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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391화 (391/1,550)

00391  보이 프렌드?  =========================================================================

괴수의 발생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현재는 두 가지 원인이 괴수 발생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나는 생물결합설이다. 이 설은 대기 중에 희박하게 떠도는 결정 에너지가 어떤 원인으로 곤충이나 동물 등의 생명체에 흡수돼서 괴수로 변이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응집이론이 이 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으며, 대기 중에서 결정 에너지를 검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굳건한 지지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번식설이다. 괴수도 생명체라서 서로 교미하고 번식하여 개체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은 생물결합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확한 입장은, 생물결합설로도 괴수가 생겨날 수 있지만 이미 생겨난 괴수끼리 서로 교미해서 수를 불리는 것도 가능하다, 정도쯤 된다.

특히 이 설은 베링 샤크와 모비딕 대가족을 통해서 이미 증명된 사례가 있다. 실제 발생 사실을 통해 생물결합설보다 더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제이라가 낳은 알은 세계 두 번째로 발견된 괴수 알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척 봐도 제이라와 브라우니는 종이 다르다. 둘이 교미해서 낳은 알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가졌을지 벌써 권위적인 전문가들이 분석을 늘어놓기 바빴다.

“이대로 가다가는 괴수로 구성된 공격대도 거느릴 수 있겠어. 제7예비대쯤으로 편제를 짜면 될까?”

“편대장은 누구로 하고?”

“괴수가 잘 따를 만한 사람, 괴수를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면 되지.”

“그런 사람이 있을까?”

“왜 없어, 있잖아.”

유지웅이 그새 까먹었냐는 식으로 반문하자 정효주는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나미 씨?”

“응.”

“그럼 혹시 나미 씨를 대원으로 받아들인 거, 물을 다루는 능력보다 괴수를 잘 다뤄서 그런 거였니?”

“뭐 어렴풋하게 밑그림을 그리긴 했어. 근데 나미 씨 받아들일 때만 해도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지.”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본인도 확신할 수 없던 추상화가 구체적인 가능성을 띠게 되었다.

괴수 공격대, 아주 불가능한 개념도 아니다. 이미 브라우니를 서브 탱커로 투입해서 블랙 몹 레이드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한 적도 있다. 그게 좀 더 확장될 뿐이다.

“괜찮은데?”

유지웅은 생각난 김에 장태준과 편제 의논을 했다. 괴수만으로 구성된 제7예비대를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는 말에 장태준도 진지하게 반응했다.

“만약에 괴수를 메인 탱커로 다른 예비대와 호흡을 맞추게 된다면, 블랙 몹을 상대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가능할까요?”

“아, 표현에 오해가 있나 봅니다. 블랙 몹을 무난하게 섬멸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전력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회장님이 국외에 나가 있을 때 블랙 몹이 나타난다면, 귀국하기 전까지 최대한 피해를 저지하며 늦출 수 있겠지요.”

지금은 아무리 제니스라 해도 유지웅과 정효주 없으면 블랙 몹 앞에서 그냥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간다. 말 그대로 시간 끌기 총알받이도 안 된다.

하지만 괴수를 메인 탱커로 내세우고 다른 공격대원들이 보조한다면, 예비대만으로 어느 정도 버티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

테레사도 있고, 괴수 약화 능력을 가진 메이도 있고, 물을 다루는 괴수 조련사 나미도 있으니, 그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데, 카네기 가문 장녀 카타리나가 찾아왔다.

“좋은 일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유지웅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피즈 되파는 거 생각은 해 보셨나요?”

“……카네기는 괴수 육성 사업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아요.”

“몇 배로 다시 사드릴 수 있습니다.”

카타는 난처했다. 카네기 가문 입장에서는 유지웅이 되팔라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압박이었다. 그가 피즈를 사실상 점유 및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지구상에서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이는 가족 말곤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카네기 가문에서는 차라리 테레사가 제니스 가문에 애첩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무래도 ‘처가’ 입장이 되면 신경을 써줄 테니까.

근데 카타가 보기에는 그것도 글렀다. 제니스 회장의 아내 사랑은 국제 상류층 인사 사이에서도 굉장히 유명했다. 젊은 나이에 그런 지위에 도달하면 몇 번이나 한눈을 팔았을 텐데, 결혼 이후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나.

혹자는 탱커인 아내한테 맞아죽을까 봐 잡혀 산다고 낄낄거리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그만큼 아내의 밤기술이 좋아서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는 거 아니냐고 웃기도 했다.

유지웅은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피즈를 다시 사야 되는데.’

나미는 피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듣자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피즈 곁에 붙어 있다고 한다. 그런 사이를 정치적, 경제적 논리로 떼어놓다니, 이 무슨 잔인한 짓인가?

그녀의 진심을 얻기 위해서라도 피즈는 다시 손에 넣어야 했다. 테레사가 좀 걸리긴 하지만, 테레사는 정작 피즈 일은 까맣게 잊고 있는 편이다. 카네기 가문에는 다른 식으로 보상을 해줄 생각이었다.

“안전지대 권리는 어떻습니까?”

“안전지대 권리요?”

카타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가슴이 뛰었다. 아직 본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안전지대란 단어 하나만으로 이미 얼마나 큰 미끼가 튀어나올지 감도 오지 않았다.

“대도시 하나를 커버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세 개까지 정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설치만 해주고, 그 세 개의 안전지대는 전부 온전히 카네기 가문의 소유가 되는 거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카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괴수 사육은 먼 미래를 내다본 가능성이었다. 당장은 어떤 실적이나 이익을 내기 힘든 초장기 사업이다.

하지만 안전지대는 다르다. 당장 고수익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카네기 가문의 위명이 단숨에 록펠러에 비수를 꽂을 수 있을 만큼 높아질 수 있으리라.

유지웅은 지금까지 어느 특정 단체에 안전지대의 권리를 부여한 적이 없었다. 자기가 활용하거나, 혹은 특정인이 소유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방임했다.

그의 축구 클럽, 에버튼이 있는 리버풀에 설치한 안전지대가 바로 후자의 경우다.

리버풀은 안전지대로 많은 유무형적 이익을 얻고 있지만, 그로 인한 이익은 어느 특정인, 특정단체에 귀속되지 않고 리버풀에 사는 모든 이가 보이지 않게 공평하게 누린다. 기껏해야 에버튼 팬들이 리버풀과 더비전이 벌어질 때, ‘이 안전지대 어느 클럽 구단주가 설치한 건지 알아?’라고 야유하는 정도가 다다.

“그 말씀은……?”

“카네기가 정한 지역에 안전지대를 설치해드리죠. 카네기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든 그것은 카네기의 자유입니다. 그 안전지대의 소유권은 카네기 가문에 있습니다.”

“대도시 하나를 커버할 수 있는 규모로, 세 개까지요?”

“예.”

어머, 이건 꼭 받아들여야 해! 마른침을 삼키던 카타는 입을 열었다.

“돌아가서 가문 어른들과 상의를 해야겠어요. 아, 부족해서 그러는 게 절대 아니에요. 저는 당장 이 자리에서 받아들이고 싶지만, 그리고 아마 만장일치로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지만, 제가 아직 이런 큰 거래를 단독으로 결정할 전권을 갖고 있지 않아서 그래요.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혹시라도 튕기는 거라고 생각할까 봐 카타는 진땀을 흘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대박이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었다.

“그러세요.”

유지웅은 흔쾌히 수락했다.

*  *  *

자고 일어난 트리스티나는 뭔가 이상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가 없지만, 둥지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빠와 불여시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도 뭔가 어제와 달랐고, 사람들이 시끌시끌하게 드나드는 것도 이상했다.

뭐야? 대체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트리스티나는 브라우니가 제이라 옆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심술이 났다. 그래서 늘 그랬듯이 둘 사이를 파고들어서 떼어놓으려고 했다. 그 바람에 자연스럽게 제이라를 밀치게 되었다.

―꾸구구국!

그러자 제이라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항의했다. 화를 낸 것은 아니고, 그러지 말라고 한 조그마한 반항 정도?

트리스티나는 얼떨떨했다. 아니, 지금 이게 누구한테 큰소리를 내는 거야?

화가 난 트리스티나는 브라우니를 쳐다보며 빽빽거렸다. 아빠, 지금 저게 나한테 화냈어! 혼내 줘! 하듯이.

둘 사이에 낀 브라우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저 트리스티나의 목에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다독이는 것이다. 근데 그게 마치 ‘네가 참아라.’라고 하는 듯해서 트리스티나는 더욱 서운하고, 화가 났다.

아빠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뭐 이런 느낌?

트리스티나는 크게 소리를 빽 지르고 둥지를 뛰쳐나갔다. 내심 아빠가 쫓아 나와서 잡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빠는 나오지 않았고, 트리스티나는 더욱 야속해져서 날개를 퍼덕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날던 트리스티나는 문득 누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혹시 아빠인가? 뒤를 돌아본 트리스티나는 실망했다. 자신을 쫓아온 것은 다름 아닌, 티마였던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트리스티나는 티마와 같이 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제이라가 나타난 날 이후로 티마를 만난 게 처음이었다. 한동안 모습을 안 보여서 그런지 티마는 많이 섭섭한 듯이 보였다.

티마는 화려한 꽁지깃을 자랑하고, 또 먹이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자기 사냥 솜씨를 과시했다. 열심히 멋있는 척을 하고 있지만, 트리스티나의 눈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서툴러 보였다.

아빠는 안 저런데, 저렇게 안 해도 멋있는데, 저렇게 쎈 척 안 해도 엄청 많이 쎈데.

뭘 해도 자꾸 아빠랑 비교가 된다. 피곤하게 왜 저렇게 잘난 체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놀고 싶은 거지, 니 잘난 체를 봐주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왜 모르니?

재미가 없어진 트리스티나는 적당히 놀아주다가 해가 좀 기울자 집으로 향했다. 티마가 내일도 또 나오라는 듯이 꽥꽥거리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건성으로 날개를 흔들어주고는, 바로 둥지로 향했다.

마침 제이라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둥지에 들어선 트리스티나는 제이라가 앉아 있던 자리에 브라우니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졌다.

아빠, 왜 거기 있어?

트리스티나는 자신과 놀아달라는 듯이 아빠의 목을 물고는 낑낑거리며 잡아당겼다. 브라우니는 난처해하면서도 좀처럼 일어서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잡아당기던 트리스티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콰당 하고 넘어졌다. 놀란 브라우니가 벌떡 일어났다.

순간 트리스티나는 보고 말았다. 브라우니가 일어선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새하얗고 커다란 알을.

============================ 작품 후기 ============================

말 못하는 괴수들의 사각관계를 글로 옮기려니 조금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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