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0 와이프 강화하기 =========================================================================
일요일 오후였지만 호출을 받은 최윤은 부리나케 달려왔다. 어느 정도 직감했는지 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차를 권해 놓고 유지웅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최윤의 표정은 더욱 죽어갔다.
“…….”
유지웅은 묵묵히 그를 응시했다. 이상하리만치 속이 차분했다. 처음 지하크에게 들었을 때는 가벼운 배신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라졌다. 겨우 1,500억을 투자한 회사일 뿐이다. 정 안 된다 싶으면 팔아버리고 신경 끄면 그만. 하지만 그 전에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야 했다.
“신형장비가 개발되었다고 들었어요. 사실인가요?”
한참 후에야 유지웅은 그 한 마디를 꺼냈다. 최윤의 표정이 덤덤해졌다.
“역시 아셨군요.”
유지웅은 살짝 불쾌해졌다. 저 덤덤한 태도는 뭐지?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다는 듯하지 않은가?
“왜 저를 속였죠? 그런 중요한 일이라면 사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보는데요. 제가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유 사장님께서 굳이 아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보세요? 제가 얼마나…….”
당신들에게 큰 도움을 베풀었는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유지웅은 참았다.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최윤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유 사장님께서 저희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그 은혜를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 큰 은혜를 저버리면 그게 짐승이지 어디 사람입니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럼 왜 숨겼죠?”
“은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 개발된 장비는 탱커형 방어장비였기 때문입니다.”
“탱커 장비?”
유지웅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는 최근 블랙 몹 때문에 여러 모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런데 탱커형 장비가 개발되었다면 경사 아닌가?
“탱커가 괴수한테 받는 피해를 흡수해주는 장비입니다. 이 장비가 보급되면 현재 레이드 시장에 큰 변화가 불어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이 장비를 사장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유 사장님께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판단해서였습니다.”
“……무슨 소리죠?”
유지웅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신형장비를 은폐하려고 한 게 자신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죄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겠는데, 어째서 그게 자신을 돕는다는 걸까?
“방어장비를 장착하면 탱커의 방어능력이 증가합니다. 그럼 일반 탱커도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결과적으로 제니스 공격대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수 있게 됩니다.”
유지웅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못했다.
* * *
최윤은 자신 외에 4명의 대학원생들을 모아 회사를 차릴 때만 해도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 희망은 충전 장비를 개발한 뒤에는 열망으로 변했다. 세상을 위해서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가진 것 없는 대학원생들이 만든 뛰어난 기술은 힘없는 자가 가진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힐러들은 자기들 기득권 보존을 위해 충전 장비를 보이콧했고, 대기업은 막대한 힘을 이용해 신기술을 거저 삼키려 들었다. 몇 번이나 회사가 쓰러질 뻔했는지 모른다. 유지웅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들은 진작 모든 것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각박함을 원망하는데 시간을 썼으리라.
최윤은 안다. 유지웅이 자신들에게 베푼 도움은 그의 입장에서 보잘 것 없음을. 그건 단지 거부가 심심풀이로 베푼 유흥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그 유흥에 힘입어 되살아났고,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방어장비가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회사 사주인 유지웅을 위해 큰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목에 칼을 겨눈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제니스는 결정체를 획득할 목적으로 레드 몹을 잡는 유일한 공격대다. 다른 공격대는 레드 몹의 습격에서 국민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피치 못할 경우에만 싸울 뿐이다.
유일한 레드 몹 공격대라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독점적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방어장비는 타공격대에 레드 몹 레이드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그 독점성을 훼손한다. 그래서 최윤은 유지웅을 위해서 이 기술을 사장하기로 결심했다.
“……의논을 드리지 않고 멋대로 일을 진행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유 사장님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두 듣고 난 유지웅은 허탈해졌다. 최윤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경영진 모두가 최 사장님이랑 똑같은 생각을 했나요?”
“아닙니다. 세 명이 반대를 했습니다. 이 기술을 사장할 수 없다고요.”
좋은 기술은 세상을 위해 쓰여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발전을 이루고 인류에 도움이 된다. 처음 그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자, 기술 사장에 반대한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는 최윤이 변절자였으리라.
유지웅은 창립 멤버 전원을 불렀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호출에 응했다.
저택을 들어서면서 그들은 모두 올 것이 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대강 짐작하는 눈치였다.
“여러분들을 제 집에 초대하는 것은 처음이군요.”
늦은 시간의 면담에 고용인들만 바빠졌다. 그들은 부리나케 접대할 준비를 갖췄다.
유지웅은 비싼 양주를 꺼내와 손수 따라주었다. 고용인들이 과일 등 간단한 안주를 놓고 갔다. 한쪽에는 편안한 옷을 입은 정효주가 걱정스럽게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최 사장님한테 대강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쉬는 날에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김 이사님은 최 사장님이랑 같은 생각을 하신다고요?”
김정수는 다른 세 명의 눈치를 잠시 살피다가 끄덕였다.
“예. 방어장비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세상에 공개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점에서 김정수는 최윤과 결론을 같이 했다. 하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이유가 전혀 달랐다.
최윤은 유지웅에 대한 보은 심리 때문에 방어장비를 묻으려고 했다. 하지만 김정수는 유지웅의 영향력이 두려워서 최윤의 생각에 찬성했다.
방어장비는 제니스 공격대의 독점성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런데 유지웅은 대통령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인물이다. 이 나라의 레이드 시장, 결정체 시장이 그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 된다.
그런 인물이 자기 목을 조를 수 있는 기술의 보급을 가만히 놔둘까? 아닐 것이다. 발 벗고 나서서 훼방을 놓을 것이다. 대항해봤자 얻을 게 없다. 그래서 김정수는 최윤의 편에 선 것이다.
“고맙습니다. 아무튼 김 이사님도 저를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하셨다는 거군요.”
“아닙니다.”
유지웅의 감사 표시에 김정수는 속으로 시름을 덜었다. 역시 강한 쪽에 붙기를 잘한 것 같았다.
최윤을 반대한 세 명은 좌불안석이었다. 그들은 유지웅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던 유지웅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세 분이 최 사장님한테 반대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
“여기서 나눈 대화를 가지고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겠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솔직하게 약속드릴게요. 저, 지금 가진 돈만 해도 다 못 쓰고 죽을 정도예요. 얼마 안 되는 이익 가지고 치사하게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
“그래도 말씀을 안 하시네요. 엎드려 절 받기는 싫지만, 저 여러분들 사업에 큰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여러분들 진심 정도는 들을 자격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도 못 해주시나요?”
그 말에 세 명의 얼굴이 흔들렸다. 그들은 눈빛으로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다.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박문수 기술이사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회사를 차릴 때 나름대로 꿈이 있었습니다. 목표도 참 많았고요.”
“…….”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여러 목표 중 하나였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각오가 있었습니다. 돈을 버는 게 전부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남들이 따라잡지 못할 뛰어난 장비 공정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이 사회에 도움을 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박문수의 말에는 진심이 구구절절하게 배여 있었다.
“방어장비는 레드 몹 레이드를 보편화해줄 수 있습니다. 그럼 블루 결정체 공급이 늘어나고, 우리나라는 더욱 부유해집니다. 또 레드 몹의 습격에서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해줄 겁니다. 이런 건 빨리 실용화해야 세상이 살기 좋아집니다. 단지 제니스의 독점 지위를 위해서 사장되어야 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스러운지 박문수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로 말을 이었다.
“충전 장비가 보급될 수 있게 힘써주신 것,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몇 번이나 위기에 처했지만 유 사장님의 도움으로 회생하고, 이만큼 클 수 있었던 것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 모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처음 회사를 차릴 때의 마음가짐대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 좋은 기술을 널리 퍼뜨리고 싶습니다.”
박문수에게 잘못은 없다. 사건의 시초는 최윤이 유지웅을 위해서 신기술을 묻어버리고자 한 것.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몰라도, 유지웅이 최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을 위해서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사장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두려웠습니다. 이 기술이 유 사장님께 해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간섭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최윤 사장이 유 사장님을 위해서 이 기술을 묻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저희는 반대를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들끼리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
한성산업이 방어장비를 보급하면 많은 이익을 벌어들일 것이고, 그것은 사주인 유지웅에게 귀속된다. 하지만 블루 결정체 공급을 독점하면서 누리는 가치에 비하면, 과연 그 이익이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여러분들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 심정,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유지웅은 마음이 복잡했다.
이제는 아련한, 하지만 결코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는 천민 딜러 시절이 새삼 떠올랐다. 레이드를 가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시절, 절대로 거드름 피우는 힐러들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귀족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귀족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보호막 능력자로 각성하면서 경직된 레이드 기득권 체제에 여러 가지로 반기를 들었다. 딜러와 힐러의 구분 없이 동등하게 분배 정책을 취했던 것도, 보조 힐러를 위해 충전 장비가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 것도, 레이드 능력자들을 위한 보험재단을 설립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신은 말 한 마디로 국내 레이드, 결정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갑이다. 대기업, 그에 딸린 근로자들, 수많은 레이드 능력자들, 심지어 정부 고위 관계자들까지 자신의 행보 하나하나에 긴장한다. 그래서 속마음은 어땠을지 몰라도, 대외적으로는 언행을 조심해왔다.
‘갑질은 하더라도 꼴갑질은 하지 말자.’
그게 지금까지 지켜온 나름대로의 커트라인이었다.
가진 자가 휘두르는 것은 결국 힘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력만큼은 휘두르지는 말자고 생각해왔다. 적어도 꼴갑질은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제니스 공격대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폭력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냥 존재하기만 했음에도 자기들끼리 벌벌 떨고 자구책을 찾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왕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해도 변두리 지방관은 근심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하물며 황제는 어떨까. 존재만으로도 만백성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은 어느덧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음을, 이제야 실감했다.
“그래도 조금 섭섭하네요. 저 그런 나쁜 놈 아니에요. 진작 털어놓고 의논했으면 이런 오해가 안 쌓였을 텐데, 너무 성급하게 저를 재단들 하셨네요.”
“……죄송합니다.”
이미 존재만으로도 남들이 어려워한다. 그들로서는 선뜻 털어놓기 어려웠으리라. 일반 상병장이 어떻게 까마득한 대통령에게 군 개혁안을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격려가 목적이라 해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일반 병사 내무실을 방문하는 것은 방문 그 자체만으로도 가혹행위이자 폭력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더 이상 박문수 등 창립 멤버들에게 서운함을 토로할 수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그들로서는 지금 죽을 맛일 것이다.
“제가 어떻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까?”
“…….”
“아까 약속한 대로 저는 오늘 나눈 대화, 그리고 그 방어장비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겠습니다. 그건 옳지 않으니까요.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니에요. 옳지 않은 짓은 저도 하기 싫습니다.”
“…….”
“좋아요. 이렇게 하죠. 지금 회사에 현금이 꽤 되는 걸로 압니다. 얼마나 되죠?”
“……약 4조 5,000억 정도 될 겁니다.”
충전 장비는 하나를 팔 때마다 2억 원 정도가 남는다. 한국에만 보조 힐러가 약 1만 명이다. 또 세계로 팔려나갈 물량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그래서 한성산업 주가는 지금 천정부지였다.
“경제 전문가 평론을 봤는데, 제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약 3조 원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손해 볼 순 없으니 프리미엄 20%를 얹어 3조 6,000억에 회사에 전량 매각하겠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한성산업은 다시 여러분의 회사가 되는 겁니다.”
“예?”
뜻밖의 제안에 그들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한성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51%의 지분의 장래 가치는 더 높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회사를 돌려주겠다니?
“애초에 돈 벌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 이쯤에서 손을 떼려고요. 제가 사주로 있는 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장비를 개발할 때마다 제 눈치를 보면서 실용화 문제를 고민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우리에게도, 그리고 이 나라에도 도움이 되겠죠.”
“하, 하지만…….”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한성산업이나 여러분에게 불이익을 가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이만 서로 갈 길을 가자는 것뿐입니다.”
유지웅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약간 망설인 뒤 말을 이었다.
“방어장비가 실용화되면 제니스 공격대의 독점적 지위는 분명히 흔들립니다. 제 입장에서는 실용화를 막는 게 이익이죠. 하지만 제 욕심 때문에 이 나라 레이드계 전체에 도움이 될 기술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분을 계속 갖고 계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독점적 지위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많은 수익이 될 겁니다.”
“치졸한 욕심 부리기 싫어서 건드리지 않는 거지, 전혀 서운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
“오히려 많이 섭섭합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그런 식으로 본 거, 정말 서운해요. 그러니 이만 서로 갈라서자는 거죠. 이해가 되시나요?”
사회를 위해서 옳은 길을 따른다. 하지만 서운하니까 더 이상 한성산업과 친하게 지내진 않겠다. 그래서 손을 뗀다. 그렇다고 불이익을 줄 것도 아니고, 그냥 각자 찢어지자는 것이다.
그런 뜻을 깊이 이해한 박문수가 머뭇거리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안함을 표시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만 돌아가 보세요. 멀리는 못 나갑니다.”
한성산업 경영진이 돌아가고,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정효주가 다가왔다. 그녀는 걱정스럽게 신랑을 쳐다보다가 살며시 머리를 안았다.
“괜찮니?”
“방어장비 보급되면 좋지. 우리도 쓰면 더 안전해지니까.”
“그거 말고.”
“레드 몹 다 같이 잡으면 좋지. 매번 우리만 소집됐는데 그런 부담도 좀 덜어질 거 아냐?”
신랑의 머리를 가슴에 안은 채 그녀는 한참을 다독였다. 유지웅은 조금 우울한 듯이 덧붙였다.
“그래도 조금 서운해. 나 그런 식으로 본 거.”
“응. 알아.”
방어장비가 보급되면 제니스의 레이드 능력도 증가할 것이다. 블루 결정체 독점 공급자의 지위는 깨지지만,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이 있으니 1위 자리는 뺏기지 않을 것이다. 또 34조 원이 넘는 재산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조금은 울적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옛날 그토록 싫어했던 힐러들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
============================ 작품 후기 ============================
“헐. 나는 존재 자체가 갑질임?”
-ㅇㅇ. 너님은 이제 숨만 쉬어도 갑질임.
ps : 설정목록에 부상도에 관한 정리를 올렸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한 번 보세요. 안 봐도 글 내용 이해하는데는 지장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