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웃어. 나의 베르체리아. 이 어미가 숨 쉬는 한, 네게는 어둠의 탑과 마른 빵이 함께할 테니. 베르체리아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이자, 접촉이 가능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학대받은 여신, 힘을 잃은 여신. 인간을 배신하고 떠난 여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녀여야 한다고. 저주의 탑, 그곳을 내버리고 그를 만나기 전까지.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 날 도와줘, 라크라한.” * 베르체리아는 무엇이 되었든 지금 이후의 삶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확신했다. 어떤 의미에서의 끝. 힘이 폭주하고 난 다음에 그녀는 그저 잠시 신의 힘을 담았던 미친 사람으로 남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것이 더 편할지도.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그녀의 허리에 낯선 체온이 스며들었다. “……!” 아득한 곳으로 떨어졌던 정신이 잠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왔다. “베르체리아.” 그의 입에서 이름이 불린 순간, 탁하게 풀려 있었던 베르체리아의 눈빛이 깨끗해졌다. 라크라한의 힘에 의해 고개가 들리고 그녀의 시야에 진중한 사내의 눈빛이 빼곡히 채워졌다. “포기하지 마.” 라크라한은 속삭이듯 말하고 벌어져 있던 베르체리아의 입술 사이에 자신의 입술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