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가다로 게임지존-55화 (56/592)

55화

"무슨 소란이냐!"

"손을 들고 무기를 버려라!"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곧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경비병 십수 명이 후원을 덮쳤다.

큰 소리 때문인지 전부 중무장을 하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들을 보던 가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시장님, 괜찮으십니까?"

남자, 커트 시장은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병사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괜찮네. 여기 다른 사람이나 몬스터는 아무도 없고."

"그럼 방금 건……."

"불을 조금 잘못 조절했더니 이 꼴이군. 앞으로는 조심함세."

"알겠습니다."

병사들을 이끌던 기사는 정중한 묵례와 함께 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씩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다친 곳이 없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무얼."

"정말 다행입니다."

기사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과도할 정도의 걱정에 웨인은 속으로 허 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내가 실험 같은 걸 많이 한다고 알려졌지만 이건 좀 너무하군.'

그사이 다른 병사들이 재빨리 터를 치웠다. 4명이 커트 시장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나머지는 터만 남은 창고를 샅샅이 살핀다.

"몬스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불씨도 없고, 괜찮습니다."

"그럼 일들 보게. 나는 잠시 쉬다가 들어가겠네."

"예."

병사들을 보낸 커트 시장은 가면을 살짝 흔든 뒤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검은 주머니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창고 안을 가득 채웠던 아이템뿐 아니라, 나무 창고 전체를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오브젝트를 집어삼키는 건 본래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 창고 자체가 웨인의 개인 소유물, 즉 아이템으로 취급되었기에 상황이 묘하게 되었다.

'괜히 애먼 창고 하나 버렸군.'

웨인은 혀를 찼다. 설마, 이렇게까지 전부 빨아들여 버릴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전생에선 직접 써 본 적이 없으니까.'

전생에선 다른 유저가 이걸로 산더미 같은 잡템을 쓸어 담는 것만 보았던 웨인이었다.

그때는 그냥 편리하다는 것만 기억했는데, 역시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직접 사용하는 게 훨씬 체감이 되었다.

'창고는…… 망가졌나?'

은근슬쩍 주머니 안을 확인하는 웨인.

잠시 후, 그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건물 새로 지을 필요는 없겠군."

***

사교도 토벌을 마친 지 3주 후.

선착장의 외진 창고에 불이 켜졌다.

"또 뵙는군."

"이번이 다섯 번째 거래군요."

무기상인, 김민혁의 인사에 황우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크 아이템을 교환한 후, 그 스텟을 확인한 프론티어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크래프트 유니크인데, 웬만한 유니크 아이템보다 훨씬 좋잖아?

-와, 이거 꼴린다. 몬스터들 체력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네.

-형, 그거 내가 200골드에 사면 안 돼?

-내가 침 발라 놨는데, 어딜!

양손 대검은 근접 딜러용 아이템이다. 광전사, 하이랜더, 검투사. 그 외에도 수많은 클래스가 사용한다.

근접 딜러의 dps는 마법사 다음. 그 아이템 하나가 바뀌자 사냥 시의 딜량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이다.

그 때문에 황우진은 어느 정도 형편이 폈음에도 계속해서 김민혁과의 거래를 이어 가고 있었다.

어느새 양자 간의 존댓말 관계가 바뀐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것들을 사지요."

"좋아, 돈 받았다."

-거래를 완료했습니다.

"그럼."

돈을 받은 김민혁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때였다, 손을 든 황우진이 외쳤다.

"잠깐만."

"……?"

"……당신은 이 대륙에 어떻게 오신 겁니까?"

황우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프론티어 길드는 카이사 대륙에 처음으로 도착했다. 루나틱 게임 내 최초. 오직 개척과 탐험이라는 콘텐츠에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이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러나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한정되어 있었다. 우선 황우진은 카이사 대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미지의 땅이었고 개척되지 않은 콘텐츠였다.

게다가 처음엔 김민혁 본인부터가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그것도 나름대로 누그러진 상태. 적어도 황우진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 사이로 김민혁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게 중요한가?"

"예, 알려 주십쇼."

"중요한 일인가? 이제 와서 또 물어볼 정도로?"

"예, 저한테는."

"그렇겠지, 카이사 대륙을 최초로 개척했다는 타이틀이 중요할 테니까."

김민혁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카이사 대륙 정기선의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100개도 넘는 퀘스트를 깨야 했습니다. 그동안 김민혁이란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대체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오신 겁니까?"

"떠내려왔는데."

"예?"

김민혁은 담담히 말했다.

"내가 타고 있던 배가 난파당했고, 거기서 우연히 정기선에 구조됐다. 이곳이 아직 개방되지 않은 신대륙이란 걸 깨달았고, 돈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다. 대답이 되었나?"

"……."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그대로다. 김민혁이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 생각을 말해 보지. 내가 입을 다물어 줬으면 좋겠지?"

"그건……."

황우진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김민혁의 말이 맞았다.

카이사 대륙 최초의 개척자. 탐험자라는 타이틀은 자신을 위해 있어야 했다.

김민혁이 웃었다.

"그렇게 해 주지."

"예?"

"탐험기에 내 이름은 안 올려도 된다. 내가 인벤에 글을 쓰는 일도 없을 거야."

황우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황우진은 세간에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 알려져 있다.

사실 그는 욕심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다.

레벨이 높지 않다면 미지의 지역을 탐험할 수 있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컨트롤 역시 대단하다.

아직 공략이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천부적인 감각이 있어야 하니까.

'이자를 우군으로 삼을 수 있다면 천군을 얻은 거나 다름없지.'

하지만 아직 한 가지 관문이 더 남았다.

김민혁은 조심스레 황우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조건은 뭡니까?"

고민하던 황우진이 물었다.

'만마(萬馬)도 얻었군.'

멍청해서는 반쪽짜리다.

저 질문이 나온 이상, 황우진은 훌륭한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훌륭하다는 건 곧 써먹기도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좋겠는데, 물론 당신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닐 거야."

김민혁이 웃으며 말했다.

***

-제목 : 카이사 대륙 탐험기(12)

-작성자 : always 프론티어.

-내용 : 길드 마스터 황우진, 인사드립니다.

루나틱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 게시판.

그 상단의 배너에는 요즘 올라오는 1개의 게시 글이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각종 패치 노트, 방송 이벤트와 나란히 어깨를 한 그 배너는 다름 아닌 카이사 대륙 탐험기.

프론티어 길드의 황우진이 길드원들과 같이 쓰는 그 게시 글이 맞다.

-……사교도 신관의 처소에서 발견한 편지? 아스티나 대륙에서 온 서신 아이템입니다. 밤 세계 교단의 인장이 찍혀 있네요.

-카이사 대륙에도 병사 NPC들이 있습니다. 여기 스크린 샷으로 찍은 경비병처럼요.

-하지만 아스티나 대륙의 허약한 경비병을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툭 치는 것만으로 90레벨의 탱커를 한두 방에 엎어 버릴 수 있거든요. 자, 이렇게.

-템파밍이 되기 전엔 절대 범죄자가 되거나, 문제 되는 행위를 일으키시면 안 됩니다. 자칫하다가는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카이사 대륙의 콘텐츠를 직접 탐험하고 올리는 여행기. 유저들은 거기서 보이는 새로운 콘텐츠에 환호했다.

-아티스크 : 신대륙 분위기 ㅆㅅㅌㅊ;;;

-신우선 : 심부름 퀘스트인데 보상을 저렇게 줘요? 진짜 쩐다!

-휘영청 : 시청에 갈색 머리 비서…… 귀엽네요. 다른 종족인가요?

-always 프론티어 : 하플링이라고 합니다. 카이사 대륙엔 인간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종족들이 있어요!

-펠민느 : ㅋㅋ 도적은 템파밍 더하고 가야겠네. 밸런스 망겜 어디 안 가죠~.

-무적캡틴전사 : 그래서…….

-앙투와네트 : 혹시…….

-인벤커리어99 : 꼬우신가요?

-셰르파 : ㅋㅋㅋㅋㅋㅋㅋ

-앙미누띠 : 도적따리 도적따~

수많은 감상평부터 밸런스 성토, 그리고 각종 애드리브까지. 게시 글에 달린 댓글 반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일단 확실한 건 카이사 대륙이 유저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는 것. 아스티나 대륙에서 즐길 만큼 즐겼던 베테랑 모험가, 흔히들 '고인물'이라 칭하는 고레벨 유저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가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직접 바다를 건너려는 유저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결말은 사건/사고 게시판, 혹은 도와주세요, 게시판 등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제네럴칸 : 와 씨, 정기선 찾아서 타려고 하니까 명성치 안 된다고 쫓겨남ㅋㅋㅋ. 밀항하려니까 또 들키고 미치겠음.

-필몬 : 님은 그래도 양반이죠 ㅋㅋ 저 밀항선 탔다가 해적 습격받아서 지금 뱃 노예 하는 중;

-에셈 : 님들 어선이나 나룻배 타고 갈 생각 하지 마세요. 폭풍 하나 제대로 만나서 캐삭했습니다. 에휴, 인생무상.

-오다세위스 : 무인도 갇혀 있습니다. 32일째입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배 가지신 분. 100만 원 드리겠습니다, 제발…….

수많은 실패의 기록들, 그중에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만큼 처절한 것도 몇 개 있었다.

어찌 됐건 프론티어 길드의 탐험록은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인기 글 최상위권을 독점하는 건 물론 게임사로부터 일정량의 페이를 지급받기도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홍보해야 할 것, 유저들이 알아서 해 주니 이 정도야 후원 가능한 부분이었다.

물론 이것은 웹상에 공개되는 무료분.

각 주요 길드에게 보내는 유료 버전은 다른 게 더 들어 있었다.

-항구 근처에서는 100레벨 제한의 레어, 유니크 아이템들이 드롭됩니다.

-주변 도시로 나가기 위해서는 마블포트의 시장이 내준 허가증, 그리고 총합 130 이상의 클래스 레벨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정보라도 쉽고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그리고 무료 버전엔 없는 던전의 드롭 아이템이나 공략법, 각종 퀘스트 및 상세한 지도 등이 여기에 추가로 덧붙여졌다.

각 길드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먼저 방책을 찾아보던 프로메테우스는 물론 아스티나 대륙의 업적을 마무리하던 미라클이나 KU, 그리고 그 외의 길드들에게도 새로운 정보들이 업데이트된 보고서가 전해졌다.

며칠 후.

부우웅.

서울 신명호텔.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그곳 라운지에 한 사람이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섰다.

"……여긴가?"

20대 후반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양복이나 제복을 갖춰 입은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휘황찬란한 호텔 뷔페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던 그.

등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린 순간, 대학생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터벅.

반백 머리의 중년 남자가 대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들어가시죠, 황우진 씨. 듣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아…… 네. 그……."

"한석규, 한 실장이라 부르면 됩니다."

중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황우진을 라운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특급 방음석. 남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이야기가 나올 곳이 그들의 자리로 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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