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후보... 그러니까 최종심에요?”
“네!”
“아니, 그 전에... 무슨 최종심이라고 하셨죠?”
방금 들었던 것 같긴 한데 확인이 필요했다.
“무커 국제상이요-!”
그 말과 동시에, 엄청난 시선을 느낀 무호와 은세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호를 축하하기 위해 방금 막 도착해 이 엄청난 소식을 들은 황지오 실장도 두 눈을 그저 끔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뭐...?”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그가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후볐다. 그러나, 아무리 되새겨 보아도 그가 들은 건 ‘무커 국제상’ 이 다섯 글자가 분명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무커 국제상이라고 하지 않았어?”
“에이, 잘못 들은 거 아냐?”
“아냐, 분명히 무커라고 했다고!”
웅성웅성. 옥신각신대는 스태프들과 직원들을 뚫고 황지오가 성큼성큼 무호와 은세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나마 독자들이 철수한 상황이라 다행이었다. 독자들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아수라장이 되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무호 작가님이 무커 국제상 최종심에 올랐다는... 그런 이야기가 맞는거지?”
감격한 황지오가 들고 있던 축하 꽃다발을 들고 무호를 향해 돌진했다.
“작가님, 작가님! 우리 작가님!”
“어윽, 실장님...”
이제는 무호보다 키가 작아진 황지오 실장이 감격해 무호를 껴안았다. 이후 무호를 놔주지 않는 황지오 때문에, 은세이가 경악하며 그를 떼어놓았다.
“어우, 누구야! 떨어져요!”
“누군지 알면서 뻔히 그러긴.”
황지오가 은세이를 향해 메롱 혀를 내밀며 무호에게서 떨어졌다.
“다음부터 이러면 작가님은 참아도 내가 가만히 안 있는다.”
“뭐야. 우리 작가님은 가만히 계신데 네가 왜 난리야? 어쨌거나 정말 축하드려요, 작가님!!!”
무호는 갑자기 와락 안긴 그 때문에 방금의 소식도 잊고 얼떨떨하게 옷매무새를 사로잡았다.
“방금 들으셨군요...”
“작가님을 찾아 이리로 걸어오면서 들었습니다. 우하하.”
이제 보니 황지오의 성격이 살짝 유치한 것 같기도 했다. 은세이와 동갑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 어찌되었건, 떠들썩한 셋 덕분에 주변에서 정리를 하던 지원관리부가 조심히 다가와 물었다.
“이사님, 그게 무슨 말이세요?”
“작가님 무슨 일 있으신거에요?”
“다 들었어요. 최종심이라뇨?”
수직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덕분에, 다른 직원들도 은세이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해왔다. 은세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무호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작가님이 말씀해주실거에요.”
휘리릭. 궁금증이 한가득 담긴 눈동자가 무호를 향했다. 자기 자신도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무호가 중얼거렸다.
“...무커 국제상 최종심에 제 작품이 올랐대요.”
“무, 무커 상이요?!”
누군가가 크게 놀라자, 다른 직원이 조용히 하라며 언질을 주었다. 그 둘을 바라보던 은세이가 이내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내일 저녁이면 기사로 날 소식이거든요. 그래서 무호 작가님께 빠르게 알려드리려고 온 거고요.”
“그래서 그렇게 급해보이셨군요.”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해야 할 분은 다름아닌 무호 작가님이니까요.”
무커 상.
‘작가가 거머쥘 수 있는 최고의 영예중 하나.’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무호를 축하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나는 듯 했다.
‘그 무커 상이라니...’
아직 후보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정도였다. 고등학생 때는 한빛 캠프에서도 본선 참가에 큰의의를 두었으며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라간 것에도 큰 의미를 두었다. 그러니, 무커 상에서 무슨 의미든 못 찾겠는가.
“정말 축하드려요, 작가님. 주위가 시끄럽길래 와봤는데 엄청난 소식을 듣게 되었네요.”
주위가 시끄러워 자리를 옮겼던 케이 작가도 다가와 축하를 건네고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무호 작가님, 축하드려요!!!”
말소리, 환호소리와 박수소리가 섞여들었다. 무호보다도 흥분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저들끼리 앞으로의 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도란거림.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상황이었지만 싫지 않다.’
참 재미있는 것이, 이전의 자신 같으면 이렇게 쓸데없고 의미없는 축하는 시끄럽기만 할 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자조했을게 분명한데.
‘지금은 너무나 행복해.’
황지오가 준 꽃다발에서 라일락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이 시끄러운 장소에서, 자신만은 무호를 묵묵히 응원하겠다는 듯 말이다.
***
다음날 저녁 7시 경, 마지막 북콘서트가 끝나갈 때 쯤. 무커 상 후보에 무호의 <인간들의 숲>이 포함되었다는 기사가 영국의 일간지에 실렸다. 당연히 그 소식은 빠르게 한국의 기자들에게까지 도달했으며,
“작가님! 한마디만 해주세요!”
“무커 국제상 후보에 오르신 기분이 어떻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고 계셨나요?”
<삶의 바다>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도 엄청난 흥분 상태로 무호에게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도 아득바득 어떻게든 이 상황을 취재하겠다는 평소의 끈질김 대신, 이 영광스러운 상황을 어떻게든 인터뷰로 남기고 싶어하는 감정이 앞서 드러났다.
따라서 평소라면 몇마디 대답하고 넘어갔을 무호 또한 그들의 모든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려고 애썼다. 기자들이 떠나고 나서 한숨 돌리려던 그때였을까.
팟-!
마침 눈치빠른 <삶의 바다>의 관리 직원들이 한쪽의 대형 텔레비전을 켜 뉴스화면으로 전환했다.
[특종입니다. 한국의, 아니 세계가 인정하는 재능있는 작가인 무호작가에 대한 엄청난 소식입니다. 바로 무커 상 후보에 그의 신작인 <인간들의 숲>이 올랐다는 특종인데요, 이는 한국작가로서 최초의 업적이라는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입벌려 다 같이 뉴스를 바라보던 공 매니지먼트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우, 우와... 뉴스!”
“진짜 축하드려요!”
“어떻게 시간이 딱 맞아서 그런가.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축하받으니까 더 큰일 같고 그러네요.”
작품 <인간들의 숲>이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빼고도, 오늘은 3일간의 북콘서트를 마무리지은 대장정의 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진 사람들 앞이라 약간은 의연해질 수 있었지만, 사실 스스로도 이 상황이 얼떨떨했다. 앞의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무호에 관한 특종을 보도하고 있었다.
[이에 전 세계의 유력지들이 <인간들의 숲>에 대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는데요, 영국의 유력지인 고디언은, <인간들의 숲>에선 ‘책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무호 작가의 힘이 그 어느때보다도 은밀하고 정교하게 작용한다는 극찬을 남겼습니다.]
“기분이 이상하네요...”
“원래 독자들이 매번 해주던 칭찬이잖아요. 그 진가를 이제야 알아본 것 뿐이죠. 세상에는 책이 수도 없이 많으니까요.”
처음 회귀했을 땐 이렇게 높이 올라올 생각도 없었다. 그저 무호라는 그 이름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 했을 뿐.
‘그리고, 떳떳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가 진짜 가지고 있던 속내는... 과거처럼 잊혀지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원히 기억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나, 지금 생각보다 빨리 해냈다. 몇십년이고 책을 써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거장들도 쉽게 오르기 힘든 그 계단을 밟게 되었으니까. 무호가 중얼거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내 옆에 서 있던 은세이가 걱정 말라는 듯 자신의 허리에 왼손을 얹었다.
“하던대로 하시면 돼요.”
“그러면 될까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곧이어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승오가 도착했고, 이어 신인작가로서 주변에서 많은 축하를 받고 있는 강준과 세린도 윤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윤호 선배! 소식 들었어요. 진짜 축하드려요.”
“야. 넌 어디까지 대단해지려고 하냐?”
샘난다는 듯 다소 거칠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강준이었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윤호를 축하하는 것은 바로 그였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놈이라니까.’
남들과는 다른 발자취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윤호의 옆에 있으니, 스스로도 더욱 고취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강준이었다.
어찌되었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뒷정리가 늦어졌지만 직원들이나 서재 담당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흐음...”
그리고, 시끌벅적한 행사장 한쪽에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던 <삶의 바다> 이사장의 입가에도 웃음이 피어 있었다.
‘이거, 무릎 꿇길 백번 잘했잖아?!’
이곳 삶의 바다가 어쩌면 엄청난 관광지로 추앙받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전 세계적인 천재 작가 무호가, 이곳에서 무커상 후보에 올랐다.
‘그렇다면... 만약 무호 작가가 무커상을 탄다면?’
이 곳은 아마 무호의 팬들, 그리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습작생들의 성지가 되겠지. 그가 좋아 죽겠다는 듯 큭큭 웃었다. 그리고, 이사장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결론이 났다.
아버지와 긴밀한 친분이 있는 그 몇 명을 챙기자고, 다른 이들을 내팽개쳐둔 태도는 멍청한 짓이었다. 그런 건 앞으로도 큰 손실을 불러일으키기 쉬울 것이었다.
‘무호 작가가 맞았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올거라면,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내 쪽이 멍청이였군.’
자신의 독자를 그런 식으로 대했으니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었겠지. 처음에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꿇은 무릎이었지만 이제는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다. 이렇게 되면, 진심으로 무호 작가를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
그날 무호가 직접 만난 사람들 뿐만아니라, 인터넷 기사와 팬카페에서도 무호를 축하하는 물결이 일었다.
[난 이제 모르겠다. 무호가 사람이 맞나?]
[아닌 것 같은데...]
[작가님 축하드려요!!!]
[무호의 팬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왜 내가 다 기쁘지?!??]
[후보 오른 것도 어나더레벨인거야...]
와중에, 사람들의 궁금증은 무호가 지난 2년동안 지냈던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에 대해서로 번졌다.
[대체 지난 2년동안 뭘했길래 이렇게 변한거?]
[글이 엄청 무거워지긴 했어]
[머러미쿠도 재미있었는데...]
[그 무거운 글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것 같다.]
[동감... 독서를 유행으로 만드는 작가가 전 세계에 진짜 몇 명 있을까 말까 한데, 그중 하나가 무호 ㅋㅋ]
덕분에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무호는 그것을 다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작가로서 무호는 독자들의 궁금증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럼 지금까지 들어온 인터뷰들, 날짜 겹치는 것 빼고 전부 다 받아들일까요?”
“네.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그렇게 해주세요.”
공 매니지먼트, 무호의 사무실에서 은세이와 이성혜가 진지한 표정으로 스케줄표를 짜고 있었다.
“아.”
무호가 잠시 손을 뻗었다. 잊고 있던 스케줄이 하나 있었다.
쿡.
곧 무호의 손가락이 커피테이블에 눕혀져 있던 달력의 어느 날을 쿡 찍었다.
“이 날.”
1월 24일.
“그리고 이날이요.”
1월 26일.
“이 날들은 스케줄 빼주셔야 해요.”
24일과 26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던 은세이와 이성혜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날이라면 당연히 빼실 줄 알았어요.”
“... 무엇보다도 의미있고 중요한 날이니까요.”
1월 24일은 강준의 신춘문예 시상 날, 26일은 세린의 시상 날짜였다. 강준과 세린의 새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공 매니지먼트의 사람들이 기꺼이 출격할 예정이었으니까.
“아. 그리고...”
이것도 지금 말해둬야겠지. 무호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작가님들에게 제안받은 프로젝트가 있어서, 여름에 자리를 좀 비우게 될 것 같아요.”
“프로젝트요?”
“네. 제주도에 가서 1-2주 동안 보고 느끼면서 단편 소설을 완성해와야 한 대요. 퇴고는 서울 와서 해도 괜찮지만, 되도록 제주도에서 초고를 완결내려는 그런 프로젝트에요.”
이미 무호의 1년 스케줄을 대충 조정해놓은 은세이가 흠,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력을 넘겼다.
“7월에 북앤컬쳐스랑 본격적으로 <머러미쿠> 유니버스 제작이 시작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해외에 다녀오셔야 할 것 같은데...”
말 그대로 ‘힘들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은세이의 말에 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글을 쓰는 일이니까, 아쉽지만 유니버스 일보다 어쩌면 제주도 일정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은세이가 씩 웃었다. 무호는 한결같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글과 독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다른 것들에 쉽사리 한눈을 팔지를 않았다.
“어쩌면 그렇겠네요.”
무호 또한 이번 무커 국제상 후보에 오른 일로 더욱 확실히 느꼈다.
‘작가의 본업은 글을 쓰는 것.’
잊을 만하면 느끼게 해준다. 내 글을 알아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내가 글을 쓰도록 이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 어떤 작가도 쉽사리 얻을 수 없는 힘과 원동력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