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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452화 (452/1,550)

00452  Unlimited Crystal Works  =========================================================================

유지웅의 일상생활은 의외로 담백한 편이다. 하는 짓의 종류만 보면 평범한 이십대 청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물론 하는 짓의 스케일을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취미 생활에 쏟아 붓는 돈의 규모가 일단 남다르다. 이번 달에는 얼마만 쓰자, 라는 자각 자체가 없다. 그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하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산다.

그렇게 해도 재산은 실시간으로 불어나고 있으니, 금전적인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의 취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컬렉션이다.

무엇을 모으는 거냐고? 그냥 모으고 싶은 건 닥치는 대로 사서 모은다.

수집품목 중 대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문화재나 고미술품이다. 흑석동 자택 내에 설립한 사립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매입한 옛 조선 문화재 가짓수만 일만 점이 훌쩍 넘어간다고 한다.

그것으로 만족을 못해 일본이 보유 중인 다른 고미술품도 닥치는 대로 매입 중이었다. 근시일 안에 박물관 빌딩 하나를 더 올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 그는 과학자도 수집한다.

분야는 가리지 않는다. 그냥 해당 분야에서 이름 좀 날리고 실력 좀 있다 싶은 석학들은 닥치는 대로 스카웃한다. 그렇게 끌어 모은 인재들을 세종시 연구단지에 우겨넣는다. 덕분에 세종시 연구단지는 과도한 인재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는, 우습지도 않은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나 뭐라나.

그 밖에도 다양한 종류를 수집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수집품을 말하라면 바로 자동차다.

세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가 보유 중인 자동차 개수가 100여 대가 넘는다고 한다. 포르쉐, 볼보, 페라리, 람보르기니, 애스톤마틴, 재규어, 벤츠, BMW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동년배인 젊은이들은 그가 타고 다니는 차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어쩌다가 차를 타고 나와서 누군가에게 포착되면 당장 그날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찍을 정도다. 그는 이미 이 시대 젊은이들이 우러러 보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회장님은 오늘도 취미 생활을 위해 분주하다.

“어디 나가니?”

“방배동 좀 갔다 올게.”

“……또 차 사러?”

“안 돼?”

“그게 아니라, 자기 그러다가 주차장 포화되면 어쩌려고?”

“확장공사하지 뭐. 그리고 아직 포화되려면 멀었어.”

그녀도 더 이상 별 말은 안 했다. 신랑의 건전한 취미 생활은 정효주로서도 반길 요소다. 엉뚱한 데 정열을 쏟아 붓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듣기로는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몸으로 유혹도 많이 한다는데 한 번도 잡음이 안 나온 걸 보면 참 믿음직하다. 남아돌아서 주체 못하는 돈을 여자가 아니라 차나 문화재에 쏟는 것이, 그녀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갔다 올게.”

허리를 꼭 껴안고 찐하게 뽀뽀를 한 뒤 유지웅은 본채를 나섰다. 현관문 밖에는 박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죠.”

“예, 회장님.”

둘은 저택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은 지상 1층, 지하 3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규모만 따지면 웬만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버금간다. 참고로 이미 지상 주차장은 포화된 지 오래다.

“그래, 오늘은 너다.”

주차장에 올 때마다 오늘은 뭘 타고 나갈지를 정하는 게 늘 고민이었다. 유지웅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애스톤마틴 ONE-55로 정했다.

전 세계에 단 55대만 생산된 한정판 모델로, 한국에는 딱 한 대만 존재한다. 그 놈이 바로 이 놈이다. 대충 몇 십억쯤 준 거 같은데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안 난다.

유지웅이 운전석에 오르자 박 비서실장이 조수석에 올랐다. 그 반대가 아니냐고? 이유가 있다. 유지웅은 자기 차는 직접 운전하는 걸 좋아하기에 누구랑 타든 간에 웬만해서는 운전대를 직접 잡는 편이다. 비서실장도 그걸 알기에 이제는 아무 말 않고 조수석에 오르는 것이다.

애스톤마틴은 IC도로를 달려 포르쉐 판매 센터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포르쉐 판매 센터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왜 두 번째냐고? 그야 한 매장을 자주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 번 방문했다 하면 싹쓸이를 하는데 다음에 또 찾을 일이 없다. 새 모델이 쌓이지 않는 한은.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전에 봤던 직원이 없자 유지웅은 떨떠름했다. 그 직원이 비위도 잘 맞추고 말도 잘 통해서 한결 편했는데.

직원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마케팅 스마일을 유지하느라 대놓고 표시는 안 하지만, ‘얘는 뭔데 그런 말을 해?’ 정도쯤 될 것 같다.

“근무한 지 사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그 전에 오셨다면 저를 처음 보는 걸 수도 있겠네요.”

“아, 그렇군요. 어쩐지.”

유지웅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박 실장은 그렇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이 신입은 대체 뭐지? 설마 회장님이 타고 온 차량이 뭔지 미처 확인을 못했나? 그렇다고 주차장으로 끌고 나가서 보라고 할 수도 없고, 미치겠다. 대체 지점장이나 다른 직원들은 어디로 간 거야?

“뭐뭐 있나 한 번 보죠.”

유지웅이 자연스럽게 나서자 말쑥한 차림을 한 직원의 표정이 더욱 생뚱맞게 변했다. 마치, ‘이 놈은 뭐지?’라고 의구심을 품는 것 같다.

하는 태도를 보면 무슨 재벌2세나 3세 같은데 입고 있는 옷은 무슨 파란색 트레이닝복이다. 어디 약수라도 뜨러 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든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만드는 차림새다.

동행으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삼십대 청년이 입고 있는 옷이 차라리 더 깔끔해 보인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게 영 이상해 보이는데, 사회 경험이 적은 직원으로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건지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았다.

진짜 저 미친 반짝이 트레이닝복은 대체 뭐지? 만약 진짜로 재벌2세나 재벌3세라면, 제정신이 아닌 이상 저런 옷을 입고 여기에 오진 않을 텐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연수 교육을 받은 경험은 어디 가는 게 아닌지라 직원은 웃는 얼굴로 유지웅을 안내했다. 의심이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손님은 왕이다. 손님이 아니라고 판별되면 그때 가서 실행에 옮기면 그만.

“오, 이거 멋진데.”

“이미 보유하신 모델입니다.”

“아, 그래요? 근데 왠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색상은 다릅니다. 보유하신 모델은 노란색입니다.”

“그럼 이것도 결정. 그리고 또 보자…….”

직원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것들, 혹시 지금 몰래카메라를 찍는 중인가? 본사에서 버라이어티쇼 협조라도 하는 중인가? 그래서 신입인 자신이 재수 없게 거기에 걸렸나?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사소한 감정 분출 하나가 책잡히는 요소가 된다.

‘매뉴얼대로, 어디까지나 매뉴얼대로…….’

그렇게만 하면 이게 버라이어티 쇼든, 몰래카메라든, 아니면 진짜 손님이든 간에 문제될 건 없을 것이다. 직원은 힘들게 구한 직장에서 짤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렇게 정했어요. 주문할게요.”

청년 손님이 고른 차종은 모두 6개였다. 가격만 도합 12억이 넘어선다. 둘의 대화를 보아하니 구매 리스트에 올리지 않은 다른 모델은 ‘이미 갖고 있어서’란다. 물론 직원은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다.

“여기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직원은 그래도 웃는 얼굴로 판매 계약서를 내밀었다. 유지웅은 신이 나서 서명을 하고는 바로 일어섰다. 다 끝났다는 듯이.

직원은 얼른 그를 불러 세웠다.

“저, 손님.”

“네? 무슨 문제 있나요?”

그대로 나가려던 걸 보니 역시 초짜 아니면 몰래카메라가 분명해. 직원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약금을 주셔야죠.”

“계약금 말입니까?”

오히려 나이 많은 동행이 놀라워하며 나섰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어처구니없어 하는 태도였다.

박 실장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계약금은 강제사항이 아니다. VIP의 서명은 그 자체로 높은 신용을 가진다. 원래 고급 매장이라면 VIP를 위해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거나 우대해주는 정책을 취하기 마련이다.

저번에 왔을 때도 대략 20대 넘게 구매했는데, 계약금 같은 건 달라 소리도 안 했다. 아니, 어느 차량 브랜드 센터에서도 계약금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

1억 중에 천만 원을 먼저 주고 구천만 원을 나중에 주나, 1억을 나중에 한꺼번에 주나 어차피 매한가지고, VIP는 두 번에 걸쳐 돈을 지불하는 번거로움을 면제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계약금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모시고 있는 회장님의 재정적 신용에 대한 의구심이고, 그것은 일종의 모욕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일이다. 최측근인 비서실장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 지점장 어디 있습니까? 제가 직접 이야기를…….”

“괜찮습니다, 박 실장님.”

오히려 유지웅이 분개한 부하 직원을 말리고 나섰다. 그는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냈다.

“얼마더라? 12억 4,350이었나요?”

“계약금은 1억 2천입니다.”

“그냥 이 자리에서 대금 다 지불할게요. 남는 건 아동복지재단 같은 데 기부나 해주시고 기부 영수증은 차량 인도할 때 같이 첨부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유지웅은 1억짜리 수표 열세 장을 꺼내놓았다. 직원은 순간 멍해졌다. 이 몰래카메라, 언제까지 이렇게 리얼하게 찍을 셈이지?

“네? 기부요?”

“거스름돈 챙기기 귀찮아서요. 그럼 가볼게요.”

유지웅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나섰다. 박 실장이 상관 몰래 뒤돌아서서 직원을 살짝 노려보았다.

직원은 괜히 불안해졌다. 수표를 뒤집어 봤지만 어디에도 소품이라는 문구가 안 보였다. 원래 상황극에 쓰이는 수표는 소품이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문구가 없는 걸 보면 진짜 발행수표라는 소리인데? 이거 설마 실제 상황?

그때였다. 고객을 접대하러 나갔던 지점장이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이봐, 방금 회장님 접대, 실수 없이 했겠지?”

“예? 회장님이라니요?”

“방금 나간 손님 말이야! 실수 없이 접대했겠지?”

“……아, 저 그게……. 차량 6대를 구입하시고 총 13억을 지불하고 나가셨습니다. 남는 차액은 아동복지재단 같은데 기부하라시면서…….”

“휴, 다행이군. 하필 오늘처럼 신입만 있는 날에 방문해주셔서 혹 결례라도 한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직원은 더욱 불안해졌다. 지점장의 어투를 보니 아무래도 아주 큰 고객 중의 한 명 같다.

“근데 누구인데 그러십니까?”

“전혀 몰랐나? 저 분이 바로 유지웅 회장님이라고.”

“네? 유지웅 회장……? 아, 설마 그?!”

“그래. 제니스 공격대장이시잖나. 바로 그 분이라고.”

직원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니, 그런 사람이 대체 왜 사람 헷갈리게 파란색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는 거야?

“옷 때문에 몰라본 모양인데 이해해. 그 옷이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트레이닝복이라고 하더라고. 겉보기에는 평범한 트레이닝복이지만 원단이나 장인 이름값부터가 장난이 아니야. 아마 5천만원쯤 할 걸?”

“그, 그딴 게 5천만원이나…….”

“아무튼 실수 없이 잘 접대했다니 다행이야. 한 번 오실 때마다 미보유중이신 모델은 전부 싹 쓸어 가시는 분이니 절대 실수 없도록 해.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직원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설마 이 일이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겠지? 제발 그러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  *  *

유지웅은 휘파람을 불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모처럼 나왔는데 포르쉐만으로 끝낼 수 있나? 다른 수퍼카 센터도 전부 다 돌아볼 참이었다.

박 실장은 회장님의 기분이 좋은 것을 보고 안심했다. 자신을 몰라본 신참 직원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건 아닌지 염려했는데, 마음에 전혀 담아두지 않은 듯 보였다.

“다음은 어디를 가실 건가요?”

“청담동으로 가죠. 거기 새 페라리 매장 열었던데.”

박 실장은 미리 전화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곳은 신규 매장이라 당연히 직원은 물론이고 지점장도 유지웅 얼굴은 모를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꺾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남기철이었다. 한창 바쁘실 WCO 초대 의장님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로? 호기심을 품고 전화를 받았다.

“아, 남 ‘의장님’. 무슨 일이시죠?”

「회장님.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결정체 보관소가 털렸습니다. 보관 중이던 결정체 물량 전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게 큰일이에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유지웅과 달리 박 실장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샌프란시스코 결정체 보관소는 미국 최대 결정체 보관 저장고이기 때문이다.

「예. 보통 큰일이 아니죠. 피해액이 약 20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 작품 후기 ============================

452편만에 남 국장님에서 남 의장님으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흐규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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