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경연 대회가 끝난 지 사흘이 지났다.
그러나 웹상에선 아직도 김민혁의 정체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1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하는 게임 루나틱.
수많은 사건 사고가 매일 있었으나, 이 주제는 묻히는 대신 더 커지기만 했다.
-제목 : 김민혁은 아마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쪽 특수 요원이 아닐까?
-작성자 : 나의매력으로독재자를boy.
-내용 : 일단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음.
독재자들이 돈 벌려고 온갖 짓 다 하는 건 알지?
코인 시장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
그럼 루나틱이라고 그런 사람이 없겠냐?
내가 보기에 저 김민혁은 그런 쪽과 연관된 사람임.
안 그러고서야 저렇게 독종같이 스킬 레벨 올릴 수 없음.
(댓글 목록)
-시에스타 : 아, 이건 좀;
-봉구야 : 아이 엠 그로트.
-케임블릿지 : ㅋㅋㅋㅋㅋㅋ
-제목 : 김민혁이 누구긴ㅋㅋㅋ
-작성자 : 소일렌토그린
-내용 : 그냥 씹씹씹 루창인데 너무 띄워 주는 거지. 걍 데오마론 이길 정도로 독종인 놈이라 이긴 거임ㅋ 진짜 공부 글케 했음 서울대 의대 뚫었다.
(댓글 목록)
-01.
re2re3re : 걍 그것도 재능임. 노력의 재능.
-얼음왕자 : 재능 맞아. 내가 8사단에 있을 때 후임 중에 이런 놈이 있었는데…….
우르르 달리는 게시 글들.
대다수는 볼 가치도 없었으나 그중 몇 개는 꽤나 정답에 가까운 추측을 하고 있었다.
-제목 : 김민혁 누군지 확실한 사람한테 들었다.
-작성자 : 임시아이디134592
-내용 : 여기 정체는 못 밝히겠는데, 내 아는 사람이 4대 길드에 있음. 그 사람한테 들은 얘기니까 믿을 거면 믿고 아니면 마셈.
일단 확실한 건 카이사 대륙에서 온 유저라는 거. 최초가 프론티어니까 그 사람들 탄 배에 껴서 갔는지 조금 나중에 갔는지는 나도 잘 모름.
어케 아냐고? 카이사 대륙에서 장비랑 포션 구하던 길드원들이 그 사람한테서 제작 템 샀다고 함.
난리도 아니었댄다. 길드들이 서로 자존심 경쟁 붙어서 템 더 사려고 하고. 가격 더 쳐 주고.
하여튼 김민혁이 문스톤 쓰고 데오마론 이긴 건 카이사 대륙 콘텐츠 덕분일 확률이 높음.
내가 보기엔 대해 표류하다가 카이사로 흘러들어간 거 같은데, 더 이상은 자세히 모르겠다.
알아서 판단하셈. 근데 이 썰은 사실임 캐릭터 걸고 말하는 거.
(댓글 목록 21,884개)
-시켈리로 : 이거 정말이냐?
-trient : 일리가 있네. 카이사 대륙 콘텐츠라면 데오마론이 못 따라갈 만도 하지.
-봉구야 : 꺼지셈.
-슈나첼리스 : 넌 그게 콘텐츠로 보였냐? 눈 없는 x x야?
이 게시 글 외에도 여러 곳에서 카더라 소문이 돌았다.
바닷가를 산책 중이던 김민혁은 게시 글을 보며 피식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정답에 가까이 오긴 했군."
황우진은 일이 터지자마자 프론티어 길드원들을 철저히 입단속시켰다.
그 덕분에 현재 그의 존재를 아는 건 하이브 비를 같이 사냥했던 6명뿐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게시 글을 닫은 김민혁은 기지개를 켰다.
사흘 전.
경기를 마친 후, 왕성 안으로 들어가던 김민혁에게 수십 개의 알림창이 떴다.
각종 웹사이트의 기자들이나 4대 길드를 비롯한 거대 길드의 간부들.
심지어는 종편 채널이나 대형 신문사의 기자까지 연락처를 남긴 것이다.
'난리도 아니군.'
개중엔 운영진이 보낸 것도 있었다.
내용은 김민혁의 게임 기록에 대한 저작권의 구매.
적당한 대역 사용 및 CG 가공까지 모든 것을 보장해 준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었다.
그러나…….
'1%라도 위험성을 더 늘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운영진에게는 정중한 거절의 답변을 보냈다.
다른 쪽지는 읽어 본 다음 전부 쓰레기통행.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당당히 모습을 드러낼 만큼의 영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나 자신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데오마론이 패배를 맛보긴 했으나, 그 세력의 힘은 아직 건재하다.
게다가 그 뒤에 있는 프로메테우스까지 생각하면 더욱 신중해야 하는 상황.
'물론 언젠가는 때를 잡아야겠지만. 일단은 좀 더 내 레벨을 높여야지.'
삐리릭.
스트레칭을 마친 김민혁은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달칵.
유투브에 들어가자 루나틱과 관련된 수많은 동영상들이 관련 재생 목록에 떴다.
게임을 끈 휴식 시간엔 이런 동영상을 보는 것이 김민혁의 일과였다.
특히 요즘은 더욱 신경 써서 확인 중이다.
왜냐하면…….
-또 다른 비공개 랭킹 숨은 고수?
-1 vs 100, 랭킹 고수와 맞먹는 무예의 달인!
과거 랭킹에 등록하지 않고 숨어 있던 유저들이 최근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벌써 모습을 보이는군."
영상 속의 남자를 보던 김민혁이 중얼거렸다.
긴 봉 한 자루를 든 그는 혼자서 주변의 몬스터 수십 마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지금 보이십니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신으로 데드 돌즈 극단 6인 던전을 클리어하는 남자! 진짜 대단합니다.
남자가 봉을 휘두를 때마다 그 위로 불이 씌워지거나 강철 창날이 튀어나온다.
그때마다 주변을 메웠던 관절 인형 몬스터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인형들의 레벨이 70대고, 남자의 레벨이 67이란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었다.
파사삭!
영상은 봉을 든 남자가 보스 몬스터인 거대 인형과 극단장을 쓰러뜨리며 끝났다.
김민혁은 댓글 목록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이 정도는 약과지.'
영상에서는 닉네임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김민혁은 저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명도. 저 사람은 훗날 전 세계 랭킹 10위권 안에 든 남자니까.'
전생에서 그가 어딘가에 등장하는 건 10여 년 후부터였다. 김민혁의 활약으로 인해 그 시간이 앞당겨진 것이다.
유투브 메인을 클릭하던 김민혁이 생각했다.
'아직은 접촉할 때가 아니야.'
한다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널려 있었다.
'그럼 슬슬 가 볼까.'
파앗.
루나틱에 접속하자 왕궁 내부의 전경이 보였다.
동시에.
-새로운 업적 달성.
-칭호 <강철의 손>을 획득했습니다.
-스테이터스 창에서 칭호 <토끼 살해자>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 <강철의 손(7)>을 완료했습니다.
-연계 퀘스트를 최종적으로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나란히 뜨는 5~6개의 알림 메시지들.
웨인은 일단 상태창을 켠 다음, 새로 얻은 칭호부터 확인했다.
<강철의 손>
-대표 옵션 : 스킬 숙련도 획득량 상승, 전체 대장장이 클래스 최대 스킬 레벨 +1, 아이템 제작 시 옵션 추가
-일반 옵션 : 명성치 보정 +5만, 힘 +50, 체력 +50, 손재주 +150, 매력 +50, 행운 +50
'과연…… 대단하군.'
명성치 보정은 가진 명성치에 무조건 5만을 더한 수치로 NPC들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대장장이 클래스에 필요한 스텟만 알뜰하게 챙겨 주는 내용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대표 옵션이었다.
웨인은 내용을 보면서 생각했다.
'스킬 숙련도 상승은 두말할 거 없는 A급 옵션이지만…… 지금은 그다지 들뜬 기분이 안 드는군.'
이유는 간단하다. 뒤의 두 옵션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스킬 최대 레벨의 상승과 특수 옵션 부가.
둘 다 이쪽 직업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최고의 실력자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루나틱을 통틀어 오직 단 1명만이 만들 수 있는 최고급 장비 아이템.
그 타이틀만 내걸어도 4대 길드는 물론 해외 유저들의 지갑을 먼지까지 긁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부자들.
자존심이 하늘 끝을 찌르는 그들이라면 몇십, 몇백 배의 웃돈을 주고서라도 웨인을 찾을 것이다.
데오마론이 이걸 알았다면 정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웨인을 쳐 냈을 테고.
'그럼 보상을 받기 전에…….'
웨인은 편지 몇 장을 작성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NPC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아키러스시의 한 저택.
4개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던 살롱에 귀족들이 모였다.
-마르자하, 워크릭, 베스티온.
세 귀족은 먼저 차 있는 네 번째 자리에 시선을 모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데오마론이 앉던 자리.
지금은 다른 사람이 그곳에서 다리를 꼰 채 버티고 있었다.
NPC들의 이름을 확인한 웨인이 입을 열었다.
"다들 오셨군요."
"새로운 강철의 손이 우리에게 무슨 볼일인가?"
"저번의 경연, 잘 봤네."
"크흠."
세 귀족들의 낯빛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데오마론에게 청탁을 받은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만남이 따로 없군.'
하지만 굳이 NPC들의 사정을 봐줄 이유도 없었다. 웨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앉으십시오. 어차피 당신들이 이번 경연에서 데오마론의 편을 들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선전포고라도 하려고 불렀나?"
"쉽지는 않을 텐데."
강철의 손은 바츠 왕국의 고위 직책 중 하나다.
바츠 왕국 자체가 기사들, 그리고 그 밑의 장인들을 굉장히 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귀족들도 각자 왕국의 고위 NPC.
원래대로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웨인에게 있어 그런 시간 낭비는 가장 피해야 할 것이었다.
"저는 대화를 원합니다. 다만 그걸 위해선 저도 뭔가를 받아야겠지요, 데오마론의 편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웨인은 간단히 요구 조건을 말했다.
"데오마론에게 받거나 받기로 예정된 보수의 2배를 제게 주십시오. 그럼 저도 과거의 은원을 잊고 협조하겠습니다."
"좋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상관없겠지?"
"가치만 똑같으면 됩니다."
"확인하게."
워크릭 공작이 대답했다. 나머지 귀족 둘은 당황한 기색으로 머뭇거리다 뒤를 이었다.
-6,0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디에르고 영지의 소유권 문서>를 획득했습니다.
-<라이데른 후작령-팔콘 성과 주변의 소유권 문서>를 획득했습니다.
'땅 문서라…….'
디에르고 영지는 도적과 폭정에 시달려 득보다 실이 많은 곳이다.
그건 라이데른 후작령의 땅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다르지. 운이 좋군.'
문서와 골드를 받은 웨인이 미소 지었다.
귀족들이 손을 내미려는 순간.
"그런데 문스톤은 왜 안 주십니까?"
"문스톤?"
"데오마론에게 시합 대비용으로 문스톤을 제공한 것, 알고 있습니다."
"……미처 깜박했군, 바로 주지."
-<문스톤 광석 x100>를 획득했습니다.
잠시 후 알림창이 떴다.
그제야 웨인은 귀족들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와 자네 간의 원한은 없는 거로군."
"예, 이걸로 저는 여러분을 용서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웨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살롱의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분께서 용서하실지는 잘 모르겠군요."
"……?"
"로드릭!"
덜컹.
문이 열린 자리엔 로드릭이 서 있었다.
손엔 번개가 어린 망치를 든 채로.
"귀공들이 로드릭 님에게 부당한 누명을 씌워 쫓아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분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시면 됩니다."
로드릭은 전대 강철의 손이자 국왕의 무조건적인 신임을 받은 NPC였다.
그리고 바로 전, 웨인은 그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이 담긴 조사 내역을 보내 줬다.
"이, 이보게!"
"말이 다르잖나!"
"고맙다, 제자야."
이를 갈아붙인 로드릭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과거사는 깨끗이 청산해야죠."
"그럼, 그렇고말고."
당황하는 귀족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저택을 걸어 나가던 웨인의 앞에 메시지 창이 떴다.
-퀘스트 <피의 복수>를 완료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로드릭의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15 상승합니다.
(95/100)
'번개의 야금술을 복원하면서 30, 경연에서 이기며 30에 이것까지 15인가.'
여정을 떠올리던 웨인이 피식 웃었다.
'아마 케셀링크를 소개시켜 주면 호감도 100을 찍겠군.'
NPC와의 호감도 100을 달성하면 관련 칭호가 주어진다. 그리고 어떤 NPC는 따로 보상이나 퀘스트를 주기도 한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웨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퀘스트 창을 열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시겠습니까?
"그래, 강철의 손 완료."
대답이 끝났다.
그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컷 신이 재생됩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왕성의 대전. 무릎을 꿇은 웨인에게 디케이 12세는 자애로운 눈빛을 보냈다.
"고개를 들라, 새로운 강철의 손이여."
"예."
컷 신 속의 웨인은 시나리오대로 대사를 읊었다.
몇 번의 공치사가 오간 뒤 디케이 12세가 본론을 꺼냈다.
"위대한 보물을 만들어 준 강철의 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체면이 서지 않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골라 보게나, 보물고에서 골라 온 것들일세."
파앗.
디케이 12세의 손짓과 함께 컷 신이 끝났다.
대신 나타난 건 아이템 5~6개를 띄워 놓은 홀로그램.
이 중에서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했다.
'대다수가 에픽 아이템이군.'
신중히 아이템 목록을 살피던 웨인.
그러던 도중, 어느 한 곳에 그의 시선이 꽂혔다.
'잠깐만.'
웨인은 순간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과거 수많은 유저들이 찾던 바로 그 아이템이 눈앞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여기 있었을 줄이야……!'
스윽.
손을 가져다 대자 아이템의 간략한 정보가 떴다.
<팔만대장경>
-등급 : 에픽
-분류 : 특수 장비
-자세한 정보는 현재 확인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