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웨인은 광산 밖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길드 채팅을 통해 새 길드원들에게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민혁 : 프로메테우스 길드에서 유저들이 여기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다들 광산 입구에 모여 주세요.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길드원은 방해만 된다.
싸우기 전에 확실히 포지션을 정해 둘 필요가 있었다.
말을 마친 웨인은 케셀링크도 라바던 동굴을 통해 탈출시켰다.
물론 케셀링크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스승님,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제가 신관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됐어. 이번 전투보다 네가 얻은 대장장이 기술들의 맥을 이어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케셀링크는 레벨도 높고, 클래스도 신관이 있으니 전투 시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웨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NPC는 유저들 간의 길드전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리고 있어 봤자 참가도 못 할 테니, 그냥 빼 놓는 게 낫지.'
방금 말은 적당히 둘러댄 거짓!
그 말에 케셀링크는 감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케셀링크의 호감도가 +1 상승했습니다.
"가라."
"그럼…… 꼭 살아남으십시오."
"걱정하지 마."
케셀링크는 그 말을 마치고 길을 돌아 나갔다.
혼자 남은 웨인은 속도를 높여 걸어갔다.
마침내 도착한 광산 입구.
그곳에는 아까와 같이 수십 명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꽤나 어수선했다.
그렇지만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한 번 이긴 적이기 때문이다.
"길드전 한번 제대로 떠 보는 건가?"
"아까 놈들 정도라면 얼마든지 오라고!"
"PVP 세팅 준비 완료!"
유저들이 저마다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있던 영철이아빠가 웨인 쪽으로 다가왔다.
"저희들이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돕겠습니다. 여기 모두가 동의한 사항입니다."
"모두가요?"
"이 길드에 이미 가입했는데, 나 몰라라 하고 떠날 수는 없지요."
웨인의 질문에 영철이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죽는 거라면 모를까.
어차피 져도 캐릭터 1개를 버리는 정도다.
아깝긴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유저 몇 명이 설명을 보충했다.
"미성년자나 다시 못 키울 만큼 힘든 애들은 저희들이 보냈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으음……."
웨인은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준비하죠."
"예."
길드원들은 제각기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후, 프로메테우스 길드에서 나온 원정대의 유저들이 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선두는 길드 소속 유저들로 이루어진 정찰대!
레인저, 도적 등으로 이루어진 유저 30~40명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에셀 : 클리어.
-베그마 : 여기도 클리어!
단체전에서 정찰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도적 유저들은 철저히 주변을 살폈고, 곧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 잠시 멈춰 있던 심규석 과장이 말했다.
"……좋아, 아무도 없다, 이거지."
"괜찮을까요?"
김효섭 대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상대는 김민혁.
1티어 생산직인 대장장이 클래스에서도 사실상 랭킹 1위를 한 유저였기 때문이다.
"뭐가?"
"만약 이것 때문에 김민혁이 다른 길드에 붙어 버리면…… 괜스레 저희만 욕먹는 거 아닌가……."
"됐어.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
심규석 과장은 손을 내저었다.
프로메테우스 길드는 수많은 이름 있는 유저들과 트러블을 가져 왔다.
그때마다 길드는 무조건 한 가지 큰 규칙을 정하고 움직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먼저 시비를 거는 유저라면, 그게 누구든 무조건 응징하는 것!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긴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하루빨리 김민혁을 몰아내고 광산을 되찾지 않으면, 이 모든 일이 본사에 들어갈 테니 말이다.
심규석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가자."
김민혁의 이야기를 듣고도 그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심규석 과장 본인도 루나틱의 최상위 랭커이기 때문이다.
스스스.
앞으로 걸어 나가는 심규석 의 주변에 빛의 구체가 생겨났다.
레벨 250 제한의 스킬인 라이트닝 가디언 소환이다.
무려 7+급의 스킬로써, 다가오는 근접 유저에게 저항 못 할 데미지의 번개를 내쏜다.
마법사 유저들 중에서도 6급 이상의 스킬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심규석 과장의 레벨은 265.
마법사 랭킹 55위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심규석 과장의 스킬 창엔 6+급 마법이 2개 더 있다.
남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비장의 한 수.
이 정도면 김민혁이 세다고 해도 코웃음 칠 만했다.
'문제는 한 번 PK 하고 나서의 일인데, 그 부분은 애초에 행동 지침대로라고 고하면 본사 쪽도 크게 책잡진 않을 테지. 어차피 데오마론과 커넥션도 이어 가고 있으니까.'
프로메테우스 길드는 실력 우선주의!
회사의 직급 외에도, 이런 공적에 따라서 얼마든지 보너스나 연봉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일을 무조건 깔끔하게 해결해야 해. 그래야 프로메테우스 길드에 남아 있을 수 있어.'
심규석 과장은 각오를 다지고 움직였다.
광산 입구.
김민혁은 그곳에 앉아 닉네임을 드러낸 채 기다리고 있었다.
"김민혁……."
"진짜 김민혁인가, 가짜 아니야?"
길드 유저들이 술렁였다.
대부분은 진짜로 그 김민혁이 눈앞에 있는 걸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장장이 랭킹 비공개 1위 유저.
랭킹 10위권도 만나기 극히 어려운 루나틱에서, 1위 유저란 TV 속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주눅이 든 프로메테우스 길드원들.
그 사이에 있던 심규석 과장이 비로소 앞으로 나섰다.
"김효섭 대리에게 상황 전해 들었습니다. 광산에 있던 저희 길드 유저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해 죽였다고 하더군요."
"댁들이 먼저 우리 길드 유저들을 쳤잖아. 그 사실은 못 들었나?"
"먼저 남의 사업장에 침입하려고 한 건 그쪽 아닙니까?"
"던전에 사업장이 어디 있어? 공장 돌리는 것도 아니고, 별 미친 소리 다 듣겠네. 너희 길마한테 물어봐라, 사업장이란 게 있나."
웨인은 짐짓 도발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심규석 과장이 대답했다.
"협박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본사는 이 사실을 모르니까요. 여기 온 건 제 충실한 부하들이니, 위에 알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럼 더 미친놈이네, 니 맘대로 작업장이니 뭐니 그런다는 거 아냐?"
"하……."
심규석 과장은 한숨을 내쉬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깔끔하게 해결합시다. 길드전 한 판 벌여서 주인이 누군지 가리죠. 서로 경험치나 아이템 떨어뜨리는 일 없이."
사냥터를 건 결투. 흔히 말하는 자리빵이라는 것이다.
과거, 다른 게임들에서도 꿀 사냥터를 두고 이런 식의 다툼이 유행했다.
웨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뒤에 따까리를 그렇게 이끌고 왔는데, 내가 받아들이면 바보 멍청이지."
"길드 하우스를 걸지요. 받지 않는다면 사냥 방해로 처리하겠습니다."
"흠……?"
길드 하우스라면 이페루스시에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지부다.
도시 자체도 그렇고, 근처의 아트마 광산 때문에 추후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길드 하우스!
미래를 아는 웨인의 눈빛이 번득였다.
"혹시 길드 하우스가 없습니까? 그럼 뭐…… 장비 아이템을 거셔도 상관없습니다."
"누가 없대? 마블포트의 길드 하우스를 걸지."
"마, 마블포트!"
심규석 과장의 눈이 커졌다.
마블포트는 카이사 대륙 서부의 물류 중심지 중 한 곳이었다.
프로메테우스도 대형 길드 하우스를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항상 실패로 끝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이 현재 KU 길드의 중심 거점이기 때문이다.
'산하 길드 하우스를 빌려 쓰던 곳인데…… 그곳의 길드 하우스를 건다고?'
마블포트의 길드 하우스를 얻어 간다면 보통 공이 아니다.
성과급은 물론, 연봉 인상이나 승진까지 노려볼 수 있는 엄청난 공적이었다.
눈이 돌아간 심규석 과장이 외쳤다.
"정말인가? 그 말이!"
"어차피 안 받아 줘도 강제로 PK질 해 댈 거 아냐? 강제로 내 줘야 할 거, 그냥 여기서 걸고 싸워 주지. 대신 그쪽도 길드 하우스 걸고."
"……좋아, 그렇게 하지."
심규석 과장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로메테우스 길드-이페루스 지부'가 '드림 라이프 길드'에 길드전을 신청했습니다.
-길드전을 승낙하시겠습니까? (Y/N)
대규모의 길드는 각 지부마다 별도로 길드전을 할 수 있다.
물론 상부에서 연락이 오면 그쪽에 합류하는 건 마찬가지.
그러나 지금 프로메테우스 길드 상층부는 이 길드전을 모르고 있었다.
웨인은 길드전 창을 보며 생각했다.
'계획대로군.'
슥.
조건을 본 웨인은 길드전 수락을 눌렀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건 정당방위입니다, 프로메테우스 길드 여러분."
"힉……!"
김효섭 대리가 흠칫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에 혀를 찬 심규석 과장이 외쳤다.
"가자!"
-길드전이 열렸습니다.
-승리 조건은 상대 길드의 길드장 처치입니다.
타탓.
프로메테우스 길드의 유저들이 웨인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 데리고 길드원은 총 800명.
지부의 길드원 80% 이상을 데리고 온 셈이다.
심규석 과장은 자신이 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타탓.
웨인은 오는 길드원을 보자마자 광산 안으로 도망쳤다.
그 뒤를 길드원 수백이 따라 들어갔다.
"잡아!"
"우와아아!"
선두로 들어간 길드원에게 대기 중이던 드림 라이프 길드원들이 공격했다.
작정하고 한 세팅이었지만, 그 공격은 맨 앞, 1~2명을 로그아웃시키는 데 그쳤다.
디펜드! 실드 차지!
나머지 탱커들은 각종 스킬을 쓰며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그 뒤를 따르는 마법사들이 목책이나 방패를 향해 마법을 쐈다.
광산 입구.
심규석 과장은 들어가는 길드원들에게 계속 명령을 내렸다.
-심규석 과장 : 아트마 광산은 넓어. 너무 흩어지지 말고, 천천히 움직여라.
-이경문 사원 : 네.
-조동연 사원 : 과장님, 김민혁이 보이지 않습니다. 계속 들어가도 됩니까?
-심규석 과장 : 괜찮아. 어차피 그 광산, 뚫린 덴 입구 하나뿐이니까.
아트마 광산은 안이 넓지만, 출입구는 눈앞에 있는 곳 하나뿐이다.
즉, 저곳만 잘 관리하면 뒤치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대로라면 김민혁은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다.
심규석 과장은 흐흐하는 웃음을 흘렸다.
뜻밖에 마블포트의 길드 하우스를 얻게 된 셈.
이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셈이었다.
'마블포트의 길드 하우스를 얻고, 그 공로로 차장 승진에 가산점을 대폭 늘린다. 그렇게 차장, 부장까지 가면…….'
남들이 서류를 보고 현장에서 뺑뺑이나 돌 때, 자신은 루나틱을 편하게 즐기며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심규석 과장!
그의 눈앞에 갑자기 대량의 알림이 떠올랐다.
-'THEcarrot's'님이 사망했습니다.
-'후시딘트'님이 사망했습니다.
-'만렙까지밤샘'님이 사망했습니다.
연이어 뜨는 프로메테우스 길드원의 대량 사망!
벌떡 일어난 심규석 과장이 채팅 창을 열었다.
-심규석 과장 : 뭐야! 왜 갑자기 이렇게 죽어?
-조동연 사원 : 길드원 놈들이 함정을 파 뒀습니다.
-조동연 사원 : 저항이 꽤나 거세서……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빠득.
심규석 과장이 이를 갈아붙였다.
그는 그대로 주변 길드원에게 명령했다.
"내가 직접 나서겠다!"
"네, 과장님!"
마법사 클래스 랭킹 55위.
상위 랭킹 0.1% 안에 드는 대마법사, 심규석 과장이 직접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