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끄어어어……."
어둡고 큰 복도.
양쪽 벽에서 검푸른 불꽃을 틔운 양초들만이 으스스하게 빛난다.
어두운 분위기지만, 그래도 빛이 없는 것보단 나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푸른빛이 없다면 복도를 돌아다니는 유령 몬스터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령들만이 돌아다니던 복도.
그곳에 살아 있는 사람과 두 마리 펫이 들어왔다.
웨인과 핫도그, 그리고 나무무다.
"핫도그, 브레스."
멍!
핫도그는 한 번 짖은 후 눈에서 빛을 냈다.
킁킁거리는 몸짓은 덤.
잠시 후, 탐색을 마친 핫도그가 숨을 들이마셨다.
현재 핫도그의 스킬 중 가장 데미지가 강한 필살기, 브레스였다.
멍멍!
후와아악!
핫도그가 뿜은 브레스가 복도 정면을 뒤덮었다.
흰 불꽃을 맞은 유령들은 몸을 뒤틀거나 사라졌다.
살아남은 유령들에게는 웨인의 망치와 나무무의 넝쿨 줄기가 향했다.
푸콱!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성직자 유령의 부장품>을 획득했습니다.
유령들의 레벨은 260~270 사이.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너무도 쉽게 쓸려 나간다.
웨인 본인은 물론, 두 펫에게도 공격력 관련 문신을 가득 새겨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령들의 무서움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둠 속.
벽 너머에서부터 다가온 성직자 유령들이 웨인의 등 뒤쪽에 나타났다.
유령 계열 몬스터들의 패시브.
투명화를 이용해 기척을 죽이고 접근한 것이다.
"성직자들의 안식을 방해하다니!"
"이 녀석도 우리와 같은 꼴로 만들어야 해."
성직자 유령들은 저주의 말을 꺼내면서 힘을 모았다.
강력한 냉기와 어둠 속성의 데미지!
그 외에도 각종 상태 이상을 걸기 때문에, 한 번 맞으면 굉장히 치명적인 공격이다.
막 공격이 완성되려 했다.
그 순간.
멍멍!
핫도그가 커다랗게 짖으며 앞발을 땅에 내리쳤다.
투명한 진동이 그 지점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으악!"
끼에에에!
정면으로 노출된 성직자 유령들은 몸을 뒤틀었다.
그 순간.
"역시!"
어느새 다가온 웨인의 망치가 정면을 훑었다.
번개 집중!
양손으로 들 만큼 무거운 해머에, 번개 줄기가 가득 실렸다.
번개의 야금술에서 번개를 다루는 것을 응용한 전투용 스킬이다.
파지직!
순식간에 사라지는 성직자 유령들.
그 자리에 있던 아이템을 향해 핫도그가 달려갔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넵튤론의 저주받은 성수>를 획득했습니다.
-<넵튤론의 저주받은 성수>를 획득했습니다.
성직자들이 죽으며 떨어뜨린 성수들.
물론 여기 나오는 건 타락한 성직자들이기에, 거기엔 축복 대신 저주가 깃들어 있었다.
"잘했어."
웨인은 그렇게 말하며 핫도그를 쓰다듬어 주었다.
'새로 배운 스킬들이 도움이 되는군.'
사실, 효과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웨인은 씩 웃으며 핫도그의 스킬창을 열었다.
<정령의 감각>
-분류 : 비전투
-등급 : 5+
-속성 : 자연
-효과 : 일정 범위 내 은신 및 공간 이동 마법 자동 탐지, 스킬 사용 시 주변 범위 내 있는 모든 은신, 유체, 영체화 등의 상대에게 스킬 공격력의 300% 피해를 입힘. 피해를 입은 상대는 2초간 스턴 상태, 이후 5초간 그로기 상태 및 스킬 사용 불가능. 해당 범위 내의 재료, 퀘스트 아이템, 함정 등의 오브젝트도 탐지 가능.
-스킬 레벨 : 1
-스킬 숙련도 : 33/100
'이 정도의 탐지 스킬이라면, 앞으로 파티에 도적을 넣을 필요가 없지.'
웨인은 씩 웃었다.
물론 트랩 해제나 원거리 지원을 위해서라도 도적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은신 감지 쪽에서는 이만한 스킬을 찾기 힘든 것도 맞다.
웨인이 아는 한, 이보다 더 좋은 탐지 스킬은 최소 300레벨 이상에서나 나오기 때문이다.
'나무무 쪽도 나쁘지는 않고.'
때마침 나무무에게서 뻗어 나온 연둣빛 기운이 웨인과 핫도그를 감쌌다.
온몸의 피로가 씻겨 나가는 듯한 청량감.
나무무의 스킬, '리쥬버네이션'의 효과다.
<리쥬버네이션>
-분류 : 비전투
-등급 : 4+
-속성 : 자연
-효과 : 스킬 대상자의 HP와 MP를 초당 2%씩 20초 동안 최대 40%씩 회복시킨다.
-스킬 레벨 : 1
-스킬 숙련도 : 61/100
<네이쳐 포스>
-분류 : 전투(패시브)
-등급 : 5+
-속성 : 자연
-효과 : 타격 시 대상 적의 스킬 방어력을 1.5%씩 저하시킨다. 해당 효과는 10번 중복된다.
-스킬 레벨 : 2
-스킬 숙련도 : 6/100
즉시 체력을 채워 주진 못하지만, 전체 회복량에서는 매우 강력한 회복 스킬.
패시브 스킬인 네이쳐 포스도 이에 못지않게 좋은 스킬이다.
스킬 방어력.
루나틱에서 가장 얻기 힘든 이 능력을 깎아 낸다는 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해당 스킬이 있기에 나무무는 탱커 겸 딜러로서의 능력도 기대할 수 있었다.
'안 죽는 데미지 딜러라.'
웨인은 스킬창을 닫고 씩 웃었다.
'이건 진짜로 대박이로군.'
이 성수를 비롯한 타락한 성직자들의 유품 및 장비는 하임리히 사원의 주 드롭 아이템이었다.
전생에서는 프로메테우스 길드의 주 사업장 중 한 곳.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다르다.
'역시 처음 들어와서 그런지 아이템이 잘 나오는군.'
타락한 성직자들에게서 나오는 아이템.
웨인은 성수의 정보를 확인했다.
<넵튤론의 저주받은 성수>
-등급 : 유니크
-분류 : 재료
-제한 : 신성 속성 아이템에 사용 시 아이템이 파손될 수 있음
-효과 : 사용한 아이템에 강력한 암흑 속성 및 표기된 신의 저주 부여
-기타 : 넵튤론의 축복이 담겨 있던 성수가 암흑의 힘에 의해 타락했습니다. 이것을 사용한 자는 넵튤론 신의 분노를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설명의 아이템.
흑마법사 계열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고서는 쓸 일이 없어 보인다.
실제 프로메테우스가 이 사원을 중요하게 여기던 것도 그 때문.
서문아의 메인 클래스도 있고, 흑마법사 자체도 최상위권 클래스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흑마법사를 얻어 봤자 서문아에게 밀릴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길을 찾으면 그만이다.
"아직 부족하군."
웨인은 성직자 유령들을 마저 사냥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직자 유령들도 가만히 죽지만은 않았다.
"네놈도 어둠 속으로 떨어뜨려 주마!"
"우리들의 잠을 방해한 대가는 무겁다!"
칼칼한 목소리로 저주를 읊는 성직자들!
그러나 그때마다 그들은 멈칫해야 했다.
핫도그의 감지 스킬에 걸리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나무무의 덩굴.
그걸 뚫는다 해도, 유령들을 막는 관문은 하나가 더 있었다.
"크악, 이게 무어냐!"
"벽에 신들의 문양을!"
웨인이 직접 새긴 신성력 관련 문양과 경구가 그것.
흠칫하는 성직자 유령들에게, 번개가 깃든 망치가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다음."
유령들을 처치한 웨인이 말했다.
그렇게 몇 마리를 없앴을까.
-숨겨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단 심문관>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스테이터스창에서 칭호 <이단 심문관>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워낙 많은 성직자 유령들을 처치하다 보니 숨겨진 칭호마저 획득!
웨인은 그제야 인벤토리창을 확인했다.
'저주받은 성수가…… 1,822개…….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신성력 문신을 새기다 보니 문신사 클래스 레벨도 1 더 올랐다.
웨인은 던전을 나와 하얀 포말 왕국으로 돌아갔다.
"오오, 어서 오게."
상의를 탈의하고 움직이던 바르쿨이 두 팔을 벌렸다.
그 뒤로는 수많은 드워프들이 통나무를 옮기고 있었다.
먼발치를 확인한 웨인이 물었다.
"저게 제가 의뢰한 배입니까?"
"그렇다네."
바르쿨은 어깨를 으쓱한 뒤 손짓했다.
"작업 속도가 꽤 빠르지?"
"거의 다 완성된 겁니까?"
"그런 셈이지."
제작 중인 배의 형태는 거대 전열함.
아스티나 대륙 최강국인 아이보른 제국조차도 만들 수 없는 크기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스템상 전열함을 제작 가능한 건 드워프, 그것도 물의 드워프뿐이기 때문이다.
웨인은 배의 형태를 보며 적잖게 놀랐다.
'이렇게 빨리 완성할 수 있다니, 과연 드워프들인가?'
유저나 인간 NPC들이 제작하면 절대 이런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몸통이야 예전부터 창고에서 묵혀 놓던 놈들이 많아서, 오랜만에 큰 배를 만들어 보는군."
후유.
한숨을 내쉰 바르쿨이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인가? 자네도 같이 작업하겠나?"
"그건 아닙니다."
웨인은 손을 저은 뒤 본론을 꺼냈다.
"선박 제작에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언가?"
제작자의 요구 사항이라면 경시할 수 없다.
귀를 연 바르쿨.
이어지는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뭐라……? 축성 성수를 이걸로 사용해 달라고?"
"예."
웨인이 말했다.
"여기, 넵튤론의 저주받은 성수와, 전쟁의 신 아레스, 광기의 신 조크의 축복을 받은 성수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배는……."
바르쿨은 미처 말을 끝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웨인이 준 성수를 쓰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이 배가 걸어야 할 길은 안 봐도 뻔하기 때문이다.
"넵튤론의 저주에 아레스, 조크의 축복이라. 이런 걸 받으면……."
"세상에 단 한 척뿐인 영웅들의 배로 이름이 알려지겠죠. 수많은 해양 몬스터들의 공격을 전부 이겨 낸 드워프의 군선으로 말입니다."
웨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넵튤론의 저주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폭풍, 무풍지대, 대형 몬스터의 습격, 괴혈병 및 안개.
모두 넵튤론과 관련된 일.
아레스의 성수는 그것을 해양 몬스터의 출현으로만 집중시킬 수 있다.
대형 몬스터나 해적, 혹은 적국의 해군을 만날 확률이 대폭 상승!
만약 이 배를 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나날이 반복될 것이다.
여기에 웨인은 조크의 축복을 섞었다.
시련을 극복하고 재미를 준 인물에게 더 많은 경험치와 보상을 주는 광대 신.
바르쿨이 혀를 찼다.
"최강의 배라……."
"하얀 포말 왕국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배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요."
웨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를 시험하는군……."
어깨를 으쓱하던 바르쿨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좋아, 기대하게. 수많은 공격을 스스로 끌어오고, 그것을 전부 이겨 내는 무적의 배라. 이거 의욕이 불타오르는군……!"
-<넵튤론의 저주받은 성수> 1,800개를 주었습니다.
-<아레스의 성수> 1,800개를 주었습니다.
-<조크의 성수> 1,800개를 주었습니다.
5,400개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성수!
작은 병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면 한 도시의 식수로도 쓸 수 있었다.
"더 볼 일이 있는가?"
"그리고 혹시 대장장이 관련 기술들이 있다면 조금 배우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게."
웨인은 추가로 하얀 포말 왕국의 드워프들에게 선박 제작과 관련된 스킬들을 배웠다.
스킬을 배울수록 관련 스테이터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별개로, 이만 슬슬 때를 잡자.'
생각을 마친 웨인은 2개의 창을 동시에 켰다.
한 개는 베르한에게 보내는 메시지 창.
그리고 다른 한 개는 <길드 창설>이라는 탭 목록의 스테이터스창이었다.
그 시각.
어느 방에서 서너 명이 일제히 말했다.
"기껏 고급 전투함을 만들어 두고, 거기다 축복은 못 쓸지언정 저주?"
"이해할 수가 없는데?"
"당연히 대륙 간 무역을 할 줄 알았는데, 뭐지?"
"글쎄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녀.
이들의 정체는 뉴워커 기획부의 유저 전담 업무 담당 직원들.
뉴워커사에서 콘텐츠 창안 및 유저 관리를 위해 새로이 만든 팀이었다.
하는 일은 루나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유저들을 지켜보고, 또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확인된 오류를 보고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