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웨인은 흑도련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키메이커와 베르한에게 받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확인.
결과는 놀라웠다.
'총체적 난국이군.'
중국 서버 유저들의 평균 레벨은 모든 서버 중 가장 낮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흑도 유저들의 스펙은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차라리 레벨 1 한국 유저들을 데려다가 처음부터 키우는 게 나아 보일 정도.
'사냥터랑 재료 모두 없으니 그냥 경험치만 쌓았군.'
대부분의 콘텐츠를 백도 문파가 독점하다 보니 생긴 문제.
다른 서버도 그런 경향이 있긴 했지만, 중국 서버는 유독 심했다.
90의 극빈층과 10의 부유층으로 나눠지는 유저 구조.
미래, 엄청난 인원수를 가지고도 다른 서버에 밀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사냥을 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스펙은 만들어 둬야겠군.'
물론 드림 라이프 길드처럼 정성을 들이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중국 서버는 이용하고 버릴 팻감이었으니까.
'앞으로 바빠지겠어.'
결정을 내린 웨인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우선 흑도련의 간부, 리웨이준을 불러 철광석과 대장장이들을 모아 오라고 명령했다.
그 뒤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미개척지의 던전들을 탐색.
단신으로 움직였지만 딱히 문제는 없었다.
중국 서버의 미개척지들이라고 하지만, 웨인에게 있어서는 저레벨 사냥터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래의 꿀팁까지 이용하자 순식간에 히든 피스들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중국 서버의 히든 피스는 스킬 북이나 스테이터스 영구 상승 소모품이 많군.'
무공과 술법이 중시되다 보니 관련 물품의 비중도 크다.
웨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한국 서버에서 없었던 것들을 보충할 수 있겠어.'
미개척지를 한차례 훑은 웨인은 소주로 돌아왔다.
그사이 대장간엔 리웨이준이 모은 대장장이 유저들과 철광석 더미가 있었다.
평균 레벨은 200대였지만, 그중 리더로 온 판후이는 351레벨이나 되는 고레벨 대장장이였다.
"당신이 바로 철면공자군."
"그래."
철면인.
웨인이 중국 서버에서 인피면구를 만들고, 그 위에 가면을 덧대며 설정한 임시 닉네임이었다.
웨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판후이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우릴 이렇게 부른 용건이 뭐요?"
"대장장이 기술을 가르쳐 줬으면 하는데."
"우리들의 비전 무공을?"
"값은 충분히 쳐주지."
"흠…… 알았소."
판후이를 비롯한 대장장이들은 순순히 요청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가진 모든 스킬은 이미 백도 문파 유저들이 가져갔던 것.
심지어 강제로 뺏어 갔던 백도 문파와 달리 웨인은 금전적인 대가도 준비했다.
"그럼 어떻게…… 스킬 북을 만들어 드릴까?"
"직접 만드는 걸 보여 주면 돼."
고레벨 유저들은 스킬 시연을 보는 것만으로 스킬 습득이 가능하다.
물론 비슷한 수준끼리는 불가능하지만, 웨인과 대장장이들 간의 레벨 차이는 그 이상이었다.
"설마, 그게 가능하다고?"
"대장장이 기술이라면 꽤나 쌓아 뒀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괜찮으니까 시작하도록."
판후이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새겨졌다.
"으음, 좋아, 혹시 놓쳐도 다시 하진 않을 테니 알아 두라고."
중국 측 대장장이들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적절한 온도가 되자마자 곧바로 스킬을 사용!
-용린갑을 제작했습니다.
-호왕청강검을 제작했습니다.
제작 아이템의 등급은 대부분 유니크 등급.
320대 레벨이 끼기에 적절하니,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전투 쪽에 집중한 유저가 이걸 쉽게 흉내 내겠다고? 말도 안 되지.'
판후이는 가볍게 코웃음쳤다.
'아무래도 초급자용 기술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줘야겠어.'
그러나 웨인이 작업에 들어가자 모두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 갔다.
"이렇게 하는 거로군."
"아, 아니……."
"어떻게 우리 스킬들을?"
"레벨 차이가 크면 보는 것만으로 스킬 습득이 가능하지."
설명을 마친 웨인은 계속해서 스킬을 사용했다.
그때마다 눈앞으로 혼자만 볼 수 있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늘 세공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제련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제작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화염의 야금술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
각 서버마다 있는 다른 제련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스킬 숙련도가 상승한 것이다.
이미 비전 스킬들이 있어 새로운 스킬은 나오지 않았지만, 숙련도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인 셈!
'좋군.'
한국 서버에서 이 정도의 숙련도를 얻기 위해선 수천만 원은 들여야 했으리라.
웨인이 한창 미소를 짓고 있을 무렵.
"진짜로 보기만 하는 걸로 스킬을 습득할 줄이야……."
"망치를 다루는 폼이 우리들보다 능숙한데?"
"그보다 속도,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보자마자 우리 기술을 다 숙련도로 만든 거라고!"
이 사실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
웨인의 대장장이 스킬과 클래스가 자신들보다 한참은 더 높다는 것이었다.
완성된 장비들이 나타나자 대장장이 유저들의 수군거림은 한층 더 커졌다.
"미친."
"300레벨제 에픽급이라고?"
"이건 구파일방 길드나 마교 쪽에서도 만들기 쉽지 않을 텐데……."
대부분의 기술을 백도 문파가 독점한 건 대장장이 클래스도 마찬가지.
게다가 웨인의 실력은 그 이상이었기에 나온 장비들의 수준도 상상 이상이었다.
"……대인!"
나온 장비의 스펙을 살펴본 판후이가 무릎을 꿇었다.
"대인을 알아보지 못한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요!"
뒤에 있던 다른 유저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좋아."
웨인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네?"
"너희들은 생산 직종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그쪽 연락망이나 인맥이 있겠지."
대장장이는 생산 직종 클래스에서 다른 클래스와의 연계가 쉬운 직업 중 하나.
비슷한 직업끼리 서로 알게 되는 건 현실과 같았다.
"그야 어느 정도는……."
"아는 사람들 중 문신사, 악사, 화가, 그 외의 직업에서도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모조리 데리고 오도록."
그렇게 하면 작업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웨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장장이들의 눈에 빛이 일었다.
***
흑도련이 장비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금세 소주 전체에 퍼져 나갔다.
소주에 있던 중국인 유저들은 NPC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칼값이 왜 이렇게 올랐냐고? 그야 쇠를 구하기 힘드니까 당연하지!"
"흑도련에서 계속 재료를 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고 있어. 좋은 철광석을 가져오면 비싸게 쳐주지."
곧바로 일반 유저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철광석이랑 금속값이 다 올랐는데?
-석탄이랑 화탄, 화염석도 마찬가지야.
-떠그럴, 흑도련인가 뭔가, 흑도 놈들 때문에 우리만 피해 보네.
-내버려 둬. 저러다 백도 문파 몇 개 모여서 때려잡고 말겠지.
흑도련 이전에도 흑도 문파가 모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가 많아져 봤자 백도 문파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소식을 들은 유저들은 흑도련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장간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음…….'
소주의 대형 대장간인 화왕고로 안.
망치를 두들기던 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노가다 작업을 했군.'
1주일 동안 웨인은 흑도련 길드원들이 쓸 장비들을 만들었다.
안 그래도 빠른 데다가 화염의 야금술까지 쓰자 엄청난 속도로 장비가 만들어져 나왔다.
흑도련의 간부들이 재료를 구해 오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를 정도.
그렇게 1주일 동안 만든 세트가 못해도 1만 벌이 넘었다.
'요즘 고레벨 장비만 만들다 보니 힘이 너무 들어갔었는데, 오랜만에 이런 작업을 하니 나름 재미있군.'
더불어 화염의 야금술의 숙련도도 상당히 올랐다.
아이템의 성능은 떨어지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웨인이 만든 장비의 성능은 매우 뛰어났다.
어지간한 백도 문파의 고레벨 유저들이 끼는 장비보다 나은 스펙!
장비를 받아 본 흑도 유저들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제작 장빈데 스펙이 어떻게 이렇지?"
"이것만 있으면 시역귀 사냥 파티에 들어갈 스펙도 되겠어! 10이나 레벨이 낮은데!"
장비를 바꾸는 것만으로 무려 10레벨 이상 강해진 효과를 내는 셈.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중갑옷 세트는 개당 금자 10개.
경갑옷이나 가죽 갑옷류는 각각 금자 8개로 설정했다.
한국 서버로 치면 10골드와 8골드.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스펙이나 제작자를 생각하면 받을 만했다.
다만 웨인도 예상 못 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장비를 사기 위해 찾아오는 중국 서버 유저의 숫자였다.
'놀랍군.'
대장간 안.
잠시 쉬면서 점검을 하던 웨인이 피식 웃었다.
'설마, 벌써부터 3만 골드가 손에 들어올 줄이야.'
흑도 문파 유저들은 대부분 하층민이라 10골드를 마련할 수 없었다.
절반 이상이 할부나 게임 내 재료 등을 가져온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역시 중국 서버로군. 스케일이 상상 이상으로 커.'
웨인의 미소가 진해졌다.
'백도 문파까지 모두 장악했을 때의 수익이 기대되는군.'
중국 서버에서 얻은 돈은 쉽사리 현금으로 바꿀 수 없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 금액이었다.
게다가 인게임을 이용하면 충분히 환전이 될 테니 더욱 이득이었고 말이다.
'그러려면 계속해서 장비를 만들어야겠지.'
웨인이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 할 무렵이었다.
'음?'
항상 입구 쪽에 쌓아 두던 철광석 및 기타 재료가 없었다.
웨인은 곧바로 리웨이준을 불렀다.
"철광석이랑 재료들을 떨어지지 않게 가져오라고 했을 텐데?"
"그게…… 더 구하려고 해도 없습니다."
"없다고?"
웨인은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이 근처에 철광석 광산은 어디 있지?"
"소주 북쪽 홍건 광산입니다."
"소주 북쪽이면 흑도련 관할일 텐데. 내역을 가져와 보도록."
생산 필드를 통제하는 길드에서는 반드시 출입 기록과 생산량을 기록한 명부를 만든다.
한 번에 일정 부분 이상 자원을 캐면 필드 자체의 자원이 영구히 고갈되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리웨이준은 금방 명부를 가져왔다.
내용을 훑던 웨인이 물었다.
"이상하군."
"네?"
"한 달에 캐는 철광석은 12만 4천 개인데, 왜 우리가 쓸 수 있는 건 그 반도 안 되는 4만 4천 개밖에 없지?"
"아, 그건…… 그럴 만한 사정이……."
"나를 속인 건가?"
"그건 아닙니다!"
리웨이준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빠진 분량은 백도 문파인 청성파와 승무파에게 가는 상납금입니다. 예전부터 그런 식으로 강탈하고 있었으니까요."
"……음."
모든 문파는 사냥터 통제나 아이템 징수를 통해 수익을 마련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소문은 나지 않는다.
어찌 됐건 유저들에게 입장료를 걷고 얻는 것도 일부를 가져가니까.
백도 문파는 그걸 피하기 위해 흑도 문파를 이용했다.
힘으로 굴복시킨 흑도 문파를 시켜 유저들에게서 아이템을 징수.
그렇게 모인 상납금의 절반 이상을 그대로 꿀꺽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는 백도이지만, 결국 흑도를 시키는 배후인 셈.
항의?
하는 순간 문파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어차피 백도 문파에게 있어서 흑도 문파란 적당히 대신 내세울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군."
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문제는 그 청성파랑 승무파라는 백도 문파인가?"
"일단은……."
고개를 끄덕인 리웨이준이 표정을 굳혔다.
"그래도 섣불리 건들지 마십쇼. 두 문파 다 문파원이 500명이 넘고, 그중엔 365레벨 랭커도 있으니까요."
"……."
웨인은 잠시 태연한 표정으로 리웨이준을 응시하다가 피식 웃었다.
막 대답을 하려 할 무렵이었다.
"리웨이준 님, 철가면 님."
대장간의 문이 열리더니, 흑도 문파원 한 명이 들어왔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게…… 청성파랑 승무파에서 온 사람입니다."
"……!"
말이 끝나자 대장간 안이 조용해졌다.
그사이 웨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마침 잘됐군. 오지 않았으면 이쪽에서 찾아갔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