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2 재주는 불곰이 넘고 =========================================================================
「특종! 러시아와 제니스, 양해각서 체결!」
「유례없는 국가와 공격대의 사실상 조약 수교!」
키틴 대통령과 유지웅이 굳게 악수를 나누는 사진이 국제 외신을 강타했다. 러시아 언론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 일을 대서특필했다. 말이 양해각서 체결이지 그 내용을 보면 사실상 국가 수교나 다름없었다.
유지웅은 우호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에 그러했듯 크레믈린에 무상으로 안전지대를 설치해주었다. 키틴은 이 일을 자신의 지지 강화를 위해 아낌없이 선전했다. 안전지대의 우수성 및 해당 토지의 가치 증가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평론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키틴을 향한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도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며, 아울러 제니스의 이름도 드높아졌다.
유지웅과 러시아가 가까워지자 미국도 바짝 긴장했다.
“제니스 회장이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입니다.”
“중국의 비TDH 능력자의 신상 파악은 아직도 멀었나?”
“현지 요원들이 사력을 다해 조사 중입니다.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결과가 있을 거라고만 장담하지 말고 그 결과를 직접 가져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러시아와 유지웅의 관계 때문에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러시아는 어쨌거나 미국과 군사적으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경쟁국과 유지웅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이번 중국 일에 있어서만큼은 유지웅은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 그것만 해도 골치 아픈데 두통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 버린 셈이다.
EIS는 러시아와 유지웅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 수집 및 분석 작업에 혈안을 올렸다.
「중국, 정부와 혁명 세력의 갈등 심화!」
「내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은?」
한편 중국은 날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북경은 사실상 혁명 레이더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임시 정부 청사를 꾸린 우진타오 주석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두지휘에 나섰지만 좀처럼 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진타오 주석은 반정부 세력을 북경에 몰아넣고 공개적으로 처벌해서 본보기를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는 레이더의 능력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아니, 반정부 세력의 잠재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정확히는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 세밀한 정보와 대응 전략을 지원받은 반정부 레이더는 효율적이고 발 빠르게 움직였고, 중국 정부의 대응은 항상 한 발 늦거나 헛되이 끝나기 일쑤였다.
북경 도모가 성공하자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각지에서 레이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레이더를 착취하는 우진타오 정권은 물러가라!”
“레이더의 능력은 탐관오리가 아닌 인민 전체를 살찌우기 위해 쓰여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체계적인 레이더의 봉기에 중국 정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진타오 주석은 참모 회의에서 분기를 감추지 않았다.
쾅!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공안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야!”
늙은 호랑이의 매서운 호통에 중앙 군사위원회 간부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주석의 압박에 견디다 못한 어느 간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미국의 개입이 있는 듯합니다만…….”
“그걸 말이라고 하나! 미국이 뒤에서 공작을 부릴 것이야 당연한 일 아닌가! 그에 대한 대비가 얼마나 허술했기에 우리 땅에서 눈뜨고 당하고 있느냐 이 말이야!”
“…….”
또다시 탁자를 세게 내려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겨우 숨을 고른 우진타오는 여전히 노기를 띤 얼굴로 말했다.
“미국이 노리는 거야 뻔하오. 우리 중국의 분열과 그 과정에서 외국으로 망명하는 레이더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이겠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탱커와 힐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중국이니 말이오.”
중국은 14억 인구를 보유한 나라답게 레이더 수도 엄청나다. 일반적으로 레이더는 전체 인구의 1%라고 한다. 그리고 그 1% 중에서 탱커와 힐러가 각각 3% 정도, 나머지 94% 정도가 딜러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국은 힐러의 비율이 무려 10%에 달한다. 탱커도 거의 그것과 엇비슷하다. 수치만 놓고 보면 중국은 세계에서 레이더 불균형 문제가 가장 덜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게 저 수치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중국이 의도적으로 딜러 수를 줄여서 발표하고 있어 힐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거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중국 정부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강한 부정으로 대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태도를 신용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튼 공식 집계된 힐러 숫자만 해도 140만 명이다. 웬만한 나라의 전체 레이더 숫자에 맞먹는 무시무시한 수치다. 미국과 러시아가 군침을 흘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딜러야 썩어날 만큼 넘쳐난다. 힐러 수가 보강되면 레이드 산업이 엄청난 탄력을 받는다. 그러니 중국의 분열과 몰락을 주변국에서 반기면 반겼지, 말리지는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다. 중국 정부도 그런 처지를 인식하고 있기에 줄곧 레이더를 강력하게 통제해온 것이다.
“한국의 반응은 어떻소?”
“사과 요구와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 외에 공식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군사력으로 우리 위대한 중국을 어찌해볼 힘은 없는 나라입니다.”
우진타오는 혀를 찼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지금 ‘그 한국’을 물어본 게 아니지 않은가.
“제니스 말이오, 제니스.”
“아, 죄송합니다. 주석님.”
실수를 깨달은 간부가 흙빛이 되었다. 다른 이가 얼른 나서서 대답했다.
“러시아와 손을 잡고 우리를 압박할 모양입니다. 오늘 양해각서 체결을 발표하고 크레믈린에 안전지대를 무상으로 설치해 주었습니다. 말로는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선물이라고 합니다만, 아마 이면의 거래 대가인 게 틀림없습니다.”
“제니스도 우리 중국의 힐러를 탐낸단 말이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조사 결과 4만 명의 힐러만 유입되면 한국의 레이더 불균형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고 합니다. 아마 한국 정부의 사주를 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 되니까, 러시아한테 살랑거려서 우리 중국을 어떻게 해보시겠다? 허! 우리 중국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보고 있군! 겨우 러시아 따위로 우리가 어떻게 될 줄 아나!”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다들 안다. 미국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와중에 러시아까지 나서면 대책이 없다. 비정한 말이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결국 무력만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석님. 러시아 기갑 병력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러시아도 생각이 있다면 전면적인 개입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할 겁니다.”
현대 사회는 사실상 국가간 교전이 멈춘 상태다. 전쟁에 놀란 괴수가 날뛰면 어마어마한 재앙이 닥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는 바로 코앞에 서로를 두고 있지 않은가. 전면전이 벌어지면 승패를 가릴 의미도 없는 피해가 양자에 닥친다. 그걸 아는 러시아가 기갑 병력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허! 자네, 말이 심하군! 괴수가 아니어도 러시아의 고물 전차 따위로 우리 중국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같나?”
“죄,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괴수 따위가 아니어도 어차피 러시아는 움직이지 못해. 우리 중화인민군의 위력은 결코 만만치 않아.”
겨우 러시아 따위가? 우진타오 주석은 러시아에 조금이나마 근심을 품었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중국은 위대하며 아시아의 맹주다. 이 정도 시련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 * *
「중국은 국제 선진국 수준에 맞춰 레이더 인권 및 처우 보장을 개선해야 한다.」
러시아가 공개적인 성명을 내걸며 중국의 행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북방의 불곰이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세계가 바짝 놀라서 귀를 세우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UN상임이사국에 걸맞는 책임 의식을 기대하겠다.」
이례적인 러시아의 행보에 극동아시아의 전운이 더욱 긴박하게 흘러갔다. 러시아의 지지 성명은 반정부 레이더 세력에 간적접인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실 중국이 자국 레이더를 홀대하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국제 언론에서 그것을 쉬쉬해왔을 뿐이다. 힘들게 괴수를 사냥해도 대부분의 과실은 국가와 중간 관리가 빼먹고, 레이더에게는 30% 정도 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어차피 레이더는 넘쳐 난다. 그러니 제대로 대우해줄 필요가 없다. 그것이 중국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에 따른 레이더의 이탈은 강력한 통제 정책으로 해결했다. 레이더의 해외여행은 엄격하게 금지된 채 통제를 받는다. 가족, 즉 인질로 삼을 수 있는 혈족이 국내에 없다면 해외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게 레이더다.
러시아가 그런 현실을 조목조목 짚으며 비판하고 나섰다. 안 그래도 반정부 세력 진압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국은 이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러시아는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마라.」
중국과 러시아가 레이더의 처우와 인권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한국도 양국의 긴장관계를 관심 있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교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있습니까?”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어째서죠? 아직 명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가요?”
“동기나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입니다. 러시아는 이번 기회에 자국이 죽지 않았음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할 겁니다. 그래서 저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거고요. 하지만 대대적인 교전이 일어나게 되면 그에 놀란 괴수가 난동을 부립니다. 그 혼란은 인간의 손으로 결코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TV에서는 전문가들의 향후 분석 토론이 성시를 이루었다.
중국. 무려 140만 명의 힐러를 보유한,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국가. 지금 그 큼직한 살덩이를 놓고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그 외 다수 국가들이 군침을 흘리며 노리고 있다.
중국은 세계 유일의 안전지대 설치자인 유지웅을 납치하려 한 것 때문에 지금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이다. 거기에 국내 레이더들이 불만을 품고 혁명을 일으켰다. 과연 지금의 위기를 중국이 온전히 넘어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요즘 셋만 모였다 하면 그 이야기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중국! 마침내 일을 저지르다!」
「강경파 군벌의 갑작스러운 핵미사일 공격! 다행히 요격에 성공해.」
「러시아의 대응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태도에 시종일관 강한 불만을 표시하던, 러시아 국경 부근에 대치 중이던 군벌에서 세 발의 핵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다행히 러시아 요격망에 걸려 격추되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이 사건 때문에 러시아 국민 전체가 들끓어 올랐다.
“갑자기 핵미사일이 무슨 말이냐!”
“미쳤다! 중국은 완전히 미친 국가다!”
“저런 미친 국가가 UN상임이사국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상임이사국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
러시아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폭동으로 변질할 듯한 시위였지만 이상하게도 통제 움직임은 없었다. 오히려 지역 군벌의 갑작스러운 핵 공격에 중국 중앙 정부가 더욱 크게 당황했다.
“마쯔이 총사령관이 대체 왜?”
해당 지역 총사령관이 평소 잘 발끈하고 또 러시아의 성명에 누구보다 화를 냈던 건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핵으로 선제공격을 할 만큼 경우가 없는 사람은 또 아니다.
중앙정부에서는 즉각 소명을 요구했지만 마쯔이 총사령관은 오히려 자기가 더 당황하고 있었다.
“뭐야? 핵이 발사된 적이 없어?”
“네. 미사일 수량은 전량 그대로입니다. 혹시나 해서 관련 지역의 모든 미사일 수량을 조사했지만 이상은 없었습니다. 어느 부대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는지조차 현재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뭐야? 그럼 러시아군이 몰래 우리 땅에 들어와서 자기 땅에 빈 미사일이라도 쐈다는 거야, 뭐야?”
중국 중앙 정부와 지역 군벌이 그렇게 혼란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사이 키틴은 누구보다 크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근심은 남아 있었다.
“명분은 만들었습니다. 우리 러시아의 용맹스러운 기갑 병력은 언제든 돌진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괴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전차 부대를 끌고 중국에 쳐들어가서 무력행사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소음에 놀란 괴수들이 난리를 칠 것은 어떡할 것인가? 일반적으로는 옐로 몹 몇 마리만 어그로가 폭주해서 날뛰어도 지옥이 펼쳐진다.
유지웅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이 녀석이 해결해줄 겁니다.”
키틴은 푸른 날개를 접고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새를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짜르르 전율이 인다. 포악한 본능을 숨기고 있는 거대한 부리와 발톱. 바로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 유일의 길들인 레드 몹이었다.
“양치기는 이 녀석에게 맡기면 됩니다.”
브라우니야말로 세계 제일의 목동견이다.
블랙 몹만 안 나타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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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블랙몹이 출동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