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역시 교육이 문제였네.
가장 상석에는 리온미술관의 관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옆을 중심으로 여느때와 같이 관계자들이 앉아있었다.
“무호 작가죠?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온 미술관의 관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귀에 달린 커다란 진주 귀걸이가 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리온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무호 작가가 화가나 건축가가 아니라 소설가라 참 아쉬웠는데,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저도 영광입니다.”
리온 미술관 관장은 공식적인 행사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함께 하는 사적인 식사자리에까지 나오다니 오늘의 만남이 꽤 중요하긴 한가보다.
“무호 작가는··· 센스가 아주 좋으시네요.”
“센스요?”
관장이 무호의 의상을 보고 미소지었다. 어디서 받은건지, 직접 사입은 건지는 몰라도 가격도 가격이지만 브랜드를 보는 센스가 빼어나 보였다.
“아닙니다. 어서 앉으시죠.”
아직 식사가 나오기 전, 무호는 류요한의 옆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관장이 서로를 소개했다.
“류요한 작가, 이쪽은 무호 작가에요.”
“류요한입니다.”
류요한이 고개를 숙였다. 행동은 정중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무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작가님.”
“저도 반가워요.”
아주 미묘한 긴장감을 눈치채지 못한 자라면, 괜찮은 분위기라 느낄 법도 했다. 무호는 내색하지 않고 홀로 조용히 생각했다.
‘역시 표정이 안 좋지.’
자신을 보는 류요한 작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유를 정확히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생각해둔 바는 있었다.
‘작품 컬렉션을 팩스로 보낸 것이 류요한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던 거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를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마··· 컬렉션을 요구했다고 말이지.’
매니지먼트의 대표이기도 하니 더 오해하기 쉬울 것이다. 무호가 말없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와중에, 류요한도 무호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는 아니었다.
‘무호 작가··· 생각보다 더 답 없군.’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쓰고 온 것 같았다. 이런 자리를 많이 다녀보았으니 당연하겠지만, 그건 지금 류요한에게 굳이 좋은 쪽으로 보이지 않았다.
‘역시 허영심이 가득할 줄 알았어.’
매사 그렇게 거만한 태도니 남의 작품따위 함부로 찍어서 달라고 했겠지.
“여러분, 여기 셰프가 한식에 정통합니다. 입맛에 맞으실거에요.”
리온 관장의 말과 함께 식사가 나오기 시작함에도 류요한과 무호의 생각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우선 두 천재 작가의 만남이 이렇게 성사된 것을, 그 만남의 장을 우리 리온이 담당하게 된 점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리온의 관장이 두 작가를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못 맞춰줄 것은 단 하나 없다는 것 처럼 말이다.
“한국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 리온 갤러리인 만큼, 류요한 작가와 무호 작가의 요구를 반영해 전시를 기획할 예정입니다.”
“정확히 언제쯤 전시가 시작되죠?”
앞으로 둥그렇고 오목한 접시가 놓여졌다. 가운데에 담긴 에피타이저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감각적이었다.
“전시 준비만 해도 네달이 걸릴 것 같네요. 겨울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군요.”
류요한이 식사하며 여러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무호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했다.
‘분명 나에게도 질문이 돌아올 테니까.’
예상대로 곧 무호에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먼저 말을 붙인 것은 류요한이었다.
“무호 작가님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려야죠. 제 작품들 중 대부분은 무호 작가님의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니까요.”
“동의는 당연한 일이었어요. 제게도 의미있는 일이니까요.”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요한은 정중했지만 이면에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였다. 그가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이 식사 또한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게 있다면 리온 갤러리와 제가 최대한 성의를 갖춰 맞춰드리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죠.”
“···”
생각은 다 정리했다. 그러니 오해는 풀어야겠지.
“원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독자들이 편안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제가 원하는 것 전부에요.”
“···그러십니까?”
그럴리가 없단 표정의 류요한을 바라보며 무호가 덧붙였다.
“애초에 작가님께서 작품을 보내주신 것에서부터 감동받았으니까요.”
무언가 아구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직원의 실수가 맞았던건가?
“···작품은 제가 보낸 것이 아닙니다.”
류요한의 미간이 좁아졌다.
“제 소속인 루파예트 갤러리에서 한 실수죠.”
“···!”
갤러리의 실수라고?
‘그럴 줄이야.’
이건 처음 알게 된 사항이었다. 처음 듣는다는 듯 놀란 무호의 표정을 읽은 류요한이 물었다.
“···저는 작가님께서 혹시나 부탁한 것이 아닌가 했는데요.”
“저는 먼저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그 무엇도요.”
그렇게 말하는 무호의 눈에는 한치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다.
“···”
일을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류요한이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래도 제가 오해한 모양이네요.”
“류 작가님이 작품을 소중히 생각하시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창조하는 직업이니만큼, 작업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두 작가의 이어지는 대화에, 관장이 가만히 지켜보다 한마디를 얹었다.
“아무래도 갤러리와 매니지먼트를 통해 이야기하다보니 전달이 잘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죠. 오늘을 계기로, 두분이 대화를 많이 하셨으면 하는 것도 주최자로서의 바람입니다.”
리온 갤러리의 관장이 무호에게 안부를 물었다.
“무호 작가님은 또 새 책을 출판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지금 다큐 촬영도 겸하고 계시고요.”
“네. 아무래도 바쁘지만 오늘 약속도 중요하기에 신경써서 왔습니다.”
“···”
류요한이 말없이 자신의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썰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방금의 대화를 보니 오해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람을 의심하는 습관을 고쳐야 하는데···’
믿었던 동기에게 작품 아이디어를 빼앗긴 이후로 그는 변했다. 이전에는 사람을 잘 믿었고, 활발한 성격의 그였다.
‘그러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함께 했던 소중한 동기의 작품도 빼앗을 수 있는 게 인간이라면···’
모든 사람은 이기적일 것이라는 그 편견이 마음 속에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호 작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내가 잘못인건가.’
그는 무호와 관장과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그럼 작가님은 전체적인 전시 환경이 더욱 친밀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네요.”
“네. 다양한 관람객이 찾아올 것 같아요. 물론 예매나 수요조사가 시작되어야 자세히 알겠지만 말이에요.”
관장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호 작가님의 저력은 업계가 가장 잘 알죠.”
“네. 게다가 이번 전시는 리온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미술가인 류요한 씨도 함께하니까요.”
냅킨으로 입을 문질러 닦은 관장에게 운영단장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렇다면, 식사 후에 잠시 전시공간을 거닐면서 작가님들과 이야기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케팅의 일환으로 특별한 손님이 오면 꺼내놓는 미술품들을 진열해놓은 것을 기억한 관장도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미술품들을 오늘 오시는 날에 맞춰 전시했습니다. 그럼 운영단장께서 안내할래요?”
“제가 책임지고 안내하겠습니다. 작가님들은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까보다는 유해진 분위기에서, 둘러앉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고 웃으며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
“그리고, 여기! 여기가 저희 전시의 메인 공간입니다.”
“여기에 조형물이 들어가면 되겠네요.”
“그렇죠. 류 작가님의 메인 전시가 진행될 공간이니 성심성의껏 꾸며야하겠습니다.”
전시장 안의 공간을 먼저 둘러본 류요한 작가와 운영단장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호도 뒤따라오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무호 작가님도 아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혹시 느끼신 점이 있을까요? 부족한 점이라던가···”
무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부터 경호원들이 갤러리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다.
‘물론 가치가 엄청난 유물들이 있다는 점에서 경호가 필요하긴 해.’
그러나, 문제는 경호원이라기보단 전시장 외 내부에 포진되어 있는 직원들.
‘직원들의 태도가 조금만 더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는데.’
무호가 운영단장에게 물었다.
“여기 직원분들은 갤러리 소속인가요?”
“아뇨. 갤러리 소속은 아닙니다. 외부인력이죠. 주로 제휴를 맺은 업체에서 용역으로 씁니다.”
“용역이라고요···”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딱히 열심히 일해야 할 필요도 없고 퇴근만 기다릴 테니까.’
그때 전시를 했던 예술전당 직원들은 달랐다. 해당 전시장 소속이었기에 내부의 결속도 대단히 좋았고, 사명감을 가지고 근무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여긴··· 예상 외로 관람객이 위축되는 분위기지.’
이전에 오고도 느꼈던 점이었다. 그땐 자신이 무호가 아니라 학원 강사 ‘정윤호’였기에 이런 대접을 받을 수가 없던 시절.
‘그때와 지금. 많은 걸 느꼈었어.’
이곳에 그냥 관람객으로 오는 것과 초청을 받아 오는 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혹시 전시 기간이 얼마나 되지요?”
“전시 기간은 한 달로 예상합니다.”
“아무래도 전시 전에, 매번 직원 교육을 실시하시겠죠?”
운영단장이 난처한 듯 답했다.
“아, 아뇨. 외부 업체에서 고용한 인원이라, 따로 교육을 실시하지 않습니다. 저희 정직원과 큐레이터들이 교육을 받았고, 전시장 곳곳에 포진된 외부 인력은 그저 무전으로 연락만 주고 받으면 되기에 무전 교육만 실시하는데요.”
역시 교육이 문제였네.
‘단순 경호 인원 취급을 하니 전문성과 서비스가 모자랐던거야.’
고개를 끄덕이고 단장을 향해 말한다.
“저는 이곳의 관람객들이 기분좋은 전시를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아아, 저희 전시는 항상 최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하.”
“아뇨. 전시 환경은 아주 훌륭해요. 압도될 정도로요.”
“그렇다면···?”
“외부 업체에서 온 인원들도 직원으로서 교육을 받게 해주세요.”
그게 곧 관람객에게도 좋은 일이다.
“예전에 이곳에 와본적이 있었습니다.”
“아아, 예전에···요?”
운영단장의 눈동자가 하늘을 향했다.
“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전시 관람에 많은 도움이 필요해서 중간중간 서 계시는 직원들에게 물어봤거든요.”
“그러셨군요.”
“그런데,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가 데스크로 갈 수 밖에 없었어요. 서비스 교욱을 받지 않은 직원들이라 그분들도 무전기만 다룰 줄 알았으니까요.”
“···”
“예술 전당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왔죠.”
무호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저들끼리 기대에 차 방문한 고등학생들도,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도 한꺼번에 떠올렸다.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그리고 의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으면 해요.”
팔짱을 끼고 있던 류요한이 팔짱을 풀었다. 그가 무호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까와 달리 사르르 녹아 있었다.
‘내가 사람을 완전히 잘못 봤네.’
자신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니, 한번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었나.’
순간 부끄러워진 류요한의 머리속에 많은 생각들이 차올랐다.
‘왜 모두 무호를 소통하는 작가라고 부르며, 그가 왜 유일무이한 인기를 누리는 작가인지도 알겠네.’
자신은 오늘 무호가 입고 온 옷만 보고 그를 멋대로 재단하려 했다. 그러나 무호는 어땠는가.
‘나 또한 무호 작가의 책을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사람까지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였나? 류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호의 말에 동조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그, 그런가요?”
운영단장은 손뼉을 치며 동조했다. 하나도 아니고 작가 둘이 저렇게 말하는데 당장 달리 반응할 방도가 없었다.
‘뭐··· 게다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 작가들이 원한다면 직원 교육을 철저히 할 의무도 있었다.
‘직원 교육을 애초에 더 빨리 할 걸 그랬나···’
그렇다면 이런 아쉬운 소리도 안 들어도 되었을 테니까.
***
전시회장 밖. 무호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피디들과 함께 로비에서 재회했다.
“작가님! 말씀 잘 나누고 오셨나요?”
피디는 닫히던 문과, 안에서 살짝 보이던 식사 장면을 떠올렸다. 그런 곳에서 밥 먹으라면 체할 것 같은데, 무호 작가의 얼굴은 아주 편안해보였다.
“네. 오늘 만남이 없었더라면 답답했을 부분이 많았는데, 잘 해결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이네요.”
“작가님 표정이 밝아보이는게 바로 그것 때문이었군요.”
한참 무호와 이야기하며 갤러리를 빠져나오던 카메라맨과 피디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뒤를 돌았다.
“어, 작가님···! 저기, 류 작가님 아니신가요?”
호리호리한 팔다리를 휘저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 부드러운 곱슬머리까지 류요한이 맞았다.
“···그러네요.”
아까 인사까지 잘 마치고 온 것 아니었나? 더 할말이 있는 걸까. 무호와 일행이 멈춰서자, 빠르게 걸어오던 류요한 작가가 숨을 고르며 멈춰섰다.
“무호 작가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한테요?”
“···네.”
류요한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