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289화 (289/1,550)

00289  대항해 레이드  =========================================================================

유지웅은 쿤겐, 메이, 박현정, 최가의 등 일부 제니스 대원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쾌적한 A3의 기내 좌석에 앉은 대원들의 표정은 저마다 다양했다. 불안함과 기대감, 설렘이 한데 뒤섞인 얼굴들이었다.

유지웅은 수중 레이드가 어떤지 관찰할 겸 단독으로 협조 요청을 수락했으나, 그 소식을 들은 대원들이 자원하고 나섰다. 모두 수중 레이드 방식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 많은 수가 자원을 하고 나선 바람에 골라내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그렇게 최종 선발된 인원은 쿤겐, 메이, 박현정, 최가의였다. 본의 아니게 여자 대원만 뽑는 바람에 와이프한테 오해를 사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다. 다행히 와이프는 이해해주었다.

“공대장님, 수중 지원장비를 보신 적 있어요?”

“아니요. 극비라고 외부로 유출할 수가 없대요. 미국에 가면 볼 수 있을 거예요.”

“궁금하네. 물속에서 어떻게 레이드를 한다는 걸까요?”

“아마 특수잠수복의 개량형일 거예요. 그런 컨셉으로 만들어진 장비라고 들었어요. 물속에서 호흡하고, 움직이고, 의사소통하고, 전술 정보도 받고, 그런 걸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장비라고 하더군요. 자세한 건 직접 가서 보면 될 거 같은데요.”

“미국이 참 대단하긴 한 것 같아요. 마치 이런 일이 생기길 예상이라도 한 듯이 곧장 신형 장비를 내놓잖아요.”

“1차 해금현상 이후 미국은 해로가 막힐 경우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대응 수단을 세워뒀어요. 수중장비도 그 중 하나죠.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거지, 갑자기 뚝딱 만들어낸 게 아니에요.”

“공대장님은 그런 걸 어쩜 그리 잘 아세요?”

“미국에 인맥이 좀 있어요.”

“아아, 역시. 국제적으로 노시는 분이라 다르구나.”

박현정이 감탄한 듯이 손뼉을 쳤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 훤히 보이는 하얀 허벅지가 눈을 어지럽혔다. 다리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한 명품이다. 왜 그녀가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공대장님, 수중 레이드를 미국이 독점하면 제니스에 해가 되지 않을까요?”

최가의가 우려가 된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녀는 제니스가 미국에 밀릴 수도 있다는 것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유지웅은 쾌활하게 부정했다.

“제가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어요.”

“자신감이 참 대단하세요. 근데 왜 얄밉지가 않지?”

“사실이니까요. 잘난 체가 아니라.”

“진짜 공대장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그게 참 보기 좋은 거 같아요.”

A3에는 그들뿐만 아니라 미국이 제니스에 파견했던 레이더 대원들도 타고 있었다. 본래는 다른 수송기를 이용하려 했는데, 그럼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유지웅이 동행을 요청한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고마워하며 받아들였다.

“수중 레이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좋은 것은 취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선발대로 여러분과 제가 온 거예요. 책임이 막중합니다.”

“알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염려 마십시오, 써.”

A3가 미국에 도착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미국은 대대적인 환영 행사는 자제했다. 대신 부통령 이하 고위 각료들이 공항까지 직접 마중을 나왔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요 각료들의 환영을 받고, 간단한 환영 만찬회를 한 뒤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작전 실행에 착수했다.

유지웅은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라는 한스 대장을 만났다. 한스 대장은 샌프란시스코 항 외곽에 정박 중인 함대로 유지웅 일행을 안내했다. 6만톤급 대형 상륙함 1척, 호위 순양함 5척이 포함된 함대였다.

“이번 작전을 위해 설계, 건조 된 상륙함입니다. 항공모함은 수중 레이드 작전에 맞지 않아서 편제에서 제외됐습니다. 우리가 싸우려는 것은 인간이 아닌, 바다 속 괴수니까요.”

통역을 사이에 두고 한스 대장은 열심히 설명했다. 유지웅 일행은 상륙함 중심부로 안내되었다. 문이 열리며, 배 중심부 하단에 탑재된 거대한 기계 구조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우리 미국이 개발에 성공한 수중 결정 탐지 장비입니다. 결정체 소나라고 할 수 있죠.”

한스 대장은 한껏 자랑스러워하며 소개했다. 유지웅은 왜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저 구조물은 너무 거대했다. 헬기 따위에 실어서 운용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도 대형 버스 몇 개를 합친 것 이상의 크기였다.

“이 탐지장비는 특수한 파장을 이용해서 결정체를 감지합니다. 대기권에서도 물론 사용 가능합니다. 수중 탐지거리는 수십km에 지나지 않지만, 대기권에서는 최고 500km까지 탐지할 수 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호크아이에 장착된 탐지기보다 더 좋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항공기 탑재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죠. 육지에서는 이동성을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레이더 기지 성격으로 운용되겠지요.”

“소형화는 불가능한가요?”

“그것은 제가 알려드릴 수 없는 기밀입니다. 죄송합니다.”

유지웅은 나중에 칠드그린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일을 번거롭게 만드네.

“이쪽으로 오시죠.”

한스 대장은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레이더 부대 대기실이었다. 검은 특수복을 입은 대원들이 오와 열을 갖춰 질서정연하게 정렬해 있었다.

“부대 차렷, 경례!”

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경례를 붙였다. 한스 대장은 경례를 받은 뒤 유지웅에게 소개했다.

“첫 수중 레이드에 자원을 한 용감한 레이더들입니다. 우리 미국과 세계를 구원해줄 자랑스러운 영웅들이죠.”

유지웅 일행은 신기한 듯 자세히 살폈다. 대원들은 전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에 감싸여 있었다. 털 한 터럭도 외부로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잠수복처럼 생겼으나, 손목과 발목, 그리고 등에 둥근 금속 재질의 보호대가 장착돼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한 장교가 수중장비 세트를 들고 왔다. 벽면 스크린에 수중장비 사진과 자세한 스펙이 떠올랐다. 장교는 유지웅 앞에서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이 장비는 물속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육지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전진, 후퇴, 상승과 하강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압 저항 기능이 있어 수심 300미터 이하로 급속 잠수를 하더라도 인체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호흡은 어떻게 합니까?”

“등에 장착된 기관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이것은 잠수복처럼 생겼지만, 잠수복이 아니라 사실은 우주복 개념에 가깝습니다. 내부에는 미약하지만 공기도 흐릅니다. 잠수병 발발 위험도 전혀 없습니다.”

스크린에는 세 명의 레이더가 수중장비를 착용하고 바다 속을 유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작살처럼 생긴 딜 장비를 든 탱커가 간이 표적을 향해 돌진했다. 녹화 영상이었지만 그 속도는 무척 빨랐다. 아래에는 시속80km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육지에서 움직이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딜러가 자유자재로 위치를 바꾸며 표적을 조준했다. 딜러의 손끝에 맺힌 빛이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표적은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파괴되었다.

“또 대단히 질긴 재질로 되어 있어 어지간한 충격에는 찢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방어장비가 아니기 때문에 괴수가 주는 충격을 줄이는 기능은 전혀 없습니다.”

방어장비와 결합하면 대단한 괴물이 나올 것 같다. 유지웅은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도, 아니 미국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수중장비의 약점. 그것은 물속이란 핸디캡이다. 질긴 재질이라고 하지만 장비가 손상을 입는 순간 해당 레이더는 수중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장비 손상 위험이 가장 높은 것은 탱커이며, 탱커가 전투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공격대 전멸을 의미한다.

“위험한데요.”

유지웅은 솔직하게 소감을 밝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스 대장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은 도전은 없습니다. 그게 인류가 처음으로 하는 도전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차라리 브라우니를 이용해서 싸우는 게 더 안전하고 희생이 적을 겁니다.”

“브라우니와 회장님이 전 세계 바다를 커버한다고요? 그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

“인간은 자기 스스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합니다. 남에게 의존하기만 해서는 주어지는 게 없습니다. 위험한 건 우리도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도전할 겁니다.”

“차라리 기술 제휴를 하는 건 어떨까요? 수중장비에 방어장비의 장점을 보태면 완벽한 작품이 나올 겁니다. 그럼 수중 레이드의 위험도를 대폭 낮출 수 있습니다.”

“그건 안 되오, 미스터 제니스.”

유창한 한국어에 유지웅은 흠칫 놀랐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돌렸다. 검은 양복을 입은 초로의 백인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눈에 익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누구더라? 어디서 봤었지?

그 때였다.

“할아버님…….”

살짝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유지웅은 두 번에 걸쳐 연거푸 놀랐다. 하나는 노인이 미국의 정통 재벌가, 카네기 가의 큰어른이라는 것이 기억나서였고, 다른 하나는 쿤겐이 그를 부른 호칭 때문이었다.

“오랜만이구나, 테레사. 저번에는 본가에 한 번 들릴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서운했다.”

“저는 이미 가문을 나온 몸입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간에 네 몸에 카네기의 피가 흐르는 것은 변치 않는다. 잊지 말거라.”

유지웅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쿤겐이 카네기 집안사람이었나? 아, 그래서 저번에 저 노인, 세인 카네기가 자신을 그렇게 못마땅하게 노려봤던 건가?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유지웅은 침착하게 말했다.

“한국어가 유창하시군요.”

“취미로 잠깐 배웠소. 말썽쟁이 손녀가 한국인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배워둬야 할 것 같아서.”

“잠깐 배운 것 치고는 대단히 뛰어나십니다.”

“대단할 것도 없소. 외국어 하나쯤이야 두 달이면 배우는 것을.”

옆에서 박현정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세인 회장은 30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의 천재래요. 언어뿐만이 아니라 사업 수완도 상당히 뛰어나고요.”

쿤겐은 주먹을 꽉 쥔 채 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증오?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짙은 원망에 가깝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유지웅은 당혹스러웠으나, 그래도 수습을 위해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방금 안 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설마 기술 제휴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요?”

“그렇소.”

“왜죠?”

“두 가지 이유가 있소. 먼저 하나는, 이 수중장비의 원천기술은 미국이 개발한 게 아니라는 거요. 이제는 귀하도 알겠지만, 휘버 박사라는 미국이 낳은 천재가 남긴 유산을 활용한 것에 지나지 않소. 우리도 잘 모르는 기술을 가지고 제휴를 해봤자 언제 성과를 내겠소?”

“하지만 시간을 들여 도전하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일 아닌가요?”

“틀린 말은 아니오. 하지만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역시 안 된다는 거요.”

“두 번째 이유?”

“시간이 없소.”

밑도 끝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대번에 그 말뜻을 이해했다. 박현정도, 최가의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고 있지만 그는 세인 카네기가 찌른 핵심이 무엇인지 간파한 것이다.

“바다가 막힌 지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가오. 조금만 더 있으면 해금현상 때문에 축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거요. 인류는 1차 해금현상 때, 겨우 일 년의 해상봉쇄 때문에 1억 명이 아사한 악몽을 기억하고 있소. 절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고, 그 절망을 풀어줄 돌파구가 필요하오.”

“해로 개척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군요.”

“대중은 희망을 원합니다. 지도층은 그 희망을 실체화해줄 의무가 있소.”

“하지만 저 장비로는 희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장비 파손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요.”

“인류에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약간의 희생은 필수불가결한 법이지.”

유지웅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지독한 모순을 느꼈다. 입으로는 세인 카네기의 논리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그의 사상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와 자신은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논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바다가 막힌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아프리카 같은 치안이 좋지 않은 국가는 벌써부터 온갖 폭동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식량이, 물자가 없어서 죽는 게 아니라 순환되지 않아서 사람이 죽는 시대가 곧 도래 할 것이다.

브라우니? 고래 괴수? 제니스? 바다는 넓고 무한하다. 한스 대장의 말대로 그가 모든 바다를 커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한국이 굶어죽는 것을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이 개발한 수중장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을 가지고 당장 바다를 예전처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류에게 희망이 생긴다. 그 작은 차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낳는다.

“…….”

굳게 침묵을 지키던 유지웅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콰앙! 콰아앙!

멀리서 폭음이 들렸다. 상륙함이 미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란 한스 대장이 함내 전화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해양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호위함 녹턴, 피탄! 전원 퇴함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무엇하고 있었나? 탐지장비를 꺼두기라도 했나?”

「만 암초에 가려져 있어 탐지할 수 없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었음에도 세인 카네기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느긋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테스트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군.”

============================ 작품 후기 ============================

은장1이 되었습니다.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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