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귀족이다-669화 (669/1,550)

00669  나는 구단주다  =========================================================================

“저 선수 정말 딱인데.”

야구 경기장에는 사람들의 환호가 가득했다. 안정환 투수가 또 다시 삼진을 잡아낸 것이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정효주와 함께 야구장을 찾은 유지웅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정효주가 픽 웃으며 말했다.

“왜, 또 수집욕심 들어?”

“아니,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 저런 재능 있는 선수는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나? 그게 한국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고, 선수 본인에게도 좋고, 뭐 그런 거지.”

“더 큰 물은 메이저리그?”

“그렇지.”

“기왕이면 뉴욕 양키스?”

“당연하지.”

참고로 뉴욕 양키스 구단주가 바로 유지웅이다. 이제 설명이 됐겠지?

“이제 겨우 스물 하나……. 진짜 지금 데려가면 딱인데. 자유계약으로 풀리는 거 어느 세월에 기다려. 아직도 깜깜하다.”

유지웅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한 6년 정도 남았나? 그 전에 답답해서 숨이 넘어가겠다.

안정환, 스카우터들이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 재능 있고 성실하고 각종 변화구에 능통하며, 무엇보다 별명이 테리우스일 만큼 잘생기고 쇼맨쉽이 뛰어나 여자팬들이 많다. 진짜 큰물에 데려가기만 하면 대박인데!

딱히 그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냥 구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훌륭한 원석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걸 보니 안타까울 뿐이다.

“어쩔 수 없어. 참아. 그리고 병역 문제도 있는 걸.”

“병역 문제는 내가 해결해주면 되지. 여차 하면 전투기 몇 대 사주고 대신 쌤쌤하자고 하면 되잖아.”

“……그게 안 되니까 운동선수들이 메달에 목숨 거는 거지.”

“으, 아무튼 나 쟤 꼭 뉴욕으로 데려오고 말 거야!”

*  *  *

한국 E스포츠 시장에서 유지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는 매년 개최하는 제니스배 대회 상금만 1조 원이 훌쩍 넘는다. 전설대전뿐만 아니라 각종 다른 E게임도 대회를 개최하고 상당한 상금을 내건다.

때문에 야구, 축구 등 구기 종목 시장과 그 팬들은 E스포츠 시장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정확히는 질투하는 것이다.

작년 일성 라이온즈 구단이 일 년 구단 운영비로 약 400억을 썼다. 제일 많은 액수였다. 9개 구단의 운영비를 다 합쳐도 2,000억에 못 미친다.

그런데 E스포츠 시장은 유지웅이 내거는 상금만 1조 원이 넘는다. 물론 단순 상금과 구단 운영비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일단 선수 연봉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상금의 95% 이상이 선수에게 지급되기 때문이다.

―E스포츠 말고 구기 종목에도 투자를 좀 해주세요!

―너무 한쪽만 편애하시는 거 아닌가요?

구기 종목 팬층 사이에서는 그런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자기 돈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종목에 투자를 하겠다는데.

“축구팬이 축구 보려고 경기 티켓 사는 거랑 다를 게 없는데요.”

한때 엄청난 반향과 논란을 불러왔던, 그래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유지웅의 발언이었다. 당시 생각 없이 내뱉은 그 말은 국내 스포츠 선수 및 팬들의 가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 그리고 부러움을 심어 주었다.

그렇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경기를 보러 줄을 서지, 좋아하지 않는 경기를 보려고 티켓을 사지 않는다. 유지웅이 E스포츠 시장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은, 축구팬이 축구 보려고 표를 사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단지 규모의 차이가 좀 있을 뿐?

“으으, 제구 쩔어주는 좌완 파이어볼러인데. 평균 속도가 160인데. 데려와야 하는데. 으으으. 으으으으.”

양키스 구단주께서는 오매불망 선수를 영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일에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합법적으로는 못 데려온다. 편법을 쓰면 가능할 거 같긴 한데 그랬다가는 프로야구팬들한테 엄청난 욕을 처먹는다. 그런 식으로 돈으로 유망주 다 쓸어 가면 국내 리그는 초토화되고 결국 축구의 전철을 밟을 거라고. 월드컵 꼴 나기를 바라느냐고.

“아아, 신이 저주스럽다. 왜 신은 나를 낳으시고 또 안정환 선수를 낳으셨을까?”

“…….”

유지웅이 안정환이라는 스물한 살 야구 선수 하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는 건 측근들 사이에서 소문이 쫙 났다. 측근들은 최근 성적이 부진한 양키스 때문에 뛰어난 투수를 데려오고 싶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효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람은 아이템이 아니야.”

“누, 누가 뭐래?”

그녀가 보기에, 지금 신랑은 가지고 싶은 아이템을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난 게임 매니아였다. 현질할 현금은 넘쳐나는데 게임 시스템상 현질이 막혀 있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친구, 방법이 있네.」

보다 못한 안슐이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유지웅은 반색을 하는 한편 우려를 나타냈다.

“이면 계약이요? 하지만 이미 몇 번 찔러봤는데 자기들도 다른 구단이랑 야구팬들한테 욕먹을 순 없다고 안 된다던데요? 아무리 큰돈을 줘도 안 된대요.”

―돈으로 유망주와 젊고 훌륭한 선수를 모조리 쓸어가게 놔둔다면 결국 국내 야구 리그는 초토화되고 말 겁니다! 야구를 후원할 생각이 없으시면 그저 지켜봐주기라도 해주십시오!

늙은 구단주가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부르짖던 게 생각난 유지웅은 괜히 마음이 안 좋았다. 자신이 국내에서, 아니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 구단주는 끝끝내 할 말을 했다.

야구가 너무 좋다는 사람. 야구 구단을 창설하려고 젊은 시절 만든 조그마한 사업체를 대기업으로 일궈낸 사람. 그런 사람의 절절한 외침에는 유지웅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이면 계약 제시는 그렇게 금액도 못 불러보고 철회되었다.

「그러게 금액부터 불렀어야지. 금액을 봤으면 생각이 달라졌을 걸세.」

“그러려고 계약서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보려고 하지도 않더라고요.”

「강적이군. 금액부터 알게 되면 무너질까 봐 애초에 눈을 감은 게 틀림없네. 매우 훌륭해.」

“역시 방법은 없겠죠?”

「있네. 그리고 간단하지.」

“있어요?”

안슐이 기껏해야 이면 계약 정도를 제시할 거라고 생각한 유지웅은 의미심장한 그의 미소에 화색을 보였다. 정말로 방법이 있어? 안정환 선수를 양키스로 데려오면서도, 국내 야구 관계자와 팬들한테 욕을 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이?

「그 선수가 있는 구단을 매입하게. 그리고 계약을 종료시키게.」

“그건 저도 생각해봤지만 구단을 팔려고 하겠어요?”

「모회사가 LP생명이었지? 그 모회사를 인수하면 되지 않나?」

“그것까진 저도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선수를 양키스로 보내면서 욕먹는 건 못 피할 거예요.”

「FA 취득 요건을 완화하든가, 아니면 해외 리그 진출이 용이하도록 관련 조항을 수정하면 되네.」

“그것까지도 생각은 해봤어요. 근데 힘으로 윽박지르면 가능하긴 한데, 독불장군처럼 날뛴다고 엄청 욕먹을 걸요. 다른 9개 구단도 엄청 반대할 거구요.”

「그럼 다른 9개 구단도 매입해버리게.」

“네?”

「제수씨 이름으로 하나, 아버지 이름으로 하나, 어머니 이름으로 하나, 이런 식으로 전부 매입해버리면 되지 않나?」

“……그거까지는 생각을 못했어요.”

「10개 구단이 대의적인 차원에서 훌륭한 선수의 해외 진출을 위한 제도 변경에 합의했다고 하면 일단 명분은 될 걸세.」

“그래도 욕은 먹을 텐데……. 그런 식으로 바뀌면 국내 리그에는 좋은 선수가 한 명도 남아나지 않아 결국 리그가 초토화될 거라고 욕먹을 건데요.”

「선수들 대우를 메이저리그 수준으로 올려주게. 구단 개수도 10개 밖에 안 되는데 무슨 상관인가?」

“……그것도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가족 이름으로 구단을 전부 매입한다. 그리고 구단 전부의 협의를 거쳐 안정환이 양키스로 올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친다. 국내 선수들이 해외로 떠날 것이라는 비난은, 국내 선수들 대우를 메이저 수준으로 격상시켜서 가라앉힌다.

유지웅은 자책했다. 왜! 왜 나는 이런 단순한 발상을 하지 못했을까!

「Never forget. Simple is best.」

“I got it.”

별로 대단한 명대사는 아니고, 최근에 둘이 같이 한 게임에 나온 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런 사소한 것도 손발이 척척 맞는 걸 보면 천생친구 인연이기는 한가 보다.

「레드삭스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기다리세요. 왕좌를 탈환하러 갑니다.”

졔이크 안슐 빈 지예드 알 나얀.

현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 이름이다.

*  *  *

세현저축은행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선언, 9개의 기업을 상대로 지분 확보에 들어갔다. 인수합병을 선언하기 전 이미 물밑 작업을 통해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였다.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간 국내 재계에는 거의 간섭을 않던 유지웅이 드디어 발을 떼어놓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국내 기업가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듯 놀라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나 곧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9개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국내 프로야구구단의 모회사라는 사실이었다. 호기심 많은 기자들은 유일하게 대기업 모회사가 없는 엑센 구단에 접촉한 결과, 엑센 구단은 이미 누군가에게 매각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구단을 안 판다고? 그럼 모회사를 사면 되지!

돈 앞에 장사 없다. 유지웅은 세현은행을 통해 결국 일성생명 등 9개 구단 모회사를 매입하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일성그룹 등 대기업들은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유지웅의 한 마디면 회장,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갈려나갈 정도로 지분 구조가 역전되고 만 것이다.

―드디어 유지웅 회장이 재벌들에게 본격적으로 칼을 대고 있다!

그간 유지웅의 눈치를 보느라 국내 재벌들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꾸준히 고쳐오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기회에 유지웅이 모든 것을 싹 갈아엎으려고 한다고 믿었다. 대강 앞뒤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기자들조차도 유지웅이 국내 프로야구에 간접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누구도, 21세의 제구가 되는 평균 구속 160의 좌완 파이어볼러를 데려가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날도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던 안정환 선수는 웬 청년의 방문을 맞았다.

“누구……시죠?”

============================ 작품 후기 ============================

"널 데려가려고 지옥에서 온 스카우트.. 아니 구단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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