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화
장영실이 들어온 후, 웨인은 라도스 섬의 개발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일본 유저들의 공세에 대비할 겸, 드림 라이프 소속의 해상 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아주 좋은 선택이야."
해상전의 전문가, 패왕장보고는 계획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먹고 있으면 카이사 대륙 남쪽 바다에서 시작부터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지."
대양에는 섬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는 거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섬에 있는 리스폰 포인트와 게이트로 보급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부활하자마자 바로 싸움에 참가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거든."
부활 외에도 귀환한 다음 안전히 회복 후 복귀하는 식으로 이득을 보는 것도 가능!
흔히 말하는 '귀환텔'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라도스 섬의 가치는 수만 골드가 넘었다.
히든 피스를 제외하고서도 그 정도.
전리품의 상당수를 패왕장보에게 넘겨줬지만, 이 섬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일단 섬에 조선소를 만든 다음, 그곳에서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마블포트에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그곳은 보는 눈이나 견제가 너무 많았다.
문제는 공사 속도와 효율이었는데, 장영실을 영입하자 그 부분도 금방 풀렸다.
"여기 이 포대는 조금만 손 보면 공격 속도를 1.5배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겠는데요? 제게 맡겨 주십쇼."
제자가 된 장영실은 웨인 대신 섬을 둘러보며 공사를 감독했다.
"순 철강이 부족하다고요? 합성 철강에 숲 엘프 경화제를 풀면 대신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가끔씩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대로 적용해 효율과 속도를 높인 것이다.
원래는 서너 달을 잡고 있던 건축 계획이 두 달 안쪽으로 수정된 것도 그런 덕분이었다.
"일본 놈들이 또 오면 고생 꽤나 하겠군."
개발 중인 라도스 섬을 본 패왕장보고가 말했다.
"이거면 무혈사신 님 없이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섬을 지키는 데 참가했던 신라 길드원들의 반응도 다를 바 없었다.
"이런 기지 하나 있으면 진짜 든든하지!"
"태풍 면역에 바다 괴수도 없고. 이런 항구 있으면 든든하겠네."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
그러나 웨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본 유저들은 루나틱이 오픈한 4년 동안 해상전을 해 왔다.
한 번 크게 격파하기도 했고, 섬을 요새로 개조하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그래도 장영실이 와서 추가 작업을 할 수 있겠군.'
웨인은 장영실을 불러 말했다.
"어때, 섬의 보강 작업은 충분히 됐나?"
"아직 부족합니다."
장영실은 섬 전체를 뜯어고쳐서 요새로 만들자는 의견이었다.
"작정하고 공중에서 쏟아부어도 버틸 수 있게 가림막과 굴을 만들어야 하고, 섬 주변의 얕은 바다에도 인공 암초와 기뢰가 필요합니다."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주체 못하는 모습.
웨인의 입꼬리에 미소가 나타났다.
"그것도 물론 좋지."
"저에게 시간과 예산을 주신다면……."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예?"
웨인은 대답 대신 미리 가져온 오토봇을 들여 놓았다.
"이 녀석들을 살펴보도록."
"흐음……."
장영실은 수 초간 오토봇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자동 골렘이군요, 로봇에 가깝고, 해저 자원을 캐는 용도지요?"
"정확히 맞췄군."
겉보기로 보이는 특징만으로 용도를 알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눈썰미!
웨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네가 할 일은 이 녀석들의 업그레이드다."
"업그레이드?"
"그래, 이런 방향으로 계획해 볼까 하는데……."
웨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천천히 듣고 있던 장영실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요?"
"답은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 않나?"
"확실히……."
고개를 끄덕이던 장영실이 물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겠습니다."
"음?"
"역시 당신은 천재입니다! 처음 섬을 둘러볼 땐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길래 별말을 안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어리석었군요."
낭중지추니 군계일학 같은 말을 꺼내며 치켜세우는 장영실.
그 모습을 보던 웨인이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장영실의 반응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말한 아이디어와 그에 맞는 구동 원리.
둘 모두 눈앞에 있는 미래의 장영실이 만든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그때도 혁신이니 뭐니 했었는데, 하물며 지금이야 더 할 수밖에.'
스윽, 손을 들고 칭찬을 막은 웨인이 물었다.
"그래서, 할 수 있겠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한번 해 보죠. 데오마론 그자는 절대 못 할 겁니다. 아마."
"좋아."
장영실을 보낸 웨인은 생각에 잠겼다.
'약간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다.'
신라 길드뿐만 아니라 드림 라이프에서도 많은 유저들이 전투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럼 이제 한 가지만 남았군.'
웨인은 섬 안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라도스 섬은 하나의 마을과 열세 개의 필드, 그리고 한 개의 던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끝없는 미궁.
이름과는 달리, 고작 5층에 간단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이 장소가 바로 그 던전이었다.
"예상대로군."
웨인은 홀로 당당하게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나타나는 미궁 박쥐 및 언데드 전사들!
키이익!
"호, 혼을 내놓아라."
현재 웨인의 레벨은 516.
레벨 300~400대의 던전쯤이야 쉽게 돌파할 수 있었다.
하드 모드 최종 보스인 미궁의 왕도 단 한 대도 맞지 않은 채로 처치!
-끝없는 미궁을 클리어했습니다.
-215골드 50실버 83코퍼를 획득했습니다.
-생명의 투구를 획득했습니다.
-위대한 메두갈의 뼈 지팡이를 획득했습니다.
-한 번도 맞지 않고 클리어했습니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새로운 칭호 '라도스 유적 전문가'를 획득했습니다.
띠링!
던전을 클리어하며 해당 던전의 전문가라는 업적까지 획득했다.
그러나 웨인은 열린 출구를 보면서도 나가지 않았다.
"정보가 맞다면, 이곳에서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다."
대신 미리 준비한 드래곤 하트를 제단에 놓은 후, 각 벽에 있던 퍼즐을 맞게 조합하기 시작했다.
평소 오던 유저들은 보스만 잡고 빠져나가기에 별생각 없이 지나가던 부분이었다.
'탐험가 유저들도 설마 이곳 보스 룸의 사용 가능한 오브젝트가 열쇠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원래는 퍼즐을 이용해 데미지를 주어야 하는 패턴이 있지만, 깡 데미지로 때려잡은 덕분에 열 수 있는 것이다.
'됐군.'
퍼즐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모든 조각을 맞춘 순간.
그그긍!
유적 내 시설들이 움직이며 제단 한가운데로 빛이 모였다.
-유적의 설비를 가동하시겠습니까? (Y/N)
-드래곤 하트가 소모됩니다.
"가동한다."
-유적의 설비를 가동했습니다.
파앗!
동시에 보스 룸 한복판에 생기는 빛의 문.
웨인은 문을 노려보았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고대 신들의 전장으로 갈 수 있다.'
설정으로만 볼 수 있는 고대 전장!
미래에서 일본 유저들은 저곳에서 파밍과 퀘스트를 하며 엄청난 스펙을 끌어올렸다.
'미라클의 네임드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했었지.'
미라클의 1군은 한국 최고의 유저들만 모인 정예.
그들과 맞서 싸울 만한 스펙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이 히든피스가 사기급이라는 증거였다.
'물론 이번엔 조금 달라지겠지만.'
생각을 마친 웨인은 미련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일단 열어 두었으니 드롭률이 높을 때 무어라도 얻어 놓아야지."
이미 장영실과 베르한에게 각각 임무를 맡긴 상황.
여차하면 메신저를 통해 지시도 내릴 수 있지만, 아무래도 약간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어째 한동안 못 올 것 같은데, 그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도 같고.'
할 수 있는 대비는 다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
웨인은 못내 뒤를 돌아보다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웨인이 들어간 지 1주일.
마침내 일본 서버가 2차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
일본 서버는 흔히 말하는 '전국시대'에 가까웠다.
각 지역마다 패권을 가진 길드들이 있으며, 서로 이권을 두고 끝없이 해전을 벌이는 상황.
그러나 이날 나온 발표는 그런 인식을 깨뜨리는 내용이었다.
-검성 '무사시'. 드림 라이프에 복수전 선포.
-일본 연합 나타나다, 일본 랭킹 1~12위 길드 오사카에서 창설식 가져…….
일본 연합의 공식적인 출범!
루나틱 소식을 다루는 모든 웹사이트가 이 소식을 급히 첫머리로 띄웠다.
-yerytq : 일본 서버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네요.
-감성철 : 얼마 전에 신라 길드한테 개털리고 빡쳐서 제대로 일어난 듯?
소식을 본 유저들은 즉각 반응했다.
그사이 기사들은 연이어 일본 연합 관련 정보를 쏟아냈다.
-연합의 수장은'쇼군' 노부나가.
-노부나가의 정체는? 비공식 일본 유저 랭킹 1위. 현실의 정체가 누군진 베일에 싸여 있어……. 고위직 관계자라는 추론이 유력.
-검성의 복수가 목적……. 연합의 목표는 타도 드림 라이프. 한국 서버 전체는 아니다.
일본 연합의 목표는 드림 라이프와 김민혁, 그리고 패왕장보고뿐!
각 대형 길드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프로메테우스
"드림 라이프 길드와의 개인적인 시비, 섣불리 끼어들지 않겠다."
국가전 아니다로 선 그어…….
-미라클의 알렉,
"일본 연합과 드림 라이프 간의 트러블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
발표해…….
-한국 서버
"긴장"
, 포션류와 강화석, 금속 등 재료값 전체적으로 3.3% 상승하다……. 전쟁 특수 효과 시작되다.
일본이 침공해 온다면 싸우겠지만 그뿐.
드림 라이프와 일본 연합간의 일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일본 쪽과는 얘기가 되어 있었는데, 드림 라이프가 그 사이 끼어들었군."
"메이지 길드와 오다 길드에서 난리야.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면서."
"김민혁과는 아예 얘기가 안 되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여론에 발표한 것과는 별개로, 한국 서버의 대형 길드들은 긴밀히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민혁과 드림 라이프가 또 끼어들었군."
"드림 라이프 쪽엔 패왕장보고와 신라 길드가 있고."
"비행기와 해상 함대가 대략 1,200척, 거기다 드림 라이프 길드원이 50만 정도겠군."
"실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그 절반이겠지. 배가 그만큼 많지 않으니까."
주제는 일본 연합에 맞서는 김민혁과 드림 라이프가 보유한 전력.
그리고 김민혁이 모르는 사이 이루어진 일본과의 밀약이었다.
"일본 쪽에서 약속과 다르다고 항의가 만만찮은데."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니, 우리는 약속대로 중앙 지역을 차지하고 관망하면 돼."
"그쪽 영역이……. 세계수 8구역과 3구역, 그리고 11구역이었지."
"드림 라이프가 도움을 요청해 오면 적당히 중재하면서 얻을 건 얻어내고."
"일본 연합도 우리들이 가세하면 힘들 테니까."
대형 길드들은 드림 라이프가 언제 도움을 청할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즉, 드림 라이프가 단신으로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럴 만했다.
일본 연합은 일본 서버 전체 전력의 60% 이상.
한 개의 길드만으로 맞서 싸우기엔 체급차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으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드림 라이프가 결국에는 백기를 들 거라는 거지."
"우리들이 움직이는 건 바로 그때다."
남은 건 최적의 타이밍을 맞춰 개입하는 것뿐.
대형 길드들은 그런 생각하에 드림 라이프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게 두 가지 있었다.
드림 라이프는 항상 상식을 뛰어넘은 발명을 보인다는 게 첫 번째.
그리고 김민혁이 이미 이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를 마쳤다는 게 두 번째였다.
실제로 그 시각 신라 길드의 수장인 패왕장보고는 일본 연합과 관련된 소식을 받아들고 있었다.
"데오마론이 보낸 소식이군."
보는 것은 김민혁과 얘기된 데오마론의 연락.
편지를 읽던 패왕장보고의 입에 미소가 어렸다.
"업그레이드가 끝났다라……."
"그 말씀은……!"
주변에 있던 수하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을 향해 웃어 보인 데오마론이 말을 이었다.
"그래."
그리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민혁이 말한 대로, 일본 놈들에게 한국의 해상전이 어떤지 제대로 관광시켜 줄 수 있다는 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