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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519화 (519/1,550)

00519  오, 나의 주인님  =========================================================================

―치이익. 치익. 치이익…….

“뭐야? 이거 갑자기 왜 이래?”

“고장 났어?”

“지원팀! 지원팀! 응답하라! 응답하라!”

“틀렸어! 링크 완전히 끊겼어!”

갑작스러운 통신 두절에 공격대 본진은 크게 술렁였다. 통신 두절뿐만이 아니다. 구름이 낀 듯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시야가 차단되었다. 마치 불투명하고 거대한 막이 사방을 감싸 버린 것 같았다.

“저, 저건!”

“프레온 괴수다!”

눈이 좋은 탱커가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 발광충처럼 무수히 얽혀 스파크를 뿜어내는 막의 정체는 바로 프레온 괴수였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파장이 증거였다.

“갇혔어!”

“어떡하지?”

“공대장님! 어떡해요, 우리?”

다행히 외부 지원팀을 비롯한 모든 지원장비와 이어진 링크가 소실된 것뿐이었다. 막 안에서 공대원들끼리 통신하는 것은 지장이 없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고글에 장착된 감지 센서도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글로벌아이를 포함한 MD의 관측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본진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기껏해야 사전에 입력 된 지리 정보?

“공대장님!”

“어떡하죠, 우리?”

백전용사들도 처음 맞닥뜨리는 일에는 당황해서 적지 않은 동요를 드러냈다. 강한 괴수와 싸워본 경험은 풍부하지만 이처럼 고립으로 인한 링크 소실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유지웅도 마찬가지로 당황했다. 그는 지휘 경험이 거의 없었다. 전술은 언제나 장태준의 몫이었다. 실무에서 손을 뗀 지 오래, 아니 실무를 해본 경험 자체가 거의 전부하다고 할까.

하지만 지금 지시를 내릴 만한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그는 결단을 내렸다.

“일단 상황을 알 수 없으니 후퇴합시다. 우리만 이렇게 된 게 아니라 외부 지원팀도 위험에 빠진 걸 수 있으니…….”

두두두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층이 끊어지기라도 한듯 땅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지진이다! 무너진다!”

“서둘러 뛰어요! 탱커들은 힐러들 보호! 업고 뛰어요!”

딜러들은 급히 방향을 돌려 반대방향으로 달아났다. 탱커들도 서너 명씩 힐러를 들쳐 업고 내달렸다.

“괜찮을까요?”

“보호막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프레온 괴수로 구성된 빛의 막과 접촉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대원들은 보호막을 믿었다. 무엇보다 저 장막을 뚫고, 이곳을 빠져 나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판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으아아악! 무너진다!”

격렬하게 요동치던 땅이 마침내 쑥 하고 밑으로 꺼졌다. 땅 표면이 산산이 부서지며 붕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밟고 선 거대한 대지 자체가 밑으로 쑥 내려앉은 것이다.

“다들 엎드려요! 서로 지탱해! 중심을 잃지 마요!”

유지웅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정효주도 그를 꽉 붙잡은 채 몸을 숙였다.

드드드드드!

줄이 끊어진 엘리베이터처럼, 공격대가 밟고 선 땅이 끝없이 밑으로 추락했다. 암석과 암석이 부딪치며 불꽃과 먼지가 날리고, 거친 마찰이 날카로운 굉음을 일으켰다.

쿠우우웅!

마침내 추락이 멎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었다.

쥐죽은 듯한 고요함이 흘렀다.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있던 대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자 뻥 뚫린 구멍이 보였다. 적어도 200미터는 추락한 듯 보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이 밟고 선 땅은 면적이 적어도 반경 1.5km는 되었으니.

“무슨 싱크홀도 아니고…….”

이만한 크기의 땅이 뚝 잘라져 밑으로 추락하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대원들은 기가 질렸다.

“다들 통신 상태는 어떻죠? 지원팀과 링크 회복된 대원 혹시 있나요?”

유지웅이 물었지만, 누구도 긍정적인 대답은 없었다. 그는 갑갑해져서 고글을 벗고 둘러보았다. 다행히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보호막이 제 역할을 해준 것이다.

“어? 한 사람이 없는데요?”

“한 사람? 누가요? 병렬 링크 확인해 봐요!”

“나미 대원이 없어요! 안 보여요!”

고글은 관측 및 정보, 통신 이외에도 여러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대원들 간에 상호 위치 및 안전 확인 기능도 그 중에 하나였다.

총 240명이어야 할 대원 반응 표시가 239개로만 표시 되어 있었다. 나미가 장착한 고글이 부서졌거나, 아니면 그녀가 인근에 없다는 뜻이다.

“각 예비대장들은 어서 인원 점검을! 고글에 의지하지 말고 육안으로 해요!”

나미처럼 눈에 띄는 미인을 그리 쉽게 못 찾을 리가 없다. 예비대장들은 직접 육안으로 인원 점검을 했다. 집계된 수는 딱 239명이었다. 위치 정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설마…….”

“분명 전원에게 보호막을 걸었어요. 잘못 됐을 리가 없어요.”

땅덩어리가 추락하긴 했으나, 비교적 느린 속도였고 또 그 밖의 다른 위험은 없었다. 더군다나 나미는 탱커도, 힐러도 아니다. 본진 외곽에 위치할 수 없는 포지션인데, 추락 과정에서 무슨 일을 당했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추락 충격 때문에 멀리 튕겨져 나갔을지도 몰라요. 다들 흩어져서 수색합시다. 예비대장들은 10인 공격대를 편성한다 생각하고 균형을 맞춰 분산해주세요.”

위험지역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수색 중에 습격을 받아도 재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격대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제1예비대 힐러장인 박현정이 물었다.

“공대장님은요?”

“저는 효주와 둘이서 개별 수색할게요. 저희 둘은 힐러가 필요 없으니까요.”

“알겠어요.”

유지웅과 정효주를 제외하고, 평균 10명 기준으로 239명이 제각기 쪼개졌다. 직경이 1.5km 가까이 되는 커다란 땅덩어리다 보니 수색할 면적이 무척 넓었다. 모래들판만 있으면 수색이 편하겠으나 절반 이상은 커다란 암석 절벽으로 이뤄져 있었다. 낙하 충격으로 암벽이 무너진 곳도 많았다.

흩어진 대원들이 나미를 찾기 위해 한창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아앗!」

갑자기 고글을 통해 비명이 들렸다. 정효주와 수색 중이던 유지웅도 흠칫 했다.

“무슨 일이죠?”

「여기는 제3-1팀입니다! 공대장님, 괴수, 아니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괴수? 이상한 거?”

괴수면 괴수인 거지, 급히 이상한 거라고 덧붙인 것은 대체 무슨 이유일까? 유지웅은 급히 제3-1팀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약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탱커에게는 별 거 아닌 거리지만 체력만큼은 일반인인 그는 300미터 전력 질주를 하니 숨이 턱에 찼다.

「공대장님, 저희도 합류할까요?」

“아닙니다! 나머지 팀은 잠시 그 자리에 대기해주세요!”

유지웅은 그렇게 지시를 하고, 제3-1팀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짙은 묵빛 암석이 낙하 충격으로 무너져, 마치 거대한 돌널무덤 같은 광경이 펼쳐진 곳이었다.

돌 주변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존재를 확인한 유지웅은 왜 그런 식으로 보고를 했는지 깨달았다.

“괴수? 아니, 이건…….”

지금까지 네 마리의 메탈 괴수를 상대했다. 그러나 메탈 괴수는 언뜻 봐서는 바이오 괴수와 구별이 가지 않는다. 괴수의 외부 장갑을 형성한 프레온층은 위장 역할도 겸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바이오 괴수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외부 장갑이 손상되면 내부 상처에서 금속 구성 표면이 나타난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달랐다.

“이건…… 로봇?”

거대한 새를 닮은 금속 로봇이었다. 부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바이오 괴수의 깃털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황금빛이 감도는 검은 금속 표면은 한 치의 이음새도 없이 매끄럽게 이어져 있어, 과연 움직이는 게 가능한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이건 괴수라기보다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로봇 같지 않은가? 유지웅은 속에서 식은땀이 났다. 혹시 이게 바로 규소기반 생명체의 궁극적인 모습인가?

조류형 괴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정지’ 상태라고 보는 게 어울릴 듯했다. 몸집은 웬만한 10층 빌딩과 맞먹을 것 같았다. 날개를 펼치면 엄청난 위압감이리라.

끼이, 끼기기긱…….

금속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다. 유지웅은 흠칫 놀라 물러났다. 반사적으로 정효주와 자신에게 건 보호막을 강화했다.

눈을 뜬 괴수가 고개를 들었다. 붉은 빛을 강렬하게 내뿜는 눈동자가 둘을 응시했다. 저것은 생물의 눈이라기보다 헤드라이트 빛과 더욱 흡사했다.

유지웅은 이를 갈며 외쳤다.

“젠장! 모두 모여요!”

*  *  *

‘……뭔가 있어.’

나미는 작전 지역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렴풋한 이상함을 느꼈다.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에너지원이 감지되고 있었다.

‘어디지?’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미지의 감각이 그녀에게 위험하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제니스가 자랑하는 첨단 관측 장비도 이 힘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두두두두!

“으악! 무너진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빛의 막이 주변을 덮었을 때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 예상했던 위험이 닥쳤구나, 생각했다. 지각이 흔들리는 순간 그녀는 위험을 예감하고, 조용히 고글 장비를 완전히 off했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빠르게 이탈했다.

‘최윤 박사를 보호해 줘.’

나미에게는 레지나의 부탁이 우선이었다. 그녀가 제니스에 몸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레드 결정체의 구조를 밝혀내어, 궁극적으로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윤을 보호해야 했다.

‘위험해.’

흔들리는 땅 중심부에 위험한 뭔가가 있다.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그것이 일어나 활개를 펴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나미는 이곳보다 바깥이 더 위험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기 안쪽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보다 더 큰 위험이 바깥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는 전속력으로 질주해서 빛의 막을 통과했다. 그녀가 침투하자 빛의 막은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공격해왔다. 프레온 괴수층이 사방에서 압박하자 온몸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 그녀는 별 이상 없이 빛의 막을 통과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몸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흠칫 했다.

“녹았어?”

착용하고 있던 모든 게 녹아버렸다. 고글 장비도,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전투복도, 그리고 S급 방어장비까지.

다른 건 몰라도 S급 장비가 레이드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헌데 그것이 물 녹듯이 녹아버렸다. 그녀는 지금 완전히 알몸이었다.

“……이래선 곤란한데.”

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기는 다소 곤란하다. 어떡할까 망설이던 그녀는 찌르르 울리는 느낌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 뭔가가 느껴졌다.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전술 지휘 차량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최윤! 최윤을 노리고 있어!’

============================ 작품 후기 ============================

아임 유어 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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