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557화 (557/1,550)

00557  대격변?  =========================================================================

가렌은 펜실베니아 주의 한 교외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영재로 소문난 그는 과학을 좋아했다. 과학 실습 시간이 제일 재밌고 즐거웠다. 용돈을 모아 화학 용품을 사다가 혼자서 혼합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큰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다.

월반을 거듭한 그는 14세에 매사추세츠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특이하게도 핵물리학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 TV에서 본, 수소 폭탄이 폭발하는 장면의 웅장함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던 경험 때문이었다.

왜 특이하냐고? 이 당시 핵물리학은 비인기 분야였기 때문이다.

우라늄은 가장 인기가 없는 광석이었다. 이미 인류는 결정체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었고, 핵에너지는 위험하고 환경오염이 심했다. 핵에너지의 가치는 전략 무기뿐인데 괴수 때문에 국가 간의 전쟁도 사라졌다. 심지어 수소폭탄의 기폭제마저 결정체로 대체하고 있었다.

가렌은 그냥 원자 입자들의 분열 반응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아무리 영재라 해도 어린 아이가 대체 뭘 알겠는가. 장래 따위보다는 당장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저 없이 핵물리학을 선택한 것이다.

“교수님. 이번 프로젝트는 안 되겠는데요.”

“또 왜?”

“마이크와 잭이 랩을 나갈 거 같아요. 다른 랩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나 봐요.”

“뭐야! 누구야! 그 놈이!”

“……결정체학과 휘버 박사님이요.”

“또 휘버 그 놈이냐!”

당시 연구실에서 자주 들리던 대화였다. 실험과 관찰에 심취해 있던 어린 가렌은 그게 무슨 대화인지 잘 몰랐다. 그런 건 크게 관심도 없었다.

아주 조금 이상하긴 했다. 우리 연구실은 왜 이렇게 형, 누나들이 없지? 하고 말이다. 다른 연구실을 가면 박사, 석사 과정을 밟는 연구생들이 득실득실한데.

“가렌 군, 결정체학으로 옮길 생각은 없나?”

“저는 지금 배우는 게 너무 좋아요. 학장 교수님.”

“어흠! 하지만 자네 같은 인재를 그런 비인기 학문에서 썩히는 것도 국가적인, 아니 세계적인 낭비일세.”

“그래도 핵물리학이 재미있는 걸요.”

“혹시 지도교수와 의리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내가 잘 말해주겠네.”

“네? 니트로 박사님이 왜요?”

쾅!

문이 벌컥 열렸다. 하얀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머리가 벗겨진 키 작은 노인이 씩씩대며 들어섰다. 그는 기세 좋게 다가와서 학장의 멱살을 잡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제이크! 내 제자한테 손대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연구생들을 빼 가놓고도 모자라 이제는 가렌마저 가져갈 셈이냐!”

“워, 워. 진정하게, 니트로 교수.”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나! 예산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애제자까지 빼가려고 하는데! 다른 놈들은 다 돼도 가렌만큼은 절대 안 돼!”

이번만큼은 학장 교수도 지지 않았다.

“니트로, 자네가 핵물리학에 바치는 애정은 알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정체돼 있을 텐가? 우리야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지만 앞날이 창창한 가렌 군 같은 학생은 어쩌고?”

“핵물리학이 뭐가 어때서!”

“이제 그만 자네도 인정하게. 올해부터는 더 이상 정부 지원금도 안 나올 모양일세. 그만 놓아 줘.”

“흥! 난 그 자식들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아!”

“그만 내려놓게.”

“예산 부족 따위는 날 괴롭히지 못해!”

니트로 교수는 씩씩대며 가렌의 손을 잡고 거칠게 학장실을 빠져 나왔다. 어린 가렌은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머쓱해하며 헛기침을 했다.

“연구실로 가자.”

“교수님. 우리 랩, 예산이 줄어요?”

“누가 그런 소리를!”

“방금 학장 교수님이 그러셨잖아요.”

“그럴 일 없다!”

니트로 교수는 단호하게, 아주 단호하게 자신감을 표했다.

“얼마 안 되는 정부 지원금 따위, 없어도 그만이다! 연구비 대줄 기업은 널리고 널렸어! 이래 보여도 내가 후원자가 얼마나 많은데!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하면 돼!”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니트로 교수의 연구실에는 그와 가렌만 남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교수님. 저는 결정체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한 달 사이에 몇 년은 늙은 듯이 지친 모습으로 니트로 교수는 연구생들을 떠나보냈다. 어린 가렌은 구석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휘버 교수가 누구지?’

유명하다는 건 안다.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연구 기업 멕아른 연구소를 차리고 막대한 부를 거머쥔 인물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결정체학자이기도 했다. 과학 논문에서도 매번 그의 이름이 빼놓지 않고 거론되곤 했다.

어린 가렌은 핵물리 분야 외에는 일절 흥미가 없었기에 그런 대단한 인물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대단해?’

궁금증이 생긴 가렌은 휘버가 이끄는 대학 결정체 연구실을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기절할 듯이 놀랐다.

“우와!”

좁은 핵물리학 연구실만 알고 있던 가렌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게 전부 연구실이야?”

휘버의 결정체학 연구실은 아예 독립된 건물을 하나 새로 올려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건물이 대학 본관보다 더욱 규모가 컸다. 들어보니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가장 큰 건물이란다.

호기심에 들어가 본 건물 내부는 엄청난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곳곳에서 흰 가운을 입은 대학원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토의하고 있었다. 날밤을 샜는지 퀭한 눈으로 서류 뭉치를 껴안고 가는 남자들의 모습도 흔히 보였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지 끙끙대며 머리를 쥐어박는 젊은 여대생도 보였다.

그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눈빛이 하나같이 살아있고 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와, 이 기계 교수님도 들여오고 싶어 했는데!”

유리문 너머로 거대한 광자 판독기를 발견한 가렌은 창문에 달라붙으며 환호했다. 때마침 연구실 안에 들어서던 30대 초반의 남자가 그를 발견했다.

“여기서부터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란다. 찾는 사람이 있니?”

“저기, 저 광자 판독기요! 저건 얼마나 해요?”

“저거? 한 5억 달러쯤 할 걸?”

“5, 5억 달러요?”

가렌은 숨이 멎을 듯이 놀랐다. 그가 상상했던 액수보다 동그라미가 두 개, 아니 세 개쯤은 더 붙어 있었던 것이다.

「광자 판독기? 그까짓 거 필요도 없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광자 움직임 따위야 다 그려낼 수 있어!」

그제야 가렌은 왜 니트로 교수가 그렇게 가슴을 팡팡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눈빛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대번에 풀이 죽었다.

“우리 부서는 돈이 없어서 저런 거 못 사는구나…….”

“왜, 저게 갖고 싶니?”

“네! 갖고 싶어요!”

“그럼 나랑 내기 하나 할래? 네가 이기면 저걸 네게 주지.”

“정말요?”

순진한 가렌은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광자 판독기를 준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뻐했다. 남자와 동행했던 다른 인물들이 조심스럽게 말렸다.

“교수님. 어서 들어가셔야…….”

“잠시 기다려 보게.”

남자는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더니 가렌에게 내밀었다. 간단한 물리 공식이었다.

“자, 이걸 일주일 안에 풀어오면…….”

“다 풀었어요!”

가렌은 그 자리에서 풀이를 슥슥 적어서 두 손으로 얼른 내밀었다. 남자는 한 방 먹었다는 얼굴이 되었다. 동행한 인물들은 뒤에서 문제를 훔쳐보더니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남자는 헛기침을 하고는 풀이를 확인했다.

“대단한데. 정답이야.”

“그럼 저 기계 저 주시는 거죠!”

“약속은 지킨다.”

“휘버 교수님, 저거 사흘 전에 막 들여온 건데…….”

“괜찮네. 내기는 내기니까.”

‘휘버?’

그제야 가렌은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 걸 알아차렸다. 휘버라고? 이 사람이?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인?

눈이 마주친 휘버는 픽 웃으며 말했다.

“천재란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만, 역시 대단한데? 장하구나.”

“가, 감사합니다…….”

막상 그가 휘버라는 걸 알게 되자 가슴이 막 떨렸다. 가렌은 창피한 마음에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가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를 본 니트로 교수가 불같이 화를 냈다. 연구실에는 대학 직원들이 낑낑거리며 광자 판독기를 설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렌은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휘버 교수랑 내기를 했는데 제가 이겼어요! 그래서 이걸 받아왔어요! 저 잘했죠!”

“그래? 내기를 이겼어?”

“네! 간단한 입자 간섭 반응을 푸는 문제였어요! 10초도 안 걸리는 문제였다고요!”

“장하다! 역시 내 제자답구만! 으하하! 휘버 그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에 훤해! 쌤통이다!”

경사가 이어졌다. 열 명의 대학생들이 니트로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린 것이다. 모두가 핵물리학에 지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인재들이었다. 대부분 가렌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니트로 교수는 사비를 털어서 고기 파티를 벌였다.

며칠 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러려고 광자 판독기를 준 거냐! 저 어린 것의 환심을 사려고!”

“니트로 교수님. 가렌은 재능이 있어요.”

“핵물리학 따위에 썩히기에는 아깝다는 헛소리나 할 거면 저리 꺼져!”

60대인 니트로 교수와 30대 초반인 휘버는 나이 차이가 한참이나 났다. 하지만 사회적인 지위, 부, 대학에서의 영향력 등 학자로서의 위업은 휘버가 압도적이었다.

니트로 교수는 분통을 터트렸다.

“네놈 때문에 우리 핵물리학자들이 설 곳을 잃었단 말이다!”

사실이었다. 결정 에너지가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핵에너지는 상업적인 가치를 상실했다. 자연과학 중에서 가장 돈 안 되고, 앞으로도 돈이 안 될 학문이었던 것이다. 평생을 걸쳐 쌓아온 모든 것을 휘버 때문에 잃은 터라 평소 니트로 교수는 휘버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다. 좋다면 그건 호구이리라.

“가렌! 절대로 저 놈 꼬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 너는 내 마지막 희망이다!”

“네! 교수님! 저는 이 공부가 좋아요! 광자 판독기 하나 줬다고 안 넘어가요! 염려 마세요!”

“암! 그래야 내 제자답지! 그래도 내기 이긴 건 잘했다!”

늘 부족한 예산에 쪼들리고, 학교에서도 큰소리 한 번 못 내는 처지지만 그래도 가렌은 즐거웠다. 연구실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고, 새로 들어온 학생들은 다들 열의가 넘쳤다. 모처럼 니트로 교수도 웃음을 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렌. 나랑 같이 갈 데가 있다.”

“네? 어디를요?”

“가면 알아.”

니트로 교수가 데려간 곳은 세계 최대의 결정체 공정시설이 있는 제조 공장이었다. 멕아른 연구소의 부속시설이라고 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단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렌은 시설들을 둘러보며 입을 쩍 벌렸다.

“저게 바로 결정체 용해로란다. 저 안에서 결정체를 녹여서 분리하는 거지.”

“엄청 커요.”

이른바 용광로 역할을 하는 기기가 무슨 거대한 로켓만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웅장한 시설들의 광경에 가렌은 놀라움의 연속을 맛봐야 했다.

“가렌아.”

“예, 교수님.”

“내 꿈이 뭔지 기억하느냐?”

“그럼요! 핵물리학으로 결정체의 구조를 재해석하시는 거잖아요!”

“알아주니 고맙구나. 다른 놈들 다 필요 없다. 너 하나만 그걸 알아주면 됐다.”

지금은 등을 돌린 후원자들도, 예산 1달러도 주기 싫어 아깝다고 혀를 차는 대학측도, 모두 니트로 교수를 옛 향수에 젖어 발버둥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안다. 하지만 니트로 교수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핵물리학과 결정체학의 완벽한 통일! 즉 핵물리학을 접목시켜 결정체의 활용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는 것이다. 휘버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가렌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 은사께서는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는 문명은 다툼을 부른다고 늘 말씀하셨지. 그래서 핵물리학에 투신하셨단다.”

“아, 프랭클린 교수님이요?”

“지금은 결정 에너지 덕분에 에너지 부족 문제는 많이 해소됐지. 하지만 나는…….”

니트로 교수는 말을 흐렸다. 가렌은 그의 심정에 공감했다.

‘두 학문은 충분히 융합될 수 있는데.’

핵물리학은 결정체 이용을 보다 더 개량할 수 있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최소한 에너지 단가는 낮출 수 있다.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니트로 교수가 부족한 예산에 허덕이면서도 꿈을 놓지 않는 이유다.

“어딜 가든 잊지 말아라. 네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은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게다.”

“교수님?”

며칠 후였다. 연구실에 가니 책상이 치워져 있었다. 연구생들도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가렌은 놀라서 물었다.

“제 책상 어디 갔어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니트로 교수가 들어오더니 헛기침을 했다.

“오늘부터 여기 나올 필요 없다.”

“교수님?”

“휘버 교수가 널 달라고 하더구나. 오늘부터는 그곳으로 출근하면 된다.”

“교수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왜 이러세요?”

“그런 거 아니다. 내가 틀렸어. 네 뛰어난 재능을 내 고집 때문에 썩힐 순 없지. 그래서 양보하기로 했다.”

“교수님! 교수님!”

니트로 교수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등을 돌려 나가버렸다. 가렌은 차마 쫓아가지 못하고 멍하니 보다가 주저앉았다. 믿어지지 않았다.

멍한 마음으로 결국 결정체학 연구실로 출근했다. 휘버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반갑게 그를 맞아 주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전공 분야를 바꾸게 되었다.

그는 결정체학에 쉽게 적응했다. 핵물리학의 복잡오묘함에 비하면 결정체학 자체는 대단히 간단한 학문이었다. 대단한 것은 결정체, 혹은 결정 에너지 그 자체이지 아직 학문 수준은 갓난아기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대학 캠퍼스에서 니트로 교수를 멀리서 마주치기도 했다. 니트로 교수는 연구실 제자들을 이끌고 다녔다. 가렌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열 명이었던 제자들은 어느덧 서른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 화기애애한 모습에 눈물이 날 만큼 서러웠다. 왜 교수님은 자신을 여기로 보냈을까? 학장과 그렇게 싸우면서도 자신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던가?

같이 식사를 하던 선배가 말했다.

“니트로 교수님한테 많이 서운하지?”

“……네.”

“이해해. 교수님도 네 장래를 생각하셔서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리신 거야.”

“하,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해요!”

선배는 헛기침을 하더니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원래 니트로 교수님 연구실은 올해를 끝으로 폐쇄될 예정이었어.”

“예? 정말요?”

“응. 연구비가 완전히 끊겼거든. 그래서 교수님은 눈물을 머금고 널 보내신 거야. 네가 거기에 계속 있어봤자 네 장래만 막히는 셈이니까.”

“하, 하지만!”

가렌은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어렵다면 더욱 더 자신이 옆에서 도와야 했었는데.

“교수님이 널 피하시는 것도 이해해드려. 널 보기가 죄스러우신 거야. 돈에 제자를 팔았다고 자책하시거든.”

“돈에…… 제자를 팔아요?”

“휘버 교수님이 널 주면 충분한 연구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하셨거든. 연구실이 폐쇄되면 너도 문제지만, 새로 들어온 연구생들은 또 어쩌고? 교수님도 자기 살점 잘라내는 심정으로 널 놓아주신 거야.”

가렌은 얼굴을 번쩍 들었다. 조금 전까지 침울해하던 것도 잊은 채 표정이 밝아져서 좋아했다.

“아! 그래서 연구생들이 늘었구나! 와, 다행이다!”

“어. 그, 그래.”

180도 달라진 모습에 선배가 오히려 떨떠름했다.

*  *  *

“교수님!”

서른 명의 제자들과 활발하게 토의를 하고 있던 니트로 교수는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가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렌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물었다.

“저 다 들었어요! 휘버 교수님한테 연구비 지원 받으셨다면서요!”

“어……. 아, 알았냐?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연구실 문 닫으면 네 장래도 막히지, 여기 애들 장래도 책임져야 하지, 이래저래 어쩔 수 없이…… 다 그놈의 예산 때문에.”

“저 얼마에 파셨어요?”

니트로 교수는 면목이 없는지 내내 시선을 피하면서 한 손을 쫙 펴보였다. 손가락 다섯 개다.

“50만 달러요?”

“설마! 내가 그렇게 싼값에 널 팔았겠냐!”

“그럼 500만 달러요?”

“……세 개만 더 붙이거라.”

그럼 50억 달러? 가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니트로 교수의 손을 흔들고 좋아했다.

“와, 잘 하셨어요! 많이 뜯어내셨네요!”

“그, 그러냐?”

“네! 그 정도면 10년은 끄떡없겠어요!”

“10년이 뭐냐. 30, 아니 50년은 더 버틸 수 있다! 암, 아무 문제없지!”

제자가 화를 내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던 니트로 교수는 그제야 안심이 되어서 같이 기뻐했다.

“와, 그러고 보니 기계도 많이 늘었어요!”

“기계만 늘었냐. 사람도 늘었다.”

“정말 잘 됐어요!”

두 교수와 제자는 얼싸안고 기뻐했다. 오랜만에 밤새도록 고기 파티를 벌였다. 예전 회식 자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풍족해진 메뉴에 가렌은 또 한 번 기뻐했다.

============================ 작품 후기 ============================

니트로 교수는 휘버에게 '은사'를 뺏겼구요.

예산을 뺏겼구요.

밥그릇도 뺏겼어요.

하지만 제자 이적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켜 기사회생했답니다.

역시 유소년 육성은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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