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351화 (351/1,550)

00351  알바 뛰는 회장님  =========================================================================

‘모든 레이드의 전투 기록을 수집하자.’

과거 제니스의 전신인 프라임 공격대가 수집한 전투 기록을 여러 나라에서 탐내는 것을 보고 어느 공무원이 이런 발상을 했다. 바로 경험이 곧 이익 창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돈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수집하여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면, 국가 치안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 이전에도 괴수 공략이라 해서 다양한 괴수의 전투 패턴이나 약점 등을 망라해놓은 자료는 지역마다 존재했다. 공무원은 그것을 국가 차원에서 통합 관리할 것을 주장했다.

「다양한 노하우가 끊임없이 축적될수록 국가 전체의 괴수 대응 능력은 진화할 것이며, 그것은 곧 국력 상승이 된다.」

단순히 전투 기록을 판매해서 돈을 번다는 발상은 레드 몹 레이드 이상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옐로 몹과 싸운 기록을 돈을 주고 사는 단체나 국가는 없다.

하지만 돈만이 이익의 전부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이익, 그것이 장기적으로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고 레이드 기록수집청이 창설되었다.

기록수집청의 주요 직무는 바로 이렇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레이드 기록을 전부 수집하여 분석 및 영구적으로 보관한다. 당연히 정규 공격대든 임시 공격대든 가리지 않는다. 또 전투 기록 수집을 위해서 여러 가지 지원을 한다.

웬만한 정규 공격대는 전투지원팀이 있어 전투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간단히 이뤄진다. 하지만 대강 사람들을 모아서 가는 막공의 경우는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기록수집청은 막공이 쉽게 레이드를 기록할 수 있도록 인력 및 장비를 지원한다. 그 비용은 막공이 내는 비용으로 충당하지만, 국가도 어느 정도 부담한다.

“기록수집청이 생겨서 여러 가지 좋은 효과를 많이 봤죠. 레이드 지원을 정부 인력만으로 한다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수집청과 계약을 맺고 인력 제공을 하는 사설업체들도 많이 생겨나고 해서, 일자리만 5만 개 이상 생겼어요.”

유지웅은 일자리보다는 레이드 기록을 차별하지 않고 전부 수집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돈은 쓰면 그뿐이지만 지적 재산은 영원히 남는다.

“누구 발상인지 좋은 일 하나 했네요.”

“그 누구더라? 남기철인가 하는 사람이 추진했다던데.”

“네? 남기철 국장님이요?”

“어, 알아요? 일반 학생들은 잘 모를 텐데.”

동료는 신기한 듯이 반응했다. 결정체자원관리부 장관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물며 차관도 아닌 일개 국장의 이름을 일반인이 알고 있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자자, 출발합니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직원들이 차례로 트럭에 탑승했다. 여러 대의 차량이 곧 먼지를 일으키며 출발했다.

유지웅과 정효주도 트럭 한 구석에 붙어 앉아 있었다.

“덥다. 더워.”

“많이 덥니? 어유, 이 땀 좀 봐.”

정효주는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땀을 닦았다. 몇 몇 남자 직원들이 부럽다는 눈으로 슬쩍 슬쩍 훔쳐보기도 했다.

어느덧 차량 행렬은 레이드 지역에 도착했다. 강 물가에 한가롭게 쉬고 있는 커다란 타조가 보였다. 정확히는 타조처럼 생긴 옐로 몹이었다.

레이드를 하기에 앞서 업체 직원들이 먼저 나섰다. 그들은 기록수집청 직원들의 감독 하에 지원설비들을 설치했다.

8개의 바퀴로 움직이는, 높이 1.5미터의 무인로봇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광학 센서를 비롯한 다양한 감지기관이 있어 괴수의 상태를 분석하고, 전투 영상을 기록하는 로봇이었다. 그런 로봇만 8개였다.

“저게 개당 2억이래요. 왜 팀장이 저거 나를 때 벌벌 떨었는지 알겠죠?”

“2억이요? 엄청 싸네요.”

무심코 그리 말하자 정효주가 눈치를 주듯이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다행히 동료 직원은 별로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는 못하고 그저 껄껄 웃었다.

“동종 로봇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모델이긴 해요. 벌써 2년 전 모델이니까. 기록수집청이 생긴 지 몇 년 안 된 곳이라 예산 할당이 좀 어렵다고 하던데, 그래서 아직도 저거 쓰나 봐요.”

“그래도 너무 구형인데요.”

“뭐 어쩔 수 없죠. 제니스 공격대가 사용하는 지원장비와는 천지차이지만, 막공에서는 저 정도도 감지덕지죠.”

로봇을 운용하는 것은 아까 전투지원만 뛰는, 속칭 전문가들이라고 지칭한 사람들이 맡았다. 그들은 커다란 원격 컨트롤러로 신중하게 로봇을 움직이고 있었다.

‘저래서 몸값이 비싸다는 거구나.’

저런 무인장치들을 통제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했다. 무슨 산업기사 이상의 고도의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어쨌거나 유지웅을 비롯한 단순 용역 직원들은 전투의 여파가 전혀 없는 곳에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했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어그로! 어그로!”

“딜 중지! 딜 중지! 박상태 딜러, 물러나요! 위험해요!”

약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투가 한창이었다. 벌써 전투만 30분째였다.

유지웅도 처음에는 아이들 재롱 보는 기분으로 흥미롭게 지켜보았으나, 옐로 몹 하나에 벌써 30분 이상 전투가 지속되는 것에 지루함을 느꼈다.

하품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들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해서 보고 있었다. 하기야 저들에게는 위험을 감수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광경이니,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일반 용역뿐만이 아니라 로봇을 통제하는 전문가들도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컨트롤러를 조작 중이었다.

컨트롤러는 20인치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스크린과 2개의 조종간, 그리고 다수의 복잡한 버튼으로 구성돼 있었다. 스크린에는 무인로봇이 보내오는 광학 영상 및 복잡한 수치 그래프가 여러 개의 화면으로 분할돼 떠올라 있었다.

물론 제니스 지원팀에는 저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장비들이 존재한다. 1조 원이 넘어가는 호크아이만 들이대도 2억짜리 무인로봇 따위는 허리를 납작 엎드려야 한다.

하지만 유지웅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게 보였다. 이런 걸 직접 구경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히려 레이드보다는 지원 전문가들이 일하는 게 더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밀어 흥미롭게 관찰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위험한 순간에 얌전히 있지 않고 방해할 셈이에요! 그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한창 로봇 통제에 집중하던 이가 유지웅의 시선을 느끼고 버럭 화를 냈다.

“얌전히 구경이나 해요! 방해하지 말고!”

유지웅은 놀라기보다는 황당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무슨 몸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방해를 한 것도 아니다. 바로 근처에서 컨트롤러를 한창 조작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얼굴을 조금 가까이 가져갔을 뿐이다.

그리고 뭐? 위험한 순간? 무인로봇이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괴수한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기록을 수집하는 것뿐이다. 막말로 저들을 두들겨 패도 레이드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리 와요. 원래 저 사람들 까칠한 구석이 있어요.”

많이 친해진 남자 동료가 서둘러 그를 잡아당겼다. 정효주가 화가 나서 뭐라고 하려다가 꾹 눌러 참았다.

“아니, 로봇 통제하는 게 무슨 엄청 중요한 일이면 사람들 안 보이는 데서 하던가, 다 함께 모인 데서 저러고 있으면서 조금 가까이서 봤다고 뭐라고 하는 건 대체 무슨 심술이래요?”

정효주가 열을 내며 항의를 했다. 항의 대상은 유지웅을 잡아당긴 남자 동료였다.

그는 난처한 듯이 변명처럼 말했다.

“저 사람들 위험한 일 하는데 방해받는 거 원래 싫어해요.”

“저게 뭐가 위험한 일이라고요? 레이드 전술 지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레이드 기록을 수집하는 것뿐인데?”

“로봇 통제하다가 까딱 실수해서 망가뜨리면 큰일이잖아요.”

“……아.”

발갛게 달아올라 있던 정효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제 색으로 되돌아왔다.

“자기 과실로 로봇 망가뜨리면 그거 본인 책임이에요. 저건 위험하다고 보험도 안 돼요. 2억이 날아가는 건데, 저 사람들 몸값 아무리 높아봐야 평균 월수입이 600 정도예요. 그래서 저렇게 까칠한 거예요.”

유지웅은 괜히 머쓱해졌다. 슬쩍 돌아보니 정효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얼굴에 가벼운 창피함이 떠올라 있었다.

이쪽 분야에서 몸값이 높은 사람들이라 해서 예전 힐러들의 횡포를 생각했다. 특히 조금 가까이서 봤다고 신경질을 내는 것에서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트집을 잡곤 했던 힐러들의 행태를 연상해버렸다.

그러나 까딱하다가는 자기들 몇 년 치 수입이 날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갔다.

레이드가 종료되었다. 괴수가 쓰러지자 그제야 직원들도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아, 레이드 보는 건 언제나 긴장 돼.”

“그러게. 사고 나는 경우 거의 없다지만 그래도 손에 땀을 쥐게 되네.”

무인로봇을 조작하던 이들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한시름을 놓았다.

“저.”

통제기사 중 한 명은 땀을 닦고 있다가 누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 자신이 소리를 질렀던 청년이 서 있었다.

“아까는 방해해서 미안했어요. 화면이 신기해서 그냥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한 것뿐이었는데…….”

“아무 일 안 생겼으니 된 겁니다. 저도 소리 질러서 미안했습니다. 전투 중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져서요.”

조바심을 안고 지켜보던 정효주가 보이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신랑이 괜히 일을 크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솔직히 그녀는 신랑이 먼저 사과할 줄은 몰랐다.

감정기관에서 나온 직원들이 뒤처리에 한창이었다. 감정을 마치고 나자 또 업체 직원들이 나섰다. 괴수의 사체를 대형 트럭에 싣기 위해서였다. 사람 손으로 직접 하지는 않고 다른 차량의 기계 팔로 들어다가 실었다.

“예전엔 감정기관에서 다 했는데.”

“요즘은 단순 노역은 민간 업체에 맡기고 있어요. 자잘한 지원은 우리 같은 지원업체가 다 하는 거죠.”

잠깐 눈을 떼고 살았더니 세밀한 부분에서 세상 돌아가는 게 참 많이 변해 있었다.

그냥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언제 그가 이런 데 눈길 한 번 줄 기회가 있었겠는가. 레이드 끝나고 나면 뒤처리까지 장태준에게 전부 위임하고 그는 귀가하기 일쑤였다.

“아, 힘들다.”

막공 대원들은 분배를 마치고 흩어졌다. 하지만 레이드가 끝나도 지원업체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심지어 뒷정리 중에는 전투로 엉망이 된 지형을 다지는 작업까지 있었다. 지원업체는 굴삭기까지 동원해서 엉망이 된 지형을 다지고 고르는 것으로 마무리를 끝냈다. 트럭에 실은 괴수 사체는 감정기관청의 감독 하에 정제시설로 보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공격대 대원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까지 줍고 나서야 일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느덧 석양이 지고 있었다. 유지웅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음료수를 꺼내 마시거나 땀을 닦으며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지원업체가 하는 일은 참으로 다양했다.

전술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전투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저장해서 공격대에 준다. 기록을 위해서 나라에서 임대한 설비를 운반 및 설치, 감독하는 것은 물론이다. 감정을 마친 시체를 싣고 운송하는 작업도 도맡아 하고, 심지어 엉망이 된 지형을 고르는 작업과 쓰레기 청소까지 한다.

“신기하다.”

“왜?”

“아니, 그냥. 괴수 잡는 것만 레이드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네.”

저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게 오가는지 전혀 모른 채 살았다. 이런 영역이 존재하는 것조차 몰랐다. 마냥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일당 받아가세요.”

“아, 우리도 분배받을 차례인가 보다.”

유지웅은 괜히 들떠서 줄을 섰다. 일일 용역 수당이라고 해봐야 그의 재산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하다. 하지만 색다른 일을 해서 번 돈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기쁜 마음으로 봉투를 받아든 유지웅은 안의 돈을 세어보고는 흠칫 했다.

“어? 왜 7만원이 아니고 6만원이야?”

============================ 작품 후기 ============================

누가 내 만원을 옮겼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