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6 시작은 창대하나... =========================================================================
다음 날 프라임 공격대 대원들은 중앙 장비 센터로 집결했다. 그들은 유지웅의 리드 하에 저마다 증폭형 장비 한 개씩을 지급받았다. 본래라면 비싼 값을 치르고 사거나, 혹은 유료 대여를 해야 하지만 유지웅이 만든 공격대이기 때문에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다.
“햐. 이게 정말 공짜란 말이지?”
“잃어버렸다가는 큰일나겠군.”
A급 장비는 대여하는 데만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든다. 국가 입장에서는 무료로 대여해주는 것만 해도 큰 투자인 셈이다. 분실하면 당연히 개인 책임이었다. 유지웅도 그것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대원들은 각 파트별로 진지한 토의 시간을 가졌다. 팀원의 능력과 성향을 파악해서 손발 맞추기에 들어간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유지웅과 파트장들이 따로 모여서 종합 전술 회의 시간도 가졌다.
“어그로가 불안한 몹이니 딜은 될 수 있으면 살살하는 게 좋겠습니다. 첫 레이드이니만큼 안정적으로 마치는 게 제일이에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잡는 쪽으로 하죠.”
“특히 근접 딜러분들 조심해주세요. 보호막이 있긴 하지만 무조건 믿는 건 곤란해요. 원거리 딜러는 누구를 노리는지 티가 나니까 보호해줄 수 있지만, 근접 딜러는 힘들어요.”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게 제일이에요. 그것만 해도 충분한 성공이에요. 아니, 대성공인가?”
파트장들은 진지하게 회의에 임했다. 유지웅은 전체적인 틀만 조율했다. 사실 전술 구성은 이들이 더 전문가였다. 레이드 경험만으로 따지면 유지웅은 그들에 비해 초짜였다.
그리고 사실 그는 조금 딴생각을 하느라 회의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한두 번 만에 바로 빚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
레드 몹은 최소 5000억이다. 공격대원이 65명이니 대충 두 당 80억 정도를 분배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옐로 타입은 두 당 1억 정도이니, 무려 80배나 차이가 난다.
만약 사망자가 한 명도 안 나온다면, 탱커와 딜러의 세금이 면제된다. 그 돈만 약 2100억이다. 거기서 70%를 가져간다면, 무려 1480억 가까이 된다.
그의 빚은 아직도 800억이 넘게 남아 있었다. 레이드를 한 번만 뛰어도 그 빚을 전부 청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아니, 전부 다 갚고도 수백억이 남는다. 남은 돈으로는 결정체를 장비로 가공할 것이다.
‘S급 장비는 보호막이 얼마나 강화될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일반 보호막은 정효주를 정상급 탱커로 만들어준다. A급 장비로 만든 강화 보호막은 정상급 탱커의 두 배에 가까운 방어 능력을 보이게 한다. 그럼 S급 장비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대장님?”
혼자 상상하며 히죽이고 있는데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지웅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파트장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 전략대로 가기로 하고, 모레가 D-데이니 내일 하루는 푹 쉬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세부 전술은 각 파트장이 자기 담당 파트 소속 대원들에게 통보하고 따로 회의를 가질 것이다. 유지웅 커플도 그들과 헤어져 귀가했다.
“아, 드디어 모레네. 긴장된다.”
“나두.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어. 몇 번이나 시험해봤잖아. 그리고 탱킹 자체가 불가능한 레드 몹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어. 그러니까 괜찮아.”
서른 번 가까이 레드 몹이 인간을 습격했지만 탱킹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강화 보호막을 사용하면 정효주는 정상급 탱커의 두 배 가까운 방어 능력을 보인다. 걱정할 게 없다.
“지금까지 없었던 건 아니지. 울릉도에 나타났던 녀석은 탱킹 자체가 불가능했잖아?”
“아, 맞다.”
“지웅이 네가 아니었으면 그거 못 잡았어. 핵을 안 썼으면 큰일 났을 거야.”
“다 내가 잘난 덕이지. 그치?”
“으이그. 잘난 척은. 상이라도 줄까?”
“줘! 상 줘!”
먹이를 좀 흔들었더니 덥석 문다. 그게 재미있어서 정효주는 쿡 하고 웃으며 이마를 가볍게 밀었다.
“잘 될 거야.”
그녀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감개가 무량했다. 레이드계의 천덕꾸러기였던 둘이 어느덧 가장 주목받는 인사가 되어 있었다. 프라임 공격대는 떠오르는 혜성이자 돌풍의 핵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공격대였다.
이게 전부 보호막 능력 덕분이다. 가끔 이런 행운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 버리는 꿈같은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상이 뭐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지웅이 잔뜩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녀가 쿡쿡 웃으며 달랬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준비할게.”
“응.”
근데 왜 욕실로 들어가지?
유지웅은 한참을 기다렸다. 조바심이 나고 안절부절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얼마나 근사한 상을 준비했을까?
“들어 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난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정효주는 화끈한 빨간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터질 듯한 젖가슴을 겨우 감싸고 있는 튜브탑과, 늘씬한 골반을 거의 드러내고 있는 폭 좁은 아슬아슬한 언더웨어가 눈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놀란 것은, 욕실 한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물침대였던 것이다.
이, 이것은 설마?
“여기 누워 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남자라면 기뻐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속편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왠지 정효주의 저 상냥한 웃음이 무서웠다.
“효, 효주야? 이거…….”
“응? 싫어? incoming 폴더에 애지중지 숨겨놓은 동영상 보고 내가 준비한 건데? 이런 거 원하지 않았어?”
웃고 있지만 화난 눈이다. 머리끝이 쭈뼛 섰다. 보이는 웃음 그대로 믿었다가는 큰일 나리라.
“왜 떠니? 그렇게 흥분 돼?”
그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아끌었다. 들켰어! 들켰어! 몰래 꼭꼭 숨겨놓은 소중한 사생활이 들켰다!
억지로 그녀가 옷을 벗기고 눕혔다. 연약하고 가녀린 팔뚝이지만 사실 그녀는 힘이 매우 세다. 괜히 탱커가 아닌 것이다. 힘으로 따지면 유지웅은 결코 그녀를 이길 수 없다.
강제로 눕게 된 그의 위로 그녀가 앉았다. 그는 알몸이었고 그녀는 아슬아슬한 비키니만 입은 상태였다. 그녀의 은밀한 부위가 하물을 누른 채로 미묘하게 앞뒤로 움직인다. 질척한 자극에 그의 물건이 어느새 빳빳하게 일어섰다.
언제 준비했는지, 그녀는 커다란 병을 한 손에 쥐고 안에 담긴 윤활유를 천천히 그의 몸 위로 뿌렸다. 비키니 상의를 벗자 팽팽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상체를 납작 엎드린 그녀는 부드러운 젖가슴을 그의 가슴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진 채로, 그녀는 위아래로, 옆으로, 대각선으로 조금씩, 하지만 은밀하고 질척하게 문질러댔다. 그의 몸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상체를 문지르면서,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또 볼 거야, 안 볼 거야?”
“아, 안 볼게…….”
“그럼 다 지워도 되지?”
무서웠다. 웃고 있지만, 화끈한 서비스를 해주고 있지만, 저 눈은 분명히 화가 잔뜩 난 눈이다! 자기 몰래 야동을 봤다고 질투하는 여자의 눈이었다!
“앞으로 그런 거 보지 마. 내가 더 기분 좋게 해줄 테니까…….”
나지막한 호흡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착 달라붙은 피부가 느릿하게 문질러댄다. 살결에 전기가 흐르는 듯이 짜릿하다. 그녀가 다리를 교대로 들어 올리며 비키니 팬티까지 벗어냈다. 기승위로 엎드린 채, 온몸을 밀착하고 슬슬 문질러대며 빚어내는 마찰이 몸을 달궜다.
참기가 힘들다. 그는 더듬더듬 손을 올려 그녀를 껴안으려 했다. 그녀가 안 된다는 듯이 도리질을 치며 그의 양손을 붙잡아서 벌렸다. 깍지를 낀 채로 그녀는 능숙하게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전신을 마찰했다.
그녀가 다시 속삭였다.
“이제 그런 거, 안 볼 거지?”
희롱하듯이 그녀는 젖가슴으로 얼굴을 짓눌렀다. 풍만한 가슴골에 묻혀 입을 열기 어려웠다. 어질어질한 아찔함 속에 그는 겨우 대답했다.
“안 볼게…….”
버틸 수가 없다.
그날 밤 그는 천국에 다녀 왔다.
서울 인근 군 기지에 수십 대의 차량이 몰려들었다. 마치 차종 시장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모델들이었다. 전 세계 비싼 차들은 전부 모아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수퍼카, 고급 세단, 리무진 등 차종도 다양했다.
군 기지에 들어선 차량들은 헬기 이륙장으로 이동했다. 다섯 기의 수송 헬기가 이륙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들도 내렸다.
유지웅 커플도 람보르기니에서 내렸다. 로터가 만들어내는 바람에 정효주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녀는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잡고 눌렀다.
레이드를 앞둔 터라 그녀의 복장은 간결했다. 허벅지 라인을 착 드러내는 반바지에, 달라붙는 검은 티를 입었다. 그 위에 짧은 가죽 재킷을 걸치고, 등에는 아제로스의 쌍날검을 X자로 교차해서 착용했다.
각 파트장들이 유지웅 주변에 모였다.
“다 모이셨나요?”
“네.”
말은 하지 않지만 저마다 긴장한 안색이었다. 오늘 그들은 레이드 역사에 한 획을 그으러 떠난다.
“그럼 출발하죠. 전원 탑승하라고 하세요.”
한때 석유 산업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정체 산업 중심으로 세계 산업 및 경제가 돌아간다. 레이드 정책은 정부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주요 산업이다. 공격대의 이동 수단으로 군용 헬기를 지원하는 것쯤은 생색내기조차 될 수 없는, 당연한 것이다.
다섯 기의 헬기가 65명의 공격대원과 10여 명의 비전투 지원팀을 태우고 이륙했다. 헬기 편대는 남쪽을 향해 우렁찬 로터음을 내며 비행했다.
흔들리는 헬기 안에서 유지웅은 다른 이들의 안색을 살폈다.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일 텐데, 눈에 띄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만큼 레드 몹이 주는 부담감은 과중한 것이다.
‘오늘 꼭…… 사망자가 나오지 않아야 할 텐데.’
유지웅은 성공 여부는 의심하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했던 울릉도 레드 몹도 쉽게 잡았다. 스키너는 그보다 더 약한 개체다. 당연히 쉬운 레이드가 될 것이다. 다른 대원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문제는 사망자의 발생 여부였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아야 종합 면세 혜택이 부활한다. 일단 부활한 면세 혜택은 다음에 사망자가 나오더라도 취소되지 않는다. 오늘 사망자가 안 나온다면, 다음에 사망자가 나와도 면세 혜택은 지속된다는 뜻이다.
오늘 사망자가 안 나온다면 즉시 빚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긴장되지 않을까?
비단 빚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공격대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어느 누가 같은 팀원이 죽는 것을 바라겠는가?
「도착했습니다.」
넓은 평지에 헬기 편대가 각각 착륙했다. 대원들이 내렸다. 지원 부대가 이미 이동 차량을 준비해놓았다. 대원들은 차량으로 옮겨 탔다.
차량을 타고 다시 삼십 분 정도를 이동했다. 공격대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칙칙한 바위더미 틈 사이에 거대한 집게발이 보였다. 황소 네 마리를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몸집. 붉은 갑각류. 오늘의 레이드 대상, 스키너였다.
스키너와의 거리는 약 200미터. 유지웅은 쌍안경으로 목표를 확인했다. 수면 중인지 이쪽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쌍안경을 내린 유지웅이 비전투 지원팀을 돌아봤다.
“지원팀은 바로 세팅하세요.”
“예.”
지원팀장이 끄덕이고는 팀원들을 지휘했다. 팀원들은 복잡한 장비를 꺼내고 세팅을 시작했다. 위성통신기, 고감도 촬영 장비, 각종 딜량과 힐량 체크기 등이었다. 이 장비들은 레이드 전반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또한 레이드를 세세하게 기록하여 전투 내역을 검토할 수 있게 해준다.
정규 공격대라면 이런 지원팀은 당연히 거느리고 있다. 조만간은 재정 관리 팀도 고용할 생각이었다. 일단 오늘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말이다.
다른 대원들도 바쁘게 준비에 들어갔다. 딜러들은 장비 상태를 확인하고, GPS탐색기로 주변 지형을 확인했다. 이어폰형 교신기를 장착하고, 포진 위치를 점검했다. 힐러진도 진지하게 도주로를 확인했다.
유지웅도 목에 건 부자왕의 눈물을 만지작거렸다.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줄 소중한 녀석이다. 스키너는 공격형 레드 몹이기 때문에 평타 공격이 매우 쎄다. 하지만 A급 장비로 강화한 보호막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미 울릉도에서 증명되었다.
정효주도 아제로스의 쌍날검을 빼서 양손에 쥐고는 허공에 붕붕 휘두르고 있었다. 유지웅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불렀다.
“효주야.”
“응?”
“다치면 안 돼.”
실속 없는 말임은 안다. 탱커가 다치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원래 탱커의 임무가 다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정효주는 방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 너 자신을 믿어 봐.”
정효주는 등을 돌리며 성큼 앞장섰다. 그리고 외쳤다.
“카운트다운 개시!”
“5!”
“4!”
“3!”
“2!”
“1!”
“돌진!”
정효주는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와 보조를 맞추어, 다른 두 명의 탱커도 적당히 뒤쳐져서 뛰어갔다. 딜러장과 힐러장이 자기 팀원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우리도 이동할게요! 사정거리까지 전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스키너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거대한 집게발이 흔들렸다. 허공 높이 뛰어오른 정효주가 휘두른 쌍날검이, 녹빛 궤적을 둥글게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