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화
루나틱에서 대다수의 국왕, 황제 NPC는 배포가 상당히 큰 걸로 설정되어 있었다.
흥미가 생기면 어지간한 손해는 감수하면서도 그걸 채우는 성격이 대부분.
그게 아니라도 적어도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물론 웨인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었고 말이다.
"무엄한!"
"여기가 감히 어딘 줄 알고!"
오히려 성을 낸 건 양옆의 환관과 장군 쪽이었다.
검을 뽑아 든 장군이 말했다.
"폐하,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지금 당장……."
"그만두게."
"하오나!"
"지금 저 대장장이를 죽인다면, 그 다음엔 어쩔 텐가. 자네가 이 검을 수리할 수 있나?"
"……죄송합니다."
장서진뿐만 아니라 어떤 대장장이도 이 검을 다룰 수 없었다.
주도권은 웨인 쪽에 있는 셈이었다.
"바라는 게 뭔가?"
황제의 물음에 웨인은 질문으로 대답했다.
"원래 제가 얻을 수 있던 게 무엇입니까?"
"이 검을 수리한 다음에 말인가?"
웨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른편에 있던 환관 NPC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그대에게 황궁 수석 대장장이의 직위, 그리고 정 1품의 신분과 함께 단 한 번, 제국의 뜻을 돌릴 수 있는 권한을 준다고 하였다."
정 1품의 신분이라면 중국 서버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직위!
그뿐만이 아니다.
제국, 즉 황제의 명령을 한 번 돌릴 수 있는 권한은 쓰기에 따라 레전더리급 아이템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모두 내가 황궁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지.'
웨인의 몸이 세 개라면 모를까.
1인당 캐릭터가 1개인 만큼,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었다.
'어차피 흑도련도 있고, 본래 길드인 드림 라이프도 계속해서 성장 중이니 굳이 황궁의 작위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결심을 마친 웨인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말씀하신 보상들은 제게 필요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원하는 게 따로 있나?"
"예, 구체적으로는 어떤 정보를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보?"
"그건 보수를 받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웨인은 숙였던 무릎을 일으켰다.
"일단 대장장이로서 이걸 먼저 수리하는 게 먼저니까요."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천제의 집행 검은 이모탈 등급의 아이템.
어지간한 레전더리급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보다 고난이도의 일이었다.
'흠…….'
웨인은 천제의 집행 검을 확인했다.
-천제의 집행 검 : 손잡이
-등급 : 임모탈
-분류 : 일반
-내구도 : 0/100,000
-제한 : 수리 전엔 사용할 수 없음
-효과 : 공개되지 않음
-세트 효과 : 공개되지 않음
-기타 : 제국의 시조, 대영웅 유현이 천마를 베어 낸 검, 현재는 부러져 있다.
'임모탈급 장비라…….'
웨인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거 생각보다 좀 힘들겠는데.'
집행 검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한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비스의 금속 도감이 반응했습니다.
-어비스의 금속 도감에 기록 가능한 금속이 근처에 있습니다.
-해당 금속 : 정제 심연 결정(0/1), 소용돌이형 아르무나이트 껍질(0/1)
어비스의 금속 도감 외에도 천상이나 이계의 금속도 얼핏 보였다.
현재 웨인의 실력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건 확실했다.
'곤란하군.'
'이 망치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웨인은 인벤토리에 있던 키클롭스의 망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망치에 있던 금속 무늬의 배열이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이건……?'
웨인은 한참 망치를 보다가, 또 검을 보길 반복했다.
같은 패턴의 장식이라는 걸 확신한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키클롭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지식이 감응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스킬들이 감응했습니다.
-장비 수리를 시도하시겠습니까? (Y/N)
'이건……!'
웨인의 눈이 커졌다.
스킬 시스템의 조건을 맞추며 나타난 감응 퀘스트였다.
'……대박이군.'
스킬 포인트 및 스테이터스에 따라 달라지는 성공 확률!
실패하면 아무 이득도 없지만, 성공하면 추가 스테이터스 및 스킬 포인트나 새 스킬을 얻을 수도 있었다.
'손해 볼 건 없는 도박이군.'
웨인은 씩 웃으며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최고의 시설을 갖춘 대장간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
-수리에 성공했습니다.
알림 창을 확인한 웨인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끝났군.'
역시 이모탈급이라 해야 할까.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웨인은 온몸의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웨인은 집행 검을 내려다보았다.
<불완전한 천제의 집행 검>
-등급 : 임모탈
-분류 : 일반
-내구도 : 5,000/98,000
-제한 : 레벨 500 이상, 명성치 10,000 이상
-효과 : 공격력+9,190, 힘+8,520, 체력+4,500, 모든 어둠 계열 속성에 추가 공격력+300%, 치명타 피해+11,000, 일반 관통력+30%, 스킬 관통력+30%, 모든 검술 스킬+2레벨 상승, 모든 해로운 상태 이상 효과 30% 감소, 체력의 50%이상 감소 후 사망 시 한 번 부활, 이때 HP는 전체 HP의 10%
-세트 효과 : 공개되지 않음
-기타 : 제국의 시조, 대영웅 유현이 천마를 베어 낸 검, 한때 부러졌으나 명장의 손길로 다시 벼려졌다. 그러나 실력이 약간 부족해 완전히 힘을 낼 수는 없다.
절반의 성공!
동강 나 있던 걸 붙이는 덴 성공했지만, 잔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아예 답이 없던 것에서 이 정도까지 고쳤으니 충분히 좋은 성과였다.
그 대상이 이모탈급 아이템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수리가 끝났습니다."
결과물을 받은 황제도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단하군."
"실력이 미숙해서 절반밖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순간 웨인은 대전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실력을 과시하는 대신, 자신을 낮춰 겸손함을 표한 것이다.
"괜찮네, 오히려 상을 줘야겠는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기뻐하실 줄 알았던 저희 동창의 안목이 옳았군요."
환관 남자, 동창의 제독태감인 왕형이 말했다.
그 때 맞은편에 있던 장군이 나섰다.
"아니, 저 친구는 금의위가 될 거요."
"허어, 이 사람 욕심이 많군."
"누가 할 소리! 내가 아무리 많아 봤자 동창이 정보 끌어모으는 것만 할까!"
두 사람은 이내 티격태격 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웨인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장군, 진무백은 금의위를 총괄하는 지휘사사.
즉 저기 있는 두 사람은 황궁을 가르는 두 단체의 장인 셈이었다.
그런 둘이 저렇게 친밀하게, 그것도 황제 옆에서 이런다는 것은…….
'금의위와 동창의 싸움은 사실 연기였군.'
작업장 간에도 이런 일이 흔했다.
지지 않으려 채무자들을 미친 듯이 경쟁시키면서, 정작 관리자들은 근무가 끝나면 같이 삼겹살과 소주를 하러 가는 식이다.
'잘 이용하면 꽤 이득을 볼 수 있겠어.'
웨인은 속으로 씩 웃었다.
그때였다.
검을 만지던 황제가 말했다.
"둘 다 그만하게, 지금부터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예. 폐하."
"예."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웨인이 한창 던전의 공략 정보를 생각할 무렵.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던 황제가 말했다.
"황실 수석 대장장이가 된 것을 축하하네, 금민혁."
황실 수석 대장장이.
중국 서버에서 가장 부유한 대장장이의 직책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폐하."
"말해 보게."
"저는 황실 수석 대장장이를 할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웨인의 말에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진무백과 왕형이 입을 닫은 가운데, 표정을 굳힌 황제가 물었다.
"어째서지?"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제재를 가할 수도 있는 상황.
웨인은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저는 조만간 왔던 대륙으로 떠나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왔던 대륙?"
"예."
웨인은 말을 이었다.
"저는 사실 이 대륙의 사람이 아닙니다, 폐하."
***
웨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기까진 10여 분 정도가 걸렸다.
자세한 건 생략하고,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 세계를 넘어온 것 정도만 설명한 덕분이다.
'어차피 여기엔 저 NPC들밖에 없기도 하니, 딱히 말해도 상관은 없겠지.'
더불어 황궁의 정보망에 철면인과 자신이 동일인이라 알려지는 것도 늦출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이 있으니, 부디 용서를."
"그렇군, 하긴 온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니 한 곳에 묶여 있을 수 없겠지."
이야기를 다 들은 황제는 웨인이 어째서 벼슬을 거절했는지 납득했다.
"잘 알겠노라. 황궁 수석 대장장이는 지금처럼 장서진에게 이어 가도록 하게 하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웨인은 사채업자들이 보던 드라마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대신 원하는 보상을 말하게 해 달란 거였군. 좋다, 말해 보아라."
"예, 폐하."
허락이 떨어지자 웨인은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제가 원하는 건 어떤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조직?"
"혹시 살막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살막.
순간 좌우에 있던 동창과 금의위 NPC의 표정이 굳었다.
"살막이라…… 일 처리가 확실한 들개들로 알고 있는데. 혹 일 처리를 맡기려 하는 겐가?"
황제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들이 저에게 선전포고를 했기에 놈들을 찾아가 대가를 받을 계획입니다."
"그렇군."
암살 의뢰라면 모를까,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 허락할 수 있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독태감 왕형이 말했다.
"정보는 내일 모아서 줌세, 계속 이야기하게."
"예."
웨인은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약간의 땅입니다."
중국 서버는 다른 서버와 달리 직접 영주가 될 수 없다.
대신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가 되어 세금 및 소출의 일부를 얻는 방식.
한 개의 국가만 있는 서버의 특성 때문에 생긴 방식이다.
"지부대인 직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제국의 신물을 복원한 자에게 이 정도야. 그래, 어딘지나 말해 보게."
황제가 그렇게 묻자 웨인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예주의 청하강 유역, 북방의 설란 고원, 신강의 라마굴……."
말이 길어질수록 황제와 나머지 둘의 얼굴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지금 나오는 땅은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땅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입니다."
"정말 그게 다인가?"
"예."
"노른자위 같은 땅을 말했어도 주었을 것을…… 원하는 대로 될 것이네."
"감사합니다."
웨인은 고개를 숙인 뒤 아무도 보이지 않게 미소 지었다.
'이제 조만간 흑도련의 자금 문제도 해결되겠군.'
지금 말한 지역은 모두 조만간 가치가 '떡상' 하게 된다.
운영진이 중국 서버의 스펙을 성장시키기 위해 만든 인스턴스 던전, 시나리오들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새로운 '이계 던전' 이 생겨나는 로비!
이 영역을 모두 독점한다면, 입장료만 받아도 엄청난 자금을 얻을 수 있었다.
'무림맹과 혈교처럼 말이지.'
무림맹과 혈교는 수많은 도시와 사냥터를 제 소유로 삼았다.
유저가 많은 서버인 만큼, 꿀 사냥터에서 나오는 수익은 상상을 초월!
흑도련은 그런 기반이 아직 부족했지만, 이제는 그 부분의 걱정도 사라진 셈이다.
'그럼 이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이 되었으니…….'
웨인은 황궁을 걸어 나오며 생각했다.
'옥새가 있는 던전은 오늘 밤에 공략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