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61 나는 핵물리학자다 =========================================================================
과거 일본은 몇 차례에 걸친 블랙 몹의 난동, 그로 인한 내전과 부유층 및 레이더층의 해외 이탈로 국가 체제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부활했다. 온갖 특혜를 보장하고 유치한 해외 용병 공격대로 안전을 도모하고, 경제를 재건했다.
이제 간신히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복구하는데는 성공했다. 그 대가는 컸다. 일본의 경제는 한국, 아니 제니스에 사실상 종속되어 있는 처지였다. 그래도 대체로 나라 분위기는 이 정도면 살만해졌다고 자축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번 3차 결정체 배분안은 어떻게 됐지? 뭔가 좀 나온 게 없나?”
“죄송합니다, 총리 각하.”
“설마 이번에도?”
“미국과 러시아, 서유럽의 로비가 너무 심각합니다.”
옐로 몹이 대폭 줄어들면서 일본 또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린 결정체 때문에 에너지 부족에 신음하지 않는 국가가 한국 말고 어디 있겠느냐만은, 일본은 특히 더했다.
일본에 있는 공격대는 대다수가 해외에서 싼 세금 때문에 온 자들이다. 이들은 획득한 결정체를 일본에 진출해 있는 IACP 코리아에 판다. IACP 코리아는 그것을 정제해서 일본이 필요로 하는 물량을 팔고, 나머지는 해외에 수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이 IACP 코리아에 로비를 시도했다. 자국 용병 공격대가 판매한 분량은 자국에 팔아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국적 공격대가 일본에서 획득한 결정체를 정제한 것은 영국에 팔아달라는, 뭐 그런 요구다.
명분이 타당하기도 했고 또 웃돈도 얹어주는 터라 IACP 코리아는 각 국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여기에는 정효주 부친의 결정이 한몫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렇게 되자 애가 탄 것은 일본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자국 공격대가 획득한 결정체로는 내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타국 용병 공격대가 자국에서 획득한 결정체를 강제로 팔라고 나댈 힘도 없었다.
일본은 결국 에너지 절감을 위해 일반 가정 송전을 전면 금지하고 말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제비 눈물만큼 비축해두었던 결정체 연료를 꺼내서 써야 했다. 공공시설과 교통편에는 에너지를 공급해야 했으니.
일본은 모든 외교력을 총동원해서 WCO와 한국 정부에 다양한 로비를 펼쳤다. 제니스 공격대가 생산한 블루 결정체로 만든 연료는 WCO가 국제 배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 배분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많이 할당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국제 관계는 비정한 법. 아직도 개발도상국 경제 수준 밖에 못 되는 일본이 미국, 러시아 등 온갖 강대국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정체 값은 현재 세 배 이상으로 뛰어서 내려올 조짐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조만간에 열 배 까지도 폭증할 기세였다. 돈이 있어도 못 사는데 돈이 없는 나라, 그러니까 일본 같은 곳이야 오죽하겠는가.
하다못해 흑석동 저택을 찾아갔지만 일본 대사의 이름 빨로는 스케줄을 잡는 게 불가능했다. 몇 날 며칠 정문 근처에서 진을 치고 기다려도 마찬가지였다. 유지웅 비서진으로부터 돌아가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이 와중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으악! 너무 강력해!”
도쿄 북서부 지역에 출현한 괴수에 일본 전역은 커다란 비상이 걸렸다. 인가가 파괴되고 수많은 주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일본 정부는 용병 공격대에 급히 지원 요청을 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방어장비도 없이 레드 몹을 잡으라고? 여기는 우리 조국도 아닌데?”
“우린 돈 벌려고 온 거지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 온 게 아니야.”
그 말대로다. 만약 이들이 일본 국민이었으면 법으로 강제해서 나라를 지키도록 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자국민 레이더에 그런 국방 의무를 부여한다. 물론 그 만큼 혜택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일본에 돈을 벌기 위해 온 용병일 뿐이었다. 일본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할 이유도, 싸워야 할 의무도 없었다.
“도쿄에서 최대한 멀어져!”
“서둘러! 중요한 것만 챙겨서 튀어!”
오히려 도쿄 인근에 있던 용병 레이더들은 새로 출현한 괴수를 피해 거리를 두고 남하했다. 굳이 일본을 떠날 필요는 없다. 사태가 해결되면 다시 일본에서 풍부한 세제 혜택을 누리며 돈을 벌면 그만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일본은 결국 얼마 안 되는 자국 레이더들을 박박 긁어모아 투입시켰다. 정부의 끗발이 워낙 안 먹히는 추세라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해야 했다.
일본은 그렇게 힘들게 박박 모은 5개 공격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건 레드 몹 수준이 아니야!”
다리를 잃은 딜러가 고통에 시달리며 그렇게 울부짖었다. MD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일본은 처치하지 못한 괴수의 결정도를 탐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5개 공격대를 전멸하다시피 잃은 일본 정부는 뒤늦게 해외에서 날아온 공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해당 괴수는 결정도 11만 5,000 이상으로 추정됨…….」
“11만? 그럼 블랙 몹?”
일본 총리는 공문을 받아들고 까무러쳤다고 한다.
* * *
오랜만에 출현한 블랙 몹의 등장에 세계는 난리가 났다. 각국은 과거 블랙 몹 때문에 일본이 그로기 상태로 몰렸던 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참 안 됐다.’
오죽하면 유럽 쪽에서는 그런 동정론까지 나왔다. 블랙 몹 때문에 한 번 망했다가, 이제 겨우 국가가 안정기에 접어들려고 하는데 또 다시 블랙 몹이 습격을 했으니.
러시아와 미국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와 일본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블랙 몹이 언제든지 바다를 건너서 자국을 침공할 수도 있었다.
넓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은 러시아보다는 한시름 놓았다. 미국은 블랙 몹이 자국에 끼칠 위험 가능성보다는, 이 사태가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사태를 분석했다.
“제니스가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가 순순히 나서려고 할까?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보면…….”
“제니스 공격대장은 사소한 일에는 잘 나서지 않지만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은 과감하게 책임지곤 했습니다. 괴수 블랭 사태를 보십시오.”
“일본 정부가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되겠나?”
“받아내야 할 것은 사후에라도 어떻게든 받아낼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대가 지급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아마 적절한 수준에서 대가 지불이 이뤄질 겁니다.”
그렇게 전문가들은 제니스가 나서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비시는 다시 물었다.
“그럼 레이드 성공확률은? 아니, 예상 피해 규모는?”
“거의 피해 없이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일본에 다소 인적, 물적 피해를 입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건 한국이나 국제 정세상 염두에 둘 정도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번 괴수는 비행형 블랙 몹입니다. 과거 히카리 때도 그랬지만 비행형 블랙 몹은 대단히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제니스 공격대는 기동력에서 블랙 몹을 따라잡지 못할 겁니다.”
“브라우니가 있지 않나?”
“브라우니에 제니스 공격대 전원을 다 태울 순 없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고 한국에서 출발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일본 주요 지역에 쑥대밭이 된 이후일 겁니다. 제니스 공격대가 따라잡기 전에 블랙 몹이 러시아나 호주, 동남아시아로 이동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그린 결정체 양이 상당합니다. 만약 IACP 코리아 정제시설이 파괴되면 수급 물량에도 차질이 생깁니다. 우리 미국으로서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일본에는 미국 국적의 용병 공격대도 상당수 있었다. 높은 미국의 세금을 피해 결정체 사냥을 떠난 이들이다. 미국 또한 그들을 독려했다. 어쨌든 외화를 벌어오는 자들이니까.
문제는 안 그래도 결정체가 부족해서 죽겠는데, 일본이 쑥대밭이 되면 제비 눈물만큼이라도 들여오던 결정체가 뚝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 경제가 더욱 얼어붙게 된다.
백악관 수뇌부는 전문가들이 내놓는 다양한 분석과 결과 예측, 대응 방법 등을 놓고 심도 있게 고뇌했다. 여러 전문가들의 말을 주의 깊게 귀담아 듣던 비시는 문득 칠드그린 부통령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통령은 별다른 의견이 없소? 아까부터 혼자 뭔가를 생각하는 거 같은데.”
“아! 각하. 죄송합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소?”
“브라우니 결정도가 13만 5,000이 되는 것으로 압니다. 브라우니 또한 블랙 몹입니다. 굳이 제니스 공격대가 나설 필요 없이 브라우니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순간 열을 내며 토론하던 전문가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지금까지 가장 간단한 사실 하나를 잊은 채 토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시도 그제야 기억을 해냈는지 탄성을 냈다.
“아! 그렇군. 브라우니가 그러고 보니 블랙 몹이었지.”
“다만 새로 등장한 블랙 몹의 결정도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가 없어, 두 마리 블랙 몹이 싸우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나 될지 그게 염려스럽습니다.”
* * *
「정확한 결정도 수치는 12만 5,000입니다.」
“브라우니보다는 조금 약하군요. 알겠어요.”
「다만 MD시스템에 기록된 데이터를 볼 때 비행 속도는 브라우니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동력에서는 녀석이 확실하게 앞서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효웅산업에서 내놓은 차세대 괴수 추적 장치는 매우 탁월한 성능을 가졌다. 구세대 추적 장치는 블랙 몹의 체내에 있는 결정 에너지 총량을 합산하지 못했다. 쪼개져 있는 에너지 중 가장 큰 것 하나만 탐지하는 식이었다.
즉 6,000짜리 덩어리 하나와 그 미만의 덩어리 여러 개가 모여서 총에너지가 5만이라 해도, 6,000으로 인식하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탈 괴수를 추적하기 위해 최윤이 만든 추적 장치는 달랐다. 쪼개진 에너지 덩어리 전부를 정밀 추적해 체내에 축적된 총에너지를 알아낼 수 있는 획기적인 놈이었다.
“너무 빠른데. 이러다가 나 떨어지겠어!”
브라우니의 등 위에서 깃털을 잡고 있던 유지웅이 칼바람에 몸을 떨며 외쳤다. 옆에서 정효주가 그를 단단히 부축했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이제 겨우 동해 건넜잖아! 도쿄에는 언제 도착하지?”
일본에는 다행스럽게도 유지웅은 블랙 몹이 출현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브라우니를 불러서 타고 정효주와 일본으로 향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그는 출발을 하면서 제니스에 소집령을 내렸다.
“으으! 내 퍼플 결정체! 절대로 안 놓친다!”
무슨 희생을 줄여야겠다는 그런 숭고한 사명 의식 따위는 없고, 아깝게 잃어버린 퍼플 결정체를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되찾고 말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12만 5,000이라니. 그럼 전에 갖고 있던 물건보다 더 좋은 거 아닌가?
“우리 셋만으로 괜찮을까?”
“문제없어! 브라우니만 해도 그 녀석보다 더 쎄잖아! 사실 제니스 다 안 불러도 될 걸?”
제니스 공격대의 목표는 유일무이한 블랙 몹 전문 공격대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지만 예비대 체제로 변신한 후 제대로 된 블랙 몹 레이드를 치러보지 못했다.
괴수 블랭은 블랙 몹 못지않게 강력하기는 했지만, 당시 나미의 말을 들어보면 녀석은 온전히 자기 힘을 발휘하지 않은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효주는 셋이서 블랙 몹을 상대해도 괜찮은지 조금 걱정이 들었다.
물론 아주 조금이다. 힐러가 없긴 하지만 유지웅의 보호막은 대단한 강도를 가졌고, S급 장비로 완전 무장했으며, 여기에 브라우니까지 있다.
“저기 있다!”
저 멀리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글에 표시된 위치 좌표를 보니 목표가 확실한 것 같다. 드디어 유지웅의 눈에도 새하얗고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브라우니가 부리를 벌리고 기세 좋게 포효를 질렀다.
―캬아아악!
괴수는 사방에 불길을 내뿜고 있었다. 도시는 초토화가 되어 남아 있는 시설이 없었다. IACP 결정체 정제시설공단이라고 들었는데, 매우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제때 피난해서 회사 인명 피해는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브라우니의 포효를 들었는지 괴수는 멀리서 고개를 흠칫 들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수백 미터. 브라우니는 더욱 속도를 빨리 하며 녀석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키아아악!
그때였다. 녀석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동시에 날개를 옆으로 쫙 펼쳤다. 유지웅은 재빨리 정효주와 자신, 그리고 브라우니에게 보호막을 걸었다. 브라우니는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쇄도해 들어갔다.
번쩍!
눈부신 섬광이 사방을 덮쳤다. 유지웅은 충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그대로 부딪칠 줄 알았는데?
“뭐, 뭐야?”
―키에엑?
브라우니는 물론이고 유지웅도 당황해서 두리번거렸다. 괴수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 녀석, 상대가 안 될 것 같으니까 도망을 친 건가?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대체 어디로? 어떻게?
“자기야! 이거 봐!”
그때 정효주가 다급히 외쳤다. 유지웅은 얼른 고글을 확인하다 말고 입을 크게 벌렸다.
“뭐, 뭐야? 이건 대체?”
목표를 나타내는 붉은 점이 현 위치에서 50km 남쪽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주요 보스 뭐 그런 건 아닙니다.
파워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주세요.. 사냥은 1편이면 끝날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