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쉐에끼……들, 그럴 거면 먹지나 말든가……."
의문의 괴인은 자리에 앉아 술주정을 부렸다.
웨인은 일단 무기를 거둔 뒤 남자의 말을 들었다.
'혹시 히든 퀘스트나 히든 피스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히든 퀘스트가 아닌, 간단한 퀘스트라도 레벨 업에는 도움이 된다.
반복 퀘스트라 해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남자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힐랜트 크랩터스.
크래커 섬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온 진짜배기 무인도 사람이었다.
검 한 자루를 벗삼아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생존자!
웨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쩌면 숨겨진 검술의 달인일지도 모르겠군.'
비전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특수한 위치의 NPC들을 만나야 한다.
미래, 수많은 유저들은 그들을 찾기 위해 카이사 대륙 각지를 뒤졌다.
외진 숲이나 험지.
혹은 만년설 가득한 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유저들의 행렬!
설령 NPC를 찾는다 해도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외진 곳에서 홀로 수련을 한 달인들.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외고집이나 괴짜, 고집불통이 많다.
-내 스킬을 배우고 싶다고? 자격이 된다는 걸 증명하고 와라. 어디…… 에인션트 서펜트 킹의 목 정도면 되겠군.
-부족해, 역시 부족해! 북쪽 황야에 있는 리치 라마나를 잡아 와라. 그 정도 실력이 아니면 내 스킬을 배울 수 없어.
애써 퀘스트를 완료해도 변덕에 맞춰 뒤로 미뤄지기 일쑤!
심지어는 전부 완수해도 그냥 싫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 NPC들의 정보는 엄청난 고가에 거래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몇 없는, 어쩌면 단 하나뿐일지도 모를 비전 스킬의 담당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NPC들 중 1명이 여기 없으리란 법도 없다.
'꽤나 비싼 정보가 되겠어.'
과거, 우드 위키 및 정보엔 등록되지 않았던 숨겨진 이득.
얻어서 이득이 되면 됐지 손해 볼 건 없다.
웨인이 생각을 마친 순간, 남자가 쏘아붙였다.
"게 맛도 모루눈 주줴에 내 서메 오다니, 눠히들에게 할 말은 아무거또 업다. 얼른 떠나!"
"게 맛이라…… 그럼 맛있는 요리를 해 드리면 되는 겁니까?"
"됐어! 아까 니눔 하는 걸 다 봤는데 무슨……."
"그건 간단하게 먹은 거고, 지금부터 제대로 한 요리를 보여 드리죠."
웨인이라고 요리를 배우지 않은 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간단한 요리 스킬은 직접 배웠고, 또 직접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다.
특수 사료 제작 등은 아직 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요리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
게다가 요리 스킬은 손재주 스테이터스의 영향을 받는다.
'요리 스킬 사용.'
-요리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웨인은 인벤토리의 향신료와 게살을 넣고, 레시피대로 스킬을 사용했다.
스테이터스가 높은 만큼 전적으로 시스템에 맡기는 방법이다.
물론 본인의 손재주에 따른 대박의 기회는 사라진다.
그러나 대신 직접 할 시에 생기는 수많은 오류를 자동으로 잡을 수 있었다.
-<꽃게탕>을 요리했습니다.
-<매콤 게살 찜>을 요리했습니다.
-<짭짤 게살 찜>을 요리했습니다.
-<게살 토스트>를 요리했습니다.
등급을 확인한 웨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유니크급 요리 3개, 레어급 요리 1개라…….'
요리가 만들어질 때마다 해당 아이템에 붙는 등급!
어떤 재료를 쓰느냐.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과 효과도 크게 달라진다.
현재 웨인이 만든 건 그중 웬만한 요리사의 평균 이상.
돌란 크랩과 파탄 랍스터의 살.
궁중 요리에 들어가기도 하는 고급 재료를 아낌없이 썼기에, 요리의 등급도 그만큼 높게 나왔다.
'하지만 확실히 해 둬야겠지.'
웨인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토스트에 발랐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웨인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먹어 보고 이야기하든지 말든지 하십시오."
"으으음……."
힐랜트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꽃게탕과 두 게살 찜.
요리가 줄어들 때마다 규칙적으로 반응이 나왔다.
"봐 줄 만은 하군. 에잉……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가차 없이 나오는 혹평!
그럴수록 웨인의 표정도 차분해져 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전 스킬 NPC들은 매우 괴팍해, 기준 미달인 유저는 다짜고짜 쫓아내기 일쑤.
그런 그가 말이나마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기준은 채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슬 때가 됐군.'
씨익.
입꼬리에 미소가 올라온 순간, 힐랜트가 게살 토스트를 집어 들었다.
"음…… 음?"
쩝쩝.
게살 토스트를 베어 문 힐랜트의 눈이 커졌다.
'이 맛은…….'
앞선 요리와 다를 바 없는 게살.
그러나 이 토스트에는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
웨인은 조용해진 힐랜트를 보며 생각했다.
'예상대로야.'
메인 메뉴이긴 하지만 세 요리는 모두 유니크 등급.
후식으로 나온 게살 토스트는 그보다 더 낮은 레어 등급이었다.
간단히 먹는다는 요리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나 지금, 앞서 나온 세 메인 요리는 모두 에이스가 아니었다.
비장의 한 수는 바로 게살 토스트!
현재 힐랜트가 먹는 그것의 등급은 무려 '에픽'급이었다.
왕실 요리사의 야심작과 같은 급.
합격점을 맞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음…… 으음…… 으으음……! 쿨룩! 컥! 커허억!"
계속해서 토스트를 입에 밀어 넣는 힐랜트!
너무 급하게 먹다가 걸렸는지 기침 소리까지 나왔다.
웨인은 게 국물을 내주며 생각했다.
'역시 이걸 쓰길 잘했어.'
예스잼.
한때 조리법이 소실되었던 전설적인 잼 요리.
그러나 현재는 황실 요리사 알레그로에 의해 복원된 상태다.
최소 400레벨 이상 요리사들의 최고급 조리법.
그 외에도 현재 웨인에게는 세 병 정도 완성품이 있었다.
'알레그로가 만들어 둔 게 남아 있어 다행이군.'
토스트 등급을 단숨에 2개나 올릴 수 있었던 비결!
국물까지 다 비운 힐랜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크으, 이게 게 맛이구먼."
"만족하셨습니까?"
"……단숨에 술이 깨는걸. 멀쩡한 기분으로 사람을 만난 건 오랜만이야."
술기운이 가신 힐랜트는 더 이상 광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누굽니까?"
"……한때 대양의 검사라 불리긴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라네."
대양의 검사!
웨인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 스킬 전수 NPC가 여기 있었을 줄이야!'
실전된 검술 비전 스킬 중 하나인 대양의 검술.
그러나 미래에는 스킬 자체보다 다른 검술 스킬 때문에 훨씬 유명해진 스킬이다.
'지옥불 검술의 유일한 카운터였었는데, 그게 밝혀지지 않아서 난리도 아니었었지.'
카운터가 없는 비전 스킬이었던 지옥불 검술.
해당 스킬 북 및 스킬 전수권은 거의 차 한 대 값에 팔릴 정도였다.
"어째서 당신이……."
"노예제를 반대하다 누명을 쓰고 추방당했지. 지금은 이 곳에서 홀로 사는 신세라네."
설명을 마친 힐랜트가 웨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쨌든 방금 먹은 건 맛있었어. 나도 그 답례를 해야지."
"답례?"
"만약 자네가 검사였다면 검 쓰는 법을 조금 가르쳐 줬겠지만……."
힐랜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아하니 자네는 대장장이로군, 그것도 엄청난 실력의."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검술을 줘 봤자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고…… 대신 이걸 받게."
-<대양의 검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닙니다.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퀘스트가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검 관련 클래스가 아니기 때문에 퀘스트나 스킬을 받을 수가 없는 웨인.
그러나 힐랜트는 다른 것을 내밀었다.
-<게살 버거>를 획득했습니다.
-<게살 버거 레시피>를 획득했습니다.
알림을 확인한 웨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게살 버거는 익숙한 모양새의 아이템이었다.
흔히 패스트푸드점에서 볼 수 있는 종이 포장.
그 속에 있는 원형의 통밀빵과 안의 각종 야채에 갈색 패티까지.
"……햄버거?"
"게살 버거지. 인어들의 별미 간식 중 하나야."
힐랜트의 설명과 함께 관련 창이 떠올랐다.
<게살 버거>
-등급 : 에픽
-분류 : 요리(소모품)
-제한 : 없음
-효과 : 배고픔 해소, 일시적으로 힘, 체력, 행운 스테이터스+30 상승, 영구적으로 체력, 행운 스테이터스+1 상승, 게살 피자 노래 스킬 획득
-기타 : 바다 밑에 있던 어느 도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햄버거. 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음식을 먹지 않은 사람뿐이라고 한다.
'먹는 순간 영구적으로 체력과 행운 +1 상승이라…….'
입맛을 다시던 웨인에게 힐랜트가 말했다.
"출출할 때 먹게. 후회하지 않을 거야."
"레시피까지 가져가도 됩니까?"
영구적인 스테이터스 상승은 작은 효과가 아니다.
설령 그것이 1밖에 안 되더라도.
그러나 힐랜트는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쓰이지도 못할 테지. 이거밖에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가겠네. 내일은 다시 취해 있을 것 같으니. 그때는 다른 곳에서 쉬는 게 좋을 거야."
경고까지 남기고 돌아서는 힐랜트.
그래도 섬을 떠나지 않는 건 다행이었다.
혼자 남은 웨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섬을 미리 사 둬야겠군.'
미래, 지옥불 검술은 루나틱의 역대 사기 스킬 중 10위 안에 들었다.
심지어 운영진 측의 너프를 먹은 게 그 정도.
사실상 한때 온 메타를 평정했었던 스킬인 셈이다.
그러나 만약 그 메타의 카운터가 나타난다면?
'아직 이 검술은 드러날 때가 아니다.'
웨인은 무심결에 손을 들었다.
평소 습관대로 생각을 하면서 무언가를 먹은 것이다.
으적.
게살 버거를 씹는 입.
그 순간, 웨인의 온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었다.
'이 맛은……!'
옛날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만화인 '스폰x밥.'
뉴워커 운영진은 그 속의 맛을 온 힘을 다해 재현해 놓았다.
오직 가상현실에서만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최고의 버거 맛!
이스터에그 중에서도 각별히 신경 쓴 풍미다.
꿀꺽.
게살 버거를 먹어치운 웨인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미미(美味)"
***
몰이사냥은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그물을 친 다음 핫도그와 나무무가 각자 스킬을 사용한다.
백사장으로 몰려나오는 게, 가재들을 잡는 건 웨인의 몫!
잘 익은 게와 가재 몬스터는 좋은 점심이자 경험치 공급처였다.
하루 종일 사냥해서 얻는 경험치는 대략 31%.
약 나흘 정도 사냥에 임하면 레벨 1을 올릴 수 있었다.
'아마 모든 유저 중 가장 빠른 성장 속도일 테지.'
웨인은 돌란 랍스터를 잡으며 생각했다.
현재 그의 레벨은 246.
같은 레벨대 유저라면, 거대 길드의 지원을 받아도 하루 7% 정도가 한계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헬렙'이라 불리는 200레벨 이후의 경험치는 그만큼 올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난이도나 필요 경험치 모두 100~200구간의 최소 10배 이상.
고레벨 유저의 도움을 받아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파티를 통한 육성.
흔히 말하는 '쩔'을 해 주기엔 200레벨 후반대의 던전들이 너무 강력했다.
'사나흘에 1업이라니, 믿기지가 않는군.'
계속 몬스터를 잡는 사이 이변도 일어났다.
쿠오오오!
집채만 한 거대 괴수들.
게 우두머리 킹 파탄이나 퀸 돌란들이 포효했다.
둘 다 무려 레벨 293과 294의 괴물들!
파탄 크랩과 돌란 랍스터를 1만 마리씩 잡아야 나타나는 히든 보스들이다.
몸이 익었다 하더라도 상대하기 어려운 보스.
그날 웨인은 악착같이 도망다니며 두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천신만고 끝에 특별한 보스 재료와 장비들을 독식!
섬에서 얻은 수확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웨인은 노가다를 하며 바깥의 정보에도 귀를 기울였다.
뉴비 반과 빡겜 반의 적응 및 성장.
특히 그중에서도 마재훈의 활약은 눈부셨다.
이벤트 효과가 있었다고는 하나 열흘 만에 100레벨을 찍었으니 말이다.
충분히 과거 프로메테우스의 히든카드가 될 만한 레벨 업 속도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무혈사신은 드래곤 마스터의 자취를 찾았고, 지존법사는 마족들의 전투 흑마법 비전 퀘스트를 획득했다.
아마란스도 '신수'의 발자취를 찾는 중.
모두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크게 앞당겨졌다.
웨인, 그리고 드림 라이프 길드를 통해 크고 작은 도움을 얻은 덕분.
한편 프로메테우스와 KU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일곱 역경 극복을 클리어하거나, 혹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한 던전 점거 및 매복!
4대 길드 중 둘이 거세게 부딪치면서 게시판도 연일 최고 글리젠을 갱신 중이었다.
-프로메테우스랑 KU 서로 견제 중.
-4대 길드 둘이서 싸우니까 진짜 스케일 오지게 크네요.
-금역 공략 못 하게 서로 견제 중이라던데. 가서 팝콘 좀 씹기 고?
-하지 마셈. 저기 끼면 양쪽 길드가 같이 죽여 버림.
-미친, 겜 못 하겠네.
수많은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한 달이 지났다.
현실에서는 슬슬 겨울이 되어 갈 무렵.
끼루우우욱!
거대 괴조 보스, 알바트로스가 최후의 비명을 토해 냈다.
그 앞에 서 있던 한 남자, 웨인이 있는 힘껏 망치를 휘둘렀다.
퍽!
알바트로스의 죽음.
동시에 웨인의 눈앞에도 새 알림이 떠올랐다.
-레벨 업!
-현재 레벨은 250입니다.
미리 맞춰 둔 250레벨 알림!
레벨 창을 보던 웨인이 씩 웃었다.
"어떻게든 때에 맞췄군."
철컹.
손에 들려 있던 망치가 바뀌었다.
봉인되어 있던 카드모스의 화염 망치.
새 무기를 장비한 웨인이 생각했다.
'왕릉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레벨을 맞췄으니, 슬슬 다음 작업을 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