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가다로 게임지존-207화 (208/592)

207화

부산의 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

파앗!

VR 기기가 열리고, 그 안에서 한 남자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방금 접속을 종료한 김민혁이다.

"후우……."

창 바깥은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김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마동식이 그 사람이었다니."

베르한이 건네준 정보에는 놀라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동식이라는 이름의 유저는 사실 마동식이 아니라는 것.

본명은 마재훈.

마동식은 인게임 내에서 임의로 만든 ID였다.

정보원 유저 몇 명을 통해 얻어 낸 사실!

거기서 김민혁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눈치챘다.

'이분, 나랑 만난 적 있잖아?'

과거, 김민혁은 성모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고아원에서는 각 요일마다 한 가지씩 다른 특기를 가르쳐 주었다.

월요일엔 피아노, 화요일엔 수학 같은 식.

그리고 그 당시 무예를 가르쳐 주던 자원봉사자가 바로 마 관장. 마재훈이었다.

'설마, 마재훈 관장님이 프로메테우스 길드의 그 마동식이었다니.'

김민혁은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김성모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민혁 군.

"예. 원장님."

-잘 지내지요? 별일 없으면 한번 들러요.

"예. 여유가 나면 그렇게 하죠."

간단한 이야기가 몇 분 동안 오갔다.

그 후 김민혁은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혹시 원장님, 마 관장님 기억하십니까?"

-마 관장님이라면?

"10년 전이었나, 제가 어릴 때 매주 토요일마다 오시던 그분입니다. 태권도랑 검도 가르치셨던."

-아, 마 관장님…… 잠깐만요. 조금 이따가 내가 다시 걸게요.

수화기 건너편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10년 전 일이다 보니, 관련 문서를 찾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거실 소파에 누운 김민혁은 옛날을 회상했다.

'아마 1년쯤 오시다가 안 오시던 것 같은데.'

손가락을 튕기던 김민혁의 표정에 짜증이 어렸다.

"이거 기억이 생각보다 잘 안 나네."

혼잣말과 함께 입맛을 다시는 김민혁.

루나틱 관련 지식이라면 달달 읊을 수 있었다.

과거 사채업자들의 닦달에 억지로 외웠던 각종 꿀팁과 지식!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허락받았던 여가가 바로 루나틱 정보 외우기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것.

예를 들면 사채업자에게 끌려가기 전의 일들은 안개가 끼인 듯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20년간의 생활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이다.

'회귀가 아니었으면 얼마나 끔찍했을지.'

김민혁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삐리리!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원장님."

-민혁 군, 오래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찾았어요. 10년 전에 자원봉사자로 오시던 분이죠?

"네."

-기록이 남아 있네요. 마재훈 관장님. 음…… 그런데 지금은 연락처가 다 바뀌었어요. 따로 남긴 말도 없고.

"……그런가요."

김민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긴, 시간이 그만큼이나 지났는데 바뀔 만도 하지.'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 시간.

그동안 사람 연락처가 그대로인 게 더욱 이상했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음……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긴 있어요.

"그게 누굽니까?"

-백인후 군이예요.

김민혁은 순간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백인후.

언젠가 연락은 해 봐야지 했지만, 여기서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백인후요?"

-그러네요. 백인후 군이야 예전부터 여러 강사분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으니까요.

"음……."

잠시 망설이던 김민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연락할 거였으니까, 그게 지금이 되어도 딱히 상관은 없겠지.'

원장과의 연락을 마친 후, 김민혁은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유행가가 10여 초쯤 울린 뒤, 스마트폰 너머에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여보세요. 홍명전자 백인후입니다.

"백인후?"

-어? 민혁이 너야?

수화기 너머의 어조가 밝아졌다.

"그래, 그런데 너 홍명전자는 뭐냐? 혹시 취직했냐?"

-어, 얼마 전에 아는 형님 소개로. 하던 일 청산했다고 하니까 잘됐다면서 영업 사원직 꽂아 주시더라.

어렸을 때부터 외향적이었던 백인후다.

판촉, 영업 사원이라면 그에게 딱 맞는 직업인 셈이다.

-안녕하세요! 홍명 전자…….

각 집을 돌아다니는 백인후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올라왔다.

크흠.

헛기침을 한 김민혁이 물었다.

"그래, 넌 그쪽 일 잘할 것 같더라. 일은 잘되어 가?"

-그럼! 요새 VR 기기 파느라 정신없다. 애들은 물론이고, 아빠나 엄마들 것도 하나씩 달라고 하더라. 덕분에 요새 잠도 제대로 못 자. 24시간 파느라. 크흐흐.

루나틱을 통해 일어난 VR 기기 붐!

초창기에는 말 그대로 인터넷, 게임 용도의 기기들뿐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VR 기기만 있으면 루나틱 외의 다양한 게임, 그 외에도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현재 백인후가 하는 일은 그런 VR 기기를 파는 영업 사원.

특히 루나틱 및 각종 게임 관련 기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고 했다.

'잘살고 있군, 다행이야.'

김민혁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하긴 이 녀석도 죽기 전까지는 다 잘해 나갔으니까.'

코인판.

사람을 송두리째 털어 먹는 지옥에서도 백인후는 나름 이득을 보았다.

문제는 나중에 자산까지 전부 말아먹었다는 것.

그러나 그건 코인 시장이 워낙 위험했기 때문이다.

건실한 일.

도박성이 없는 일을 한다면, 백인후도 충분히 제 능력껏 먹고살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김민혁은 크흠 소리를 낸 뒤 말했다.

"예전보다는 괜찮네."

-야, 그때는 맨날 룸살롱을 가도 돈이 남았어!

"그래, 딴마음 먹지 말고 계속 거기 있어라. 이상한 데 들어가서 신세 망치지 말고."

진심 어린 충고!

전생의 나이까지 합치면 50대에 가까운 김민혁이다.

말에 담긴 뼈를 느낀 백인후가 애써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안 그래도 그거 말하려고 했다. 들어 보니까 화 좀 풀린 거 같네. 고맙다, 자식아.

"무얼."

-참, 그러고 보니 너는 어떻게 사냐?

"그럭저럭. 아무 일이나 하고 있어."

김민혁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겼다.

돈 관련 문제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친형제였던 사채업자들이 돈 때문에 칼부림이 나기도 했었으니까.'

과거를 회상하던 김민혁.

그때였다. 백인후가 잘됐다는 듯 제안했다.

"먹고살 일? 야, 그럼 영업 사원은 어때. 여기 지금 블루오션이야!"

홍명전자의 판촉 영업 사원.

기본급 180에 성과급은 건당 10%씩.

VR 기기는 개당 수백을 호가하니, 기기 몇 대만 팔아도 100만 원 이상의 여윳돈을 챙길 수 있다.

잘만 하면 노다지 직업 그 자체인 셈이다.

-내가 이거 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좀 있거든? 이것만 따라하면 우수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야.

"……마음은 고맙지만, 나랑 안 맞아서."

김민혁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얘기가 길어지기 전에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어.'

마재훈.

10년 전 연락이 끊긴 사람이지만, 백인후라면 정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과도 연락을 하고 있을 놈이다.

-야, 이거면 무조건 대박…….

"알았어. 그나저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어? 응, 뭔데?

"혹시 마 관장님 기억하냐? 10년 전에 검도랑 태권도 가르쳐 주시던."

-아…… 마 관장님…….

'어라?'

김민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대답하던 백인후의 어조가 갑자기 낮게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뭔데 그래?"

-그게…… 좀 일이 있다.

"일?"

-관장님 지금 좀…… 큰일이 나셔서, 요즘 많이 안 좋게 사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거야.

'잠깐만, 뭐라고?'

***

30여 분 후, 사정을 들은 김민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소식이랑 연락처 고맙다."

-뭘,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그래, 조만간 다시 연락하마."

-응…… 맞다, 야! 너도 루나틱 하지?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백인후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루나틱?"

-어, 요새 진짜 갓겜이잖냐. 전 세계 흥행작 역대 1위! 가상현실 최초, 최후의 게임 루나틱!

백인후는 잠깐 숨을 들이마신 후 말을 이었다.

-내가 그거 VR 기기 판촉 사원이거든? 루나틱 전용 VR 기기 혹시 필요하면 말해라. 싸게 팔게.

"싸게?"

-그럼. 우리가 어떤 사인데. 진짜 이득 없이! 딱 본전만 남기고 준다.

엄청난 고가를 자랑하는 VR 기기!

특히 루나틱 전용 VR 기기는 그중에서도 더욱 비쌌다.

일반 기종은 300~400만 원.

그러나 각종 기능이 있는 최신 기종은 500만 원을 우습게 넘길 정도.

그러나…….

김민혁의 얼굴에 피식 미소가 어렸다.

"알았어. 루나틱 하고 싶을 때 연락하면 되지?"

-그래. 너도 맨날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을 거 아냐. 요새 신규 유저 이벤트도 한다는데, 지금 시작 안 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걸?

물론 신규 유저 이벤트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경험치 500%, 부스터 캐, 그리고 초보자용 레어 아이템 패키지까지.

새로운 업데이트를 앞두고 신규 유저를 끌어모으기 위한 이벤트다.

루나틱을 안 하던 사람들도 절로 들어오게 하는 수많은 혜택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받을 수 없는 것들이지.'

전화를 끊은 김민혁은 혀를 찼다.

"그래, 신규 유저 혜택은 너나 실컷 받아라."

애당초 이벤트의 대상에 김민혁은 끼어 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규 유저.

뉴비라 불리는 사람들의 기준에 대장장이 랭킹 1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시간이."

김민혁은 시계를 보았다.

'……아직 때가 아니군.'

베르한의 정보에 의하면 마재훈의 접속 시간은 낮부터 새벽까지.

아직 점심 전인 지금 가 봤자 시간만 버릴 상황이다.

'그렇다고 채광이나 작업을 하기도 뭣한데…….'

집이나 치워야겠군.

생각을 마친 김민혁이 막 청소 도구를 꺼내려는 순간.

삐리릭!

스마트폰이 새 알림을 띄웠다.

발신인은 황종진 변호사.

내용은 지금 당장 사무실로 와 달라는 메시지였다.

"지금 당장?"

스윽.

시계를 본 김민혁이 생각했다.

'두어 시간쯤 남았군.'

현 시각은 오후 11 : 30분.

변호사를 만나고 오면 대략 1시 30분이나 2시 남짓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잠깐 갔다 와 볼까.'

스윽.

옷을 챙겨 입던 김민혁이 피식 웃었다.

무슨 이유인진 충분히 예상이 간다.

'놀랐겠지. 슬슬 '그때'가 오고 있을 테니.'

***

"라이버 코인 200%, 칼튠 코인, 아이다스틱스 코인은 각각 180%씩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8억쯤 불어난 거군요, 제 재산이."

"……맞습니다."

김민혁의 대답에 황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버 코인.

한때 대한민국을 크게 뒤흔들었던 투기 파동의 이름이다.

앞으로 더욱 오를 미래가 예정된 화폐.

황종진은 차트 몇 개를 가져왔다.

"자산의 절반은 제가 따로 주식 및 안전 채권에 따로 투자를 했었는데, 이거는 각각 0.2%씩 이득……."

설명을 하던 황종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말해도 전자에 비하면 미미한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민혁은 담담했다.

'과거와 똑같군.'

라이버 코인을 기점으로 크게 뛰어 오르는 코인 시장.

한때는 국가가 코인을 사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그 상승세는 엄청났다.

미래, 바트 코인이 혜택을 받고 나머지가 전부 폭락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아직 시작 단계.

시간이 지날수록 라이버 코인의 값은 몇 배로 뛰어오르리라.

"이거는 지금 당장 팔아도 2배 가까이 이득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선……."

"일단은 내버려 두죠. 언제 팔아도 원금보다는 나을 테니까."

"제 생각도 같습니다."

황종진 변호사는 스마트폰 앱과 차트를 몇 개 가져왔다.

"길게 말할 것 없습니다. 16억이 24억으로, 총 8억 이득을 보셨다고 보시면 됩니다."

"24억요?"

"예. 여기를 보시면…… 진짜 대박입니다."

띠링.

스마트폰 화면에 코인 거래 사이트가 떴다.

수많은 숫자들 아래.

해당 계좌주가 얼마나 이득을 보았는지의 결과가 붉은 글씨로 나와 있었다.

'……대박 맞군.'

지금은 단순한 숫자지만, 통장에 넣는 순간 그대로 현금이 된다.

세금을 낼 필요도 없는 100% 김민혁의 자산!

"하하."

김민혁은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

전생에 있었던 빚의 총액은 약 4억.

이 정도 재산이 있다면 그만한 빚을 6번은 갚고도 남았다.

"어떻게 예상하신 건진 모르겠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대박이군요. 아무래도 자산 관리사 사표 내야 할 듯싶습니다."

황종진 변호사가 허탈하게 웃었다.

건물을 나온 김민혁이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하루쯤은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해 줘도 괜찮겠지?'

적당히 즐기는 것도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

아무리 돈을 쌓아 봤자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좋아, 결정했어.'

주먹을 말아 쥔 김민혁이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외식이다, 최상급 한우 소고기 요릿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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