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4 녹서스의 돌은 어디에? =========================================================================
유지웅은 머리끝이 쭈뼛 섰다. 새삼 휴스턴 때가 생각났다. 하마터면 정효주를 잃을 뻔했던 정체절명의 위기를 겪었던 레이드. 불현듯 그때와 똑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몸이 조금씩 떨렸지만 꾹 참았다. 침착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된다.
‘시발! 왜 우리만 이 고생이야!’
한 방에 3단계 강화 보호막이 찢어진 것을 보니 괜히 그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피할 수 없는 의무이고, 제니스 공격대가 아니면 레드 몹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막상 위급한 상황에 처하니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캬아아아!
히카리가 온몸의 갈기를 곤두세우고 포효했다. 정효주는 자세를 낮추고 잔뜩 경계했다. 대원들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대비했다.
갑자기 히카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굉음이 울리며 정효주가 또다시 나가떨어졌다. 수십 미터 넘게 나가떨어진 그녀를 히카리가 짓밟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투둑! 투두둑!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지웅은 재빨리 보호막을 시전했다. 그녀에게 전달되는 충격이 멎었다. 그 사이에 힐이 들어오며 빠른 속도로 부상을 치유했다.
몸이 회복되자 그녀는 재빨리 옆으로 굴려 히카리의 발에서 빠져 나왔다. 앞발을 높이 치켜든 히카리가 그대로 힘껏 내리쳤다. 빠르게 점프해서 피한 그녀가 쌍날검을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갔다.
까강!
쌍날검이 히카리 다리에 박혔지만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가로 막혔다. 바위를 찌른 듯한 반발력이 되돌아왔다. 팔이 후끈거릴 정도였다.
“칫!”
정효주의 눈에 낭패감이 어렸다. 휴스턴 때와 같다. 칼리타처럼 녀석도 탱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어그로를 끌 수 없어요! 딜 대기!”
「쿤겐, 칼리타 때 했던 대로 갑니다.」
“Yes, sir!”
칼리타도 탱커가 방어막을 뚫을 수 없었다. 그래서 쿤겐의 궁극기로 방어막을 훼손하고 그 지점을 탱커가 공격해서 어그로를 끌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이제 두 번 남았나?’
재빨리 거리를 둔 쿤겐은 심호흡을 했다. 하루에 세 번 쓸 수 있는 궁극기를 아까 한 번 써버렸다. 이제 남은 횟수는 단 두 번.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번쩍!
카운트에 맞춰 정효주가 몸을 힘껏 낮췄고, 붉은 섬광이 단숨에 허공을 그었다.
―끼아아악!
저릿한 비명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히카리의 왼쪽 어깨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쿤겐의 궁극기가 통한 것이다. 정효주는 됐다고 반색하며 힘껏 점프했다.
푸욱!
쌍날검이 깊게 들어갔다. 방어막이 손상된 부위는 좋은 표적에 지나지 않았다. 히카리가 화가 난 듯이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물어뜯을 듯이 달려들었다.
“아악!”
피한다고 했지만 팔 한쪽이 물렸다. 3단계 방어막이 한 방에 깨져나가며 이빨이 박혔다. 그녀는 강제로 팔을 빼냈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팔이 축 늘어졌다.
“힐! 힐!”
바로 보호막이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급히 힐이 들어오며 팔을 순식간에 회복시켰다.
정효주는 이를 갈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나 히카리는 만만치 않았다. 그녀의 기습을 허용하지 않고 그대로 앞발을 들어 후려친 것이다. 너무 빠른 움직임에 대원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도 못했다. 저만치 나가떨어진 정효주가 신음하는 결과만 보았을 뿐이다.
「힐러진! 뭐합니까! 어서 힐을 주세요!」
“아, 알았어요!”
정신을 차린 힐러진이 급히 힐을 했다. 히카리의 움직임, 반응이 너무 빨라서 그들의 동체시력으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뭔가 번쩍였다 싶으면 정효주가 저만치 나가떨어져 있는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지원팀 본진 분위기도 심각했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요. 메인 탱커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칼리타는 방어막을 훼손해놓고 어떻게 공격해서 어그로를 끌 수 있었는데, 저 녀석은 그게 어렵네요.”
“왜 미야자키현이 초토화됐는지 알 것 같아요. 일본은 핵이 아니면 저 녀석을 잡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일본 레이드 공격대로는 절대 대응할 수 없어요.”
과연 제니스 공격대는 저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 장태준은 심각해졌다. 칼리타 때도 엄청난 고생을 하고, 두 번째 시도 끝에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쿤겐의 궁극기로 괴수 방어막을 뚫고 어그로를 끈 방법으로. 하지만 저 녀석은 그것마저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일단 최대한 목표의 공격을 피하면서 어그로를 확보하세요. 현재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쿤겐도 서브 탱커로 동시에 투입합니다. 한 명은 무리지만 탱커 둘이 동시에 덤벼들면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쿤겐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달려들었다. 등에 착용한 커다란 대검을 뽑아들고 힘껏 뛰어올랐다. 칼리타 레이드 이후 한국 장비 센터에서 대여한 A급 장비였다.
쉐도우 메인 탱커.
장태준이 쿤겐에게 권한 보직이었다. 평소에는 딜러장으로서 활약하지만, 지금 같은 순간에 정효주의 그림자로서 탱커로 활약해달라는 것. 쿤겐은 어그로를 끌지 못하지만, 궁극기로 방어막이 손상된 부위를 공격하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창 정효주를 노리던 히카리는 살기를 느끼고 멈칫 했다. 히카리가 돌아보려는 순간, 뒤에서부터 빠르게 뛰어오른 쿤겐이 그대로 어깨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살점을 파고드는 소리가 울렸다. 히카리가 요란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빠르게 몸을 돌린 히카리는 그대로 쿤겐을 내동댕이 쳤다. 그녀에게 걸린 보호막이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보호막 완전 상쇄! 부상도 1!」
정효주는 한 방에 보호막이 깨져나가며 3의 부상도를 입었다. 쿤겐은 부상도 1이었다. 둘 사이에 그만큼 방어 능력의 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히카리가 쿤겐을 공격하려는 찰나 정효주가 재빨리 뒤에서 뛰쳐 올랐다. 쌍날검이 어깨에 깊이 박혔다.
―캬아아아!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히카리는 다시 정효주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히카리의 배 아래로 몸을 날렸다. 히카리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기에 차라리 품 안으로 뛰어드는 게 공격 회피에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옳았다.
괴수가 보기에 쥐방울만 한 정효주가 사각지대로 파고드니 히카리는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다. 마구 날뛰며 정효주를 밟아 뭉개려고 했다. 그때 다시 자세를 잡은 쿤겐이 뛰어오르며 방어막이 손상된 어깨를 노렸다.
「됐습니다! 어그로가 잡혔습니다! 원거리 딜러진 투입! 근접 딜러진은 대기!」
탱커 두 명을 동시에 투입해서 어그로를 끄는 경우는 없다. 통상 서브 탱커는 메인 탱커가 어그로를 놓치거나, 혹은 전투불능이 되었을 때를 대비한 대기 전력으로 투입된다.
하지만 히카리는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탱커 혼자서는 공격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장태준은 두 명이 동시에 공격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제대로 먹힌 것이다.
“발사! 발사!”
“딜을 쏟아 부어!”
무수한 섬광이 하늘을 수놓았다. 총탄, 화염구 등 빛줄기가 허공을 뚫고 히카리에게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히카리가 가늘게 으르렁거리며 짜증을 드러냈지만, 녀석은 정효주와 쿤겐에게 더 반응을 보였다.
「딜러진! 딜 신중히 해야 합니다! 방어막이 손상된 부위는 절대로 맞추면 안 돼요!」
그랬다가는 눈깔을 친 것 이상의 참사가 벌어진다. 탱커가 아닌 딜러의 공격이 방어막을 뚫고 체내에 직접 타격을 가한다면, 아마 녀석은 미쳐 날뛰게 될 것이다. 어그로고 뭐고 없게 된다.
「힐러진, 긴장을 늦추지 마요! 괴수한테 두 방 연속으로 맞으면 탱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즉시 힐을 넣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막도 상시 대기해야 합니다!」
“알았어요!”
“걱정마세요!”
탱커 두 명을 투입한 작전은 효과적이었다. 서로 번갈아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어그로를 인계하니, 확실히 죽을 위험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만약 정효주 혼자 탱킹했다면 빠른 공격 속도에 반응하지 못하고 피떡이 되었으리라.
그렇게 아슬아슬하기는 해도 일단 레이드가 안정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원팀 분위기는 아직 심각했다.
“방어막 농도는?”
“98%입니다.”
“……딜이 부족하군요.”
“네. 심각합니다.”
128명에 달하는 제니스 공격대 전원이 투입되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최고의 정예 딜러였다. 장비도 전원이 A급 장비로 증폭형과 비증폭형, 2개씩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딜이 부족했다. 최고 정예 딜러가 약 100명이나 동원돼서 필사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괴수의 방어막이 지나치게 단단했다.
“이래서는 절대로 못 잡습니다. 그 전에 공대장님이 리타이어 되고 말 겁니다. 추가 딜러를 투입해야 합니다.”
“버틸 수 있을까요? 딜러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투입되면 탱커가 받는 충격파가 커집니다.”
“칼리타 때는 미국 딜러 수백 명이 추가로 동원되었는데도 괜찮지 않았습니까?”
“그때와는 다르죠. 칼리타의 공격력은 히카리보다 월등히 약했어요. 하지만 지금 히카리의 공격력을 보세요. 쿤겐은 몰라도 정효주 탱커는 한 방에 보호막이 날아가고 부상도 2, 3을 왔다갔다 하는 수준입니다. 여기에 딜러진이 더 보강되면 정효주 탱커가 위험해져요.”
“팀장님, 그렇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딜이 모자라서 결국 못 잡게 되고 맙니다.”
“……음.”
딜러가 괴수를 가격하는 것은 탱커의 주변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다. 당연히 그 여파에 휩쓸리게 된다. 딜러가 너무 많으면 탱커가 그 파괴력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한 번에 투입되는 딜러 수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제니스 공격대는 보호막 덕분에 다른 공격대보다 한꺼번에 더 많은 딜러를 투입할 수 있다. 만약 괴수의 공격력이 강해지면 당연히 딜러의 투입 수에 제한을 받게 된다. 괴수의 공격력과 딜러의 파괴력을 더한 값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효주와 쿤겐은 서로 번갈아 어그로를 주고받으면서 아슬아슬하게 탱킹하고 있었다. 쿤겐은 딜러를 더 투입해도 버틸 수 있지만 정효주는 아니다. 딱 한계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면 딜이 모자란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장태준은 유지웅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정효주를 빼고 한지우 씨를 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서브 탱커를요? 효주가 지금 잘하고 있는데, 왜요?”
「딜이 모자라요. 대기 중인 능력자 부대에서 딜러를 더 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투입하면 되잖아요? 그거랑 효주를 빼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정효주 씨는 지금이 딱 한계입니다. 여기서 딜러를 더 투입하면 딜 충격파를 견디지 못해요. 지금도 목표의 공격 한 방에 보호막이 깨지고 3의 부상도를 입고 있습니다.」
“…….”
칼리타 때 한 번 정효주를 잃을 뻔했다. 그 조마조마함을 생각하면 정효주가 빠지는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녀가 안전해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꼭 그렇지만은 않나 보다. 정효주를 뺀다는 것은 그녀가 레이드에 필요 없다는 뜻이 되고 만다.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를 뺏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자한테 차마 못할 짓이다.
다른 탱커보다 방어막을 더 쉽게 뚫는 정효주는 어그로를 더 잘 먹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쿤겐의 궁극기로 아예 방어막을 훼손해서 어그로를 끄는 방식에서는, 그녀의 장점이 무의미해진다.
그녀의 안전을 위하는 것과 그녀의 자긍심을 보존하는 것, 두 양극 사이에서 유지웅은 갈팡질팡했다.
「메인 탱커한테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네.”
안타깝지만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공격대장으로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공격대의 안전과 레이드의 성공이다.
지시 및 전달이 이뤄지고 한지우가 나섰다. 지금까지 구경만 하고 있었던 그녀의 표정은 결연했다. 이참에 자기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할 참이었다.
한지우가 투입되고 정효주가 이탈했다. 한지우는 어렵지 않게 쿤겐과 함께 탱킹했다. 그녀는 제니스 공격대에서 쿤겐 다음으로 가장 단단한 탱커였다.
옷이 찢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정효주가 터덜터덜 공격대 본진으로 들어왔다. 쓸쓸한 눈빛이다. 유지웅은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미안해. 내 몸이 너무 약해서.”
다른 탱커보다 딜이 좋고, 대신 방어능력이 약한 그녀. 그래서 탱커로서의 결점을 보호막으로 상쇄해왔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 가치를 찾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레이드 방식에서 그녀의 약점이 다시 두드러지고 말았다.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내 보호막이 조금만 더 단단했어도…….”
“난 괜찮아. 전투에 집중해.”
“으, 응.”
장태준의 지시로, 정부에서 파견한 능력자 부대에서 추가 딜러가 투입되었다.
유지웅 옆에 다리를 모으고 쪼그려 앉은 정효주는 조용히 히카리를 응시했다.
“……만약 녹서스의 돌이 나한테 있으면 달랐을까?”
조그만 중얼거림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어디에 있을 것 같냐?
효주 : 모르겠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