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화
제물 연성.
간장과 막야의 비기는 분명 대단한 스킬이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정련한 재료를 추가로 넣어야 한다는 것이지.'
심지어 연성하는 데 넣는 재료도 비슷한 급이면 안 된다.
최소 한 단계 이상 높은 사용 레벨의 재료를 넣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장비의 최대 스펙을 늘려 주는 대신, 그 이상의 제약이 붙는 셈.
당연히 제작 단가도 일반 장비에 비해 훨씬 더 높아졌다.
'물론 재료의 가격은 지금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무한정 퍼다 주는 VIP의 후원이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하랴!
웨인은 가져온 재료들을 용광로에 넣은 후 스킬을 사용했다.
-제작을 사용했습니다.
-초월 정수 부여를 사용했습니다.
-제물 연성을 사용했습니다.
-여의금강석을 사용했습니다.
스킬을 쓴 후에는 시스템이 알아서 몸을 움직여 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드는 스태미나는 오롯이 본인이 감당해야 했다.
'후우…….'
웨인은 천천히 망치질을 했다.
그때마다 무기와 장비들이 천천히 형태를 갖췄다.
"아, 아니……."
"저거 설마 여의금강석 아니야?"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놀라 말했다.
그럴 만했다.
자신들은 300레벨대 재료도 어려워하는데, 400레벨대 고급 재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작업 중간에 용이나 봉황 등의 무늬를 넣기도 했다.
"미친, 칼 만드는 것 봐."
"어디서 저런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이미 몇 명은 시합을 포기하고 구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웨인은 단단한 재료들과 부드러운 재료들을 섞었다.
'경연용이지만 단순히 장식용으로 쓰진 않겠지, 특히 무림이 득세 중인 최근 정세를 보면 더욱 강한 장비를 필요로 할 거야.'
세트 장비이기에 칼과 갑옷을 같은 분위기로 맞춘 뒤, 적절한 장식과 재료 배합으로 스펙을 끌어올렸다.
의전용으로 쓸 만큼 화려하지만, 스펙은 그 이상으로 강력한 고레벨 전용 갑주와 무기!
오랜 시간을 공들이지도 않았고, 용광로도 무난한 종류였지만 워낙 실력이 좋아 재료의 효과가 그대로 나타났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제물 연성, 카일 합금을 이용한 문신 효과까지.
'순조롭군.'
웨인은 씩 웃었다.
한편 웨인의 작업은 여러 대장장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주변에 서 있던 대장장이들이 술렁였다.
"저거 너무 화려한 거 아냐?"
"용 장식에 견갑 금테…… 거기에 이음매에 저건 금강석이잖아."
"굉장히…… 과할 정돈데?"
화려한 디자인은 대장장이로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내용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대장장이는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함부로 꾸밈을 덧붙이다가는 오히려 장비의 스펙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 정도로 화려하면 큰 실속은 없지. 기술은 좋은데 너무 욕심을 부렸구먼."
"대회니까 말을 해 줄 수도 없고…… 아이고, 아까워라."
지켜보던 유저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웨인은 자기 작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제한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장비를 만들지 못한 대장장이는 자동 실격입니다.
커다란 징 소리와 함께 모든 참가자의 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으아악!"
"하아……."
장비를 완성한 대장장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대장장이들은 비명이나 강제 로그아웃 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심사관은 전대 황실 수석 대장장이인 금은동 님이오!"
장서진이 오기 전, 제국 황실에서 수많은 장비를 만들었다는, 현재는 노환으로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지만 물건을 보는 눈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설정의 NPC였다.
"커흠."
금은동은 백발이 성성한 80대의 노인 NPC였다.
처음 장비들을 훑어보던 금은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엉?"
"무슨……."
"권외!"
어리둥절해하던 대장장이들에게 뒤따르던 문관들의 판정이 내려졌다.
"아니!"
"어째서 내 장비가 권외야!"
"흘긋 보기만 했으면서!"
순식간에 밀려난 대장장이들이 항의했지만, 금은동은 눈길도 주지 않고 심사를 이어 갔다.
그래도 권외면 나은 편이었다.
적어도 장비를 다 만들지 못하고 탈락한 인원처럼 재료비를 내야 하진 않으니 말이다.
"……음?"
대회장을 휘젓듯 걸으며 판정을 내리던 그의 발걸음이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이건……."
"평안하셨습니까."
장서진은 눈앞에 선 금은동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1년 전보다 더욱 늘었군."
금은동이 눈을 빛낸 순간, 장서진이 만든 장비의 일람이 나타났다.
<백호장군도>
-등급 : 크래프트-에픽
-분류 : 무기
-내구도 : 37,000/37,000
-제한 : 레벨 400 이상, 힘+3,500 이상
-효과 : 공격력*4,512, 매력*1,260, 바람 속성 공격력*1,050 상승, 상대가 가죽 및 가죽 방어구 착용 시 추가 데미지 20%, 바람 속성 스킬 사용 시 공격력 12% 상승
-효과 2 : 백호투기 사용 가능
*백호투기 : 사용 시 백호의 형상을 한 검기 발사 가능, 해당 검기는 스킬 공격력의 500% 데미지를 13번에 걸쳐 입힘.
-기타 : 산의 대왕, 백호를 그려 넣은 장군도, 신령스러운 백호의 혼이 깃들어 있다.
주변에 있던 유저들은 깜짝 놀랐다.
"헉!"
"400레벨 에픽급이다!"
고레벨 장비를 만들 때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든다.
4시간 만에 에픽급의 장비를 여러 개 만들려면, 그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는 셈.
심지어 백호장군도뿐만 아니라 갑옷과 장신구도 비슷한 급의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4시간 만에 저걸 다 만들었다고?"
"쓰읍…… 논외가 나올 만했네."
"역시 작년 수석……!"
장내에 있던 유저들이 만든 건 대부분 250~300레벨대 레어, 혹은 유니크 장비였다.
현 시점에서 장서진의 작업물을 능가하는 건 없는 셈.
"좋군."
한참 장군도를 보던 금은동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작품을 보러 움직였다.
칭찬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많은 대장장이 유저들은 이미 결판이 났다 생각했다.
"에이, 이번에도 장서진이군."
"작년에도 저러더니, 또 혼자 다 해 먹겠네."
"부럽다, 부러워!"
황궁 수석 대장장이에게 주어지는 각종 특혜!
1년 더 그것을 독점한다면 다른 유저들과의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지리라.
그때였다.
"……음?"
거침없이 지나치던 금은동의 눈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잠깐만."
금은동은 눈을 깜박이다가 그쪽으로 향했다.
"이건……."
"제 작품입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금민혁입니다."
웨인의 대답에 금은동은 천천히 눈앞의 갑옷을 쓸어 보았다.
"이건 일체형 무구 장비(세트 아이템)인 것 같은데, 맞나?"
"시간이 없어서 무기와 상체 갑옷, 그리고 반지만 만들었습니다만, 원랜 그렇습니다."
"……잠깐만."
탁, 금은동이 손을 가져다 대자 아이템의 정보가 나타났다.
<패황의 뇌검>
-등급 : 크래프트-레전더리
-분류 : 무기
-내구도 : 40,000/40,000
-제한 : 레벨 400 이상, 힘*3,500이상, 체력*2,000이상
-효과 : 공격력*4,924, 매력*1,751, 행운*1,236, 상대방이 방어 스킬 사용 시 강제 해제 및 공격력의 10% 번개 속성 데미지
-세트 효과 : 전투 시 상대방에게 매 공격마다 공격력의 5% 고정 피해, 10m 내 모든 적군의 공격력, 방어력 5% 감소, 2세트 추가 장착 시 각 효과 2% 상승
-문신 효과 : 철완(뉴 스쿨)
-공격 시 상대방의 방어력 1% 저하, 최대 5%까지 지속, 10%의 확률로 0.5초간 기절
-기타 : 시대를 질타할 패왕의 오라가 느껴지는 한 손 검, 막대한 번개의 힘, 그리고 용의 패기가 깃들어 있다.
"헉."
"레, 레전더리."
장서진의 등급이 나왔을 때 환호성이 터졌다면, 이번엔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장장이 유저뿐만 아니라 관중석에 모여 있던 유저들도 넋을 잃고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나 가장 놀란 건 장서진이었다.
'어, 어떻게…….'
우드득.
꽉 깨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인게임 안이라 해도 상당한 통증.
그러나 장서진은 그걸 느끼지도 못한 채 웨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어떻게 그 재료들을 소화한…… 화병룡을 제외하면 유저 중에선 불가능한 일일 텐데…….'
중요한 건 황실 어전경연대회의 최종 승자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달은 장서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많은 장식과 재료들의 잠재력을 전부 이끌어 내다니, 자네는 천재야!"
감탄을 터뜨리던 금은동이 일어났다.
"금민혁이라 했나?"
"예."
"조만간 다시 오지, 아마 그때는 내가 배우러."
"……!"
전대 수석 대장장이인 금은동의 눈은 굉장히 높았다.
그런 그가 저 정도로 말해 준다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과를 발표하지."
실제로 심사를 마친 후에도 금은동은 웨인의 작품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금은동이 막 우승자의 이름을 말하려 할 무렵.
경기장 밖에서 열댓 명의 금의위와 문관 NPC가 달려 들어왔다.
"잠깐! 잠깐 멈추시오!"
"음?"
"뭐야."
막 박수를 치려던 관객과 대장장이들이 멈칫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문관 NPC가 두루마리를 펼치고 말했다.
"지금 당장 대장장이 금민혁을 체포하라는 황명이오! 죄목은 황실의 검인 천제의 집행 검을 훔쳐보았다는 것이오!"
***
대장장이 어전 경연 대회는 일시 중지되었다.
유력한 우승 후보인 웨인이 황명에 의해 끌려갔기 때문이다.
'천제의 집행 검이라…….'
황궁 안쪽으로 가는 호송대 대열.
한가운데 묶인 웨인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에 들었던 아이템이군.'
미래, 중국 서버에서 공개된 세 개의 이모탈급 아이템 중 한 개가 바로 천제의 집행 검이었다.
수많은 랭커들이 경쟁했지만, 결국 웨인이 회귀할 때까지도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아이템이기도 했다.
"데려왔습니다. 폐하."
"자네들은 나가 보게."
"예!"
웨인을 묶고 데려온 금의위 무사들이 사라졌다.
순간 메시지 창 한 개가 나타났다.
-중흥제의 제왕의 기운에 들었습니다.
-이동속도가 20%, 공격 속도가 20% 감소했습니다.
-공격력이 20% 감소했습니다.
웨인의 레벨은 무려 500가까이 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효과!
다른 일반 유저가 왔다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으리라.
'역시 황제 NPC!'
초AI의 대부분은 신이나 마족, 드래곤 같은 존재들이다.
다만 인간 영웅과 같은 각 클래스의 최종 마스터 NPC들 일부도 거기 끼어 있을 뿐.
제국의 황제는 그 몇 안 되는 예외 중 하나였다.
"풀어 주게."
"예, 폐하."
황제의 말이 이어진 순간, 웨인에게 걸려 있던 디버프도 같이 사라졌다.
눈을 든 순간, 황제와 그 양옆에 선 환관, 장군이 보였다.
황제가 말했다.
"꽤나 놀랐겠군."
"네?"
"보지도 못한 검을 어떻게 베꼈느냐고 말이야."
천제의 집행 검은 이름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모습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미래 알고 있던 디자인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죄가 없었다.
'그렇군.'
웨인은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다른 용건이 있어서 엉뚱한 죄목을 대고 날 데려온 거였어.'
그리고 그 용건은 남들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일부러 없는 죄까지 덮어씌워 안으로 데려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일단은 미안하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어."
"저는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황제는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옥좌 뒤편에서 비단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무언가를 꺼낸 것이다.
"이게 보이나?"
"……검이군요."
부러진 검 한 자루.
웨인의 대답에 황제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맞네, 검이지."
"……?"
"이것이 바로 천제의 집행 검, 제국을 건국한 시조께서 가지고 있었던 절세의 명검일세."
"……!"
웨인의 눈이 커졌다.
'그럼 전생에서 저 검을 아무도 얻지 못했던 게 설마…….'
과거, 천제의 집행 검은 수많은 최상위 랭커들의 추적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애초에 검을 쓸 수가 없다면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던 사실이군.'
웨인의 표정이 굳어진 걸 본 황제가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다음에 할 말도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군."
"저 검을 수리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할 수 있겠나?"
-중흥제가 의뢰를 하려 합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퀘스트 실패 시 페널티가 있습니다.
메시지로까지 페널티를 강조한다면, 최소 레벨 다운 이상의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보수를 얻기 위해선 도전을 해야 하는 법이지.'
웨인은 씩 웃고 말했다.
"해 드리겠습니다."
"흠!"
"대신 제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