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한빛산업의 첫 주주총회이자 마지막 주주총회!
인수, 합병이라는 큰 주제에 비해 총회는 생각보다 조촐하게 치러졌다.
한빛산업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 주주들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걸로 한빛산업과 뉴워커사(社) 간의 인수 합병이 결정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박수와 함께 한빛산업과 뉴워커사 간의 인수 합병 처리가 끝났다.
구재연 사장과 박인찬 전무, 그 외의 직원들은 대부분 뉴워커사에 이직했다.
반면 고용을 원하지 않거나, 채용하기에 능력이 마땅치 않은 직원들은 후한 퇴직금을 받고 퇴직했다.
불만 한 가닥 나오지 않을 만큼 깔끔한 일처리였다.
***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무엇보다 잡음이 안 나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구재연 사장의 감사 인사에 뉴워커사에서 나온 간부는 고개를 내저었다.
흔히 있는 대기업과 벤처 기업 간의 부조리는 뉴워커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대한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잡음을 배제한 채로 처리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식이다.
특히 뉴워커의 주력 사업인 '루나틱 온라인'은 여론에 민감한 항목이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한빛산업이 개발해 낸 기술은 루나틱 온라인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니, 일말의 잡음 없이 처리하는 게 더욱 중요하지.'
중요한 기술일수록 트집 잡힐 일 없게 말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지출이 추가되지만, 뉴워커사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찌됐건 이번 거래로 뉴워커사로서는 필요한 원천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빛산업의 유능한 인력까지 획득!
합병으로 인해 약간의 불만을 가질 수는 있을지언정 그래도 최선의 형태로 인수, 합병이 끝났다.
관련 소식은 조만간 경제 신문을 통해 기사로 나왔다.
-뉴워커사, 한빛산업 인수하다.
-VR기기 싱크로율의 신기술, 뉴워커사에게 넘어가.
-벤처 3기업 성공 신화, 젊은 청년들에게 모범…….
평소와 비슷한 제목과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빛산업의 속사정이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이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빛산업의 대주주는 뉴워커의 플레이어?
-'루나틱 온라인'의 비공개 랭커, 게임사의 대주주가 되기까지.
-미운 오리 새끼, 단숨에 백조로 변하다! 20배 이상 가치 상승!
-기적의 '존버'? 혹은 게이머의 감각?
김민혁.
신형 장치의 홍보 모델인 그가 한빛산업의 최대 주주라는 게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루나틱 플레이어 김민혁, 알고 보니 한빛산업의 대주주?
-신형 VR기기 홍보는 신의 한 수? 한빛산업을 살린 일등 공신으로 밝혀지다!
당연히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철저한 계산과 투자로 대박을 손에 넣은 투자자는 기사로 만들기에 가장 무난한 주제 중 하나다.
심지어 기사를 쓰면 루나틱 유저들이 알아서 읽어 주고 퍼 날라 주기까지 한다.
트렌드를 읽은 기자들이 너도 나도 뛰어든 덕분이었다.
-우연이 아닌 철저한 계산? 대장장이 플레이어로서의 경험이 '대박'으로 돌아오다.
-김민혁, 한빛산업 인수 건으로 수백억 원의 이득.
이런 각종 기사들은 루나틱 온라인 유저들에 의해 웹 사이트의 게시판으로 퍼져 나갔다.
-김민혁 이제 진짜 떼돈 벌었네.
-기업에 투자 한 번 한 걸로 이득이 얼마야?
-너넨 200억 있고 루나틱 랭커면 뭐 할 거냐? 난 다 집어치우고 취미로 퀘스트나 할 듯.
-그거 있으면 직장 때려치우고 건물이나 사서 루나틱 하지. 가끔 심심하면 해외여행도 가 주고.
-그래도 김민혁이면 그럴 만하다. 그냥 의뢰들 싹 다 받아서 장비만 만들어도 월 1억 넘게 벌 텐데, 그거 일 년만 하면 10억임.
-와! 200억! 20년치 벌이!
-미친놈ㅋㅋㅋㅋㅋ 세금은 떼야지!
게시판의 유저들은 대부분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다.
일반 유저라면 모를까, 김민혁은 대장장이 클래스에서 정점으로 인정받는 인물.
지금까지 번 돈도 별다른 지원 없이 스스로 이루어 낸 업적들이다.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대형 길드들에 비하면 더없이 깨끗한 사람인 것이다.
김민혁을 부러워하는 반응은 꽤나 있었다.
그래도 질투나 열등감에 몸부림치는 자들은 극히 일부였다.
확실한 건 김민혁의 투자 대박 소식이 루나틱 내부의 유저들에게 다 퍼져 나갔다는 것.
물론 당사자인 김민혁에게도 수많은 인터뷰 신청이 들어왔다.
인 게임을 이용한 신청이 대부분이었지만, 몇 개는 운영자 측에서 연락을 해 올 만큼 큰 곳도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군.'
웨인은 인터뷰 요청들 중 거절할 수 없는 것들만을 몇 개만 골라 승낙했다.
다만 인 게임 내에서만, 그리고 1시간 이상 끌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 인터뷰 약속이었다.
현실의 시간보다 인 게임의 시간이 2배 빠를뿐더러, 지금 웨인은 데오마론과 함께 장비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맨몸에서부터 수백억 원대 자산가가 되기까지.
-[독점] 대박 투자자 김민혁, 중요한 것은 미래를 보는 안목과 과감한 행동력이라 밝혀.
그렇게 만들어진 기사들은 '독점', '화제'등의 태그를 붙인 채 게시판에 올라왔다.
굳이 홍보 기사를 내지 않더라도 유저들이 대신 홍보를 해 주는 셈이다.
물론, 이 상황이 반갑지 않은 측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메테우스 길드나 구 칼바도스 길드, 그리고 일본 서버에 있던 유저들!
셋 모두 김민혁과 드림 라이프 길드에게 한 번씩 굴욕을 맛봤다는 공통점이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직접 드림 라이프에 시비를 걸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한 번 크게 깨진 것을 서영훈이 직접 관리하며 힘을 모으고 있었고, 칼바도스는 그런 것도 없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
남은 건 일본 서버.
하지만 수 년 후라면 모를까, 아직은 각 서버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기엔 미개척지가 너무 많이 있었다.
게다가 프로메테우스가 힘을 회복하더라도 김민혁과 드림 라이프에 함부로 시비를 걸기 뭣했다.
'빡겜반'에 소속된 유명 랭커들과 1티어 클래스 버프 유저들!
이들의 전투력이 알려지며 최근 드림 라이프는 4대 길드 중에서도 미라클과 함께 투 톱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미국 서버의 매그니트 길드가 온 뒤라면 모를까, 당장 드림 라이프에 적대 행위를 하는 건 프로메테우스로서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프로메테우스로서는 다른 일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엠페러 라이온의 레이드.
그 마지막 공략 준비가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는 사이, 화제의 중심에 있던 김민혁이 한 가지 새로운 발표를 했다.
별것은 아니었다.
데오마론과 함께 만들던 350레벨까지의 중상급자용 대여 장비가 완성되었다는 내용이었으니까.
***
장비를 완성한 다음 날.
김민혁은 또다시 시간을 내어 밖으로 나갔다.
"비즈니스용 정장을 한 벌 사 둬야겠어."
최근 투자 계약 소식이 퍼진 후, 주주총회나 사업 얘기로 차려입어야 할 일이 많아졌다.
목적지는 서울의 한 유명 백화점.
중심 번화가에 위치해 서민과 부유층을 가리지 않고 손님으로 받는 곳이었다.
'의복 코너는 4층이군.'
정장 코너로 간 김민혁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같은 정장이라도 경우에 따라 색이나 장식, 스타일 등이 다르다.
투자 건이나 주주총회 같은 일이라면 상당히 무거운 일.
경조사까지 생각해봤을 때, 옅은 배색의 의상은 구매할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비싼 옷일수록 오래 입는 법이니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쓸 때는 확실하게 써 줘야 이후의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굳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옷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시리즈로써, 무게감이 있는 분위기를 원하시는 고객님께 추천드리고 있습니다."
"가벼운 것을 원하신다면 브리오니 쪽은 어떠신지요?"
유명 백화점답게 추천하는 브랜드 대다수가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의 고급 브랜드 제품!
'전부 좋아 보이는군.'
김민혁이 보기에도 일반 양복점에 걸려 있는 양복들과 품질이 다른 게 확연히 느껴졌다.
'하지만 무턱대고 살 수는 없지.'
한 벌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의복.
몇 달 쓰고 버릴 게 아니니만큼 김민혁은 더욱 신경 써서 옷을 골랐다.
물론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진 않았다.
루나틱 접속을 너무 오래 미루는 것도 좋지 않았으니까.
'이게 좋겠군.'
마음에 드는 양복을 발견한 김민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였다.
김민혁이 막 살 옷을 결정했을 무렵 직원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이야? VIP께서 오신다고?"
"네, 지금 10분 거리에 계신다고……."
"알았어. 내가 조치하지."
수군거리던 직원 중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명이 김민혁에게 다가왔다.
팀장 명찰을 단 직원은 고개를 숙인 뒤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고객님, 오늘 당 백화점에서 쇼핑은 더 이상 불가능하실 듯합니다."
"그게 무슨……?"
"백화점에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서 10분 후 당일 영업을 마칠 예정입니다."
막 옷을 고르려던 김민혁으로서는 낭패한 기분이었다.
"이걸로 정하긴 했는데,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시니 조금 당황스럽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이렇게……."
팀장이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지만 김민혁의 기분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껏 시간을 내서 서울까지 왔는데, 옷을 사자마자 반강제로 쫓겨난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밖으로 내보내어지는 건 김민혁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백화점 전체에 같은 내용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백화점 내부 수리, 보수로 인해 이 시간부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것.
한창 물건들을 둘러보던 고객들은 투덜거리며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아니 공지도 없이 뭐 하자는 거야?"
"이러고서 아무 보상도 없이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손님들!
대부분은 다시 오겠지만, 아예 마음이 상한 몇몇 고객은 다시 이 백화점을 찾지 않을 것이다.
백화점 입장으로서도 굉장한 손해다.
하지만 그걸 감수해야 할 만한 사람이 오고 있었다.
"일단 이걸 결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민혁은 마음에 든 양복을 결제한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손님들과 함께 막 1층 로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뭐야, 저 녀석들은? 아직 안 치웠어?"
"죄송합니다. 저 사람들이 마지막이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쯧!"
문 너머, 약간 떨어진 곳에서 투덜대는 20대 초반의 청년과 그에게 굽실대는 50대의 중년 남자가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김민혁은 그럴 수 없었다.
'저 남자는……?'
김민혁의 눈이 커졌다.
서영훈!
전생에서는 서문아와 같이 TV나 신문으로만 보던 남자가 실제로 눈앞에 서 있었다.
동시에 김민혁은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눈치챘다.
'저 녀석이 백화점 내의 다른 고객들을 쫓아냈군.'
서영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역시 망나니란 말이 틀리지 않았어.'
여러 로열 패밀리들은 공개적으로 드러난 곳에서는 행동을 주의한다.
뒤에서 숨어서 각종 범죄나 일탈을 저지르는 건 맞지만, 적어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서영훈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 안하무인이 그가 망나니라 불리는 이유!
'기껏 서울까지 와서 시간을 냈는데, 저놈 때문에 기분을 잡쳤군.'
김민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빚은 인 게임에서 확실하게 갚아 주지.'
때마침 멀지 않은 시기에 적당한 기회가 있었다.
김민혁은 과거 루나틱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렸다.
'조만간 프로메테우스 길드를 이끌고 저 녀석이 엠페러 라이온을 사냥하겠지.'
모든 인원이 수레바퀴처럼 착착 돌아가야 하는 대재앙의 월드 보스 공략!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니 공략 자체에 어깃장을 놓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실패하고 물러나 재정비하는 길드를 뒤에서 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전생에서 프로메테우스 길드와 서영훈은 같은 보스를 공략하였지만 실패를 맛보게 된다.
이번에는 그 시기마저 훨씬 앞당겨진 상황.
스펙이나 컨트롤이 나쁘면 나빴지, 절대로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 정보를 기억해 낸 김민혁이 미소 지었다.
'웨인이 나설 차례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