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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454화 (454/1,550)

00454  Unlimited Crystal Works  =========================================================================

“제군은 그저 목격한 바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하면 되네. 아무런 불이익도 없을 거라고 보장하지.”

레이크 일병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작업 도중 차고에 있던 신형 장갑차 3기가 열을 맞춰 나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자, 동시에 다시 부대로 귀환한 것까지 목격한 유일한 병사라는 이유로 이 자리에 불려오게 되었다.

불이익이 없을 거라고 보장한다지만 괜히 마음이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처지임에도 말이다. 군에서 감찰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저는 그 시각 배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로가 낡아서 교체 중이었죠. 그러던 중 MP-3 세 기가 이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어디 훈련을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냥 한 번 흘끗 보고 말았습니다. 배선 교체 작업 도중 전선이 떨어져서 창고에서 새로 가져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얼마나 걸렸나?”

“작업을 마치는 데까지 아마 세 시간쯤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외부로 나갔던 MP-3 세 기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보고서에는 운전수가 내린 걸 목격하지 못했다는 항목이 있는데. 이건 어찌 된 건가?”

“작업을 마치고 장비를 다시 창고에 갖다 놓으러 갔습니다. 창고가 차고 맞은편에 있어서 MP-3이 차고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잠시 창고 앞에서 담배를 물면서 휴식……을 조금 취했는데, 한참 동안이나 차고에서 누가 나오는 것을 못 봤습니다.”

말이 휴식이지 사실상 땡땡이다. 취조관 앞에서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니라서 조심스러웠으나,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무슨 불상사가 돌아올지 그게 더 무서웠다.

다행히 취조관은 땡땡이를 친 것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했나?”

“MP-3은 완전 무인 통제가 가능한 신형 장갑차라고 들었습니다. 조종사 없이 원격 통제 훈련을 나갔다가 돌아온 건가 싶어 그때는 크게 신경을 안 썼습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은 없었나?”

“……그러니까, 보통 원격 통제를 하더라도 차고에 다시 넣을 때에는 통제인원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때까지도 아무도 없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한 것 같습니다.”

“수고했네. 가 봐도 좋네.”

취조 대상은 레이크 일병만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목격한 바가 있는 인물은 한 명 남김없이 불려 와 집중 심문을 받았다.

한두 푼도 아니고 200억 달러에 달하는 결정체가 털린 사건이다. 범행 주체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수 없으며 유일한 단서는 범행에 사용한 완전 무인 장갑차.

그런데 그 장갑차가 결정체 저장고 보호 임무를 맡은 관할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며, 범행을 마친 뒤 당당하게 되돌아왔으니, 미군 입장에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범인을 찾아내야 해! 까딱하다가는 우리 부대 안에 절도범이 있다고 오해를 받을 판이야!”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일각에서는 관할 기지 내부에서 일부 반동분자들이 꾸민 범죄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미군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의혹이었다. 차라리 무기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묻는 게 낫지, 감히 조국의 재산을 강탈한 범죄자 소굴로 취급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MP-3 분해 작업은 어찌 돼가나?”

“그게, 완전히 깨끗합니다.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블랙박스까지?”

“그렇습니다. 전산 기록상 세 기의 MP-3는 그날 차고를 나간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범행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는 소모된 연료, 출입을 목격한 병사들, 그리고 바퀴에 묻어 있는 현장 지역 흙뿐입니다.”

모든 ‘아날로그’는 MP-3가 결정체 도난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허나 모든 ‘디지털’은 그런 적 없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시치미를 뗀다.

남아 있는 CCTV도, 전산기록도, 아무 것도 없다. 미합중국 내에서 이런 완벽한 해킹이 이처럼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게 과연 가능한지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다.

“필트오버 대령 심문은?”

“전혀 그런 명령을 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고 있습니다. 계좌 내역, 그 이후 행동 내역을 보면 정말 깨끗합니다. 체포 당시에도 동료들과 트럼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럼 검문소 통제병이 거짓말을 하는 거 아닌가?”

“통제병은 분명히 필트오버 대령의 목소리라고 했습니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사건 당일, MP-3가 부대를 나설 때 검문소 통제병이 내보내라는 필트오버 대령의 전화 지시를 받고 바리케이트를 치웠다. 바리케이트는 전산 통제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부대는 필트오버 대령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 그를 잡아들여 심문을 했다. 헌데 그는 철저히 부정하고 있었다. 그의 지난 군 경력도 깨끗했으며, 체포 당시 보였던 행동도 범행 가담자로 보기는 어려웠다.

철저히 파헤쳤지만 얻은 것은 혼란뿐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  *  *

「결정체 확보 성공. 제조 작업 필요 자원 충족.」

블리츠랭크는 객관적인 자신의 능력을 평가했다. 그 결과 무력을 동반하는 전투 적성은 거의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애초에 폐쇄 모듈 연구를 위한 보조작업 로봇으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본체다. 오천이 넘는 결정 에너지를 성공적으로 주입하고, RPX-1으로서의 자아와 데이터를 가져왔으나, 전투 능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연산 논리는 다른 어떤 기기보다 뛰어나지만(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전투 능력은 없다. 냉정히 말해서 전투의 도구가 되어줄 팔다리가 없이, 뛰어난 뇌만 존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블리츠랭크는 먼저 손발이 되어줄 전투 도구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정체가 필수였다. 거듭된 계산 끝에 블리츠랭크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강제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산 사고가 아닌, 이동과 전투 능력에 특화된 개체를 다수 확보할 필요가 있음. 본 개체에 일어난 변화와 동급의 수준으로 재현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 하지만 일부 유사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가능성 있음.」

블리츠랭크는 무차별 해킹을 통해 미군 장비를 직접 움직여 공격한다는 가능성도 검토했다. 그러나 극소수의 최첨단 무인 장비가 아닌 한, 대부분은 사람의 손으로 조종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는 효율이 너무 낮다. 또한 미국 전체를 해킹 가능한 존재가 있다는 의심만 줄 수 있다.

「최대한 본 개체의 존재를 은폐할 필요성 있음.」

무력을 투사하면서, 인간 누구도 이상하다는 의심을 품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블리츠랭크가 얻은 최종 결론은 바로 괴수를 내세운 습격이었다.

「결정 에너지를 주입한 소형 침투 로봇 제조. 침투 로봇을 이용한 다수의 괴수 확보 실시. 초기 가동 시험 준비 실시.」

어느 결정체 산업체의 무인 공장을 ‘임대한’ 블리츠랭크는 공장 설비를 이용해 바쁘게 움직였다. 거대 로봇 팔은 블리츠랭크의 손발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곳곳에서 스파크가 튀고, 불꽃이 오가며 설비 제조에 한창이었다.

블리츠랭크도 가만히 공장 자동 설비만 원격 통제하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 손이 필요한 아날로그 작업에는 자신이 직접 나섰다.

전투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 정도 일은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 본체 자체가 위험한 일을 사람 대신 투입해서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니까.

「프로토타입 완성.」

아마 사람이었다면 첫 모델을 완성했다는 감격에 잠시 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블리츠랭크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기계였다.

실험대 위에는 커다란 모기가 앉아 있었다. 모기처럼 보이나 실상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비행 장치였다.

「가동 실험 필요.」

사람 손바닥만 한 비행 장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아마 공학자들이 봤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경이로운 점은 결정 에너지와 메탈 기기의 완벽한 결합을 실현했다는 것. 아직까지 인류는 결정체를 연료나 부품 소재로서만 활용할 수 있었다. 결정 에너지 그 자체의 직접적인 통제는 실험실에서나 겨우 시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수준이었다. 이를테면 폐쇄 모듈 같은 것 말이다.

블리츠랭크는 무인 공장을 나섰다. 이미 중앙 시스템은 녀석의 손에 들어왔다. 관리자들이 방문한다 해도 평소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활용해야 했다.

「레드 타입 몬스터 탐색 개시. 탐색 중……. 탐색 완료. 적합한 실험 개체 확정.」

블리츠랭크는 가까운 지점에서 적당한 레드 몹을 찾았다. 레이드 데이터 센터를 뒤지니 금방이었다.

목적지는 약 5km 정도 떨어진 거대한 절벽이었다. 목표 개체는 절벽 아래에서 한가롭게 몸을 만 채 자고 있었다. 거대한 새의 형태를 한 맹금형 괴수다.

「헥스톨. 추정 결정도는 7,000. 레이드 기록은 단 1회. 프라임 공격대만이 사냥에 성공함. 희귀 개체.」

블랙 몹을 제외하고, 레드 몹 중에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녀석으로 알려진 놈이다. 일찍이 독일의 의뢰를 받아 프라임 공격대가 사냥한 녀석으로, 최초의 원정 레이드를 나섰던 녀석이기도 했다.

광범위한 지역을 얼려버리는 냉기 숨결을 사용하고, 치명상을 입어도 다시 한 번 되살아나는 능력 등, 공격 패턴이 매우 까다롭기에 어느 공격대도 감히 헥스톨을 건드릴 생각을 않는다. 파악된 개체수가 지구 전체를 통틀어 10마리도 안 된다는 희소성도 한 이유였다.

그러나 블리츠랭크에게는 그런 강력함이 오히려 필요했다.

「B-4 가동 개시.」

모기 형태를 한 비행 로봇이 날아올랐다. 날개를 빠르게 파닥이며 자고 있는 헥스톨의 머리에 착지했다. 깃털 위에 착지한 모기 로봇, B-4는 머리에서 주둥이처럼 생긴 관을 사출했다. 가느다란 관 끝이 날카롭게 빛났다.

관이 헥스톨의 피부에 부딪쳤다. 헥스톨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발갛게 빛나는 침입에 저항했다. 빨대처럼 생긴 관은 불에 달궈진 듯 새빨갛게 변하며 방어막의 맹렬한 저항을 분쇄했다.

파지직! 파지지직!

마침내 방어막을 뚫고 관이 안을 파고들었다. 관이 피부에 꽂히는 순간 헥스톨은 따끔한 느낌을 받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곧 관심을 끄고 다시 누웠다.

「군집 머신 주입.」

B-4 내부에 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조그만 소형 로봇들이 떼를 이어 헥스톨의 안으로 들어갔다. 적어도 수백만 개 이상은 들어갔으리라.

체내에 보관했던 소형 로봇, 군집 머신을 전부 주입한 B-4는 다시 날아올라서 블리츠랭크에게 돌아왔다.

「군집 머신 컨트롤 개시. 체내 스캔 중. 두뇌 위치 확정. 두뇌 침투 시도. 침투 중……. 침투 완료. 신체 통제권 확보.」

헥스톨은 번쩍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녀석은 절벽 위에 있는 블리츠랭크를 바라보았다. 헥스톨의 각막에 맺힌 블리츠랭크의 모습이, 군집 머신을 통한 동기화 작업을 거쳐 블리츠랭크 자신에게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블리츠랭크는 일어설 것을 명령했다. 두뇌를 빼앗긴 헥스톨은 블리츠랭크가 지시한 대로 일어서서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블리츠랭크는 날아오르게 시켰다. 헥스톨이 높이 날아오르며 허공에 멈춰 서자 거센 바람이 퍼지며 초목을 뒤흔들었다.

「가동 실험 성공. B-4 및 군집 머신의 성능 확인.」

모기처럼 생긴 B-4는 체내에 무수하게 작은 로봇을 가득 담고 있다. 이것을 괴수의 혈관에 주입해서, 뇌를 장악하고 신체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다. 뇌 통제권을 빼앗긴 괴수는 블리츠랭크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다. 바로 블리츠랭크가 괴수의 뇌를 대신해서 움직임을 지시하는 것이다.

B-4는 군집 머신을 소모해도 빠르게 다시 체내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B-4 자체도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 그야말로 제한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괴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전력 확보 작업 실시. 더 많은 레드 타입 몬스터가 필요함. 더 많은 B-4가 필요함.」

============================ 작품 후기 ============================

「간다, 양키왕. 저장된 무기는 충분한가?」

―그냥 GG를 치게 해달라, 잡종.

PS : 누적 조회수가 2천만을 돌파했습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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