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원래 천재 작가였다-157화 (157/190)

157. 정말 고마운 분이야

“이 분들은 공 매니지먼트 소속 작가들이자 제 동료들이에요.”

윤호만 보고 반갑게 인사하려던 승오와 태진, 그리고 나머지 소속 작가들이 카메라를 보고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저번에 말했던 다큐촬영, 오늘부터 시작이야. 그냥 자연스럽게 있으면 돼.”

“안녕하세요.”

가만히 앉아있던 강준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선배... 자연스럽게 하라잖아.”

옆에 앉아있던 세린이 강준을 다시 끌어당겨 앉혔다, 윤호는 세린을 보고 자연스레 어제의 일을 떠올렸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회의하는 모습 찍으러 오신 건데, 내가 소속 작가들 소개를 부탁했거든.”

“아아...”

진짜 다큐촬영 시작이구나. 서로 눈빛을 교환한 작가들이 윤호의 부탁에 따라 자연스러운 회의 장면을 노출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카메라맨이 던지는 준비된 질문에 대답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다들 카메라가 어색해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다.

윤호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가 의식되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승오와 편안히 작품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으니까.

“그럼 오늘로 이 글 퇴고는 마치는 거야?”

“한 작품에만 올인 하면 시야가 흐려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 새로 쓰는 작품은 가을까지는 완성하려고.”

책상에 있는 퇴고본들을 추린 승오가 윤호를 향해 말했다. 올해, 2017년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총 두명, 승오와 강준이었다. 그 중 소설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승오 뿐이었고.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소설 속에 나타난, 고통을 저장하는 장치를 제각기 들고 다닌다는 설정은 아주 좋아.”

“그치? 설정은 작가님이 너무 촘촘하게 짜지 말라고 하셔서그 정도의 디테일을 넣었는데. 괜찮아?”

“잘 했어. 작가님이랑 잘 작업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 글도 더 이상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없는 것 같고.”

승오 옆의 케이 작가도 진지하게 무호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녀도 매니지먼트에 소속 작가로서 입사 한 후, 승오를 가르치며 자신의 집필을 이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하··· 그럼 이제 본격적인 퇴고만 남은건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 승오의 한숨에 무호가 무언가 생각나 웃었다.

“고등학교 때처럼?”

“응.”

어제의 사진에 있던 과거의 본인처럼 웃는 승오였다. 자신에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하나 있다면, 우정도 그중 하나일 것 같았다.

“다만, 이 소설 속에 나타난 고통저장소에 대한 설정에 인물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봐. 설정을 따로 풀어내는 건 최대한 적게 하고, 철학적 논의를 많이 넣어야 잘 먹힐 것 같아.”

조금 시간이 지나고, 한국 문단에 SF가 대유행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SF에 재능이 있는 작가들이 하나둘 등장하며 그 논의를 확장시킨다.

‘그 사이에 김승오라는 작가가 들어가야 해. 그게 내 목표다.’

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생각 같은데요? 플롯을 분명히 구분해서, 인물들에게 고통에 대한 제각기 다른 사연을 부여하는 걸 더 확실히 해보죠.”

케이 작가가 매니지먼트에 입사한지는 꽤 지났지만, 무호와 이렇게 마주보고 합평을 하게 되니 예전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한빛 캠프에서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는 ‘정윤호 학생’이었던 무호가, 한빛 캠프에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SF장르 수업을 선택해 들었던 일.

‘그곳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쳤던 일이 생각나네.’

처음에 윤호가 물어봤을 땐 가물가물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니 그 장면이 또렷했다.

‘무호 작가는 그때 평온해보였고, 저기 있는 최강준 작가는 그때 캠프 중인지라 긴장을 못 감추는 게 보였지.’

그랬던 학생들이 지금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

‘한국의 문단도 점점 바뀔 때가 된 거야. 젊은 작가들로, 젊게.’

한편 옆에서 습작 노트에 열심히 뭔가를 적던 승오가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것도 참고할게.”

합평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메라맨이 신기하다는 듯 질문했다.

“소속 작가분들은 이런 식으로 무호 작가님의 피드백을 종종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네. 이 분들은 어떻게 말하면... 이미 제가 판단하기에 작가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분들이라,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보면 서로 도움이 되어서요.”

“공 매니지먼트에서 소속 작가를 많이 뽑지 않는 이유가 바로 작가님의 개인적인 관리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나요?”

무호가 고개를 저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해 하신다고 들었는데, 공 매니지먼트는 완벽하지 않아요. 매니지먼트가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 시작한 분들이 모두 하나의 주축이 되어야 그 다음 일이 수월해지니까요.”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로, 기와집 대들보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군.

‘무호 작가가 워낙 빠르게 일을 진행해서 그렇지, 사실 매니지먼트가 창립된지 반년도 안 지난 상태니까.’

카메라맨은 피디의 지시에 따라 무호에게 집중했다가, 잠시 다른 이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최강준 작가는 저번에 그 비평으로 평론 부분 제출하겠다고 한거, 아직 생각의 변화가 없는 거죠?”

“네. 없어요.”

무호의 말에 무언가를 상의하던 강준과 영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준이 비평에 관해서는 계속 확인해봐야겠어.’

과거 강준의 비평 데뷔작이 훨씬 일찍 만들어졌으니, 변심으로 다른 비평을 작성해 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비평도 훌륭할 수 있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을 도전 하는 것 보다, 강준이한테는 지금 확실한 결과가 필요해.’

다행히 백영권이 옆에서 도와주며 계속 살을 붙여가고 있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 같았다.

“아, 그리고...”

밖에서 자꾸 빼꼼대는 무언가에 윤호가 알아채고 들어오라 손짓을 했다.

“?”

누가 또 오나. 카메라맨과 피디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며, 케이크를 든 직원들이 들어왔다.

팡-!

파팡!

아까 화장실에 간다며 사라졌던 태진과 예라도 폭죽을 터트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카메라맨이 흥미로워하며 케이크를 클로즈업했다.

THANK YOU, SERINE!

‘세린아, 고마워?’

아까 그 소속 작가 중 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겨 축하하려는 모양인가. 피디가 만족하는 얼굴로 뒤로 빠졌다. 카메라맨이 열심히 축하 장면을 담았다.

“축하해!”

“작가 오세린의 어린작가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런 이벤트를, 일상과 만남을 카메라에 리얼하게 담는 것이야 말로 그들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이게 다 뭐에요, 진짜...!”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세린이 일어나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축하해. 회의랑 전시회 때문에 제대로 축하를 못 해준 게 걸려서 오늘 다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았거든.”

“....”

세린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무호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아직도 남아있는 감정 때문인지 두근거렸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호 작가님으로서, 같은 작가로서 좋은 거야.’

왠지 모르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념하니 그와의 관계가 더욱 다채롭게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 말할 거 있다고 하셨죠?”

“응.”

생긋 웃은 세린이 모두를 향해 소리친 후 후 하고 촛불을 불었다.

“감사합니다!”

박수소리가 쏟아지고, 세린을 향한 축하가 이어졌다. 분위기가 잦아들고, 잠시 휴식시간. 무호에게 피디가 물었다.

“매니지먼트 분위기가 좋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가족적인 분위기네요.”

카메라를 바라본 무호가 웃었다.

“아무래도 초창기니까요. 가족다운 건 좋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오래 못갈 거라는 걸 알기에 지금은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피디가 이때다 싶어 준비해온 질문을 물었다.

“리더로서 이런 광경을 보면 마음이 어떠세요? 작가님은 아직 굉장히 젊으시고, 또... 앞으로 생각하고 계신 비전이 있으시잖아요.”

“비전이요. 확실히 그렇죠.”

“한걸음 씩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음...”

무호는 잠시 생각했다. 매니지먼트. 작가들을 보호하고 권리를 주고, 지원해 더 좋은 글을 창작할 수 있기 위해서 만든 곳이다.

‘지금 이렇게 소속 작가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 말고도, 동아리와 연계된 매니지먼트 습작교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곳을 보여주면 되겠구나. 무호가 피디를 향해 말했다.

“글 쓰는 친구들이 더 있는데. 보실래요?”

“글 쓰는... 친구들이요?”

“네. 아마 제가 이번 주랑 다음주, 얼굴 비추고 싶으면 회사에 많이들 나오라고 했으니 습작실에 있을 거에요.”

“혹시 소속 작가 분들이 더 계시단 이야기인가요?”

앞서가던 무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소속 작가와는 다르고··· 공 매니지먼트에서 지원하는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두 그룹뿐이고 수도 50명 뿐이지만, 앞으로 지원을 더 늘려갈 거에요.”

“아아, 그런 그룹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지금 그쪽으로 가시는 건가요?”

“네. 이왕 방송이니 다 알려드려야죠.”

예산 때문에 50명이라는 학생에 제한을 둔 것이 아니다. 아직 50명이라는 학생을 하나하나 관리할 인원이 부족해서 그런거지.

‘이번 신춘문예가 지나고 승오와 강준이가 각각 소설과 비평 부문에 당선된다면, 강사를 맡아달라고 해야겠어.’

그렇다면 인원도 더 많이 늘릴 수 있을 테니까. 무호 작가의 조금 뒤에서 걷고 있던 피디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카메라맨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다큐 <리더> 무호편을 촬영하기 전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아무래도 그동안의 <리더> 촬영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까다로운 사람들도 많았어.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이다보니... 시간이 아깝다며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러나, <리더> 팀은 그런 요구들을 하나하나 들어주며 그들을 취재했다. 그런 촬영팀을 보고 무례한 출연자들은 항상  중간이나 마지막에 가서야 사과를 하고는 했고.

‘하지만, 무호 작가의 방송은 손에 꼽게 쉬웠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작가인데다가, 이미 돈도 벌만큼 벌었겠고. 자만심에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것도 아니면, 어린 나이에 대박을 친 이들의 치기가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만나본 출연자들 중 가장 정중했다. 게다가 거만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과시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정말 고마운 분이야.’

오늘 방문한 매니지먼트도 무호위 성격만큼 정갈하고 깔끔했다. 게다가 탐방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고 느끼는 감동도 있었다.

***

“이 친구들이에요.”

“한층을 통째로 사무실, 다른 한층을 통째로 집필실로 쓰고 계신건가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그들이 감탄했다.

“공 매니지먼트의 목적은 작가의 창작환경 보존이고, 그런 의미에서 쾌적한 집필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다양한 집필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커다란 책걸상이 있는 곳도 있었고, 각자 공간이 마련된 칸막이형이나 동그란 원 모양의 합평장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와서 글을 쓰고 있었다.

“이런 지원들은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유지되는건가요?”

“성인 대상인 소속작가 준비반과, 미성년자인 창작반이요. 따로 조건은 없어요. 시험만 통과한다면요.”

“노트북은 지원 받은 건가요?”

“요즘엔 자필투고하는 곳도 별로 없고, 다 노트북으로 하니까요.”

오늘은 창작반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호 작가님?”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무호가 고개를 돌렸다. 웬 고등학생이었다. 방문증을 걸고 있는 걸 보니 창작반 학생인가본데, 무슨 일일까?

“아는 학생이세요?”

고개를 젓는다. 카메라맨은 우선 이 상황을 찍어보기로 한다.

“저한테 물어볼게 있나요?”

“작가님. 저 기억 안 나세요?”

“···?”

무호는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나 되었을까. 잠시 알아내려고 노력하다 고개를 저었다.

‘정말 어디서 봤더라. 본 것 같긴 한데 어디인지 기억이 안···.’

아아. 알겠다. 무호가 미소짓자 학생도 똑같이 미소지었다.

“많이 컸네. 이름은 모르겠지만 얼굴은 알겠어.”

“기억하세요?”

“응. 이름이 뭐지? 예전에 이름을 묻지는 않은 것 같아서.”

“정환이요. 이정환.”

“그래, 정환이.”

예전에, 스무살 때 보육원에서 만났던 아이였다. 머러미쿠를 읽어줄때, 유독 말이 많고 시끄럽고 질문이 많았던 남자애가 있었다.

“니가 정환이였구나.”

그때 책을 읽어준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글 쓰던 노트북을 들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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