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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로 게임지존-71화 (72/592)

71화

"KU는 2배 준다고 했는데?"

"네, 네?"

프로메테우스 길드 측 담당자는 웨인의 말에 눈을 끔벅거렸다.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제 권한을 벗어난 일일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기 때문이다.

"뭘

'네?'

야? 그렇다고."

"김민혁 님, 금액이 전부가 아닙니다. 저희는……."

"그래? 프로메테우스나 KU나 같은 4강 길드인데, 그럼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얼마나 더 줄 수 있나?"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부 회의를 거친 다음 다시 제시하겠습니다."

"회의? 바로 가격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 위임도 없는 사람이었어?"

웨인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거 안 되겠군. 이번 거래는 없던 일로 하지."

"자, 잠깐만……!"

"부하의 실수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잠시 급한 용무가 있어 자릴 비웠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

웨인은 고개를 돌려 1년 만에 보는 남자를 확인했다.

'레벨은 몇이지? 180? 방어구는 유니크 최상급 장비 아이템들이군. 그리고…….'

화려한 은빛 갑옷에 빛나는 검과 방패, 4강 길드의 최고 전력답게, 한석규의 장비는 종결급 아이템으로 가득했다.

웨인은 가면 속에서 양미간을 좁혔다.

'방패와 무기는 각각 에픽급이야. 그때 한 번씩 죽으면서 아이템을 하나 이상씩 떨어뜨렸을 텐데도 이 정도 복구 속도라…….'

만약 레전더리 아이템을 그대로 가졌다면, 4강 길드가 아니라 1강 3중이었을지도 모른다.

한석규가 말을 이었다.

"방금 전 하시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만, KU에서 저희보다 2배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고요?"

"그런데?"

"저희는 3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럴 권한은 있나?"

"제가 결정하면, 사망 여제 님이 반대하신다 해도 합당한 이유 없이는 번복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길드는 물론 헤르메스 그룹 내부 일까지 한석규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그걸 알고 있는 웨인이기에 굳이 토를 달지 않고 들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어디 말해 봐."

"예, KU와 이미 거래를 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희에게만 지금 파시는 아이템을 팔아 주셔야 합니다."

"그거 아쉽군."

웨인은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이미 그쪽과는 거래를 한 차례 했는데."

"알고 있습니다."

한석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애초에 KU 길드를 통해 김민혁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거래 사실을 감췄다면, 오히려 이쪽에서 그를 의심했을 것이다.

웨인이 숨기는 게 없다, 그 사실을 확인한 한석규도 본론을 꺼냈다.

"그럼, 그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저희와 거래하시면 됩니다."

"제안은 그것뿐인가?"

"아뇨,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추후 KU가 다시 접촉해 올 때, 그들은 분명 다른 곳에 아이템을 팔았느냐고 물어볼 겁니다."

KU뿐만 아니라 미라클, 발할라도 분명 그 얘기를 다시 꺼낼 것이다.

기존 경매장이 막혀 곤란한 상황에서, 웨인이 파는 고급 장비와 소모품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석규가 말을 이었다.

"그때 지금 파는 것과 똑같은 아이템을 팔았다고 말해 주시면 됩니다."

영입이나 독점 계약을 포기하는 대신, 과감한 한 수를 둔 것이다.

웨인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물었다.

"다른 건?"

"그것뿐입니다. 여기 비용은 따로 계산해 드리죠. 1천 골드, 어떻습니까?"

"독점 계약 얘기는 안 하나?"

"어차피 내밀어도 거절하실 것 같은데, 그럼 그냥 말 안 하는 게 낫지요."

"여기는 얘기가 통해서 좋군."

"과찬이십니다."

탈칵.

거래창이 열리자마자 그 위로 1만 2천 골드가 올라왔다. 구매하는 아이템 숫자가 40여 개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좋아, 그럼 원하는 대로 내 소장품을 풀어 주지."

웨인도 말을 마치고 바포메트의 검은 주머니를 꺼냈다.

스륵.

거래창에 올라오는 장비들을 보던 한석규가 눈매를 좁혔다.

"……이건."

"문제 있나?"

거래창에 올라오는 각종 크래프트-레어 장비들.

물론 모두 일정한 양식에 맞춰 만든 양산품들이었다.

"똑같은 장비인 건 어쩔 수 없어. 최적의 효율에는 형태도 중요하니까."

미리 시비가 걸릴 여지도 말끔히 차단하는 웨인.

잠시 후.

"……훌륭하군요. 크래프트 아이템으로 이 정도라, 과연 저희에게까지 소문이 날 법도 합니다."

한석규는 말을 마치자마자 거래 승낙을 눌렀다.

이미 사전에 얘기한 대금을 올려놓았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거래였다."

이번에는 서문아를 만나는 일 없이 무사히 거래를 마쳤다.

웨인은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면을 쓰고 각종 아이템으로 정체를 숨겼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은 0.01%라도 막고 싶었다.

웨인은 이후 미라클과 발할라를 찾아가서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미라클의 길드원들은 장비 파밍 면에선 문제가 없었다. 때문에 양산형 장비보단 포션이나 기타 재료 아이템의 거래가 주를 이뤘다.

'미리 골라 놓은 고급 아이템들을 꺼낸다면 장비 쪽 거래도 틀 수 있겠지.'

다만 그러면 미라클이 다른 세 길드를 제치게 된다. 그건 웨인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싸움이 더 커질수록 내 이득도 커지니까.'

발할라의 경우에는 장비와 포션 모두가 필요했다. 익숙한 얼굴을 본 웨인은 혹시라도 아는 기색을 보일까 더욱 주의하면서 거래를 했다.

"그럼 정산을 해 볼까."

벨로나 왕국 수도로 돌아온 웨인. 고급 카페테라스를 찾아간 그는 테이블에서 천천히 정산했다.

네 길드를 돌아다니면서 판 장비의 수는 도합 150여 개.

기타 포션과 키트, 재료 아이템까지 합치자, 총수익이 대략 4만 골드 정도가 되었다.

재료값을 빼도 거의 2만 골드 가까이 순이익이 난다. 개인이 이만한 골드를 번 것은 현재까지 처음이었다.

그냥 팔기만 했다면 절대로 이렇게까지 벌지 못했을 것이다.

카이사 대륙이라는 거대 콘텐츠가 막 개설된 지금, 길드 간의 자존심과 스펙 싸움. 그 빈틈을 파고들어 갔기에 가능했다.

'……이제야 인벤토리가 좀 널널해졌군.'

웨인은 고급 파르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현금 손익을 따졌다. 도시 운영 업무와 달리, 이건 올리비아가 아니라 직접 해야 하는 일이었다.

'재료값 정산도 해야 하고, 마블포트의 시설 보완, 정리,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비도 빼자.'

직접 모아 온 재료야 상관없지만, 지금만을 노리고 후불로 사 온 재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저런 것을 빼자 가용 금액은 대략 2만 골드로 줄어들었다.

현재 시세는 1골드당 7만 3천 원 정도. 환전율 15퍼센트를 제외한다고 쳐도 12억 이상의 현금이 수중에 들어온다.

'12억이라…….'

전생에는 꿈도 못 꾸던 금액.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웨인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신이 돌아온 것은 그러던 중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이건 아이템 거래 사이트가 감당하지 못할 물량이군.'

물론 사이트가 터지거나, 시세 자체가 붕괴될 정도는 아니다.

이미 서비스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 이 정도로 구조가 무너지기엔 이미 유저나 자본의 규모가 너무 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너지지 않을 뿐, 꽤나 큰 충격이 있기는 할 터.

지속적으로 환전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건 결코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초기에는 나눠서 풀어야겠어.'

딱히 걱정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골드를 원하는 유저들은 많다.

그게 아니더라도…….

'조만간 각 국가마다 있는 서버에서 모인 유저들이 카이사 대륙에서 연결될 테니까.'

중국 서버, 일본 서버, 유럽, 미국 서버까지.

각 서버마다 스타팅 대륙이 있다.

그곳에서 성장한 유저들이 한데 모여 거래하게 될 날이 조만간 온다.

'그때가 되면 미국이나 중국 놈 들에게 골드를 팔아도 되니까.'

특히 중국!

중국 측 유저들은 정말 탐욕스럽게 골드와 아이템을 빨아들였다.

최고의 유저들을 따지자면 무조건 한국의 싹쓸이였지만, 최고로 돈 많이 쓰는 유저들을 꼽으면 무조건 중국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철저히 빨아먹어 주지.'

웨인도 중국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특히 중국인 오토 작업장들! 그들이 득세하면서 김민혁은 하루 6시간 자던 걸 4시간으로 줄이며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골드가 너무 많아.'

당연한 말이지만, 라이데른 후작령 같은 '꿀 벌이'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이걸 묵혀 두기도 뭐하니 여러모로 처치곤란한 일이었다.

'미래에 나올 골드 소모 시스템이 지금 있는 것도 아니고…… 고민이군.'

무언가 다른 투자처를 찾긴 해야 한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웨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까지 생각하다간 밤까지 있어도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할 걸 해야지."

마블포트로 돌아가자, 핫도그가 시장 관저 앞까지 나와서 맞이해 주었다.

왈! 왈!

"그래그래."

마냥 좋은지 뛰어올라 얼굴까지 핥으려는 핫도그. 상태창을 확인하자 어느새 레벨이 10까지 올라 있었다.

"그래, 별문제는 없지?"

"예. 감옥에서 반발이 좀 있었긴 한데, 기사분들이 가서 힘을 좀 써 주시니 잠잠해졌습니다."

"반발?"

"구금된 모험자들입니다. 기사분들이 한번 진압하니까 그 후로는 얌전해졌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

"단순한 소동입니다. 시간 아까우니 골드를 내고 나가겠다거나, 근처 호텔이나 리조트는 어디 있냐며 경비를 폭행하는 경우였습니다."

웨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재벌 2, 3세들이 현실에서 하던 버릇대로 여기서까지 무언가를 하려 한 것이다.

"난동 피운 작자들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서 나한테 서류로 제출해 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놈들은 빠짐없이 구금 기간이랑 벌금 늘리고. 아, 사회봉사로 하수도 청소랑 항구 노역도 시키면 좋겠군. 그렇게 해."

"예."

마블포트의 하수도는 썩은 생선과 벌레 들로 가득하다, 항구 노역은 하루 종일 무역품을 나르는 일이고.

'감히 내 도시에서 그딴 짓을 해? 현실이었다면 집행유예나 좀 때렸겠지만, 난 아니지.'

미접속을 한다고 구금 시간이 줄어들진 않는다.

눈물 쏙 빠지게 고생할 그들이 벌써부터 보이는 것 같았다.

"다른 일은?"

"세금이 들어와서 상납금으로 보냈고, 얼마 전 상단 5개가 항구를 늘려 달라는 청원을 냈어요."

"항구…… 하긴 마블포트는 항상 들어오는 배에 비해 공간이 부족했었지. 이참에 하나 더 만들도록."

"그러려면 예산이 부족합니다."

"예산은 이거 쓰고."

웨인은 투자금으로 떼 놓은 2만 골드를 건넸다.

물론 전부 다 쓰기 전에 각 곳마다 용도를 명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가시나요?"

"그래, 나는 모험가니까."

말을 마친 웨인이 손을 아래로 내밀었다.

"가자, 핫도그."

멍멍! 멍!

웨인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핫도그가 흰 꼬리를 살랑거리며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워프 게이트를 사용합니다.

-아스티나 대륙으로 이동합니다.

-바츠 왕국 수도, '아키러스'시로 이동했습니다.

모처럼 돌아온 아스티나 대륙.

현생에서 바츠 왕국의 수도에 돌아온 것은 처음이다.

옆에 있던 핫도그도 갑자기 바뀐 풍경에 눈을 빛냈다.

헥, 헥, 헥, 헥.

혀를 빼문 채 원을 그리는 모습이, 허락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광장 멀리 달려 나갈 것 같았다.

"레벨이 10이고, 스텟이 이 정도라……."

웨인은 핫도그와 함께할 만한 사냥터 몇 곳을 체크했다. 필요한 건 최단 시간에 최대 효율로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루트였다.

그때였다.

"봐 봐! 저기 시바견이야!"

"와, 귀여워!"

"루나틱에 저런 게 있었나? 오빠, 나도 사 줘!"

"그래, 한번 찾아볼게."

"어머, 만져 보고 싶어라."

주변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반응. 핫도그는 그때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을 향해 배를 보이고 눕거나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고 보니 루나틱엔 펫이 없지.'

시끌벅적한 주변의 목소리에 웨인은 관심이 자신들에게 쏠렸음을 눈치챘다. 순간, 눈앞에 알림창들이 떴다.

-핫도그가 유저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핫도그가 행복해합니다.

-핫도그가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핫도그가 크게 짖었다.

왈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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