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16 인어 여왕 =========================================================================
2차 해금 사태 이후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해로는 제한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인도양을 지나는 선박은 한동안 오만 연안, 파키스탄 연안을 거쳐, 인도를 빙 둘러 가는 식으로 항로를 잡아야 했다. 즉 대륙 연안으로만 항해해야 했고, 덕분에 항행 시간과 항행 비용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면서도 시간이 단축되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은 해상 지도를 끊임없이 작성하며, 괴수가 서식하지 않는 해역을 찾아내 연결하는 식으로 항로를 작성해 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도양 항로 중 하나가 바로 인도양 대동맥이라는 별칭을 가진 항로였다. 수에즈 운하에서부터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항로로서,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ㄴ’ 모양으로 둥글면서도 크게 꺾어지는 항로를 말한다.
그 이후 인도양을 지나는 선박은 모두 인도양 대동맥 항로를 이용해왔다. 이번에 침몰당한, 핵융합로 제조에 필요한 설비를 싣고 있던 선박도 인도양 대동맥 항로에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당분간 인도양 대동맥 항로 이용을 중지해야 합니다. 인도양을 지나는 선박은 모두 대륙 연안을 지나가야 해요.”
“그럼 운송 시간과 비용이 지나치게 증가합니다. 그에 대한 경제적 대책도 필요해요. 안 그래도 온 세계가 경제 위기로 폐렴을 앓고 있습니다.”
“인도양 괴수는 신종 블랙 몹입니까?”
WCO에서는 연일 관련 대책을 요구하는 각국 대사들의 요청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고, 수립하고,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과로인 남기철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었다. 아니, 여기는 결정체 센터라니까! 괴수 퇴치 센터가 아니라 국제 시장에서 결정체 유통과 분배를 조절하는 기구라고! 왜 괴수 퇴치를 WCO에서 논의하는 건데!
WCO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시각, 백악관에서는 불이 꺼질 기미가 없었다.
“이제 겨우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데, 인도양 통과가 금지된 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겁니다.”
“그 정도인가?”
“2차 해금 현상 이후 항행 거리가 두 배 이상 길어지는 바람에 운송비용이 지나치게 늘어났습니다. 이번 사태로 총 해상 운송 비용이 적어도 3% 이상은 증가할 겁니다.”
3%. 얼핏 보기에는 작은 수치지만 국가적 규모, 그리고 세계적 규모로 보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비록 해상 운송 비용에 한정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재무부는 인도양 괴수 출현 사태가 미국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끼칠지 셈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국방부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여야 인도양 괴수를 퇴치할 수 있는지 견적을 내느라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비시 대통령은 제니스에 또 어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골치가 지끈거렸다.
“그래, 이번에 나타난 괴수는 결정도가 몇이라고 하던가?”
“그게, 측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우리가 전 지구에 MD망을 까느라고 얼마나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는데!”
비시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돈을 얼마나 덕지덕지 처발랐는데 그거 하나 못 알아내?
지금 세계에서 전 지구적 MD망을 설치, 상시 운용하는 국가는 미합중국뿐이다. 한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차세대 MD망, 즉 ZMD는 성능은 더 뛰어나지만 아직 유라시아 지역을 커버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록히드마틴이 공급하는 XS-3 저궤도 위성의 수량이 부족한 탓이다.
아무튼 그렇게 돈을 처먹을 때는 언제고, 정작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 ‘측정하지 못했습니다.’라니! 예산 때문에 매번 의회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게 좀 이상합니다. 당시 해역에는 3기의 위성이 항공 감시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기도 괴수의 결정도를 탐지해내지 못했습니다. MD망에는 아예 괴수가 나타났다는 반응 자체가 잡히질 않았습니다.”
“3기가 동시에 고장이라도 났나 보군. 아니면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가.”
북미 항공사령관은 다소 억울했다. 위성 3기가 동시에 고장이 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한다. 더군다나 차후에 실시한 점검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전산 기록상으로, 위성 3기는 당시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MD망에는 괴수가 출현한 적이 없다고 기록이 남아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칠드그린 부통령이 말을 꺼냈다.
“각하, 하지만 이걸 생각해 보십시오.”
“뭔가?”
비시의 말이 대번에 부드러워졌다. 측근에게 서슴없이 호통을 치고 화를 내는 인물이지만, 단 한 명 칠드그린 부통령만큼은 나이 어린 상전 모시듯이 한다. 그는 차세대 미합중국을 이끌어나갈 인물이자, 또한 유지웅이 가입한 시계 동호회장이기 때문이다. 전자보다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린 것 같지만 뭐 넘어가자.
“우리 미합중국의 MD망은 퀼캄사(社)가 개발한 주파수 측정식 결정 에너지 탐지 방식을 개량해서 만든 탐지망입니다. 즉 괴수의 결정 에너지를 원거리에서 감지해서, 그 움직임을 추적하는 방식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괴수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제야 측근들도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비로소 규소기반 괴수가 그런 특징을 가졌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일반적인 탄소기반 괴수와 달리 온몸이 기계로 이뤄진 규소기반 괴수는 체외에 나노 로봇과 유사한 프레온 괴수층이 외장갑을 형성하고 있다. 이 외장갑은 미국이 자랑하는 MD망의 투시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하지만 한국이 발표한 영상을 보면 규소기반 괴수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 모습은 아무리 봐도 뼈와 살로 이뤄진 탄소기반 생명체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인도양 괴수가 규소기반 괴수라는 점이 아닙니다. 동일, 혹은 유사한 원리로 우리 미국 MD망의 추적을 원천 차단하는 괴수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즉 다시 말해 MD망으로는 녀석의 이동이나 습격을 미리 대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그제야 좌중은 칠드그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미국 MD망은 수중이라 해도 일정 수심까지는 추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헌데 그의 말대로라면 인도양 괴수에게는 그런 특징이 무의미해지는 셈이다.
“ZMD망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규소기반 괴수도 추적할 수 있는 차세대 추적망 아닙니까?”
“하지만 ZMD망은 결정적인 결점이 있습니다. 추적각이 지나치게 작아 탐지 범위가 좁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많은 위성을 쏘아올리고도, 아직 유라시아 전역도 사정범위에 두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위성을 이동하면…….”
“비효율적입니다. ZMD망 역시 해역에서는 일정 수심 이하부터 탐지하지 못합니다. 수심 100미터 이하에서만 이동해도 ZMD망은 무용지물이 될 겁니다. 이미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 뒤에는 늦습니다.”
역시 정보부서 출신이라 그런지 실무에 탁월했다. 비시는 속으로 가볍게 감탄했다.
“추적이 어렵다는 건 잘 알았네. 하지만 제니스라면 충분히 섬멸할 수 있지 않겠나? 그 어려웠던 베링샤크도 제니스는 거뜬히 물리쳤는데 말일세.”
“그렇습니다, 각하. 서둘러 제니스와 공동 대책을 수립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는 대강 결론이 난 것 같으니 서둘러 연결해주게.”
“예, 각하!”
백악관은 다시 한 번 바빠졌다. 측근들이 자기 일을 찾아 부산하게 일어서는 와중에도 칠드그린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막 말을 걸려던 비시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모습에 멈칫 했다.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혼자 남은 칠드그린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정말로 블랙 등급인가?’
블랙 등급은 현존하는 최고의 괴수 등급이다. 인도양 괴수는 그 추정 크기가 과거 베링샤크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니, 아직 본모습을 보기는커녕 다리 몇 개만 보고 추측한 것이니 실제로는 더 거대할지 모른다. 인도양 괴수를 블랙 등급으로 단정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쉬울까? 칠드그린은 인도양 괴수가 MD망에 전혀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걸렸다. 차라리 규소기반 생명체 괴수라면 납득할 수 있으나, 탄소기반 생명체형 괴수임에도 불구하고 MD망에 아예 잡히지 않았다는 점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혹시…… 블랙의 상위 등급?’
어쩌면 유지웅은 답을 알지도 모른다. 칠드그린은 그런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눈을 뜬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간헐적인 간격을 두고 V-23이 차례차례 흑석동 저택에 내려앉고 있었다. 비상근무 모드로 접어든 저택 관제탑은 긴장감이 잔뜩 고조된 상태였다.
“다 왔나?”
“아직. 한 분이 더 남으셨어. 최윤 박사님.”
“위치가 어디야?”
“1분 안에 도착인데…… 아, 저기 보인다!”
멀리서 날아오는 V-23은 이제 레이더뿐만 아니라 육안으로도 잡히고 있었다. 육중한 묵빛 기체가 착륙장 위에 사뿐하게 내려앉으며, 로터의 회전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듯한 정장을 입은 최윤과 레지나가 V-23에서 내렸다. 세종시 연구단지에서 호출을 받고 곧바로 날아오는 길이었다. 둘은 저택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본채에 들어섰다. 응접실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전부 도착한 상태였다.
“저희가 마지막이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해해요, 최윤 박사님. 저도 남자입니다.”
“…….”
최윤은 살짝 창피했다.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굳이 그런 미묘한 억양으로 괜찮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건데?
최윤 커플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회의실처럼 꾸며 놓은 응접실의 참석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제니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안슐 왕자, 손재진을 포함한 자문단 위원 셋에, 최윤과 레지나, 가렌, 그리고 남기철과 장태준까지. 여기에 유지웅과 정효주까지 착석해 있으니, 그야말로 UN의 안전보장이사회 저리 가라 하는 살벌한 운영회가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나미에게 시선이 옮겨진 최윤은 숨을 흡 하고 멈출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바다로 떠난 그녀가 설마 이 자리에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미 씨?”
“오랜만이에요. 레지나 너도.”
레지나는 흠칫 했으나 곧 오랜 친구를 대하듯이 웃음을 머금으며 정겹게 대했다.
“언제 왔어? 왔으면 말을 하지.”
“얼마 안 됐어. 애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애기?”
“그건 다음에 말씀드리죠.”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빠질 듯하자 유지웅이 나서서 환기를 시켰다. 좌중은 다시 그에게 집중했다. 그가 헛기침을 하자 비서실장이 일어서서 프로젝터를 작동시켰다. 커다란 벽면 스크린에 영상이 떠올랐다.
“이놈이 바로 그 인도양 괴수로군요.”
“니트로 교수님, 아니 니트로 교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원흉이지.”
가렌이 이를 바드득 가는 것을 보고 최윤은 그가 애제자를 참으로 아낀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연구소 사람들은 니트로를 가렌의 제자쯤으로 알고 있었다.
최윤은 패드 컴퓨터를 확인하며 견해를 꺼냈다.
“미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 확인을 해봤습니다만, 당시 아라비아 해협을 감시 중이던 MD망 위성 3기는 모두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산 기록에는 해당 좌표에서 아무런 결정도도 감지되지 않았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규소기반 괴수란 말이오?”
가렌의 말에 레지나가 대답했다.
“가능성은 없지 않아요. 하지만 규소기반 괴수가 굳이 강인한 메탈식 외장갑을 두고, 연약한 생체 피부로 위장할 것 같지는 않아요.”
“어차피 방어막이 있지 않습니까? 외장갑의 형태에 의미가 있을까요?”
남기철이 그렇게 의견을 제시하자, 최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방어막은 분명 핵이 아니면 부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굳이 강인한 외장갑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해서 저는 규소기반 괴수가 아닌 일반적인 탄소 기반형 괴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MD망에 걸리지 않는 겁니까?”
기술적인 지식이 비교적 약한 남기철이 다시 반문했다. 유지웅이 말했다.
“그건 나미 씨가 설명해줄 수 있다고 하네요.”
“나미 씨가요?”
“예. 우리에게 알려줄 게 있다고 합니다.”
그제야 모두의 눈길이 나미에게 쏠렸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녀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도 전혀 수줍어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잠시 스크린 속 인도양 괴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건 인도양의 지배자예요. 저와는 한 번 싸운 적이 있죠.”
“……!”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는 말에 모두들 눈을 부릅떴다. 나미는 레드 결정체를 지닌 새로운 타입의 괴수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녀와 싸우고도 무사하단 말인가?
“우리는 결과를 내지 못하고 물러났어요. 하지만 다시 싸우면 분명히 제가 질 거예요.”
“그럼, 설마…….”
“예, 맞아요. 노틸러스는 저와 같은 레드 결정체를 갖고 있어요.”
“노틸러스?”
“제가 붙인 이름이에요. 조개의 형태를 하고 있거든요.”
다들 레드 결정체라는 말에 미처 놀라기 전에, 문어 다리를 가진 거대 괴물 조개의 모습을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호러 아닌가?
순간 어떤 생각이 번뜩인 남기철이 놀라움을 가득 담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깐, 레드 결정체를 가졌는데도 저 모습을 하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맞아요. 저는 인간의 모습을 얻고 힘이 약해졌어요. 바다에서는 온힘을 낼 수 있다지만, 본래 모습에 비해서는 약할 수밖에 없어요.”
나미는 단언하듯이 덧붙였다.
“노틸러스는 저보다 훨씬 강해요. 우리가 결과를 내지 못한 것도 녀석이 봐줬기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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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깊으니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