락입니다.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도전해 주십시오. 다음!”

모두의 관심이 서은후에게 몰린 사이, 어느덧 심사는 쭉쭉 진행되어 내 차례까지 다가왔다.

크그그긍-

무관심 속에 케이지 안으로 올라선 나는, 마찬가지로 철창을 나와 마주한 임프를 보고선 천천히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까지 조용히 심사를 치르는 건 첫 번째 회차 이후로 처음이었다.

보잘것없는 위인급 성좌로 시작했던 그때와는 달리, 두 번째부턴 항상 못해도 신화급 성좌를 두고 시작했었으니까.

‘태양신 라’만큼은 아니지만, 신화급 성좌만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대박이었다.

그때마다 서은후를 놓친 길드들은 어떻게든 나만큼이라도 모셔 가려고 다들 안달이었다.

심지어 개중 몇 회차들은 도리어 그보다 더 대단한 성좌와 계약해, 서은후를 제치고 더 높은 조건을 제시받은 적도 있었다.

-키엑…….

쿵-

“통과하셨습니다!”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아슬아슬한 합격점을 연기하고 케이지에서 내려온 나는, 합격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오히려 지금껏 그 어떤 회차보다 강력한 성좌를 두고 시작한 때에, 이런 무관심을 받다니.

만일 비공개로 하지 않고 솔직하게 적어 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거의 마감 직전에 신청을 끝냈음에도, 바깥에 기자들이 쫙 깔려선 어떻게든 인터뷰라도 한마디 따 보려고 난리도 아니었으리라.

당장 전 세계에서 1등을 차지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성좌가 오딘인데, 수르트는 그 북유럽 신화를 완전히 멸망시킨 악신이니 오죽하겠는가.

국영 3사는 물론 BBC고 뉴욕타임스고, 세계적인 언론사에서 모두 대서특필을 했겠지.

물론 그렇게 되면 내가 뭘 하든 방송국 카메라가 따라다니게 될 테니, 비공개로 제출해 버렸지만 말이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탈락하신 분들은 아쉽지만, 기회는 언제든지 있으니 다음에 다시 도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합격자분들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잡생각을 하는 사이 모두 끝나 버린 심사를 보며, 합격자들과 함께 감독관을 따라 스카우터들이 모여 있는 2층으로 향했다.

끼이익-

이윽고 계단을 모두 올라 잔뜩 분위기를 잡고 서 있는 양반들을 마주한 나는, 그 사이로 시커먼 대검을 등에 멘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김영식.’

동양의 사방신 중 하나인 주작을 성좌로 두고 있는 랭커이자, 불사조 길드의 부길드장.

그는 절대 다른 길드에게 서은후를 내주지 않겠다는 듯, 처음 참가자들이 대기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 결연한 표정으로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그렇게 바라던 유망주를 상대로, 머잖아 제 욕심에 못 이겨 끔찍한 사건을 벌이게 될 터였다.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녀석이 일으킬 사고로 인해, 내 제자가 될 이지은이 죽게 된다.’

그렇게는 안 되지.

‘아쉽지만 이번엔 당신 마음대로 안 될 거야.’

나는 그사이 성공적으로 서은후의 영입을 마치고 돌아서는 녀석의 등을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내 평온한 은퇴 라이프를 위해서라도, 제자 될 사람이 위험에 빠지게 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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