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루나틱이라는 게임이 열린 후, 한국 서버는 항상 정점을 차지해 왔다.
기본적인 사냥부터 각종 월드 보스의 첫 클리어까지.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버 간 대항전이 일어났을 때 한국 서버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중국 서버의 선전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중국 서버 원정대, 벨로나 왕국 동부 6개 도시 장악.
-오크 제국 서부 국경수비대와 충돌. 국경수비대 패퇴. 압도적인 승리.
-토벌 준비
"주춤"
. 대형 길드들, 상황을 지켜보기로?
연이은 중국 서버 유저들의 승전보!
단순히 물량으로 밀어붙여서 얻은 게 아니라, 비슷한 수가 집단전을 벌여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겼다!"
"와아아!"
승전보는 곧바로 중국 서버로 전해졌다.
그에 따른 한국 서버 유저들의 반응은 덤이었다.
-한국 서버 원정대, 연일 승리를 거듭하다.
-'최강'을 꺾고 비상하는 용. 무림맹과 혈교의 정예들이 해내다.
-미라클, 발할라, KU, 토벌군 진격 보류. 예상 이상의 전력에 놀란 듯.
-한국 유저들 반응 번역,
"상상 이상이다"
라는 반응 대부분.
한국 서버 유저들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커뮤니티에는 패인 분석 글들이 연달아 올라왔고, 실제 게임 방송이나 채널에서도 그 주제를 주의 깊게 다뤘다.
"결국 문제는 이겁니다. 대규모의 PVP 경험이 너무나도 부족해요."
"PVP 경험 말인가요?"
"네, 중국 서버는 예로부터 막 싸움으로 성장해 왔거든요. 초보 시절부터 서로 PVP를 밥 먹듯이 하는…… 흔히 말하는 '쟁'에 특화된 서버입니다."
"그럼 레벨 랭킹이 낮았던 것도 그런 서버의 특성 때문이겠군요."
"네, 덕분에 지금까지 중국 서버가 과소평가된 감이 있습니다. 지금의 평가로 보자면 한국 서버만큼은 아니지만, 인도 서버는 확실히 넘어선 수준이네요."
중국 서버에 대한 평가가 대대적으로 수정!
이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서버에 남아 있던 유저들은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우리가 이겼다!
-중국은 강하다. 더 이상 최약체가 아니야!
다른 서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설움을 이번 일로 말끔히 해소!
여러 악재로 인해 경제가 급락하던 중국에서 오랜만에 생긴 좋은 소식이었다.
소식이 퍼지자 중국 내 연예인이나 기업가, 당 간부 등도 연이어 관련 소식을 와챗에 올렸다.
쏟아지는 수많은 응원 메시지와 격려!
심지어 톱클래스 연예인인 메이 링이 직접 응원 영상을 업로드할 정도였다.
원정대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한순간에 스타 뺨치는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 놈들 별거 아니구먼!"
"레벨만 높지, 실전 경험 없는 허수아비들이야."
"덕분에 폭업 좀 하겠는데?"
"여기 오길 잘했어!"
전쟁이 순조로이 진행되자, 원정대 진영은 항상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이대로 계속 밀어붙이자!"
"위하여!"
작은 마을 여러 개를 쓸어 버리고 축배를 드는 중국 원정대 군사들!
총사령관 막사에 있던 웨인은 천막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저 녀석들, 자기들 실력으로 이긴 줄 아는군.'
살라스 성 함락 이후, 웨인은 일부러 원정군을 동쪽으로 움직였다.
기존 대형 길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프로메테우스가 관리하는 고레벨 사냥터에 가까워진 것이다.
'대형 길드들이 오지 않는 것도 서로의 영역권을 침범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고.'
한국 서버의 사냥터들은 평 단위로 대형 길드들의 관리 및 통제를 받아 왔다.
아무리 대사건이라고 하지만, 상대의 영역을 침범했다간 추후 그걸 빌미로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웨인이 파고든 곳은 발할라와 KU, 프로메테우스 길드 사이의 절묘한 위치!
지금까지 중소 길드나 일반 유저들과만 싸운 것도 같은 이유였다.
'계속 이기며 영웅 대접을 받다 보니 기가 살았어.'
자연스럽게 웨인의 명령도 점차 듣지 않게 되었다.
애초부터 원정대 인원들은 흑도련을 아니꼽게 보던 과격파.
적을 쓰러뜨리며 기세를 타자, 명령 자체를 아니꼽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흑도련주?
-그 녀석 알고 보니 허당이야. 무시하고 하던 대로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이런 말이 돌 정도!
물론 철면인의 눈앞에서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시를 내릴 때나 이동할 때, 과격파 유저들의 눈빛은 확실히 그런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 덕에 지금 나는 완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지.'
웨인은 막사 안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군.'
처음부터 웨인은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예상했다.
이유? 간단하다.
전생에서 겪은 작업장 경험 때문이다.
'그때 사채업자 한 놈이 어리바리하니 채무자 몇 놈들이 아예 먹어 버리려고 했지.'
실제로 먹는 건 아니고, 사채업자를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지시를 내려 작업을 하는 정도였다.
사채업자와 채무자라는 작업장의 위계질서를 깨뜨리는 행위!
돈이 잘 나오니 한동안은 별문제 없이 진행되었지만, 한 번 채무자가 선을 넘자 철저할 정도의 응징이 시작되었었다.
'주동자였던 세 명은 묻혔고, 다른 찬동자들은 전부 다 원양어선으로 떠났고.'
한 번 맛을 보면 또 그럴 것이라는 게 이유.
당시 김민혁은 불길한 낌새를 느끼고 찬동하지 않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규모만 커졌지 내용은 별다를 것 없군.'
심지어 이번 생의 중국 유저들은 그때보다 더했다.
적어도 전생의 채무자들은 노하우가 있었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
연승이라고 하지만 그 대부분은 중소 길드를 상대로 한 것.
게다가 가장 큰 싸움이던 살라스 성채 공략은 천마가 혼자 해낸 것을 가로챈 전과였다.
즉, 기고만장한 분위기에 비해 실제 힘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다는 뜻.
'그래도 적절히 커 준 덕분에 완전히 양민학살 당하지는 않겠군.'
그때였다.
웨인이 중국 원정대의 전력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
띠링!
메시지 알림음과 함께 새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베르한>
-정보 입수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길드는 직접 공격하지 않는 이상 먼저 때리지 않는답니다.
-8번째 대재앙의 월드 보스의 중간 보스인 악마 다이달로스의 공략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드림 라이프에서 입수한 프로메테우스 길드의 움직임 정보.
지금까지 웨인이 기다리고 있던 내용이었다.
"흐음."
내용을 확인한 웨인은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중간 보스 런을 하시겠다?'
대재앙의 월드 보스는 잡기 어려우니, 중간 보스를 잡아 나오는 아이템만을 빼 먹겠다는 것!
현 시점에서 알려진 가장 큰 히든 피스이자, 프로메테우스와 미라클만이 가능한 콘텐츠이기도 했다.
'그럼 슬슬 이쪽이 움직여 줄 때가 되었군.'
웨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전 인원들 집합하도록. 다음 진로를 결정하겠다."
"네? 하지만……."
"이건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막사를 지키던 병사 유저가 투덜거리며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웨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중간 보스 파밍? 어림도 없지. 암!'
다시 뜬 눈에선 득의양양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
약 2시간 후.
"이게 다인가?"
웨인은 그렇게 말하며 막사 안을 둘러보았다.
사령관실 막사는 200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 있는 유저는 1/3인 70명을 약간 넘는 정도였다.
"나머지는?"
"다들 전선에 나가 있소. 개인적인 용무로 로그아웃 중이거나."
간부 중 한 명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웨인은 대답 대신 그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뭐, 뭐 문제라도 있소? 과반수는 되니까 우리가 듣고 전달하면 되잖소!"
잠시 움찔하던 간부가 거세게 쏘아붙였다.
최근 붙은 자신감도 있고, 주변에 있는 아군을 믿고 강하게 나온 것이다.
"아니, 됐다."
웨인은 순순히 고개를 젓고 자리에 앉았다.
"지시를 들은 후엔 여기 없는 사람에게도 각자 전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시간이 없는 듯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가볍게 고개를 든 웨인이 말했다.
"지금부터 살라스 성을 버리고 거점을 남쪽으로 옮긴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프로메테우스 길드의 도시는 치지 말도록."
"……예?"
"어째서?"
곧바로 간부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오크 제국인데, 그 꿀 땅을 버려 두고 내려가라니!"
"대체 왜입니까?"
"프로메테우스는 아직 원정대가 상대하기엔 너무 강하니까."
한국 서버에서 가장 강한 5대 길드.
그중 프로메테우스는 다른 길드보다 반 수 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미라클과 드림 라이프가 강하다고 하지만, 압도적인 규모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 서버부터 전 세계를 합친 루나틱 최강의 길드인 셈.
그런 길드가 먼저 웅크려 주겠다는데 굳이 건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웨인을 바라보던 간부 한 명이 말했다.
"한국 놈들, 알고 보니 별것 아니던데요."
"그렇게 생각하나?"
"지난번에 살라스 성에서 털어 버린 놈들도 발할라 길드의 1군이잖습니까."
웨인이 묻자 처음 말했던 간부는 얼굴이 붉어진 채 대답했다.
"그 정도면 준프로메테우스급은 될 텐데, 우린 그런 놈들도 이겼잖습니까."
"맞다!"
"맞아!"
곧이어 사방에서 동의한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미 명령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
"차라리 잘됐소, 이참에 프로메테우스 놈들을 털어서 레벨을 끌어 올립시다!"
"옳소!"
아예 일부러 프로메테우스를 먼저 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말없이 듣고 있던 웨인이 가면 속에서 입꼬리를 살짝 올린 것은.
'계획대로군.'
애초에 여기 있는 인원의 대부분은 대흑도련 과격파.
특히 지금 같은 때라면, 웨인의 말에 무조건 반대하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줄 줄이야.'
평소였다면 감히 언급도 못할 프로메테우스를 공격하자는 의견들!
즉 그만큼 중국 서버 랭커들이 자만심에 취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운이 좋군.'
웨인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위중악이 여기 있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터.
그러나 지금 회의장에 있는 건 중견 간부들뿐이었다.
"정말 프로메테우스를 치려고?"
"그렇소."
"같은 1군이란 발할라 놈들이 그 정도라면, 프로메테우스 놈들도 충분히 이길 수 있소!"
"아니면 혹시 겁먹은 거요, 철면인 총사령관?"
이때라는 듯 간부 몇몇이 웨인을 향해 도발성 언사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보던 웨인은 짐짓 한숨을 쉬어 보이고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군. 다음 전투는 프로메테우스 길드와 하지."
"와아아아!"
"우오오!"
막사 안이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다.
다음 날, 중국 서버 원정군은 곧바로 진군을 개시했다.
목적지는 오크 제국 서부 대도시인 오미크론시.
오크 제국의 대형 거점 중 한 곳이자, 프로메테우스 길드의 꿀 거점 중 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