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완벽하게."
"곧 나가지."
위중악은 부관에게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이거 한몫 잡겠군.'
부관이 나가자 위중악은 Q2플레이어를 켰다.
Q2는 중국에서만 유통되는 내수용 인터넷 방송 프로그램으로, 위중악은 그 프로그램의 인기 BJ였다.
'방송명은…… 그래, 이게 좋겠군.'
위중악은 가상 키보드를 두들겼다.
방송 제목은 '짐승 죽이기 실황'이었다.
-위하.
-위하.
-오랜만에 오셨네요.
스트리밍 방송을 켜자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짐승 죽이기?
-오늘 제목 뭐임?
-몬스터 레이드면 좀 실망인데.
방송 제목에 대한 질문이 쇄도!
위중악은 그 숫자가 5만 명이 넘었을 때 천천히 대답했다.
"요새 장보도 때문에 좀 바빠서, 잠깐 기분 전환 겸 다른 유니크 퀘스트 하는 거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스윽, 임시로 친 장막 바깥에는 포위를 마친 화산파 랭커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채팅 창의 스크롤이 내려가는 걸 확인한 위중악이 말을 이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마음에 드시면 구독이랑 팔로우 부탁드립니다."
동시에 화산파의 문파원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어?"
"화산파다!"
"화산파 유저들이다!"
제석천교 마을에 있던 유저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중국 내에서 가장 손에 꼽는 문파, 즉 길드를 꼽는다면 9파 1방이 있다.
중국의 길드 시스템은 좀 특이하다.
유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대신, NPC들이 존재하는 길드가 주류를 이룬다.
실제 무협처럼 고레벨의 NPC들이 큰 발언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화산파는 그런 구파 일방의 수좌 중 하나였다.
소림이나 무당파에 비하면 한 수 처진다는 평이었지만, 무력만 따지면 오히려 그 둘을 앞서는 면모도 보였다.
"으아악!"
그런 화산파의 무인들 앞에 제석천교의 교인들은 불길 앞의 갈대나 마찬가지였다.
'지루하군.'
위중악은 NPC의 가슴팍에 꽂은 검을 뽑아 들었다.
리얼 모드로 설정해 놓은 탓에 검붉은, 덩어리진 피가 검신을 타고 흘러 내렸다.
'도축업자들은 이런 일을 매일 하는 건가?'
위중악은 지루함을 참고 검을 휘둘렀다.
제석천교의 무사들이 그런 위중악을 막아서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쌔에엑!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그윽한 매화향이 사방에 퍼졌다.
레벨 446에 달하는 그의 이십사수매화검은 중국 서버 내에서도 당해 낼 이가 몇 없는 절정 스킬이었다.
"커헉!"
"대, 대체 우리가 뭘 했다고……."
죽어 가는 교인들을 짓밟은 위중악이 나아갔다.
그는 엄숙한 자세로 제석천교의 교인들을 죽여 나갔다.
NPC고 플레이어고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실시간으로 방송에 전파되었다.
-칭짜오 : 44444444444444444444
-마오갓 : 역시 위 따거! 한족의 위대함을 보여 줘라!
-북해용왕 : 기생충 같은 새끼들, 다 죽여!
-명관치님이 1,000코인을 후원했습니다.
-명관치 : 애들 칼까지 다 같이 부수면 9,000코인 더 드림.
채팅 창은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동시에 소정의 선물이 연달아 터졌다.
소수민족인 제석천교 플레이어를 죽일 때마다 카운트 해 준다는 시청자도 있을 정도였다.
원래 이러한 차별적 방송은 중국 당내에서 엄밀히 벌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실은 이러한 소수민족에 대한 방송은 예외였다.
"우린 그저…… 게임 좀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럼 니네 서버로 꺼져! 아, 니넨 서버가 없지? 참."
화산파 측 유저들은 비웃음을 섞으며 마을을 부쉈다.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학살하는 것 같지만, 굉장히 체계적인 포위 작전이었다.
-소구섭 : 탱커님들은 피뢰주 계속 뿌리면서 앞으로 가세요.
-신뇌야추 : 어차피 이긴 건 확정이고, 도망 못 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파티 채팅을 통해 오는 참모진의 지시!
술법을 통해 마을 전체를 한눈에 보고 있기에, 한곳이 밀린다 싶으면 곧바로 지원이 갔다.
그에 비한다면 제석천교 인원은 다섯 살 꼬맹이들 수준.
레벨과 스펙뿐만 아니라 전술까지 밀리니 유리한 점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포위망 유지해. 계속, 쭉 가, 쭉."
"신녀랑 수호자가 도망친다 싶으면 바로 알리고."
"도적들과 사냥꾼들은 비밀 통로나 장비 확인하고. 나머진 계속 공격!"
유일한 가능성은 화산파 측이 방심하는 것 정도.
그러나 위중악이 데려온 인원들은 절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앞서가던 위중악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제석천교…… 그래도 어느 정도 고레벨 NPC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 무림의 추격을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선 어지간한 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마교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꽤나 기대했었는데, 실제 결과는 영 아니었다.
'가장 강한 NPC가 330레벨, 다른 놈들은 300레벨을 넘지 않는다.'
방송 반응이야 좋지만 그뿐.
기대했던 드롭 아이템이나 경험치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 중요한 건 신녀와 수호자만 잡으면 되니까.'
신녀와 수호자는 교단의 보스 몬스터로 취급된다.
처치 시엔 특별한 칭호와 최소 레전더리급 아이템을 드롭!
300레벨대라 해도 레전더리 아이템이라면 충분히 움직일 가치가 있었다.
그때였다.
-제석천교 본산의 거점 4곳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제석천교 본당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위중악이 말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왕쿠쩌둥 님이 1,000코인을 후원했습니다.
-왕쿠쩌둥 : 본당에서 죽이는 인원수당 200코인 드림. 대신 혼자 들어가는 걸로, 미션 고?
개인 스트리밍 방송에서 흔히 있는 미션 제안!
'변수는 최대한 줄여야 좋지만…… 어차피 탈출로는 없으니 그것도 괜찮겠군.'
1위안당 10코인이니, 1,000코인이면 100위안.
그 정도의 후원을 받고서 미션을 거부한다면 이건 방송 이미지의 문제였다.
"알겠습니다. 혼자 들어가죠."
위중악은 말을 마친 뒤 본당의 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앙!
단숨에 쪼개진 정문 안에는 신녀를 비롯해 여러 호법 NPC와 마지막까지 남은 유저들이 서 있었다.
-신녀다!
-바퀴벌레 떼처럼 모여 있구먼.
-위 따거, 다 죽여 버리쇼!
순식간에 채팅 창이 수백 개의 대화로 시끄러워졌다.
"윽……!"
"저놈, 혼자야!"
"놓치면 안 돼!"
안에 있던 유저들이 일제히 공격해 왔지만, 위중악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저항을 물리치고 공손희연 앞까지 간 위중악이 생각했다.
'이쯤 되면 수호자가 나와야 정상인데.'
신녀나 교주가 죽는 순간, 교단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미끼로 쓸지언정 여기서 죽게 놔둘 수는 없다는 이야기.
'일단 죽이고 볼까?'
막 공손희연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위중악의 눈이 순간 저절로 감겼다.
본당 구석에서 빛나는 공간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빛 속에서 위중악은 표정을 굳혔다.
"도망치세요! 화산파가……!"
"알고 있습니다."
청룡언월도와 온몸을 감싼 검은 갑옷.
마지막으로 얼굴을 가린 철가면까지 최근 알려진 한 사람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이다.
'……비슷한 사람이 두 명이 있을 리는 없으니, 철가면 본인이라 보는 게 맞겠군.'
철가면은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단신으로 청성파 전체를 박살 낸 건 사실이었으니까.
"너는……."
위중악은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철가면이 달려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빨리 끝내자."
동시에 두 사람의 거리가 급격히 좁혀졌다.
위중악은 재빨리 판단했다.
'일단 한 번 빠지고 공세로 받아친다.'
청룡언월도 같은 양손 무기는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생기는 빈틈이 크다.
무당파만큼은 아니지만, 화산파의 무공에도 그런류의 스킬들은 충분히 많았다.
암향표(暗香飄)!
마스터 레벨에 다다른 암향표가 펼쳐졌다.
이동속도로는 모든 무공 중에서도 손에 꼽는 7+급 절기.
그러나 철가면의 속도는 위중악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
"엇!"
도망치던 위중악의 눈이 커졌다.
가까워지는 철가면의 온몸이 번개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급히 이십사수매화검법 스킬을 썼지만, 청룡언월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컥!"
위중악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들고 있던 검에도 금이 갔다.
-감전 상태입니다. 명중률이 하락하고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습니다.
-호신강기가 감전 효과의 지속 시간과 효과를 감소시킵니다.
중국 서버의 무공 중엔 상태 이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호신강기가 있다.
웨인이 가진 속성 효과가 워낙 강력했기에 그걸로 줄여도 너무 강했다.
"자, 잠깐……!"
위중악은 급히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철가면은 이미 두 번째 연계 공격을 뻗어 낸 뒤였다.
퍽!
철가면의 창이 단숨에 위중악의 머리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시뻘건 피가 폭죽처럼 튀어나오는 모습.
리얼 모드 중계였기에 Q2의 모든 중국인 유저들이 생생히 지켜보았다.
-위중악 님?
-뭐임?????
-위 따거가…… 죽었어!
-와ㅏㅏㅏㅏ!
채팅 창은 미친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캐릭터 사망으로 방송이 꺼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청성파 학살로 이름이 높은 철가면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 위중악을 단 두 합으로 처치!
유명 스트리머 채널인 걸 감안해도 굉장한 특종이었다.
***
웨인은 신녀를 본당 안에 있게 한 뒤 밖으로 나왔다.
화산파 유저들은 마을을 넓게 포위한 채 곳곳에서 약탈과 학살을 하고 있었다.
"응?"
"뭐야."
위중악이 들어간 본당 안에서 철가면이 나오자, 순간 화산파 인원들이 멈칫했다.
웨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번개 공명과 뇌혼을 동시에 사용했다.
"……!"
순식간에 수십 미터의 거리를 좁혀 술법사의 앞에 도달한 뒤 공격!
사기급이라 해야 할 속도에 술법사들도 보고도 대처하지 못했다.
-서군악 님이 사망했습니다.
-악비래 님이 사망했습니다.
"미친!"
"저런 스킬이 다 있어?"
남은 화산파 유저들은 반격하려다가 깜짝 놀라 물러났다.
놀란 건 화산파 유저들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속도……!'
웨인은 꿀꺽 침을 삼켰다.
현재 웨인의 번개 공명 스킬은 최대 레벨인 20.
이동속도를 순간적으로 열 배 이상 끌어 주지만, 지금 나오는 속도는 그 몇 배였다.
이유? 간단하다.
제석천교의 성지에서 수호자는 매우 강력한 버프를 받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거의 보스 몬스터 수준이군.'
한 교단의 수호자는 보스 몬스터 취급을 받는다.
체스로 치면 퀸과 같은 격.
쓰러뜨린 순간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점하지만, 그 이상으로 철저한 공략이 필요했다.
물론 이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웨인은 주변의 화산파 문도들을 정리한 후 가볍게 손을 털었다.
'설마, 페널티를 이런 식으로 줄 줄이야.'
계속해서 끊이지 않는 온몸의 저림과 근질거림!
대부분의 디버프는 스테이터스나 체력, 마나를 건드리지만 이 경우엔 감각을 건드린단 점에서 달랐다.
일반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스테이터스를 가져가라 할 정도로 까다로운 페널티.
그러나…….
'이 정도면 버틸 만하군.'
웨인은 잠깐 숨을 돌린 뒤 곧바로 전투에 나섰다.
과거, 작업장에서 각종 극한 상황에 몰렸던 경험에 비하면 저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사자! 술법사와 궁수들을 물어뜯어라! 강무무는 밀리는 쪽을 도와주고!"
화산파 문도들이 포위하려는 순간, 핫도그와 나무무가 중국풍 장비를 입은 채 소환되었다.
사자탈 속에서 이를 드러낸 핫도그가 달려들자 단숨에 무인들의 대열이 무너졌다.
강시 분장을 한 나무무도 넝쿨과 줄기 휘두르기를 통해 대활약을 펼쳤다.
"이 새끼들!"
"죽엇!"
공격력으로는 전 서버에서 알아주는 매화검수들의 공격!
하지만 땅수염의 스킬을 전수받은 나무무의 단단함은 그보다 더했다.
"컥!"
"어헉!"
칼이 빠져나오지 않자 화산파 문도들의 눈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이대로 지원이 온다면 나무무가 위험하겠지만, 그걸 두고 볼 웨인이 아니었다.
"어딜."
웨인은 단숨에 나무무 주변의 문도들을 때려눕힌 뒤 다른 쪽으로 향했다.
수호자 버프로 인해 공격, 이동속도와 공격력, 체력 등이 몇 배로 향상!
거의 게임의 장르가 달라질 정도의 파괴력으로 쓸어 버리자, 화산파 유저들로써도 방법이 없었다.
"도, 도망쳐!"
"끄악!"
처음 도망친 건 마을 안쪽에 있던 유저들이었다.
그 소란은 점차 퍼졌고, 포위망 쪽에서도 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너무 나가면 역공을 받을 수도 있겠지.'
추격은 적당히 근처 수백 미터 거리까지 하다가 돌아왔다.
본단 영역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면 제석천교 수호자의 버프가 풀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남은 화산파 인원들도 모두 도망치거나 사망!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전투는 제석천교의 승리로 끝났다.
'많은 NPC들이 죽었군.'
웨인은 마을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NPC들은 퀘스트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제석천교의 세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런 중요 인물들이 화산파 유저들에 의해 많이 상했다.
'이 빚은 조만간 화산파에 찾아가서 받아 내야겠군.'
웨인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제석천교 수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제석천교를 지켜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명성치를 획득했습니다.
-제석천교 공헌도 30,000을 획득했습니다.
-금자 15개, 은자 50개를 획득했습니다.
-뇌신주를 획득했습니다.
퀘스트 완료에 따라오는 보상!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웨인의 눈이 커졌다.
'뇌신주?'
제석천이 직접 내려 준 게 분명한 아이템.
굳이 인벤토리를 볼 필요는 없었다.
과거의 정보를 통해 저 아이템이 어디에 쓰이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박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