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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217화 (217/1,550)

00217  이건 이제 제 겁니다.  =========================================================================

부드러운 살갗이 비벼지는 느낌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눈을 부시게 했다. 더듬거리며 손을 뻗자 품안에 안긴 효주의 알몸이 느껴졌다.

시원하게 뻗은 어깨를 만져 본다. 가늘면서도 부드럽다. 하얀 살결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입술을 댔다.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정효주가 부스스 눈을 뜬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이 덜 깬 눈도 어찌 이렇게 예쁠까. 살며시 뺨을 쥐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잘 잤어?”

“응. 안 피곤해? 괜찮아?”

“멀쩡한데? 난 짐승이니까.”

“너, 내가 어제 짐승이라고 그랬다고 그러는 거지?”

“어제만 그랬나? 섹스할 때마다 짐승이라고 하면서.”

코를 살짝 꼬집자 부끄러운 듯이 속눈썹을 내리 깐다. 누운 채로 그녀를 품에 깊숙이 당겨 안았다. 다리를 서로 얽은 채 부드러운 등과 엉덩이를 쓸어내리듯이 어루만졌다. 어느새 일어선 중심이 그녀의 아랫배를 쿡쿡 찌르며 존재감을 알렸다.

“또?”

“또라니. 그렇게 말하니까 꼭 내가 욕심이 나서 그러는 거 같잖아.”

“치. 그럼 아니니?”

“내가 내 욕심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절대 아니야. 우리 애기가 빨리 태어나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어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 핑계 대기는.”

“그러니까 빨리 태어나게 해줘야지.”

그녀의 몸을 가볍게 밀어 눕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올라타며 다리를 벌렸다. 날씬한 허벅지의 매끄러움을 만끽하며 단단한 중심을 그녀의 입구에 댔다. 꽉 다문 입구의 살결이 젖은 채로 착 달라붙으며 그를 반긴다. 그대로 밀어 넣자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렀다.

그녀의 안을 가득 채운 채 손을 맞잡았다. 단순히 즐기고 애정을 확인하기 위한 것을 넘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 닮은 딸 낳았으면 좋겠다.”

상체를 숙이자 서로 가슴이 닿았다. 하얀 목을 핥으며 그가 중얼거리자 그녀도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난 너 닮은 아들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들은 싫어.”

“왜?”

“나 닮은 아들이라고 생각하니까 끔찍해. 네 가슴 놓고 매일 싸울 거 같아.”

“너 애 같은 거 알긴 아는구나?”

“뭐야?”

짐짓 화가 난 듯이 쏘아붙이고는 입술을 그대로 덮었다. 꽉 내리 누른 채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도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율동에서 전해지는 서로의 느낌에 집중했다.

어제 새벽까지 지치도록 즐겼지만 둘은 아직 부족했다. 아직도 힘은 넘쳤다.

*  *  *

학교에 도착한 유지웅은 조금 놀랐다. 단대 건물에는 생환을 축하하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오빠! 무사하셨다면서요? 다행이에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동기 여자애들이 알아보고 우르르 달려왔다. 유지웅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응수했다.

“죽으러 간 것도 아니니까 살아 돌아와야지.”

“진짜 오빠 잘못된 거 아닌가 해서 우리 학교도 완전히 초비상 걸렸었다고요.”

“맞아요. 오빠는 이제 오빠 홀몸이 아니에요. 연주대 결정체학 수천 명의 기대를 받고 계신 몸이라고요.”

주변인들의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고 익숙한 것은 이제 지금의 지위에 적응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과장 같으시죠? 진짜 우리 학교 난리 났었어요.”

“말이라도 그리 해주니 기분 좋다.”

“진짠데. 못 믿는 눈치네.”

오전 내내 반기는 과 학생들한테 시달린 유지웅은 가까스로 시간을 내어 손재진 교수실을 방문했다. 그가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지 교수실에는 이미 다른 교수들이 방문한 상태였다. 별로 넓지 않은 교수실이 꽉 찰 정도였다.

“아, 제가 바쁠 때 찾아뵈었나요? 다음에 다시 올까요?”

“아니야. 잘 왔어. 다들 인사하세요. 이 친구가 유지웅 학생입니다.”

“교수님들, 안녕하세요? 13학번 유지웅이라고 합니다.”

다른 교수들이 여기 왜 있는지 대강 알지만 유지웅은 일부러 모른 체 했다. 신분도 학생 신분을 내세웠다. 그를 어찌 대해야 하나 잠시 갈등하던 교수들도 얼른 거기에 맞췄다.

“반갑네. 무사히 귀환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정말 다행이야.”

“하마터면 이 나라가 큰 손실을 입을 뻔했어.”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이런, 사람을 너무 오래 세워 두었군. 여기 앉게.”

교수들이 앞을 다투어 자리를 비켜 주었다. 가장 시선이 모이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유지웅은 사양하지 않고 앉았다. 그리고 짐짓 모른 척 말을 뗐다.

“교수님. 전에 말씀 드린 거 때문인데요.”

“아, 자문단 구성 리스트 말인가?”

“예. 적당한 분이 있는지 추천을 좀 받고 싶어서요. 제가 가진 후보 명단도 있긴 한데 너무 빈약한 것 같네요. 혹시 잘 아는 분 없나요?”

“있기야 하지만…… 내가 추천해도 괜찮을까?”

“물론이지요.”

“알았어. 그럼 한 번 명단을 짜보지.”

“부탁드릴게요.”

다른 교수들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가볍게 오가는 대화였지만 그 내용은 범상치 않았다. 그들이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에 모여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유지웅의 싱크탱크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학자로서는 큰 인맥을 얻는 셈이다.

마음 같아서는 체면도 불사하고 자신은 어떠냐고 말을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나이가 한참 어려서? 그렇지 않다. 그가 가진 사회적 지위에 비하면 어린 나이는 이미 논할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의 사회적 지위가 너무 대단하기 때문에 선뜻 ‘무례’를 저지를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일개 사원이 그룹 회장님한테 감히 먼저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입을 떼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바쁜 사람을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

“아니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그가 교수실을 나서자마자 동료 교수들은 득달같이 손재진에게 달려들었다. 추천 대상에 어떻게든 들기 위해서였다.

오후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 시간 내내 유지웅은 안슐이 한 말을 놓고 내내 생각에 잠겼다.

‘종주라면 가문을 통제해야 하는 법이지.’

종주니 가주니, 그런 식으로 자신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자신이 그렇게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은 동의했다. 아마 친족들의 기대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언젠가부터 큰아버지도 자신의 눈치를 슬슬 보고 있었다. 어른들이 그의 앞에서 입조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집안 내에서 그의 위치가 재정립되었다는 의미만큼은 분명해진다.

“수업 끝났어.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툭 치는 느낌에 유지웅은 정신을 차렸다. 언제 왔는지 정효주가 배시시 웃었다. 그는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응. 집안 어른들 때문에.”

“어른들이 왜? 또 뭐라고 하셔?”

“아니. 어느 정도는 좀 챙겨줘야 될 거 같아서. 아예 손 놔버리면 사고를 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하긴.”

세계 1위의 부자가 친척 중에 있는데 기대감을 품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물론 기대감과 욕심을 부리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친족들이 한 것을 보면 그들한테 그런 자제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한 백억씩 줘 버려?”

추정 자산이 이미 100조 원을 훌쩍 넘기는 그에게 100억 정도는 가벼운 선물 축에도 끼지 못한다. 하지만 정효주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한 번에 목돈을 주는 건 안 좋아. 금방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또 손 벌리게 될 걸. 역효과만 낳아.”

“좋은 생각 있어?”

“적당한 회사 하나에 감사 정도로 자리 만들어드리면 어때? 연봉은 좀 높게 잡아주고. 그럼 지속성이 있으니까 한 번에 목돈을 주는 것보다 부작용도 덜할 거야.”

“큰아버지는 사업하는 분이라서 남의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텐데.”

“감사나 고문은 겸직 할 수 있지 않니?”

“감사 정도로 밀어 넣으려면 회사 규모가 어느 정도는 되어야 마음에 찰 텐데. 그냥저냥 만만한 규모 회사면 오히려 자존심 상할 거야. 그러고 보니 나 그런 회사 가진 거 없네.”

정효주는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효웅산업 정도면 괜찮지 않아? 규모도 꽤 크고.”

“그건 난 투자만 하고 최윤 사장한테 경영을 맡겼는데 친척을 밀어 넣으면 감시한다고 생각할 거야.”

“그럼 어쩌지? 회사 하나 인수할 거니?”

“그래야겠다.”

학생들은 둘이 다정하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것을 차마 방해하지는 못하고 멀리서 흘끔거리기만 했다. 부럽고 질투가 날 정도로 사실 잘 어울렸다.

“이야, 진짜 잘 어울린다. 부럽다.”

“역시 남자는 경제력이 있고 봐야 해.”

“저 형은 경제력이 있는 수준이 아니라 경제 그 자체지. 지금 재산이 백 몇 십조가 넘는대.”

“정말? 원래 40조 정도 아니었어?”

“이번 미국 가서 블루 결정체 천 개 넘게 챙겼다잖아. 그것만 해도 100조 원이 넘을 걸?”

“근데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다정하게 하는 걸까?”

남들이 보기에는 연인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지금 둘은 나름대로 심각하게 집안 단속 문제를 의논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성전자 어때?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 기업 가치 1위잖아?”

“근데 그건 우리 거 아니잖니.”

“이제부터 우리 거 하면 되지. 그거 사자.”

일성전자 상임감사, 혹은 비상임고문. 겸직도 할 수 있고 남들이 보기에 참 대단해 보이는 직위 아닌가? 연봉도 적당히 챙겨주면 금전적인 면에서나 명예적인 면에서나 불만을 가지지도 않을 것이다. 좀 노골적인 표현이지만 이런 식으로 챙겨주면 앞으로 그를 거스르지 않고 잘 따를 것이다.

혹시나 해서 안슐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좋은 생각이라며 칭찬해주었다.

「적당한 회사 하나에 친척들을 몰아넣고 챙겨주는 것도 편리한 방법이지. 그렇게 하게.」

“알았어요.”

다음날부터 일성전자 지분 매입이 무차별적으로 시작되었다. 친척들을 몰아넣고 관리할 회사가 필요해서였다. 일성 경영진 일가가 보기에는 거품을 물고 뒷목을 잡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 작품 후기 ============================

안슐도 초반에 비슷한 짓을 했었죠. 보고 배운 게 그런 것 뿐이라서 하는 짓이 똑같네요. 이래서 사람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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