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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족이다-677화 (677/1,550)

00677  프리시즌 - 친구편  =========================================================================

남기철과 칠드그린의 경기는 치열했다. 보는 사람마다 손에 땀을 쥐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소규모 국지전에서는 패배에 가까운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전체적인 면에서 차근차근 이득을 취해가는 남기철의 운영이 놀라웠다. 내로라하는 게이머들은 남기철의 게임 운영에서 새로운 빛을 보았다.

“저런 식으로 이길 수도 있구나.”

“백코너가 전투는 하는 족족 이기는데 이득을 좀처럼 취하질 못하네. 저럴 거면 싸우질 말아야 했어.”

“아냐. 청코너가 일부러 큰 걸 노리고 계속해서 소규모 전투를 유도한 거 같은데? 작은 승리에 자꾸 취하게 만들고 자기는 그 틈을 노려 주요 멀티와 본거지만 노리고 있어.”

“아무튼 대단하다.”

“그러게. 백코너도 참 아깝다. 소규모 접전 컨트롤은 장난이 아닌데.”

그리고 다음 4강전이 시작되었다. 장태준과 앳된 중학생 소년이었다. 많은 이들이 장태준의 승리를 점쳤다. 그는 4강까지 온갖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며 올라온 인물이었다. 그에 비해 중학생 소년은 특별히 눈에 띄는 화려함 없이 승리를 따내며 4강에 올랐다.

「네! 놀랍습니다! 백코너 선수, 청코너 선수를 무자비하게 짓누르며 2연승을 따냅니다! 결승에 진출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장태준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중학생 소년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2연패를 하며, 결승 진출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백코너 선수, 저런 식으로 플레이했었나?”

“그전까지는 되게 얌전하게 이겼던 거 같은데, 4강전에서는 완전히 무자비하다.”

“나 무슨 폭풍이 몰아치는 줄 알았어. 엄청난 기세다.”

관중들도 놀라워하며 그렇게 수군거렸다. 중학생 소년은 4강전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었다. 정신없이 상대방을 몰아치며 게임 전체를 손안에서 지배했다. 폭풍, 바로 그 표현이 딱이었다.

결승 진출자는 남기철, 중학생 소년으로 가려졌다. 유지웅은 결승전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잠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원래 게임 대회는 이렇게 하는 거다.

유지웅이 무대에 오르자 관중석이 다시 술렁였다. 일부 여학생들이 꺅꺅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생긴 것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 돈까지 엄청 많은 남학생 아닌가. 동경하는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

“마침내 이 대회 우승 타이틀을 놓고 다투게 될 최종 게이머 두 명이 결정되었습니다. 그 전에 잠시 인터뷰를 안 할 수가 없겠죠? 두 분, 잠시 나와 주세요.”

4강전 진출자들은 간단하게 소감을 물어보는 선에서 끝났다. 하지만 결승 진출자이니 이번에는 좀 더 세밀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먼저 남기철에게 물었다.

“결승에 진출하셨는데요, 지금 소감이 어떠십니까?”

“매우 떨리고, 기쁩니다. 자신은 있었지만 설마 제가 결승전에까지 진출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우승을 하시고, 블루세이버까지 얻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유지웅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남기철은 순간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관중석도 덩달아 고요해졌다.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침묵 위로, 무대 조명의 네온사인만이 화려하게 춤추고 있었다.

지금도 무대 중앙에는 보란 듯이 삼천만 달러에 달하는 현금이 쌓여 있었다. 블루세이버가 귀중한 시계이기는 하나 삼천만 달러는 지나친 고가이다. 관중 대부분은 블루세이버가 900만 달러에 낙찰된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아랍 부호가 다시 삼천만 달러에 산다고 한다.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팔겠습니다.”

“맨시티 구단주님한테 말이죠?”

“……예.”

남기철은 주먹을 불끈 쥐고 그리 대답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유지웅이 다시 물었다.

“블루세이버 이상 가는 시계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시계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하지만 아직 주택 대출도 남아 있고, 아이도 곧 학교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도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시고 해서 돈이 들어갈 데가 많습니다.”

수많은 중년 남자들이 공감한다는 듯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떤 이는 눈물이 왈칵 솟아나오는지 눈가를 만지기도 했다. 그래, 이것이 쪽팔림을 무릅쓰고 게임 대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아버지, 가장의 마음이다.

유지웅도 그 마음은 이해했다. 여기에서는 고교생이지만 원래 시간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였으니까. 가장의 마음은 가장이 잘 이해한다.

짓궂은 미소를 띤 유지웅이 관중석을 돌아보았다. 뭔가 폭탄을 터트릴 듯한 표정에 관중들은 덩달아 긴장했다.

“여러분, 더 재미있는 이벤트 경기를 위해 제가 규칙 하나를 추가하려고 합니다. 아, 결승 진출자들에게는 손해될 게 없는 규칙입니다.”

관중석이 일제히 술렁거렸다. 저 멀리 안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유지웅이 재차 말했다.

“저 또한 삼천만 달러를 걸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맨시티 구단주와 제가 경기를 벌여, 승리한 자가 우승자한테서 블루세이버를 살 수 있는 겁니다.”

“뭐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맨시티 구단주와 주최자가 경기를 벌여서 승리한 자가 삼천만 달러를 경기 우승자한테 주고 시계를 갖겠다는 거 아니야?”

우승자는 유지웅과 겨뤄 승리할 경우 블루세이버를 차지할 수 있다. 안슐은 그 블루세이버를 삼천만 달러에 사겠다고 했다. 당연히 우승자는 블루세이버를 그에게 팔 것이다.

여기에 유지웅도 끼어 들었다. 이렇게 될 경우, 안슐과 자신이 겨뤄 승리한 자가 블루세이버를 되살 수 있다는 것이다.

관중들은 어리둥절했다.

“아니, 이러면 승리한 자가 더 손해 아니야?”

“그러게. 패배자도 아니고 승리한 자가 왜 삼천만 달러나 주고 시계를 되사는 거야?”

“돈지랄도 이 정도면 예술이네…….”

패자는 삼천만 달러의 손해 없이 빠져나갈 수 있다. 승리자는 삼천만 달러를 주고 시계를 되살 수 있다. 그럼 승리자에게 남는 것은 도대체 뭐지?

“자존심이 남지.”

아, 그런가?

부자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관중들은 패닉에 빠졌다. 너무 극을 넘나드는 돈지랄이다 보니 부럽거나 허탈감은커녕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안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처음으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흥분에 떨며 울부짖고 있었다.

“재미있는 친구군.”

처음에는 블루세이버를 조롱하듯이 10만 달러만 딱 더 얹은 채 가져간 재수 없는 놈이라 생각했다. 헌데 이게 뭔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 당당하게 부딪쳐 오는 게 아닌가? 그래, 무릇 사내라면 저래야 정상이다.

“당장 현찰을 구하지 못한 관계로 현찰 대신…….”

유지웅은 딱 소리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열 명의 무장한 보안 요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가장 앞에 선 보안 요원은 검은 상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저게 뭐지?”

관중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폈다. 삼천만 달러가 들어가기에는 상자가 너무 작다. 그러다가 관중들은 보안 요원들의 등에 새겨진 마크를 발견했다. SC Bank, 상당수가 저게 무슨 마크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허나 곧 그 마크를 알아본 사람들이 곳곳에서 놀라서 외쳤다.

“세, 세현결정체은행이야!”

“뭐? 아니, 그 은행이 왜 여기에?”

세현결정체은행.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 결정체망과 금융망을 움켜쥐고 있는, 가히 지구상 최고의 은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기업이다. 본점이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아 각종 규제를 받지 않으며, 그만큼 베일에 싸여 있는 집단이다.

세현결정체은행은 각 나라에 오직 한 개씩의 지점만 두어 운영한다. 물론 지점은 해당 국가의 법인이니만큼 규제를 받지만, 본점의 입장에서는 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힘의 역학 관계를 보면 세현결정체은행이 파견한 ‘대사관’ 같은 성질을 갖는다.

한국에도 여의도에 세현결정체은행 지점이 있었다. 지금 무대에 올라온 보안 요원들은 세현결정체은행 한국지점 소속 직원들이었던 것이다.

유지웅이 손수 나서서 검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곧 초록색으로 빛나는 영롱한 보석 10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정도 30짜리 최상급 그린 결정체 10개입니다. 시간 관계상 달러 현찰을 마련하지 못한 관계로 이 현물을 걸겠습니다.”

장내는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세현결정체은행이 왜 여기서 나와?”

“잠만, 주최자 혹시 세현결정체은행 한국지점장의 아들이거나 뭐 그런 거 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각 나라 지점은 본점이 편의상 그냥 대사관처럼 설치한 교섭 창구라고! 저럴 권한이 어디 있어! 그것도 아들이!”

세현은행은 각 나라에 지점을 설치하여 영업을 하고 교섭을 벌이기도 한다. 즉 지점은 대사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점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은 해당 국가의 인물을 고용한다.

따라서 지점장과 임직원들의 입김이 엄청나지만, 어디까지나 해당 국가에 한해서일 뿐이다. 본점의 입장에서는 간단한 업무를 시키기 위해 돈 주고 고용한 현지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지점장의 입김이 국내에서 대단하다 해도, 삼천만 달러에 달하는 결정체를 마음대로 인출해서 대회 상품에 내놓는 게 가능할까?

지점장의 연봉이 매우 세긴 하지만 삼천만 달러를 심심풀이 삼아 상품으로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 하물며 지점장의 아들이 아버지의 위세를 빌어 저런 짓을 버리는 게 가능하겠는가?

누군가가 문득 깨달은 듯이 외쳤다. 어찌나 떨리는지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본점이다! 본점이야!”

“뭐?”

“주최자, 본점 직계가족이 틀림없다고!”

“세현은행 본점? 설마?”

“아냐! 맞아! 틀림없어!”

대다수 관중들은 반쯤 공황 상태에 빠졌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세현은행의 소유자 일족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본점이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고 규제도 받지 않으니, 오너 일가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헌데 주최자가 오너 일가라면? 지금까지 보여준 이 미친 듯한 재력, 말도 안 되는 행동거지가 맞아 떨어진다.

“세상에, 세현은행 오너 일가가 설마 한국인이었어?”

“말도 안 돼!”

유지웅도 확 불타오른 분위기를 느꼈다. 은행 하나 가지고 왜 저래, 하며 혀를 차던 그는 다시 앞으로 나섰다. 어쨌거나 소란을 가라앉히고 계속 대회를 진행해야 했다.

그는 중학생 소년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이 소란에도 아랑곳없이 소년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참 크게 될 놈이라고 내심 유지웅은 생각했다.

“결승에 진출한 것을 축하합니다. 혹시 학생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공진호입니다.”

마이크 떨어뜨릴 뻔했다.

공진호. 프로게이머이자 시대의 아이콘. 유지웅 역시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영원한 우상으로 여겼으며, 지금도 마음속의 바이블로 남아 있는 인물. 정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

어쩐지 낯이 익는다고 했다.

============================ 작품 후기 ============================

홍진호 아니에요. 공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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