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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387화 (387/1,550)

00387  보이 프렌드?  =========================================================================

트리스티나는 날개를 다소곳이 접은 채, 자신의 주변을 돌고 있는 녀석을 흘끔거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녀석은 경계심을 풀고 친근하게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자꾸만 녀석의 깃털에 눈이 간다. 빨강, 파랑, 노랑 등등 다양한 색의 깃털이 조화를 이뤄 화려한 멋을 뿜어낸다.

갖고 싶다! 갖고 싶어!

트리스티나는 왠지 자신이 초라해졌다. 하얗고 탐스러운 깃털이 평소 자랑스러워했는데, 저 녀석의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깃털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

지금 주변을 맴돌며 지켜보는 것도, 속으로는 ‘뭐 이렇게 없어 보이는 깃털이 다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더욱 창피한 기분이 들어서 트리스티나는 목을 좀 더 움츠렸다.

―카악! 가악!

갑자기 녀석이 목을 빼며 울부짖는다. 꽁지깃이 활짝 펼쳐지며 화려하게 펄럭거린다. 뭔가 더 멋져 보인다. 그러면서 주변을 계속 빙글빙글 맴돈다.

저게 뭐하는 거지? 트리스티나는 의아했다.

흰 깃털이 없어 보인다고 놀리는 줄 알았는데, 어째 분위기가 그건 아닌 것 같다?

트리스티나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니 녀석이 꼬리를 접고 꼿꼿하게 섰다. 그리고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트리스티나는 날아오르려 했다. 그때 어디론가 사라졌던 녀석이 다시 돌아왔다. 입에는 늑대처럼 생긴 조그만 먹이를 물고 있었다.

녀석은 트리스티나 앞에 먹이를 털썩 내려놓고는 으스대듯이 쳐다봤다.

설마 먹으라는 거? 트리스티나는 더욱 황당했다. 아니, 아빠도 아닌 게 왜 먹을 것을 줘? 그것도 생판 초면에?

이게 뭐하는 짓이지? 이해가 안 갔다.

―가악! 카악!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듯이 녀석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먹어도 되나? 아빠 말고 딴 놈이 잡아다 준 건데 괜찮을까?

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왠지 맛있어 보인다. 트리스티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먹이를 물고는 낼름 삼켰다.

맛이 괜찮은데?

―카아악! 가아악!

트리스티나가 먹이를 먹자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꽁지깃을 더욱 펄럭거렸다.

*  *  *

“트리스티나가 티마와 접촉했습니다.”

“티마가 위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이 놀자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트리스티나를 공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앗, 티마가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때 늦은 저녁에 한미 합동통제본부는 비상이 걸렸다. 트리스티나의 단순 외출이라면 별 일 아니지만, 레드 몹과 접촉한 거라면 일이 커진다. 자칫 괴수 간의 싸움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브라우니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티마, 먹이를 물고 다시 돌아옵니다.”

“어쩌면 친근감을 표시하는 게 아닐까요?”

통제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어느 젊은 여성 통제관의 한 마디가 사방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저 티마라는 괴수, 혹시 수컷새인가요?”

“…….”

“…….”

고요해진 가운데 서로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러다가 한 명이 정적을 깼다.

“누가 괴수 티마의 데이터 좀 조회해 봐.”

“알겠습니다.”

잠시 후 조회 결과가 나왔다.

“괴수 티마, 주로 넓은 벌판에서 서식, 활공 가능 거리가 100km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서식지를 좀처럼 떠나지 않고, 미국에만 10여 마리가 서식 중, 결정도는 8,000?”

결정도 8,000이면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그러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브라우니, 모비딕 등등 1만이 넘어가는 레드 몹을 데리고 있다 보니, 이거 뭐 8,000은 숫자로도 안 보인다. 한국에서는 다섯 자리는 되어야 제대로 된 레드 몹 취급해준다! 뭐 이런 느낌?

“수컷인지 암컷인지 그런 건 없군?”

“자연에서 서식하는 레드 몹의 성별 여부를 무슨 재주로 조사할 수 있겠어요. 애초에 괴수가 일반 생물처럼 번식하는 케이스도 근래에 겨우 몇 번이 보고되었을 뿐인데요.”

유지웅 커플이 OT에서 주워온 괴수 알, 그리고 모비딕 대가족과 베링 샤크 정도가 괴수의 번식 케이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맹수도 아니고 자칫 자극했다가는 도시 하나 거덜 내는 괴수의 생태계를 무슨 재주로 조사하나?

하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다. 화려하고 멋진 깃털, 그리고 암컷으로 판별 난 트리스티나에게 친근감을 갖고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행동, 게다가 먹이까지 물어다 바치며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라. 이건 자연계에서 수컷새가 암컷새에게 구애하는 모습 아닌가?

“앗! 티마가 감시 헬기를 발견했습니다! 공격합니다!”

“후퇴! 아니, 탈출하라고 해! 헬기 버려!”

현재 두 기의 헬기가 거리를 두고 트리스티나와 티마를 감시 중이었는데,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바람에 들킨 모양이었다. 한국팀이라면 있을 수 없는 실수였다.

통제본부에 다급한 공기가 맴돌았다. 비록 거주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결정도 8,000짜리 괴수가 아닌가.

제대로 난리가 날 것이다. 재수 없으면 거주 지역까지 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앗! 이걸 보세요! 트리스티나가! 트리스티나가!”

“무슨 일…… 앗?”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영상을 가리키자, 대책을 세운답시고 난리법석을 부리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도 일제히 놀랐다.

*  *  *

―캬아아악!

멀리서 호버링 중인 헬기를 발견한 티마는 눈알을 부라리며 날카로운 포효를 질렀다. 녀석은 몸을 굽혔다가 그 반동을 이용해 튕겨지듯 날아올랐다. 마치 대공 로켓의 발사 장면 같았다.

뒤늦게 깨달은 헬기는 급히 기수를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제트기쯤 되면 모를까, 헬기의 빈약한 비행 속도로는 달아날 수 없다.

그때였다. 뒤늦게 날아오른 트리스티나가 빽빽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 티마는 엉거주춤 공중에 멈췄다. 허둥지둥 쫓아온 트리스티나는 날개를 퍼덕이며 계속 빽빽거렸다.

저거 공격하면 안 돼!

트리스티나는 열심히 파닥거리며 온몸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인간을 따르는 브라우니 품에서 성장한 지라, 트리스티나는 인간을 공격한다는 발상 자체를 못한다. 녀석의 눈에는 티마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거친 횡포였다.

티마는 머뭇거렸다. 트리스티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적 아닌가? 적은 덮쳐서 다 죽여 버려야 한다. 티마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은데, 모처럼 마음에 든 암컷이 뜯어말리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그러는 사이 헬기는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사람을 살려 보내서 의기양양해졌는지, 트리스티나는 날개를 더 빠르게 파닥파닥거리며 티마를 야단쳤다.

너 그러면 안 돼! 공격하지 마!

아마 인간의 말로 바꾸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티마는 헬기를 놓아 보내준 게 못마땅했지만, 결국 얌전히 땅에 내려앉았다. 그저 수컷으로 태어난 게 죄다.

*  *  *

사람들은 트리스티나가 티마를 말린 것에 놀랐다. 괴수를 길들여서 괴수를 사냥한다는 발상은 이미 이루어졌다. 하지만 길들인 괴수가 다른 괴수를 ‘말려서’ 공격을 멈추게 한 것은 전무한 일이다.

새로운 괴수 활용 방안의 가능성이 트였다고 할까? 이용가능성을 놓고 전문가들이 더욱 분주해졌다.

“그럼 트리 남자친구 생긴 거야?”

보고를 받은 유지웅은 그렇게 반응했다. 정효주도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며 흥미를 보였다.

“트리도 다 컸네. 남친도 사귀고.”

“이거 안 되는데. 난 브라우니가 남친 될 줄 알았는데.”

“아빠가 어떻게 남친이 되니?”

“뭐 어때. 다 아빠가 오빠 되고 오빠가 여보 되는 거지. 인간도 아닌데 무슨 상관?”

원래 유지웅은 브라우니 주둔 작업이 정리되면 바로 워싱턴으로 가서 볼 일 보고 귀국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이 돌아가는 게 재미있어서 조금 더 남기로 했다.

트리스티나는 생애 처음으로 사귄 친구와 노는 게 재미있는지 뻔질나게 놀러 다녔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넘어가면서부터 둘은 이제 친밀하게 놀러 다녔다.

가끔씩 티마가 인간을 습격하려고 할 때면 트리스티나가 눈을 부릅뜨며 제지했다. 그게 또 신선한 반응이었다.

정효주와 유지웅이 따뜻한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둘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다. 당연히 티마는 으르렁거리며 둘을 공격하려 했다.

물론 질겁한 트리스티나가 뜯어 말렸다. 만약 그대로 공격했으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둘이 재미있게 잘 노네.”

“트리가 친구가 생긴 게 처음이라서 즐거운가 봐.”

“저스트 프렌드일까? 아니면 보이 프렌드일까?”

“글쎄?”

척 봐도 티마는 트리스티나한테 관심이 많아 보인다.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번식 상대로 여기고 구애하는 거 같다.

근데 트리스티나가 하는 짓은 새끼 범고래 괴수들과 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번식 상대로는 안 보는 거 같다. 아니, 아직 발정기가 안 와서 그러나?

한 번은 티마가 트리스티나의 위에 올라타려고 했는데, 녀석은 버럭 화를 내며 떨어뜨렸다. 날개를 파닥파닥 거리면서 빽빽 소리를 지르는 게,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뒤로 티마는 기가 죽어서 절대로 올라타지 않았다.

“브라우니가 좀 서운하겠는데.”

“안 그래도 요즘 좀 외로움 타는 거 같더라. 트리가 외출하면 나간 방향만 빤히 쳐다본다고 하던데.”

“근데 브라우니는 트리랑 번식할 생각은 없나? 이왕이면 둘이 잘 됐으면 좋겠어. 남자로서 응원하고 싶어지거든.”

“못 됐어. 짐승도 아니고…….”

“왜, 짐승 맞잖아?”

유지웅 커플은 자리를 깔고 나란히 앉아 두 괴수를 구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녀석들도 놀다 지쳐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꼭 더블데이트 하는 느낌이다.

그때였다.

“어? 저거 브라우니 아니야?”

“맞네? 쟤가 왜 여기 있지?”

유지웅과 정효주는 저 멀리 브라우니를 발견하고 가볍게 놀랐다. 웃긴 것은 녀석이 바위 뒤에 몸을 감추고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서 졸고 있는 트리스티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꼭 딸내미가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거 몰래 쫓아온 팔불출 같다.

============================ 작품 후기 ============================

누가 그녀의 보이 프렌드가 될 것인가!

..라기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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